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 입문 교리

9-1 수행자의 이상상

소리없는 아우성 2012. 12. 13. 11:19

사람(人施設)


남방불교 성전으로 《인시설론(人施設論)》이라는 논전(論典)이 있다. 이 책은 불교경전 가운데 '사람'에 관해 언급된 부분을 추리고 정리해서 열 개 항목으로 분류해 설명하고 있다. '인시설(人施設)'이라는 뜻은 편의상 사람의 존재를 가정한다는 것이다.
널리 알려져 있듯이 불교교리는 무아설(無我設)을 표방하고 있지만 상식적으로 인간의 존재를 가정하지 않을 수 없다. 이를테면 경전에서 부처님을 언급하는 대목에 이런 말이 있다.
"홀로 이 세상에 출현하다. 대지대광(大智大光)이 출현이니라."
또 수행자인 제자들도 나름대로의 '인격'으로서 취급되고 있다. 사실은 무아이고 오온가화합(五蘊假和合)의 존재이지만 우선 사람이라고 명칭하고 편의상 독립자존의 존재로 가정한다는 뜻에서 '시설(施設)'이라 부르는 것이다. 시설의 원어는 Pannatti, Prajnapri로 '가(假)'라고도 해석되는 말이다. 그러므
로 경전중에 언급되는 '인(人)'에 관한 용례의 집성을 '인시설'이라고 부르고 있다.
사람에 관한 분류는 어떤 것이 있는가. 남과 여라는 분류가 있을 수 있다. 수행자라면 비구, 비구니, 신자라면 우바새, 우바이로 나눈다. 인도인과 외국인으로도 나눌 수 있다. 그러나 경전이 가장 중요시하는 것은 수행의 진보상태(깨달았는가, 아닌가 등)에 의한 분류다. 이같은 분류의 기본으로 생각되는 것은 범부인가, 성인인가 하는 것이다.

범(凡)과 성(聖)


범부는 무자 그대로 '평범한 사람'이란 뜻이다. 그러나 범부에는 '번뇌구족의'라는 형용사가 붙어 있듯이 불교적으로 그다지 평가받지 못하는 존재다. 인도의 원어로는 어린이, 어리석은 자라는 의미를 가진 bara, 또는 '이생(異生)'이라 번역하는 가지각색의 태생이라는 뜻을 가진 putthujana, prthagjana에 해당된다. 두 말을 합쳐 '범부이생(凡夫異生)'이라고도 한다. 불제자들도 처음 입문했을 때는 범부이지만 마침내 수행을 쌓으면 깨달음을 얻어 '성(聖)'이라고 불리우게 된다.

원래 '아리야'라는 말은 인도·아리안인의 긍지를 나타내는 민족명으로 드라비다인과 그밖의 '가지각색의 태생'인 자들과 비교해서 사용되던 말이다. 같은 말이 불교에서는 수행을 쌓은 불제자와 그렇지 않은 평범한 사람을 대비하는 말로 사용되었다. 아마도 부처님 당시 '아리야'란 말은 민족명·인종명이라기 보다는 문화적 개념으로써 아리야적인 문화전통을 익힌 자들을 이르는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정통파의 경우 바라문 계급이야말로 '아리야'로서 그 지위를 자랑했음이 틀림없다.

부처님 제자로서 '아리야'라고 불리는 사람들은 번뇌를 완전히 끊고(漏盡) 사람들의 공양을 받을 자격이 있는(應供)자로서 세상의 존경을 받았던 아라하트(阿羅漢)를 최고지위로 하여, 사향사과(四向四果)라 부르는 여덟 가지의 계위에 속하는 자를 말한다. 이러한 계위는 물론 후대에 와서 성립된 것을 틀림없지만 어쨌든 그 명칭을 알아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는 예류(預流:須陀洹)로 '흐름에 도달했다'는 뜻이다. 처음으로 부처님의 교훈이라는 강물의 흐름에 올라탄 자 즉 수행자로서 부처님의 가르침을 이해하고 지키는 실천을 계속할 것을 확립한 사람들이다. 이 사람들은 청정한 법안(法眼)을 얻는다고 한다.

