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 입문 교리

2-5 교단의 발전과 제자들

소리없는 아우성 2012. 12. 13. 10:11

교단의 발전


인도 종교사회에서 새바람을 불러일으킨 부처님은 많은 사람들을 교화하고 다시 고향인 카필라바스투를 방문했다. 부처님은 아버지 슛도다나왕을 비롯해 많은 샤카족 사람들을 교화했다. 이때 아들 라훌라도 출가하여 수행자가 되었다. 아난다와 아니룻다, 뒤에 반역자가 된 데바닷다는 모두 샤카족 출신의 비구였다.
불교교단에는 누구나 자유롭게 출가가 허락되었다. 세간적인 신분은 교단내에서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교단내에서는 모두가 평등했다. 부처님 제자 가운데는 앞에서 말한 귀족출신의 제자도 있었고 카사파 형제나 사리푸타 또는 목갈라나와 마하카사파와 같은 바라문 출신도 있었다. 또 코살라의 사밧티 등에서 출가한 상인 계급도 있었으며 낮은 신분출신으로 유명한 제자가 된 사람도 있었다. 우팔리는 샤카족 왕궁에 있던 이발사의 자식이었으며, 강도였던 앙굴리마라, 무식한 주리반특가, 베살리의 유녀 암마팔리 등은 모두 낮은 신분의 출가자였다.

그러나 부처님은 여성에 대해서만큼은 상당히 엄격했던 것 같다. 팔리어 《율전》에 의하면 부처님이 고향에 돌아갔을 때 계모인 마하프라자파티부인은 출가를 요청했지만 거절당했다. 그러나 그녀의 결심은 완강했다. 스스로 머리를 깎고 다시 부처님을 찾아와 간청을 했다. 이를 안타깝게 여긴 아난다가 부처님께 세 번이나 간청을 하여 겨우 허락을 받았다. 이는 여성이 남성보다 열등해서라기보다 교단의 규율을 통제하기 위해서였던 것으로 보인다. 이는 아난다가 부처님께 여성출가를 허락 받기 위해 '여성은 깨달음을 이룰 수 없느냐'고 질문한데 대해 분명히 '아니다'라고 대답한 사실, 그리고 여성출가자의 계율을 남자보다 훨씬 까다롭게 제정한 점등으로 미루어보아 짐작할 수 있다.

부처님이 고향 카필라바스투를 다녀온 뒤 불교교단은 아연 활기를 띄었다. 제자들의 숫자도 많이 늘어나 불전에서는 이를 통틀어 '1천2백 50인의 비구'라고 말하고 있다. 이 숫자는 카사파 3형제가 데리고 온 1천 명, 사리푸타와 목갈라나 등과 집단 개종한 2백 50백을 합친 숫자다. 이는 2개 집단의 비구가 부처님 재세시 불교교단의 중심세력이었음을 뜻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실제로는 이보다 훨씬 더 많았을 것으로 추측된다. 왜냐하면 나중에 계모인 마하프라자파티 부인과 아내였던 야쇼다라부인 등이 출가를 허락 받아 별도의 비구니교단까지 형성했기 때문이다.
최근 불교학자들은 불전에 나오는 제자들을 산출해 냈는데 이에 의하면 비구가 8백 86명, 비구니 1백 3명, 우바새 1백 28명, 우바이 43명 등 모두 1천 1백60여 명이다. 이 숫자는 경전에 나오는 인물만을 근거로 한 것이기 때문에 부처님 제자 모두를 말하는 것은 아니다.

유명한 제자들


이렇게 많은 제자 가운데 특히 뛰어났던 사람들은 '10대 제자'라고 한다. 이들은 각기 뛰어난 특징을 가지고 있었다. 푸루나는 설법제일, 카다야나는 논의 제일로 일컬어지며 이들은 모두 서인도 출신으로 이 지방 개교에 큰 공적을 남겼다. 또 수부티는 불교의 중심사상인 '공'사상을 이해하는데 일인자였다고 해
서 해공제일이라 하며, 사리푸타는 지혜제일, 목갈라나는 신통제일, 마하카사파는 두타(은둔생활)제일, 아난다는 부처님 말씀을 가장 많이 들었다 해서 다문제일, 이발사였던 우팔리는 지계제일, 그리고 눈먼 아니룻다는 하늘눈을 열었다 해서 천안제일, 또 부처님의 아들이었던 라훌라는 밀행제일이었다고 한다.

10대 제자가 언제 어떤 기준으로 선정되었는지 분명하지 않다. 부처님의 초전법륜상대였던 카운디냐 등 다섯 비구가 포함되지 않은 대신 대승사상의 이해자인 수부티가 선택되어진 것으로 미루어 보아 이것은 대승불교시대의 것이 아니냐 하는 추측이 있다.
부처님 제자 가운데 재가신자로 유명한 사람은 라자그리하(왕사성)에 죽림정사를 지어 기진한 마가다의 왕 빔비사라, 또 부처님과 나이가 같고 친구였던 코살라의 파세나디왕, 급고독이라는 별명으로도 불리고 유명한 기원정사를 지어바친 수닷타 그리고녹자모강당을 기진한 미가라마 도비사카 등의 이름도 빼놓을 수 없다.

부처님의 전도지방은 갠지스강 유역의 대체적으로 마다가의 수도 라자그리하와 코살라의 수도 사바티를 중심으로 한 타원형의 지역으로서 북쪽은 카필라바스투, 남쪽은 코삼비를 수도로하는 밧지국에까지 이른다. 교단의 근거지로서는 이밖에 마가다의 베살리와 바라나시가 있다. 가장 중요한 거점이었던 곳은 라자그리하의 죽림정사, 사밧티의 기원정사다. 부처님은 이 지방을 제자들을 데리고 다니며 매년 우기가 되면 근거지의 어느 곳에 정주하여 제자들을 수행토록 했다. 이를 안거라고 한다. 《율장》에 따르면 비구들이 여름에 행각을 하다가 폭풍우를 만나고 초목과 벌레들을 살상하여 비난을 받은 것이 계기가 돼 비올 때 외출을 금한 것이 안거제도를 만든 시초였다. 그러나 이 제도는 바라문교에도 있었던 것으로 불교 고유의 것은 아니다. 현재 북방불교, 특히 우리 나라에서는 음력으로 4월 15일부터 7월 15일 까지, 10월 15일부터 1월 15일 까지 두 차례로 나누어 하안거, 동안거를 하고 있다.

부처님은 35세에 성도하여 80세에 이르기까지 45년간에 걸쳐 실로 광대한 지역을 다니며 설법을 했다. 그러나 이 사실을 연대기적으로 언제는 어느 곳에서 설법했다는 식으로 재구성하기는 지극히 어렵다. 다만 여러 가지 경전과 율장이 묘사하고 있는 점을 상호 대조하면 대체로 유행과 안거, 설법의 반복이었음을 알 수 있다.

교단의 발전에 따라서 교단의 통솔과 운영을 위한 규정도 점차 강화되어 이는 '율'로써 제정되었다. 율은 대체로 입단규칙, 생활의 규율, 위반에 대한 벌칙, 수행의 방법 등을 규정한 것이다. 불교교단의 계율은 당시 다른 인도종교에 비해 그렇게 엄격했던 것 같지는 않다. 이는 계율문제를 둘러싸고 데바닷다가 반
역한 사실에서도 엿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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