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살의 계위(階位)
이같은 사고방식에 대해 대승은 만인에게 부처님과 같이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는 것을 구극의 목적으로 하여 발심한 사람을 깨닫기 이전의 부처님과 똑같은 '보살'로 호칭했다.
그러면 보살은 어떠한 수행을 하고 어떠한 계위에 올라가는 것인가. 북인도 지방에서 행해졌던 설출세부(說出世部)라는 부파가 전하는 부처님의 전기 《마하바스투》에는 보살이 거치는 계위로 관정위(灌頂位)를 최후로 하는 열가지의 단계(十地)를 들고 있다. 이것은 부처님이 되기 이전의 보살, 즉 석가보살 전신의 수행과정을 나타내는 것이다. 관정위라는 것은 즉위관정(卽位灌頂), 즉 왕이 즉위할 때 머리 위에 물을 붓는 의식에 비유한 것으로 진리의 지배자인 법왕으로서 부처님의 성도를 의미하는 말이다.
한편 대승불교 자체에서는 《반야경》에 나타난 바에 의한 '초발심'으로 시작하여 실천(行)으로 들어가 (명칭은 일정하지 않다. 뒤에 治地 또는 新學이라 불렀다.) 마침내 '불퇴전(不退轉)'의 위에 오르고 마지막으로 법왕자로서 도솔천에서 다음 생의 성도를 준비하는 '일생보처(一生補處)' 즉 한번만 다시 태어나는 윤회 생존을 남겨두고 있는 위치까지 네 단계가 있다.
이와는 달리 《화엄경》에서는 앞서 말한 십지설(十地說)을 이어 받으면서 《반야경》의 주장을 가미하여 만들어진 10지설(十地說), 10주설(十住說)이 성립되었다. 여기에서는 '초발심지'·'치지'를거쳐 제7지가 '불퇴전지(不退轉地=阿惟越治)'가 되며 그 뒤는 '동진(童眞)'·'법왕자'를 거쳐 '관정지'에 이르도록 되어 있다. '불퇴전'이라는 것은 수행을 확실히 몸에 익혀 이제부터는 후퇴하지 않는 지위에 이르렀다는 뜻이다. 동진은 소년처럼 순수해졌다는 뜻이다. 이 10지설은 그후 다시 새로운 10지설로 발전하게 된다. 이것이 《10지경》의 10지설이다.
《10지경》의 10지설은 '환희지(歡喜地)'로 시작하여 '법운지(法雲
地)'로 끝나는데 각 명칭은 6바라밀의 실천(제1∼제6)과 4바라밀을 더해서 10바라밀의 실천에 따른 것이다. 초지인 '환희지'는 보살의 출발점으로 보리심을 일으키고 중생제도의 서원을 세운다. 이것에 의해 '여래의 집에 태어난다'고 한다. 때문에 환희지는 일반적으로 '성인에의 입주(入住)'. '정성결정(正性決定)'으로 해석하고 있다. 제6지인 '현전지(現前地)'에서는 반야바라밀의 수행이 강조된다. 반야바라밀에 의해 체득되는 진실한 이치는 '삼계유심(三界唯心)'이라는 것이다. 그 다음 '원행지(遠行地)'는 보살이 그 결과로서 불제자들보다도 훨씬 먼 곳까지 도달한다는 것을 말하는데 이것은 제7지에서의 수행이 비약적으로 발전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제8 '부동지(不動地)'이상이 되면 보살은 부처님을 대신해서 중생제도를 위해 법을 설하고 중생을 인도하는 능력을 몸에 익히는 것이다. 8지 이상의 보살을 종종 '대력(大力)의 보살'이라고 하는 것은 이런 이유에서다.
이같은 《10지경》의 10지설은 앞서 말한 오래된 10지설(十住)외에 10행·10회향이라는 계위설과 합해 《화엄경》에서는 42위가 되고 《범망경》에서는 최초에 10신을 두어 52위를 헤아리게 되었다. 즉 10신(十信)·10주(十住)·10행(十行)·10회향(十廻向)·10지(十地)·등각(等覺)·묘각(妙覺)이 그것이다. 여기에 불위(佛位)를 더하면 53위가 된다. 이 경우 환희지 이상의 10지는 성인위가 되고 그 이하는 범부위라 한다.
보살의 길에는 초발심에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어 부처님이 될 때까지 많은 계위가 있다. 아비달마 교학에서는 석가보살이 성도하기까지 3아승지겁이나 되는 긴 생을 반복했다고 말하고 있는데 대승불교도 이것을 그대로 계승하고 있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화엄경》에 '초발심시변성정각(初發心時便成正覺)'이란 말이 있듯이 발심을 매우 중요시했다. 범부도 참다운 발심을 하면 즉각 '여래의 집'에 태어나서 깨달음을 이룰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하는 것이다. 또 한편에서는 보살은 중생제도의 서원이 크기 때문에 스스로 부처님이 되기 전에 모든 중생을 피안으로 건네주고자 노력하는 존재라고 설명하고 있다. 사실 대승경전이 무엇보다 강조하고 있는 것도 이같은 보살의 서원에 관한 것이다. 이러한 이상을 제시하기 위해 보살은 곧잘 뱃사공에 비유되기도 한다.
