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 입문 교리

6-1 윤회와 업, 번뇌

소리없는 아우성 2012. 12. 13. 11:08

윤회와 업, 번뇌



불교교리의 기초가 되는 사제와 삼법인이란 생사윤회로 규정되는 우리 범부들의 삶이 어떤 인과관계에 있는가를 냉철하게 분석한 것이다. 사제와 삼법인이 분석한 인생 현실은 불교의 인생관내지 세계관의 논리적 기초가 된다. 그것은 불교가 우리들에게 주어져 있는 현실을 어떻게 보고 있느냐 하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인생을 어떤 관점에서 보느냐는 그에 따른 대응과 극복의 양식, 다시 말해 수행론(修行論)의 도출이란 점에서 매우 중요하다.

윤회의 세계

불교의 세계관 또는 인생관의 기본은 '윤회'라는 것이다. 윤회는 생사윤회 또는 생사유전이라고 하는 태어나서 늙고 병들어 죽는 것의 반복을 말한다. 이 윤회는 항상 사람으로 다시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업에 따라 어떤 때는 축생의 모습, 어떤 때는 지옥에 태어난다고도 한다. 물론 하늘나라에 태어나는 좋은 과보도 있지만 그렇다고 영원한 것은 아니다. 요컨대 하늘나라의 행복도 윤회의 한 형태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이같은 윤회의 관념은 불교 특유의 것은 아니다. 불교가 성립되기 이전 이미 인도 사람들이 가지고 있던 세계관 또는 인생관이었다.

인도인들은 옛부터 불사(不死), 즉 죽음 뒤에 영생(永生)을 마음속으로 강하게 희구했으며 그것을 광명의 세계로서의 하늘, 즉 신의 세계에서 찾으려 했다. 그러나 바라문들은 주문(呪文)이나 제사로 신들까지도 지배하고 그 결과 주문을 하는 바라문이나 절대적 신의 지위까지 차지하게 됐다. 이는 상대적으로 신의 절대성 상실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리하여 부처님이 출현했던 시대 인도사람들의 생각에는 천상의 신의 세계도 이미 절대적인 영원한 행복의 세계로 인식되지 않게 되었다. 그리고 천상의 즐거움에도 한계가 있다고 보았으며 그 이유는 업의 과보가 끝나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업(業)이라는 것은 현세와 내세, 넓게 말해서 현재의 생과 다음의 생 사이의 인과관계를 인정하고 그 결정인자로서 생전의 행위를 의미하는 말이다. 즉 다음 생을 결정하는 행위 내지 그가 지닌 힘과 기능을 '업'이라고 한다. 이러한 생각은 불교성립 이전부터 믿어져 왔다.

천상계에 태어나는 것을 대신해서 절대적인 행복으로 생각된 것은 이 윤회, 즉 생사의 반복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이다. 이것이 '해탈'이다. 생사윤회로부터의 해방은 불사(不死)의 획득에 다름 아니지만 바라문들 사이에서는 구체적으로 그것을 윤회의 주체인 개아(個我)가 우주의 근원인 브라흐만(梵)에 귀일하는 것(梵我一如)으로 생각했다.
해탈의 문제에 대해서는 이밖에도 여러 가지 견해가 부처님 당시 있었다. 불교경전에 이른바 '6사외도' 또는 '62사견(六十二邪見)'등은 해탈에 관한 견해가 얼마나 많았는가를 말해주는 것이다.

부처님 또한 해탈의 길을 찾은 분이다. 그 분의 출가수행은 해탈을 위한 것이며 깨달음을 얻었다는 것은 해탈의 방법을 깨달았음은 물론 그 방법에 의해 해탈을 얻었다는 뜻이다. 윤회는 이처럼 업, 그리고 인생의 고, 그리고 해탈이라는 여러 가지 생각이 하나의 세트를 이루고 있는 관념이다.

부처님의 입장은 앞에서 말한 세계관과 인생관을 전제로 하면서도 윤회의 구조가 어떻게 되어 있는가(사후에 어떻게 되는가)를 논하는 것보다 현실의 괴로움은 왜 생기는 것이며 그것을 제거하는 방법은 어떤 것인가에 역점이 주어졌다. 따라서 윤회의 구조를 이해하는 것은 불교 본래의 목적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리체계의 정비와 아울러 그 일환으로써 윤회의 구조도 이론적으로 체계화되었다. 현재 우리가 그것에 속박되어 헛된 논의를 해야 할 이유는 추호도 없지만 불교의 세계관이 생사윤회를 전제로 하고 있음을 잊어서는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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