대승의 보살행
이타행을 강조하는 대승이 기본으로 하는 것은 육바라밀(六波羅蜜)의 실천이다. 바라밀이란 원래 최고의 '완전한 상태'라는 뜻으로 여기서는 덕목의 완성을 뜻한다.
육바라밀을 대표하는 것은 반야바라밀로 이것은 '지혜의 완성'이란 뜻이다. 부처님의 깨달음 또는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을 때 작용하는 지혜를 다른 지혜와 구별해서 이렇게 부른다. 우리가 보통 말하는 《반야경》은 상세하게는 《반야바라밀경》이라고 하는데 이 경전 부처님의 깨달음을 있게 해주는 완전한 지혜에 대해서 설법하고 있다는 뜻이다. 이것에 의해 대승불교가 가르치는 교리(一切皆空의 가르침)를 체득할 수 있기 때문이다.
보시를 비롯한 그밖의 바라밀도 마찬가지다. 반야바라밀의 체득자인 부처님이 실천하는 보시의 행은 모두가 완전한 것이라는 뜻이다. 다시 말해 부처님이 갖춘 여러 가지 덕성이 바라밀이라는 말로 불리우는 것이다. 부처님이 전생에서 보살이었을 때 중생제도를 위해 실천했던 만행(萬行)은 보시·지계·인욕·정진·선정·반야(지혜) 등 여섯 가지로 그것을 다 완성했기 때문에 바라밀(波羅蜜)이라 한다. 나아가 부처님이 부처님일 수 있는 것은 여섯 가지 덕목을 완성했기 때문이라는 논리가 성립되는 것이다. 수행자가 최고의 완전한 경지에 이르기 위해 여섯 가지 바라밀을 완성해야 할 이유도 여기에 있다.
바라밀은 부처님이 깨달음을 얻는 전제다. 바꾸어 말하면 바라밀의 완성 없이는 부처님이 될 수 없다는 것이 대승의 가르침이다. 그러므로 바라밀은 '그것에 의해 깨달음을 이룰 수 있고 이상적인 상태(열반)에 도달하는 완전한 실천'이라는 의미가 부가되었다. 이것은 바라밀이란 말의 어의(語義) 해석에서도 나타난다.
중국의 역경가들은 바라밀이란 말을 '도피안(到彼岸)' 또는 '도(度)'라는 말로 번역했다. 도피안은 '저 언덕에 이르렀다'라는 뜻이고 도는 '건넜다'는 뜻이다. 바라밀을 도피안으로 번역한 것은 저쪽이나 타인을 뜻하는 Para란 말의 파생어로 보고 저쪽(피안)에 갔다고 해석한 것이다.
이같은 번역은 통속적 어원해석에 가깝지만 교의적으로는 의미가 깊다. 즉 바라밀로 표현되는 여러 가지 덕목에 의해 이 세상으로부터 윤회의 강을 건너서 저쪽 언덕인 이상의 경지에 도달할 수 있다는 것이다. 더욱이 건너가는 것은 자기를 위해서가 아니고(즉 자신이 건너가는 것이 아니고) 다른 중생들을 건너주기 위해서라는 해석에 이르러서는 이타행의 극치를 보는 듯한 느낌을 갖지 않을 수 없다. 보살이란 바로 이같은 마음속으로 중생을 이쪽 언덕에서 저쪽 언덕으로 건너주는 뱃사공과 같은 역할을 하는 사람이라는 것이 대승불교의 설명이다.
육바라밀은 최초의 덕목으로 보시를 배치하고 있다. 이것은 재가신자의 덕목인 보시와 지계가 생천의 과보를 가져온다는 교설과 관계가 깊다. 또한 지계로써 정진하여 선정과 지혜를 얻는 것은 출가수행의 과보를 설명하는 것에 다름이 아니다. 육바라밀 배열의 경우도 삼학과 마찬가지로 초보적인 것에서 궁극적인 것으로라는 순서가 고려되어 있는 것이다.
보시는 분명히 이타를 강조하는 것이지만 재가자와 출가자의 보시는 약간 틀린 점이 있다. 재가자에게는 재시(財施)라는 물질적 베풂이 강조되나 출가자에게는 법시(法施)라는 정신적 베풂(진리의 가르침)이 강조되는 것이다. 이밖에도 보살이 중생에 대해 두려움을 없애주는 것도 보시의 하나다.
