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 입문 교리

2-4 전법과 교단의 성립

소리없는 아우성 2012. 12. 13. 10:11

초전법륜


각자(覺者)가 된 부처님은 잠시 내심의 기쁨을 누리기 위해 7×7일 동안을 조용히 명상을 즐겼다. 이러한 사실은 팔리성전《율장》 대품에 자세히 나타나 있다. 이에 따르면 부처님은 최초의 7일간은 보리수 아래 앉아서 스스로 깨달은 진리(法)를 즐겼으며(自受法樂) 계속해서 7일간씩 7주간에 걸쳐 아자파라나무, 무칠린나무 등에서 깨달음을 즐겼다고 한다. 이 때 두 사람의 상인이 물과 메밀로 만든 떡을 공양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그러나 부처님은 자신이 깨달은 진리가 너무 심오하여 다른 사람들이 이해하기 힘들 것을 염려해 설법할 것을 주저했다고 한다. 《율장》대품에는 다음과 같이 부처님의 망설임을 표현하고 있다.
"고생 끝에 얻은 깨달음을 지금 또 어떻게 설할 수 있겠는가. 탐욕과 분노로 고통받은 사람들이 이 진리를 깨닫는다는 것은 쉽지 않다. 이 진리는 미묘하고 심원한 것이기 때문에 탐욕과 암흑으로 뒤덮여 있는 사람들에게는 드러나지 않을 것이다…"

이럴즈음 '세계의 주재자'인 범천은 부처님의 마음을 알고 만일 이대로 진리를 설하지 않고 지낸다면 그 훌륭한 가르침이 영원히 묻혀버림으로써 세상사람들은 여전히 근심걱정에 잠기고 생과 사에 시달릴 것이라고 염려했다. 그래서 부처님 앞에 나타나 '원컨대 이 감로의 문을 열고 청정무구한 분이 깨달은 진리를 들려주시오.'라고 설법을 권청했다. 범천의 권청은 사실이라고 볼 수는 없으나 설법주저는 심리적 사실이 분명하다. 또 설법을 권한 것이 누구이든 상관은 없으나 그 역할을 인도 최고신에게 맡긴 것은 불교도의 의도를 엿보게 하는 것이다. 다시말해 최고신인 범천이 권청을 하게 함으로써 부처님을 범천보다 우위에 두고 세상의 존경을 받는 분임을 강조한 것이다.
이리하여 전도를 결심한 부처님은 우선 자신이 지난날 사사했던 두 사람의 스승을 찾아갔으나 그들은 이미 세상을 떠나고 없었다. 그래서 부처님은 앞서 함께 고행하던 다섯 수행자를 찾아 바라나시를 향했다. 그 도중에 부처님은 우파카라는 아지비카파의 고행자를 만나 자신 넘치는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나는 일체를 깨달은 사람이다. 일체의 사물에 더럽혀지지 않으며 망집에서 벗어난 해탈자이다. 내가 세상에서 유일한 정각자이다. 모든 번뇌를 버린 사람은 나와 같이 세상의 승리자이다. 미혹의 세계에서 감로의 북을 치며 법륜을 굴리기 위해 나는 바라나시의 거리로 향한다."

바라나시에 다다른 부처님은 교외 이가라야(현재의 사르나트)에서 다섯 수행자를 만나 그들에게 '나는 여래(진리를 요달한 자)'라고 선언하고 말을 걸었다. 그들은 처음에는 믿지 않았으나 부처님의 거룩한 모습과 조리 있는 말을 듣고 부처님의 말씀을 믿게 됐다. 부처님은 깨달은 내용을 '사제'로 설하고 깨달음에 이르는 실천으로써 '팔정도'를 제시했다. 그리고 이것은 고와 낙의 두 가지 치우침을 떠난 '중도'라고 선언했다.

부처님이 자신에 넘치는 태도로 설법하자 먼저 카운디냐라는 수행자가 깨달음의 문에 들어섰다. 그때 부처님이 '오, 카운디냐는 깨달았구나!'라고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그래서 뒤에 많은 경전들은 '깨달은 카운디냐'라는 뜻으로 '아즈냐타 카운디냐'라고 부르고 있다. 이어서 밥파와 밧디야도 깨달음을 얻었다. 그러나 나머지 두 사람은 곧 깨달음을 얻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대품에는 이미 깨달음을 얻은 세 사람의 탁발로 여섯 사람이 함께 생활하는 동안에 최후의 두 사람인 마하나마와 아시바지트가 정각을 얻어 여섯 사람의 아라한(존경받을 만한 가치가 있는 사람)이 생겼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러한 사실을 불교에서는 '초전법륜'이라 하여 매우 중요한 사실로 취급한다. '법륜을 굴린다'는 것은 교화활동을 국왕이 전차를 전진시켜 여러 나라를 정복통치하는 것에 비유하는 말이다.

교단의 성립


다섯 사람의 귀에 의해서 비로소 불교는 교단(僧伽)을 이루게 됐다. 그리고 삼보도 성립되었다. 다시 말해 부처님과 가르침, 그리고 그에 따라 수행하는 상가가 생긴 것이다. 특히 부처님이 '설법했다'는 사실은 불교의 종교적 성격을 결정하는 매우 중요한 사실이다. 만약 부처님이 깨닫기만 했다면 자리는 성취했겠지만 이타는 성취하지 못하고 말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부처님의 명성이 알려지자 많은 사람들이 그의 덕을 흠모하여 제자가 됐다. 또 재가자들도 신자로서 귀의하고 공양품을 바쳐 부처님과 제자들의 생활을 뒷바라지했다. 처음에는 부처님을 시험하기 위해 논쟁을 걸어오는 사람도 있었으나 결국은 심복하는 예도 허다했다. 또는 우연히 만나서 부처님의 가르침을 듣고 감동하여 출가한 사람도 있었으며 멀리 남쪽나라에서 명성을 흠모하여 열 여섯 사람의 친구들과 상의한 뒤 부처님을 찾아와 제자가 된 바라문도 있었다.

다섯비구가 제자되어 승가가 성립된 후 최초의 입단자는 바라나시의 부호의 아들 야사였다. 야사의 출가는 부처님의 높은 이름을 듣고 그 친구 네명에게 출가를 권해 50명이 함께 출가했다. 또 야사의 부모는 열렬한 신자(우바새와 우바이)가 됐다. 부처님은 60명의 비구들에게 전도의 사명을 주어서 한 사람 한사람이 별도의 교화를 하도록 길을 떠나 보냈다.
초기교단의 입단과정에서 중요한 사건은 마가다의 우루벨라에서 카사파 3형제(3가섭)와 그를 따르는 무리 1천명, 또 라자그리하에서 사리푸타(사리불)와 마하목갈라나(대목건련)가 회의론자 산자야의 제자 2백 50명을 데리고 집단 개종한 사실이다. 사리푸타와 목갈라나는 당시 종교계에서 존경받던 인물이었는데 어느날 라자그리하 마을에서 부처님의 제자를 만나 부처님의 가르침을 전해 들었다. 사리푸타는 목갈라나와 함께 2백50명을 인솔해 기원정사로 가서 부처님의 제자가 됐다. 이 소식을 듣자 그의 옛스승 산자야는 피를 토하고 미쳐서 죽었다고 한다.

사리푸타와 목갈라나의 입단은 불교교단의 지위확립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사리푸타와 목갈라나는 부처님께 귀의한 뒤 얼마 안돼서 불교교단에서도 지도적인 인물이 되었다. 그들은 부처님보다 나이가 많은 사람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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