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 입문 교리

7-2 대승의 열반관과 깨달음

소리없는 아우성 2012. 12. 13. 11:12

대승의 열반관


부처님의 죽음에서 최고의 이상경(무여의열반)을 발견한 불제자들은 육체의 사멸을 열반의 불가결한 조건으로 생각게됐다. 이것을 '회신멸지(灰身滅智)' 즉 몸이 재가 될 때 인식작용도 없어지는 것이라고 표현했다.이에 대해 대승불교는 열반의 세계 피안을 별개의 세계에서 찾지 않고 생사윤회의 세계 그대로가 마음의 전환에 의해 열반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여기서는 이 세상의 중생을 구하는 부처님의 자비가 강조된다.

대승의 이상상(理想像)으로서 보살은 부처님의 자비행을 대행하는 존재다. 보살은 중생이 있는 한 피안으로 건너가지 않고 이 세상에 머물며 중생구제를 위한 삶을 산다. 대승경전은 이 보살의 삶을 가리켜 '무주처열반(無住處涅槃)'이라 부르고 있다. 무주처란 지혜로운 존재이므로 생사윤회에 머물지 않으며 자비로운 존재이므로 열반에도 머물지 않는다는 뜻이다.

대승불교는 또한 깨달음(悟)과 깨달아진 진리(法) 그리고 깨달은 자(佛)의 3위가 일체라고 생각했다. '진리와의 한 몸'은 대승불교의 구극적 절대가치이기도 하다. 이리하여 보리·열반은 무위(無爲)·진여(眞如)·법계(法界)·제일의제(第一義諦)·연기(緣起)·공성(空性), 나아가 부처님·여래·법신과 동의어로 인식되었다. 이론상 이것은 존재, 즉 실유는 아니지만 가치적으로는 실재로서 표현되어진다. 예를 들면 <대승열반경>의 '여래상주(如來常住) 무유변이(無有變易)' 또는 '상락아정(常樂我淨)의 4바라밀' 등의 표현이 그것이다. 뿐만 아니라 깨달음에 이르는 수단으로서의 지혜가 깨달음의 불가결한 덕이 되어 부처님과 보리가 동일시된다.

또한 미오(未悟, 아직 깨닫지 못한) 중생의 깨달음의 가능성에 대해서까지 깨달음을 이룰 것을 전제로 해서 여래장(如來藏) 또는 불성이라 부르고 이것을 진여·법신과 동일시하는 학설도 나타났다. 이럴 경우 깨달음(悟)과 아직 못 깨달음(未悟)는 무구진여(無垢眞如)와 유구진여(有垢眞如), 이구청정(離垢淸淨)과 본성청정(本性淸淨)으로 구별된다. 똑같은 의미로서 여래장은 '재전위(在纏位)의 법신'으로 규정된다.

이러한 일원적인 사고는 모두 대승불교의 특색이라 해도 좋다. 우리는 화엄이나 선(禪)을 통해 이러한 사고에 익숙해져 있다. 그러나 이로 인해 깨달음도, 깨닫지 못함도 똑같은 것이 되고 깨달음에의 길을 무시하게 되면 그것은 불교의 정도를 일탈하는 것이 된다. 인도의 불교는 이런 점에서 특별히 깨달음을 위한 수행과 실천의 '순서'를 중요시한다. 이것은 중국이나 한국불교와 크게 다른 점이다.

깨달음의 길



4제의 네 번째 도제는 구체적으로 8정도를 그 내용으로 한다. 8정도의 특색은 고락의 두 변을 떠난 중도(中道)에 있다. 여기서 말하는 '도'란 새삼 설명할 필요도 없이 목적(苦滅)에 이르는 길이며 또한 그 곳을 밟아 나가는 것이다.
4제의 설명에서 도는 수행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밟아나가는 것은 우리의 경우 노력없이는 불가능하다. 수(修)를 뜻하는 범어 '가능하게 하다'는 뜻이다. 그것은 사람을 사람다운 모습이게 하기 위해 훈련하는 것으로 수없이 반복을 되풀이하여 몸에 익히고 습관화시켜야 하는 것이다.

도의 출발은 어디에 있는가. 부처님의 경우 스스로의 결단에 의해 출가하는 것에서 시작되었다. 제자들의 경우도 자신의 결의로 출가해서 수행하는 것에는 변함이 없다. 한 가지 다른 것이 있다면 부처님을 찾아가 가르침을 듣는다는 것이다(見佛聞法). 그리고 부처님의 인격을 신뢰하고 그의 가르침을 진실로 믿는 것에서 출가수행이 시작된다. 뒤에 확립된 교단의 규칙에서는 입문의 조건으로 삼보에 귀의하고 규정된 계를 지킬 것을 서약하는 것이 결의를 표명하는 방법이 되고 있다. 계의 올바른 생활태도를 몸에 익히는 것으로 이것은 그 뒤에 이어지는 실천수행의 전제이다.

대승불교가 되면 수행의 목적을 명확히 하고 발보리심(發心)하는 것이 모든 것의 전제가 된다. 발심은 중생제도의 서원이다. 이것은 모든 부처님이 과거세에 본원(本願)을 가지고 긴 수행을 해온 것을 본받아 한다는데 그 의미를 둔 것이다.도의 수행은 길다. 부처님과 똑같은 깨달음을 목표로 한다면 3아승지겁에 이르는 수행이 요구된다. 오랜 기간 동안 끊임없는 노력이 불도수행의 특색이다. 그 사이 수행자는 수없이 반복해서 설법을 듣고 스스로 반추하며 마침내 그것이 체득되도록 해야 한다.

불교의 실천수행 방법은 선정이 기본으로 되어 있다. 선정은 인도에서 널리 행해지는 요가에 상당하는 것으로 부처님이 깨달음에 이르는 수행방법으로 선택했던 것이다. 고락이변(苦樂二邊)을 떠난 중도란 구체적으로 선정을 의미한다. 선정은 세간적 욕망에 몸을 맡기는 것도, 육체에 고통을 주며 마음을 단련하는 것도 아니다. 오로지 마음을 안정하고 집중해서 진리의 요득에 주력하는 방법이다. 이렇게 해서 최종적으로 진리를 깨달았을 때 거기에 완전한 마음의 평안이 나타나고 모든 고통의 소멸이 현증되는 것이다.

이상은 불도수행의 전도정(全途程)을 요약해서 말한 것이다. 경전에는 실로 여러 가지의 실천덕목과 수행의 단계와 순서, 그것을 실천하는 방법이 설명돼 있다. 그러나 대부분이 앞에서 말한 틀에서 크게 벗어나는 것은 아니다.그러면 불도수행의 구체적 방법으로 어떤 것이 있는가. 중요한 것 몇 가지를 알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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