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철스님 백일법문

[스크랩] 백일법문 [제4장 유식사상]

소리없는 아우성 2012. 12. 10. 08:48
제4장 유식사상

 

세존사이트 / 성철스님 법어집 / 장경각 / 불기 2536.4.

 

유식파(唯識波: vijnanavadin)는 중관파와 더불어 인도 대승불교의 한 학파입니다. 중관파가 공사장을 적극적으로 표명한데 비하여 유식파의 기본사상은 일체 제법이 오직 식(唯識)이라는 것입니다. 이 유식사상의 원류는 부처님에게 있으나 이 사상을 교학적으로 체계화한 것은 미륵(彌勒: Maitreya)이며, 그 뒤를 이어 무착(無着:Asanga)과 세친(世親: Vasubandhu)이 대성하였습니다. 

미륵은 유식파의 개조이지만 오래 전부터 미래의 부처님으로서 도솔천(兜率天)에 머무는 미륵보살과 동일하게 보았습니다. 그 때문에 유식학을 배우던 무착이 선정(禪定)중에 보았다는 미륵보살과 실제 유식파의 미륵논사(彌勒論師)를 혼동하여 같이 취급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미륵논사가 지었다는 여러 저술들을 살펴보면, 미륵 이전에 유가행파( 伽行派)에 관한 여러 저술들이 있었던 것으로 보여지며, 그 저자를 전설에 따라서 미륵보살로 간주한 것 같습니다.

유식학의 주요 논서인 「유가사지론( 伽師地論)」, 「중변불별론송(中邊分別論頌)」, 「대승장엄경론송(大乘莊嚴經論頌)」, 「현관장엄론송(現觀莊嚴論頌)」등과「금강반야경론송(金剛般若經論頌)」등이 그의 저작으로 인정됩니다.

그의 저작에 대하여 중국과 티벳에서는 각각 다섯 가지 논서를 거론하는데, 그 양자 가운데 일치하는 것은「대승장업경론송」과 「중변분별론송」입니다.

무착(無着)논사는 북인도의 간다라 지방에서 출생하여 처음에는 소승불교로 출가하였으나 나중에 대승불교로 전향하고 미륵보살의 가르침을 받아 그 교설을 발전시켰습니다.

그의 전기에 따르면 무착은 밤에는 도솔천에 올라가 미륵보살로부터 유가론 등의 가르침을 받고 낮에는 대중들에게 그 교리를 강설하였다고 하는데, 이것은 무착이 선정에 들어가서 실제로 겪은 종교적 체험이라고 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아직 그때까지 친숙하지 않았던 유식설을 인도에 널리 선포하기 위한 일종의 방편설이라고 보기도 합니다.

그의 저서로는「섭대승론(攝大乘論)」, 「현양성교론(顯揚聖敎論)」, 「대승아비달마집론(大乘阿毘達摩集論)」등과 용수보살의「중론(中論)」을 부분적으로 주석한 「순중론(順中論)」등이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중요한 저서는 「해심밀경(解沈密經)」과 「대승아비달마경(大乘阿毘達摩經)」에 기초하여 유식설을 조직한 「섭대승론」입니다.

세친(世親)논사는 무착논사의 친동생으로 처음에는 형인 무착논사와 같이 소승 유부(有部)로 출가하였으나, 나중에 무착논사의 권유에 따라 그 동안 대승불교를 비방한 잘못을 뉘우치고 대승으로 전향하여 유식학을 크게 이루었습니다. 그가 대승으로 전향한 시기는 그의 말년으로 추측됩니다. 그는 예로부터 '천부(天部)논사'라고 불릴 만큼 많은 저서를 지었습니다.

소승불교를 연구하여 「구사론(俱舍論)」을 남겼고, 대승불교를 탐구하여 「십지경론(十地經論)」, 「정토론(淨土論)」,「법화경론(法華經論)」, 「불성론(佛性論)」등 여러 대승경전의 주석서들을 지었는데, 이들이 모두 그가 직접 지은 것인지는 아직 불투명합니다.