또 이론적으로 '지혜가 있으므로 생사윤회에 빠지지 않고 자비가 있으므로 열바에도 안주하지 않는'라고 하여 생사와 열반에도 머물지 않는 보살의 본분을 '무주처보살(無住處菩薩)'이라고 칭하고 있다. 이타를 살고 있는 보살의 이상상이 이것이다.
우리는 흔히 보살이라 하면 문수(文殊)·보현(普賢)·관음(觀音)·세지(勢至)·미륵(彌勒)·지장(地藏)등 대보살을 상기한다. 지금 그 하나 하나를 자세히 설명할 수는 없고 몇 가지만 설명하면 이렇다.
미륵(마이트레야)은 일생보처의 보살로 현재 도솔천에 대기중이며 56억7천만년 뒤에 이 사바세계에 하생한다고 한다. 석가여래가 열반한 후 그 교법은 얼마동안 존속되지만 마침내 무불(無佛)의 세상이 되므로 그 후에 오는 미륵의 세상에 행복을 기대하고 지금부터 미륵의 하생을 기대하는 것이 미륵신앙이다. 이것은 일종의 메시아니즘이다.
문수(마주수리)는 지혜 제일이라 하여 《반야경》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그래서 '문수를 따르는 사람이 반야를 만든다'고 까지 생각되었다. 문수가 있는 곳을 청량산(淸 山)이라고 하는데 중국의 오대산과 우리나라 오대산이 문수가 머무는 청량산이라는 신앙이 전해지고 있다.
문수가 지혜의 상징이라면 행의 완성자로 존경받는 것이 보현(사만타바트라)이다. 이 보살은 타토(他土)의 보살이라고도 불리우는데 부처님의 교설을 듣고자 멀리서 달려왔다고 《화엄경》에 기록돼 있다. 아마도 《화엄경》의 성립과 함께 만들어진 새로운 이미지였을 것이다. 어쨌든 보현은 행(실천)을 상징하는 보살로 '보현행(普賢行)'이라고 하면 대승적 수행의 전형을 뜻한다. 《화엄경》입법계품은 선재동자가 문수사리의 권고에 따라 53인의 선지식을 차례로 방문하며 보현행을 실천하여 마지막으로 보현에게로 간다는 구도편력의 얘기로 꾸며져 있다. 《화엄경》은 보현과 문수 두 보살이 부처님을 대신해 중생제도의 설법이 행해지는 구성으로 되어 있다.
일반적으로 신앙에서 무엇보다 유명한 것은 관음(아바로키테스바라)일 것이다. 이 보살의 본적은 남방의 보타낙산(補陀落山)인데 이는 힌두교의 자재신(自在神)과 깊은 관계가 있다고 보여진다. 《법화경》의 보문품(普門品)은 관음이 서른 두 가지의 몸(三十二應身)으로 중생제도의 활동을 한다고 설명하고 있다. 또 정토계통의 경전에는 아미타불의 협시(脇侍)로서 대세지와 나란히 나타나기도 한다. 그러나 아미타불은 원래 독립된 신앙의 대상이었으므로 관음과 아미타의 관계는 나중에 성립된 것이라 생각된다.
지장보살은 초기 대승경전에는 나타나지 않는다. 지장보살은 이런 뜻에서 비교적 늦게 태어난 보살이다. 이 보살은 지옥으로 향하는 중생을 불쌍히 여겨 구제하며 지옥까지 가서라도 중생을 위해 헌신한다. 보살의 대자비심의 극치를 보여주는 셈이다. 이 보살은 머리를 깎고 출가비구의 모습을 하고 있는데 이는 다른 보살이 보관(寶冠)을 쓰고 있는 것과 큰 차이점이다. 그러나 연구결과로는 문수도 출가의 보살이며 대승경전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보살 또한 출가신분이라고 한다. 이는 교단적 측면에서 볼 때 재가자를 중심으로 출발한 대승불교가 다시 출가중심으로 바뀐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러나 보살이 모두 행(行)의 완성자인 것은 아니다. 애시 당초 발보리심한 것이 보살이니까 그대로는 '범부보살'이며 그 수는 무수하다. 사실 모든 중생이 보살이 될 수 있으며 보살이 되지 않으면 안 된다. 여기에 대승불교의 이상이 있는 것이다. 이것은 《법화경》에서 소리높이 강조되어 마침내 여래장사상을 탄생시키는 모태가 되었다. 즉 일승(一乘)의 가르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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