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 입문 교리

2-6 승원제도의 확립

소리없는 아우성 2012. 12. 13. 10:12

승원제도의 확립


반역을 한 데바닷다는 부처님의 사촌 동생이었다. 경전에서는 극악무도했던 비구로 묘사되고 있다. 그러나 실제로는 지나칠 정도로 엄격한 계율주의자였다는 것이 최근 불전을 연구한 학자들의 견해다. 데바닷다의 반역은 부처님 만년에 일어났는데 그는 부처님께 다섯 개 항목을 제시하며 교단의 개혁을 요구했다. 상좌부에 전해오는 팔리 성전에 의하면 그가 요구한 내용은 다음과 같다.
①일생동안 임야에 산다. ②일생동안 탁발에 의하여 음식을 얻어야 하며 신자의 집에 초대되어 음식대접을 받지 않는다. ③일생동안 분소의를 입는다. ④나무아래서의 생활을 계속하며 옥내에 들어가지 않는다. ⑤일생동안 육류나 생선을 먹지 않는다.다른 부파의 율전에는 임야생활 대신에 소금과 식초, 그리고 우유를 먹지 않는다고 되어 있다. 정도의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이것은 본질적으로 '4의지(四依止)'로 대표되는 사문생활로의 복귀를 요구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4의지란 ①걸식으로 음식을 얻는다. 즉 신자의 집에 초대되어 식사를 하지 않으며 자기가 직접 밥을 짓지 않는다. ②분소의, 즉 남이 버린 베조각 옷을 만들어 입는다. ③수하좌(나무아래서의 명상)를 원칙으로 하며 지붕이 있는 곳에서는 잠을 자지 않는다. ④부란약 즉 소의 오줌을 발효시켜 만든 허술한 약을 사용한다 등이다.
초기교단은 대체로 이같은 출가사문의 생활에 충실했었다. 그러나 당시의 출가수행자들도 우기인 삼개월 동안은 각지를 돌아다니는 유행을 중단하고 한 곳에 거주하는 습관이 있었다. 이에 따라 불교의 출가수행자들도 안거를 하게 됐다.여기서 주목할 점은 원림 또는 정사와 승원제도가 확립된 사실이다.

부처님 당시 재가신자 가운데 유력한 신자들은 불교 교단에 원림을 기증하고 우기 중에는 음식물을 제공하여 비구들을 그 곳에 머물게 했다. 이것이 발전되어 나중에는 건축물을 지어 교단에 기증하기도 했다. 유명한 죽림정사, 기원정사, 녹자모강당 등은 재가신자가 기증한 정사이다. 항구적인 정사가 세워진
뒤 비구들은 그곳에서 안거를 보냈다. 경우에 따라서는 안거가 끝난 뒤에도 머무는 일도 있었다. 그리하여 부처님 만년에는 유행편력의 생활에서 정사거주의 생활로 변모해갔던 모양이다. 이같은 생활은 자연 당시 종교계 수행자들의 '4의지'의 율법을 지키지 않는 결과를 초래했으며, 엄격한 계율주의자였던 데바닷다의 개혁요구로까지 치달았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부처님은 이 요구를 거부했고 데바닷다는 부처님 밑을 떠나 스스로 자신의 교단을 만들었다. 이는 불교분파의 제1호 사건이었다. 초기 대승경전인 《법화경》에는 그의 계통을 이어온 불교도 집단이 존재했을 가능성을 기술한 부분이 있다. 또 훨씬 후대에 이르러 7세기경에는 중국승려 현장이 쓴《대당서역기》에도 '제바종도'라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이는 데바닷다계통의 불교가 계속 존재했을 가능성을 추측하게 하는 근거가 되고 있다.

여하튼 데바닷다라는 이름은 그후의 정통파 불교의 경전에서는 갖가지 악행과 비행의 대명사로 표현되었다. 예컨대 빔비사라왕의 왕자인 아자타사투를 부추겨 부왕을 살해하고 자신도 부처님을 죽이려 했다는 것이다. 그는 부처님에게 바위를 굴려 떨어뜨리기도 했으며 혹은 술 취한 코끼리를 풀어놓아 덤벼들게 했으나 모두 실패했고 산채로 지옥에 떨어진 것으로 경전은 기록하고 있다. 이로 미루어 기성 교단에서 그가 얼마나 미움을 샀는가를 알 수 있다.

자자(自恣)와 포살(布薩)


데바닷다가 교단의 개혁을 요구했으나 부처님이 이를 거절했다고 해서 당시의 승단이 청정한 계율을 지키지 않았느냐 하면 그것은 아니다. 부처님이 거절한 것은 지나친 율법주의였을 뿐, 승가는 청정을 생명으로 여겼다. 따라서 청정과 율법주의는 구분해야 할 필요가 있다. 비구의 성스러움과 청정성은 승가를 유지해 가는 기반이 되는 것으로써 이것은 비구생활이 실제로 어떻게 바르게 행해지느냐와 깊은 관련이 있다.수행생활에서 잘못이 있으면 반성하고 죄를 지었으면 참회하여야 한다. 이러한 기능을 불교교단은 초기부터 제도적으로 확립하고 있었다. 자자와 포살이 바로 그것이다.

자자란 우안거 종료일에 삼개월 동안 함께 지낸 동료들끼리 율의 가르침을 지키고 그것을 깨뜨린 일이 없었는가를 서로 반성하고 참회하는 의식이다. 이에 비해 포살이란 승원제도가 확립되면서 자자를 간소화시킨 것이다. 원래 힌두세계에서 오래 전부터 시행되던 정진결재일로 매월 초하루와 보름에 실시했는데 빔비사라왕의 권유로 불교에서도 채택했다는 기록이 있다.

포살은 재가신자에게도 있지만 비구의 포살과는 그 내용이 다르다. 비구의 포살은 매월 보름과 초하루 승가의 비구 전원이 한자리에 모인 가운데 열린다. 여기서 바라제목차라고 하는 비구가 지켜야 할 계율조항(팔리율에는 2백 27계)을 읽어나간다. 이를 위반한 비구는 그 사실을 고백 참회하게 된다. 큰 죄를 범한 비구는 별도의 처분을 받으며 이 자리에서 나오지 않는다. 그러니까 포살은 가벼운 범계를 고백하고 참회하는 의식인 것이다. 이 두가지 의식은 승가의 청정함을 계속 유지하게 하는데 큰 역
할을 했다.

이밖에도 승가는 구성원을 받아들이는 입문의식이 있었다. 부처님 당시 이 의식은 '비구여 오라, 법과 율은 잘 설해져 있다. 바로 고통을 없애기 위해 청정행을 하라'고 말함으로써 출가와 득도를 행했다고 한다. 이것은 말하자면 '부처님의 초대'로써 부처님만이 할 수 있는 방법이다. 그 다음으로 계속해서 불·법·승 삼보에 귀의하는 것, 신앙고백에 의한 득도가 있었음을 경전은 기록하고 있다. 이 득도식은 나중에 승가의 가장 중요한 의식으로 정착되어 최저 열 명의 비구가 증명을 하는 가운데 하도록 규정했다. 한국 계단의 3화상 7증사가 이 제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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