확실시되는 그의 저서는 소승에서 대승으로 전향한 과도기적 저술인 「대승성업론(大乘成業論)」, 「대승오온론(大乘五蘊論)」과 유식설의 요점을 논의한 「유식삼십송(唯識三十松)」, 「유식이십론(唯識二十松)」입니다. 그 중에서 「유식삼십송」은 게송만 남기고 그 주석을 하지 않아 너무 간결하였으므로, 뒤에 많은 논사들이 이 논을 주석하여 소위 10대 논사가 배출되어 유식학이 번성하게 된 저작입니다. 

이상 세 논사의 생존 연대는 정확하게 판명되지 않지만 그동안 몇 가지 설을 거쳐서 미륵논사는 270∼350년, 무착논사는300∼380년, 세친논사는 320∼400년으로 보고 있습니다.
세친논사 이후에는 그의 「유식삼십송」을 주석한 덕혜(德慧)·난다(難陀)·호법(護法)등의 10대 논사와 기타의 유식학자들이 배출되었는데, 후세에 영향을 끼친 점에서 보면 안혜(510∼570)와 호법(530∼561)계통이 중시되며, 이 두 계통의 사상에 근거하여 유식학은 안혜논사를 대표로 하는 무상유식(無相唯識)과 호법논사를 대표로 하는 유상유식(有相唯識)의 두 파를 형성하게 됩니다.

중국에서의 유식파(唯識派)를 법상종이라고 합니다. 법상종(法相宗)은 삼장법사 현장(三藏法師 玄裝:602∼664)이 인도에서 유식학을 수학한 후, 전수하여 성립된 종파입니다. 현장은 낙주 구씨현(洛州 丘氏縣) 출신으로 13세에 출가하여 중국의 각 지역을 돌아다니며 열반(涅槃)·섭론(攝論)·비담(毘曇)·성실(成實)등을 힘써 배우고 특히 무착논사(無着論師)의 사상에 관심을 기울였습니다.

그런데 무착논사의 저서가 그때까지 일부밖에 번역되지 않았고, 또 여러 경론의 번역이 일정하지도 않았습니다. 이에 천축(天竺)으로 법을 구하러 갈 뜻을 품고 당나라 조정의 명령을 거역하면서 그의 나이 28세에 몰래 서천을 향하여 장안을 떠났습니다.

그리하여 서역 및 인도의 여러 나라를 유력하기 17년, 서천의 학문을 배우고 특히 당시 학문의 요람지었던 나란다사(那欄陀寺)에서 5년을 지내며 호법논사(護法論師)의 제자인 계현(戒賢)에게서 유가론(乳痂論)·비바사론(毘婆沙論)·정리론(正理論)등 대소승의 교의를 배웠습니다. 그 사이 스승의 명으로 여러 경론을 강설하였으며, 또한 중관과 유가의 두 종파를 융화한 「회종론(會宗論)」과 외도와 소승을 파척한「파악견론(破惡見論)」을 지었다고 합니다.

중국으로 귀국한 뒤에는 10여 년 동안 국가의 도움을 받아 정열적인 역경사업을 이루어 수많은 대소승의 경론을 번역하였습니다. 현장에게는 3천명의 문도가 있었는데, 그 중에서도 신라인인 신방(神昉)을 비롯하여 가상(嘉尙)·보광(普光)·규기(窺基)등 네 명의 상족(上足)이 있었고, 그의 전승은 규기에 전해졌습니다.

규기는 자은사(慈恩寺)에 살았던 까닭에 보통 자은대사(慈恩大師)로 불리우며, 그의 선조는 중앙아시아 출신입니다. 처음에 현장은 네 명의 상족인 신방·가상·보광·규기와 함께「유식삼십론(唯識三十論)」을 주석한 10대 논사의 주석서를 모두 번역하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규기가 이의를 제기하여, 시대가 변하여 사람들의 능력이 열등하므로 여러 주석서를 번역하면 혼란만 가중되므로 차라리 여러 주석을 취사선택하여 종합적으로 번역함이 옳을 것이라고 간언하자, 현장이 이에 동조하여 규기와 함께 호법(護法)의 주석을 위주로 하고 다른 아홉가지 주석을 부가하여 번역하였습니다.

