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 행
부처님은 출가후 처음에는 마가다의 땅에서 선정을 닦았다. 이때 부처님을 지도해 준 사람은 아라라 칼라마와 우드라카 라마푸트라라는 유명한 바라문이었다.
아라라 칼라마는 바이샬리 근교에 있었는데 그는 선정수행에 숙달되어 많은 제자가 있었다. 그는 무소유처를 가르쳤다. 무소유처(無所有處)란 '스스로에게 속하는 것은 없다.'는 뜻으로 자손이나 재산은 물론 소유물까지도 갖지 않는, 다시말해 모든 욕망을 버리는 것을 말한다.부처님은 얼마 안가서 이 경지를 다 터득하고 '이 가르침은 정각에 이르는 길이 아니다'라며 그를 떠났다.
이어 부처님은 우드라카 라마푸트라를 찾아가 비상비비상처(非想非非想處:표상이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닌 삼매의 세계)의 가르침을 듣지만 역시 만족하지 못한 채 떠나고 말았다.이는 후대 불교에도 영향을 미쳤다. 즉 우주를 욕계(欲界:인간·아귀·축생 등 욕망을 가진 것이 사는 세계), 색계(色界:온갖 욕망을 떠난 것이 사는 세계), 무색계(無色界:욕망과 물질을 초월한 세계) 의 삼계로 나누어 무소유처와 비상비비상처를 포함한 최상위에 불타의 경지를 두고 이같은 경지에 이르기 위해 갖가지 선정을 수행토록 하고 있다.
두 스승에게서 만족함을 얻지 못한 부처님은 우루벨라촌을 근거지로 하여 수행을 했다. 그곳은 많은 고행사문들이 모여 있는 곳이라 하여 '고행림'으로 불렸다. 고행은 범어로 타파스라고 하는데 번역하면 '열'이라는 의미다. 만물을 생기게 하는 근원적인 힘을 고대 인도인은 열에서 찾았다. 옛부터 바라문들은 난행고행에 의해서 그같은 열을 몸에 붙도록 했다. 고행의 구체적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었다. 남루한 옷을 입고 나쁜 음식을 먹으며 주거는 산림이나 묘지 등에서 했다. 또 고독을 견디며 심신을 단련했다. 그 가운데 단식은 가장 극한의 수행으로 부처님은 오랫동안 단식을 했다. 부처님의 단식고행은 같은 고행자들도 놀랄 정도였다. 부처님은 6년 동안 이같은 고행을 했다. 그러나 고행은 결코 삶에 대한 궁극적인 의문을 해결하는 길이 아니었다.
어느날 부처님은 고행의 무익함을 느끼고 단식고행을 중단했다. 지친 몸을 끌고 마을 옆으로 흐르는 나이란자나강으로 가 목욕을 하고 가까운 마을의 처녀가 올리는 우유죽을 받아먹었다.부처님의 이같은 태도변화에 대해 많은 사람들은 실망을 표시했다. 그 가운데서도 부처님의 벗이 되어 같이 수행하던 다섯명의 수행자들은 '고타마는 타락했다'면서 부처님을 버리고 떠나기까지 했다.
혼자가 된 부처님은 체력을 회복한 뒤 심신을 정리하고 가야라는 곳으로 갔다. 그 곳에서 부처님은 핍팔라라고 하는 나무 밑에 길상초라는 풀잎을 깔고 앉아 선정에 들어갔다. 선정이란 부처님이 택한 최후의 수행방법으로 고행보다는 편안한, 그러나 깨달음에 이르는 확실한 방법이었다. 그것을 경전에서는 '욕락과 고행의 양극단을 버린 중도'라고 표현하고 있다.선정은 일반적으로는 요가라고 불리우는 것으로 정신의 안정과 통일을 의미한다. 전통바라문의 입장에서 보면 우파니샤드 중에서 중기 이후에 갑자기, 자주 말해진 비교적 새로운 수행방법이었다.
그러나 일설에 의하면 인더스문명의 유물 가운데 요가수행을 하는 자세의 신상이 발견된 것을 근거로 하여 그 기원을 비아리아적인 인도 토착전통에서 찾고 있다.부처님이 출가한 지 얼마되지 않아 찾아가 지도받았던 두 사람의 선인도 이 같은 사상을 가진 바라문이었다고 볼 수 있다. 또 바라문의 입장과 맞서는 입장에 섰던 육사외도들도 대부분은 고행을 닦았지만 실천방법에 의해 양자를 분명하게 구분하기는 어렵다.
성 도
부처님은 선정에 들어간 지 얼마 안가서 어느 날 새벽 문득 마음속에 있던 모든 고뇌가 사라지면서 커다란 기쁨이 충만되어짐을 느꼈다. 그것은 실로 모든 악마를 항복 받고 승리한 것과 같은 개운함이었다. 불전에는 이같은 심리상태를 '항마'라는 설화로 나타내고 있다. '마'라는 한자는 원래 범어 마라의 약칭으로써 죽음, 또는 죽음의 신을 뜻하는 말이다. 불교의 교리적으로 마를 온마·번뇌마·사마·천마 네가지로 나눈다. 온마란 우리의 육체를 의미하는 것이고 번뇌마는 마음을 움직이는 것을 뜻한다. 어느 것이나 깨달음에 방해가 되는 것을 상징하는 것이다.
깨달음의 전설은 타화자재천에 사는 천마파순이 요염한 미녀를 보내 유혹하기도 했고 무서운 군병을 보내 위협하기도 했다고 한다. 이는 선정이 들어 있는 부처님의 마음속에 떠올랐다가 사라진 생각과 갈등의 표현으로 볼 수 있다.부처님은 모든 마음의 갈등을 다 극복하고 눈 앞에 나타난 분명한 진리를 보았다. 다시말해 진리를 깨달은 부처가 되었음을 자각했다. 진리로서의 생명인 부처님이 탄생한 것이다. 이같은 사실, 즉 '깨달음(悟·覺)'을 보리라고 부르며 성도라고 한다. 부처님의 깨달음에 따라 그가 앉았던 나무 '핍팔라'는 보리수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됐다.
그러면 부처님이 깨달은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어디까지나 부처님 자신의 내관의 문제이므로 다른 사람으로서는 알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그 내용이 교설로 제시될 때 그것은 고뇌와 그 원인에 관한 '연기의 법리'라고 설명되고 있다.
부처님이 출가한 동기는 도대체 인간은 왜 괴로움 속에서 살아야 하는가, 그리고 그 괴로움이 생겨나는 원인은 무엇인가 하는 의문을 해결하기 위해서였다. 부처님은 보리수 아래서의 선정을 통해 인간은 무엇인가를 항상 얻으려 하고 그칠 줄 모르는 근원적 욕망이 존재함을 알았다. 그리고 그것이 임의대로 작용하는 것은 모든 것이 무상하고 무아라는 진실을 알지 못하는 무명이 진리의 눈을 가리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았다. 즉 무명→번뇌→인간의 생·노·병·사로 이어지는 삶은 고통일 수밖에 없으며 반대로 무명이 소멸되어짐으로써 괴로움이 극복되어짐을 깨달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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