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 생
기록에 의하면 부처님은 샤카(석가)족의 왕 슛도다나왕의 왕자로 태어났다.석가족은 일반적으로 서방의 아리아계 정통파의 입장에서 보면 부족국가의 구제를 지키는 부족이었다. 오늘날 네팔에서 볼 수 있는 몽고계의 피가 섞인 종족이라고 하나 정확한 것은 알수 없다. 이웃의 콜라족과 같이 넓게는 코살라국 문화권내에 속하고 뒤에는 정치적으로 독립을 잃었다. 왕제라고는 하지만 귀족계급들 사이에서 교대로 집권하여 정치를 한 것으로 보인다. 코살라나 마가다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절대적인 왕권은 확립되지 않았었다. 부처님 재세시 불전에 의하면 인도 중원의 땅은 코살라·마가다 2대왕국 등을 비롯해 16대국이 할거했었다. 뒤에 이 나라들은 2대국에 침략, 흡수되었으며 기원전 4세기말에 이르면 마가다에 의한 인도통일이 이루어져 마우리야 왕조가 성립되었다.
부처님이 탄생한 곳은 도성 카필라바스투의 교외 룸비니동산이었다. 불전류에 따르면 부처님은 이 세상에 태어나기 전에 도솔천에 있다가 그 곳에 하강하여 마야부인의 태중에 들어갔다고 한다. 마야부인은 이때 흰 코끼리가 태내에 들어오는 꿈을 꾸었으며 태어날 때는 오른쪽 옆구리를 열고 나왔다고 한다. 또 태어남과 동시에 일곱 걸음을 걸으면서 '천상천하 유아독존'이라고 외쳤으며 아시타선인이라는 사람이 태자의 얼굴을 보고 '이 아이는 전륜성왕이 되거나 부처님이 될 것이다.'라고 예언했다고 한다. 이같은 이야기들은 회화나 조각에 묘사돼 있다.
부처님은 태어난지 일주일만에 어머니를 사별했다. 그후부터 이모이자 계모인 마하프라자파티부인이 부처님을 양육했다. 생모와 일찍 사별한 원인도 있었지만 부처님은 천성적으로 명상을 즐겼으며 젊어서부터 인생문제에 깊은 회의를 가졌다. 이같은 사실을 전설은 '사문유관'으로 묘사하고 있다. 태자는 어느 날 성밖으로 외출을 했는데 동문에서는 노인, 남문에서는 병자, 서문에서는 죽은 사람, 북문에서는 출가사문을 보고 인생의 무상을 느끼고 출가 생활을 동경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또 다른 전설에 의하면 어느 날 농경제에 나가 농부가 밭갈이하는 것을 구경했는데 파헤쳐진 땅에서 나온 벌레를 새가 쪼아먹는 것을 보고 삶의 괴로움을 느꼈다고 한다. 이것은 불교의 기본인 무상관과 고관을 나타낸 것으로써 출가의 심리적 동기를 묘사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출 가
인생에 대해 한없는 회의를 품고 있던 태자는 야쇼다라라는 여인과 결혼하여 라훌라라는 아들까지 낳았다. 그러나 어떻게 해서든지 인생문제를 해결코자 하는 뜻은 더욱더 굳어져갔으며 드디어 처자와 왕자의 신분마저 버리고 집을 나와 출가사문이 되었다. 이 때의 나이 29세였다.
당시 풍습은 진리를 구하는 사람은 집을 떠나 여러 곳으로 스승을 찾아 가르침을 구하고 수행을 했다. 이들을 사문이라고 불렀다. 그들은 또 주처가 없이 밥을 얻어먹으며 생활했기 때문에 걸식자 즉 비구라고도 했다. 부처님도 이같은 사문 비구의 한 사람으로서 수행생활을 시작했다.부처님이 출가했던 시대에는 이같은 사문과 비구들이 많았다.
당시 정치적으로는 군웅할거에서 전국통일을 향하는 움직임이 있었으나 문화적으로는 한 발 앞서서 갠지스강 중류지역에 넓은 문화권이 성립되었다. 이곳은 아리아인의 근거지인 서북인도에서 볼 때 변경이었으나 왕족을 중심으로 한 신흥세력이 일어나고 있었다. 특히 사상적으로는 인도사상이 가장 활발한 시기였다. 이곳에서는 전통적인 바라문사상에 젖지 않은 자유로운 분위기가 생겨 많은 반전통적인 자유사상가들이 배출됐다. 부처님도 인도사상사에서 볼때는 그중의 한 사람이며 불교로서는 불교이외의 이단사상가들을 육사외도라고 불렀다.이 가운데는 오늘날까지 인도에서 큰 세력을 유지하고 있는 자이나교의 개조인 니간타 나타풋다도 포함되어 있다.
육사외도의 사상적 경향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①푸라나 카사파 : 전설에 의하면 이 사람은 노예의 자식이었다고 하는데 살인이나 약탈도 죄가 되지 않는다고 도덕부정론자였다.
②파쿠다 카차야나 : 지(地)·수(水)·화(火)·풍(風)·고(苦)·락(樂)·생명(生命)으로 만물이 구성되었다는 7요소설을 주장했으며 창조자를 인정하지 않고 유물론적 입장에 섰다.
③막칼리 고살라 : 인생을 열 두가지 요소의 집합으로 보고 그 형태는 숙명적으로 결정되어 있으며 도덕적 행위는 무용하다고 주장했다. 이를 따르는 무리를 사명외도라 하며 큰 종교 세력을 이루었다.
④아지타 케사캄발린 : 인생은 지수화풍 4대로 구성되어 있다고 보는 요소집합론자로서 도덕과 내세를 부정하고 현세의 쾌락지상주의를 주창했다. 유물론자이며 쾌락주의자다.
⑤산자야 벨라티풋타 : 모든 진리에 대한 절대적 인식과 설명은 불가능하다고 주장하고 형이상학에 대해서는 불가지론을 주장했다.나중에 부처님의 제자가 된 사리푸타(사리불)와 목갈라나(목건련)도 산자야 케사캄발린의 제자였다. 이 사람의 입장은 나중에 불교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⑥니간타 나타풋타 : 마하비라(大雄)라는 존칭으로도 불렸으며 부처님과 같이 왕족출신이었다. 철저한 불살생과 무소유를 주장했으며 일체의 외적인 오염에 기인하는 업의 유입을 막기 위해 심신을 깨끗이 해야 해탈에 이른다고 주장했다. 이것도 불교에 많은 영향을 미친다. 현대에도 인도내에 유력한 종교세력으로 남아 있으며 성직자와 신도는 강력한 단결을 과시하고 있다. 교도는 상인이 많다.
'불교 입문 교리' 카테고리의 다른 글
2-4 전법과 교단의 성립 (0) | 2012.12.13 |
---|---|
2-3 수행과 성도 (0) | 2012.12.13 |
2-1.부처님 생애에 관한 자료 (0) | 2012.12.13 |
1-6. 불교의 성전 (0) | 2012.12.13 |
1-5 대승과 소승 (0) | 2012.12.1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