이렇게 하여 성립된 것이 「성유식론(成唯識論)」인데 규기는 이 「성유식론(成唯識論)」을 주석하여「성유식론술기(成唯識論述記)」와 「성유식론장중추요(成唯識論掌中樞要)」를 지었고, 그 외에도 「변중변논술기(辨中邊論述記)」, 「대승법원의림장(大乘法苑義林章)」등을 지어 법상종 교학의 기틀을 마련하였습니다.

법상종의 전승은 규기의 뒤를 이어 「성유식론요의등(成唯識論了義藤) 」등을 지은 혜소(彗沼:650∼714), 「성유식론연비(成唯識論演秘)」등을 지은 지주(智周: 668∼723)로 이어졌지만, 지주의 사후에 법상종은 급격히 쇠퇴하고 말았습니다. 그렇게된 배경에는 법상교학의 궁극적 적용의 한계라든지 화엄종의 원융무애한 사상에 타격을 받은 점 등이 지적됩니다.

법상종의 정통 계보에는 속하지 않지만, 법상종의 뛰어난 학승으로 신라의 원측(圓測:613∼696)스님이 있습니다. 원측스님은 신라의 왕족 출신으로 3세에 출가하고 15세에 득도하여 당나라에 유학가서, 섭론종(攝論宗)에서 수학하고 또 현장이 인도에서 귀국하자 그에게 사사하였습니다.
그의 저서로는 「성유식론소(成唯識論疏)」,「해심밀경소(解沈密經疏)」, 「금강반야경소(金剛般若經疏)」등이 있으며, 제자에는 도증(道證)과 승장(勝莊)·자선(慈善)등이 있었습니다.

서명사(西明寺)에 머무르던 원측스님의 학설은 자은 규기의 학설과 다소 상이하였으며, 규기를 비롯한 중국 법상종의 문인들은 그의 학설을 이단이라고 공격하고 비방하였습니다. 그 때문에 원측스님의 학설이 중국에서 일찍 단절되고 말았으나, 그의 저서 중 「해심밀경소」10권은 서장어(西藏語)로 번역되어 티벳에도 영향을 끼칠 만큼 그의 학설은 탁월한 것이었습니다.

법상종의 교학은 기본적으로 인도 유식파의 학설을 답습하며, 그 중에서도 특히 호법논사의 사상을 주축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특성을 지닌 법상종의 교학 가운데 무엇보다도 중시되는 것은 아뢰야식을 비롯한 8식(八識)에 대한 교의와 사분설(四分說)과 삼류경설(三類境說)입니다. 

제8아뢰야식의 아뢰야(allaya)는 저장〔藏〕이라는 뜻으로, 이식이 일체의 종자를 거두어 저장하여 잃어버리지 않기 때문에 이렇게 부릅니다. 그러나 이 식을 아뢰야식이라고 하는 보다 적절한 이유는 범부들이 무시 이래로 이 제8식을 자신의 실아(實我)라고 애착하는데 있습니다. 이 제8식을 또한 이숙(里熟:vipaka)이라고도 하니, 이것은 발생하는 원인의 결과에 따른 제8식을 지칭합니다.

이 식은 비록 과거의 선·악·무기의 세 가지 성질의 종자로부터 발전한 결과로서의 과보이지만, 그 자신의 성질은 선도 아니고 악도 아닌 무기이므로 이숙이라고 합니다. 또 이 식을 아다나(阿陀那:adana)라고도 하는데, 그것은 집지(執持)라는 의미입니다. 이 식이 범부로부터 부처님의 과보에 이르기까지 일체 색(色)·심(心)의 종자와 오근을 집지하여 잃지 않고 상속하기 때문입니다.