다음은 일래(一來:舍陀含), 그 위가 불환(不還:阿那含)인데 일래는 깨달음을 얻고 열반에 들기 전에 다시 한번 이 세상에 태어나는 자, 불환은 두 번 다시 이 세상에 태어나지 않는 자라는 뜻이다. 그 위에 앞서 말한 아라한이 있다. 이 네가지를 '4과'라고 부르는데 전단계가 있다고 보고 (이를테면 예류향과 예류과) 모두 합해 4향 4과의 4쌍 8배(四雙 八輩)라 한다. 이들만이 '아리야'인 것이다.이 중 최초의 '청정법안을 얻은' 예류과는 진리를 보는 단계로 '견도(見道)'라 한다. 이것은 예류향에 해당하는 15심 찰나(十五心刹那)를 지나면 제16심 찰나부터는 예류과라고 하니까 거의 직관에 가까운 짧은 시간에 달성되는 것이다. 이에 비해 이후의 여러 단계는 '수도(修道)'라는 이름으로 불리우는 장기간에 걸친 실천의 반복에 의한 단련을 필요로 한다. 이들이 수도를 계속하여 마지막으로 '아라한과'에 도달했을 때 부처님과 같이 이런 선언을 하게 된다.
"나의 생(輪廻)은 끝났다. 범행은 확립됐다. 해야 할 일은 모두 마쳤다. 이제 윤회의 생은 더 이상 없다."

아라한은 이제 더 이상 배울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뜻으로 '무학(無學)'이라고도 불리운다. 무식하다는 뜻의 불학(不學)과는 다르다. 이에 비해 이 앞의 7위는 아직 배워야 할 아리야라는 뜻으로 '유학(有學)의 성인(聖人)'이라고 한다.부처님 재세중 499명의 제자가 아라한이 되었다고 한다. 부처님의 시자였던 아난다는 다문 제일이었지만 아직 젊고 번뇌가 많아 아라한의 지위에 도달하지 못했는데 부처님이 돌아가신 후 곧 깨달아 5백명의 아라한이 되었다. 이것이 '5백나한'의 유래다(선종사찰에서는 16나한상을 모시는데 그 명칭과 기원은 중앙 아시아로 생각되고 있다).

견도를 얻는데는 16심 찰나의 직관에 의한다고 했는데 이것은 그 이전에 긴 수행, 즉 법을 듣고 그 가르침을 실천하고 선정에 의해 체득하는 일을 반복한 결과이다. 다시말해 오랜 수행의 효과가 어느날 갑자기 섬광처럼 깨달음을 가져다주는 것이다. 그 깨달음이란 다름아닌 '4제의 현관(現觀)'이다.

4과의 성위 가운데 최초의 것인 예류과는 극히 짧은 시간에 얻어지는 것이라 해도 쉽게 되어지는 것이라고는 볼 수 없다. 오랜 기간 수도를 한 뒤 한 순간 돌연한 회심이 이루어진 것이라고 보는 것이 옳다. 이 회심의 체험이 '청정한 법안을 얻었다'는 기쁨으로 표현되는 것이다. 이 때가 범부에서 성인으로 바뀌는 순간이다. 이 전환점을 '범부의 종성(種姓)을 초월해 성인의 종성으로 들어간다'라고 표현한다. 또 이 단계를 '바른 위(位)에 확정됐다(正性異生)'고도 하며 '정정취(正定聚)'에 들게 되었다고도 한다.
범부에서 성인으로서 전환은 뒤에 확립된 계위로는 범부도 성인도 아닌 경계선을 '종성인(種姓人)'이라는 이르믕로 부르기도 했는데 이것은 예류향 직전의 위치로 인식되었다. 이것을 범부쪽에서 보면 '세제일법(世第一法;세상에서 최고의 지위)'이 된다. 유부에서는 이 이름을 사용했다.

이 '세제일법'을 최고로 하는 범부의 세계에는 네가지의 계위가 있다. 이것을 '4선근'이라 한다. 《구사론》은 성위 이전의 수행에는 이밖에도 많은 계위를 설정해 세밀한 규정을 가하고 있다. 이에 의하면 출가해서 삼의일발(三衣一鉢)로 소욕지족의 생활을 하는 것(戒)부터 시작해서 부정관등의 선정을 실천하면서 (定)4제를 관하는 일(慧)이 수행의 중요과정으로 제시되고 있다. 범부는 이러한 수행을 닦아 일정한 단계에 도달하게 되는데 이를 '현위(賢位)'라고 한다. 그리고 이것을 성위와 합쳐 '현성(賢聖)'이라고 한다. 이같은 계위는 확실한 수행의 발전과정에 의해 명명된 것이 틀림없으나 지나치게 상세하여 오히려 형식적인 분류에 불과하다는 느낌이 짙다.

이상은 아비달마의 교학이 확립되는 과정에서 조직화된 계위지만 근본을 따지자면 부처님 이후 출가한 수행자들을 대상으로 생각된 것이다. 그리고 그 최고의 성위는 아라한이며 부처님의 제자는 아라한이 되어도 부처님은 될 수 없는 것이라고 생각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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