지계는 원래 재가자에게 요구되었던 삼귀의계와 십계를 기본으로 한다. 동시에 삼취정계(三聚淨戒)를 강조하는데 여기에는 이타행의 서약이라고 할 수 있는 섭중생계가 있어 지계행위가 단순히 청정을 위한 것만이 아닌 중생을 위하는 것임을 나타내고 있다.
인욕은 고난을 견디는 일이다. 글 대표적인 예로 불전 가운데 인욕선인이라 불리우는 본생담의 주인공이 있다. 이 얘기는 무도한 왕이 명령하는 대로 손과 발을 절단당하고 생명을 빼앗기면서도 여전히 그것을 견디어 낸 덕분에 훗날 깨달음의 인연을 만들었다는 내용이다. 이것을 교리상으로 해석하면 참는다는 것은 진리(法)를 진실로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이다. 특히 '무생법인(無生法忍)'은 보살에게 요구되는 바라밀이다.
정진은 보살행을 부지런히 실천하는 것으로, 어떤 난관이 있어도 수행을 포기하지 않는 집념같은 것이다. 보시나 지계처럼 특별한 내용을 갖는 것은 아니나 보살로서의 수행방법 모두를 포괄해 실천하되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밀고 나가는 것이다.
선정은 대승적 색채가 짙지만 그 기본이 되는 것은 공·무상(無相)·무원(無願)의 삼해탈문(三解脫門)이다. 삼해탈문은 제법을 공이며 무상(無想)이며 원하는 것이 없는 것이라고 보는 삼매로 이것이 해탈에 이르는 문이라는 것이다. 이상의 다섯 가지 바라밀을 앞에서 이끄는 것이 반야바라밀이다. 앞의 다섯 바라밀은 복자량(福資糧: 복을 만드는 바탕), 반야바라밀은 지자량(智資糧: 지혜를 만드는 바탕)이라 하여 보리를 얻기 위한 두 가지의 자량이라고도 한다.
반야바라밀은 앞에서도 말했듯이 대승의 깨달음이다. 이것에 의해 진리(眞如)와 일체가 될 수 있기 때문에 대승의 모든 교리가 다 담겨진다. 그것을 한마디로 말하면 《반야심경》에서 말하듯 '오온은(자성으로서의) 모두가 공이라고 조견한다.'는 것으로 귀착한다.
이 육바라밀은 보살이 중생을 '저 언덕에 이르게 하는 행위'라는 점에서는 이타행이지만 그 자체는 깨달음을 목표로 하고 있기 때문에 자리(自利)의 완성을 추구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뒤집어 말하면 남을 완성시키는 행위(利他) 자체가 자기를 완성시킨다(自利)는 논리다.
이것은 부처님의 가르침을 배우는 중생 편에서의 태도이지만 부처님자신의 경우는 반대다. 즉 먼저 깨닫고(自利), 다음에 중생을 제도하는 것(利他)이 순서다. 《화엄경》은 이것을 반야바라밀의 활동이라고 설명하는데 그것은 방편(方便)·원(願)·역(力)·지(智)다. 이 네 가지와 앞서 말한 여섯 가지 바라밀을 합쳐 십바라밀이라 한다.
제 칠바라밀이 되는 방편은 중생을 구제하는 수단을 말하는 것으로 이것은 자비에 근거한다. 여덟 번째의 원은 중생을 제도하고자 하는 서원이며 아홉번째 력은 중생을 구하는 실행력 부처님의 열 가지 힘을 말한다. 마지막 지는 이상의 바탕으로 중생의 모든 것을 알 수 있는 지혜를 뜻한다. 제 6의 반야(智) 바라밀은 근본무분별지(根本無分別智)라 한다면 제10의 지(智)바라밀은 반야바라밀을 체득한 뒤의 세간지를 지칭하는 것이다.
보살은 이같은 십바라밀을 실천의 진전에 따라 열가지 단계(10地)로 순차적으로 완성해 간다는 것이 《화엄경》 10지품의 가르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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