이와같이 세 명칭을 지닌 제8식에서, 아뢰야라는 이름은 3승의 무학위(無學位)인 아라한(阿羅漢)과 8지 이상의 보살위(菩薩位)에서 소멸하는데, 아라한 등이 되면 제7식에 의한 아집이 사라지기 때문입니다.
또 불과(佛果)에 이르면 이 식이 순수한 무루(無漏)가 되어 업보에 따른 과보로서의 무기가 아니므로 이숙이라는 이름도 없어집니다. 그러나 5근과 색·심의 주체인 면에서의 아다나는 불과에 이르러도 계속 존속합니다.

제7말나식의 말나(末那:means)는 의(義)라는 뜻이며, 사량함을 본성으로 합니다. 이 말나식과 유사한 것에 제 6이식이 있습니다. 그러나 제6의식은 제7의식인 의(義)에 의지하여 파생한 것이므로 그 두 가지를 구별하기 위하여 전자를 의식(意識), 후자를 의(義)라합니다.

이 말나식은 아뢰야식을 의지여 아뢰야식 중의 종자가 전변하여 생긴 것인데, 이 제7말나식이 항상 아뢰야식을 보고 자신의 주체적인 자아라고 집착합니다. 그러한 성행이 제6의식보다 상하여 아견(我見)·아애(我愛)·아치(我癡)·아만(我慢)등의 번뇌에 덮여 있으며, 그 생각하고 헤아림이 간단이 없이 항상합니다.
따라서 말나식이 일으키는 자아의식은 오염된 것이어서 성도(聖道)를 얻는데 장애가 되지만, 그렇다고 불선(不善)이라고 할 정도는 아닌 무기입니다.

전 6식은 안식(眼識)·이식(耳識)·비식(鼻識)·설식(舌識)·신식(身識)의 전5식(前五識)과 제6의식(第六意識)을 말합니다. 전5식은 5감(五感)과 같이 감각적인 인식을 말하며, 제6의식은 전5시과 동시에 일어나거나 혹은 의식 홀로 일어납니다. 의식은 아뢰야식과 말나식을 대상으로 하여 자아의 아집을 일으키며, 이 의식에서 생기는 심소는 육위(六位)의 51가지 심소 모두입니다.

그 성질도 선·악·무기의 3성을 띠게 됩니다. 유식학에 따르면 인간 고뇌의 근원은 허망분별(虛妄分別)에 의한 것으로, 안으로는 자아〔我〕를 집착하고 밖으로는 법(法)을 집착합니다. 그리고 이 아집·법집의 집착이 표면적으로 강열한 것은 의식이지만, 그 이면에는 보다 근원적인 말나식의 집착이 놓여 있습니다.

따라서 아집과 법집이 두 가지 집착을 단절하여 아공(我空)과 법공(法空)의 진리를 실증하면 바로 진여의 세계에 들어가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유루(有漏)의 번뇌심에 덮여있는 아뢰야식 등의 네 식〔四識〕이 전환하여 네 가지 보리, 즉 네 가지 지혜를 이루게 됩니다.

곧 아뢰야식은 모든 사물을 있는 그대로 비추어보는 지혜인 대원경지(大圓鏡智)가 되고, 말나식은 나와 남을 평등하게 보는 평등성지(平等性智), 의식은 제법의 모습을 잘 분별하는 묘관찰지(妙觀察智), 그리고 전5식은 본원력에 의하여 견도위(見道位) 이전의 보살과 성문·범부를 이롭게 하기 위해 시방국토에서 갖가지 일을 성취하는 방편지인 성소작지(成所作智)가 됩니다.

예로부터 이 사분설과 삼류경설은 법상 유식의 절반을 차지하는 것이라고 할만큼 비중있는 교의로 취급되었습니다. 사분설이란 심(心)·심소(心所)의 작용을 상분(相分)·견분(見分)·자증분(自證分)·증자증분(證自證分)의 네 부분으로 구분한 것입니다.

상분(相分)은 심·심소 자체가 생길 때 나타나는 인식대상인 소연(所緣)의 경계를 말하며, 견분(見分)은 심·심소 자체가 생길 때 소연의 경계인 상분을 식별하는 인식작용으로, 단지 보는 것만이 아니라 경계를 잘 비추어 보는〔見照〕작용을 뜻합니다.

자증분(自證分)은 자(自)는 견분이고 증(證)은 증지의 뜻으로 자체상 견분의 작용을 인지하는 것이고, 증자증분(證自證分)의 증은 증지이고 자증은 자증분이므로 자증분의 작용을 거듭 인지하는 것입니다. 이 사분 가운데 상분은 객관적이나 바깥 경계의 모습이므로 소연(所緣)이며, 나머지는 모두 주관적인 심식의 작용이므로 능연(能緣)입니다.

즉 견분은 오직 바깥 경계의 상분을 반연하고 자증분을 반연합니다. 또 증자증분을 다시 자증분이 되고 소연이 됩니다. 이 사분설은 인도 유식논사들이 주장한 것이지만 이미 그들사이에도 여러 가지 이견이 있었습니다.

안혜(安慧)는 자증분은 의타(依他)의 체로 보고 견분과 상분은 변계(邊計)의 체성이 없는 것으로 보아 자증분만의 일분설(一分說)을 주장하고 , 난타(難陀)와 친승(親勝)등은 의타(依他)의 상분과 견분의 이분(二分)을 내세워 견분을 실(實)로 보고 상분을 가(假)로 보았습니다.

진나(陳那)와 호월(護月) 등은 식체(識體)인 자증분에서 변출된 능연과 소연의 작용인 견분과 상분 외에 이를 증지하는 작용이고 자증분을 더하여 삼분설(三分說)을 주장하고, 호법(護法)은 진나가 세운 삼분에 다시 자증분을 증지하는 작용이 있는 증자증분을 더하여 사분설(四分說)을 주장하였습니다.

그 까닭은 견분은 상분을, 자증분은 견분을, 증자증분은 자증분을, 자증분은 다시 증자증분을 반연하여 인식에 관한 모든 조건을 충족한다고 보았습니다. 이와같이 사분설은 인식 작용을 상세히 분류하여 사분으로 하였으나, 각자 의 견지에 다라 사분 내지 일분이 모두 타당성을 얻는다고 하겠습니다.

사분설이 심식 작용을 네 부분으로 나누어 마음과 경계가 필경 유식을 벗어나지 않음을 주장한 것에 대하여, 삼류경설(三類境說)은 사분설(四分說)가운데 상분을 성경(性境)·독영경(獨影境)·대질경(帶質境)의 세 종류로 분류하여, 경계는 어느것도 심식을 떠나지 않아 유심(唯心)이고 유식(唯識)임을 역설한 것입니다. 

성경은 실제 종자에서 생겨난 참된 작용이 있어서, 능연의 마음이 소연의 법을 오류없이 인식할 때의 상분입니다. 예를 들면 전5식과 제6의식이 함께 바깥 경계를 취할 경우입니다. 독영경(獨影境)은 능연인 견분의 분별에 의하여 나타난 영상으로 환각의 대상이라는 뜻입니다.

이것은 실제 종자가 아닌 순전히 견분의 분별력에 의한 것이므로 참된 작용이 없습니다. 예를 들면 제6의식이 거북이 털·토끼뿔 등 실체가 없는 법을 반연할 경우입니다. 대질경(帶質境)은 상분이 본질을 지니면서 능연의 마음이 그 본질을 그대로 반연하지 못하고 견분의 분별력에 의하여 본질과 계합되지 않는 비슷한 상분을 반연하는 것입니다.

즉 상분이 능연인 식의 분별력에 의하여 변현된 것이지만 본질의 힘도 가세되어 있으므로 성경과 독영경의 중간에 위치하는 착각의 대상이라 하겠습니다. 예를 들면 제6의식이 길에서 삼으로 만든 끈을 보고 뱀이라고 오인하는 경우입니다.

삼류경설은 본래 인도에서 논의된 것이 아니라 중국에서 현장스님에 의해 비로소 주창된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그 선구적 사상은 인도의 논사들에게 있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유식학의 교의에 따르면 식체(識體)가 변하여 견분과 상분을 현현하는데, 그 견분과 상분(相分)이 같은 종자에서 생기는가, 다른 종자에서 생기는가.

이에 대하여 인도 논사들간에 그 둘이 같은 종자에서 생긴다는 상견별종설(相見別種說), 그리고 상분·견분이 어떤 때는 같은 종자에서 생기고 어떤 때는 다른 종자에서 생긴다는 상견혹동혹이설(相見或同或異說)이 있었습니다.

이 중에서 세 번째의 학설을 옳은 것으로 간주하는데, 그 주창자는 명확하게 밝히지는 않지만 호법논사일 것이라고 추정됩니다. 그리하여 다른 종자에서 생기는 상분은 성경이고, 같은 종자에서 생기는 상분은 독영경이며, 같은 종자와 다른 종자에서 생기는 상분은 대질경입니다. 그러므로 인도 논사들에게 삼류경 각각에 대한 명칭은 없었어도 그 사상에 깊이 잠겨있었던 것은 명확히 인식됩니다.

이 밖에 법상교학의 독자적인 특색을 나타내는 것으로 오성각별설(五姓各別說)이 있습니다. 오성각별이란 일체중생이 본래 갖추고 있는 종성(種姓)에 다섯 가지가 있는데, 결코 고쳐지지 않아 각각 완연히 다르다는 것입니다.
오성은 보살종성(菩薩種姓)·독각종성(獨覺種姓)·성문종성(聲聞種姓)·부정종성(不定種姓)·무성유정종성(無性有情種姓)입니다.

보살종성은 생법(生法)의 이공(二空)을 조견하고 사지(四智)를 얻어 불과를 증득한 무루지(無漏智)의 종자를 지녀서 결정코 보살승에 의해 불과를 증득하는 것입니다.

독각종성은 독각의 과보를 증득할 생공(生空)의 무루지 종자를 구비하고, 성문종성은 성문의 과보를 증득할 생공(生空)의 무루지의 종자를 구비하여 회신멸지(灰身滅智)의 무여열반(無餘涅槃)에 드는 것입니다.

부정종성은 보살·독각·성문각각의 종자를 구비하여 성문·독각의 과보를 거쳐 끝내는 보살승으로 전향하여 불과를 증득하는 것입니다.

무성유정(無性有情)은 이승인 성문연각이나 불과를 증득할 수 있는 무루지 종자를 결여하여 영원히 결여하여 영원히 불과나 이승의 과보를 증득하지 못하고 생사에 유전하며, 겨우 5계나 10선의 선인으로 인하여 인간이나 천상의 과보를 얻음을 종국으로 삼는 것입니다.

중생의 근기에 따른 분류는 여러 경론에서 네 종류 혹은 다섯 종류로 설하였는데, 법상종은 이에 근거하여 오성각별을 주장하였습니다.
법상종 이외의 다른 종파에서는 일체중생이 모두 불성(佛性)이 있다 하여 아무리 극악무도한 자라도 마침내 성불할 수 있다고 하는 것에 비하면, 이 종파의 오성각별은 대단히 파격적이라 할 만 합니다. 

이같이 법상종에서 오성각별을 내세우게 된 까닭은 교학적으로 얼마간 해명되기도 하지만 어쨌거나 현실적인 문제와 차별을 간과하지 않음에서 비롯된 것이라 보여집니다.


                                                               


출처 : 고전 취미 붙이기
글쓴이 : 無爲修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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