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인을 위한 불교 이야기

4. 구도의 길: 출가(出家)와 고행(苦行)

소리없는 아우성 2012. 12. 3. 09:56

 

싯다르타의 출가와 고행을 어떻게 볼 것인가

이제 왕자 싯다르타는 자기도 네 번째 본 그 출가수행자와 마찬가지로 인간의 조건, 삶의 근본 문제에 스스로 해답을 찾기 위해 출가하기로 결심하였다. 바로 그 순간에 그의 아내가 아들을 낳았다는 소식이 왔다. 그 소식을 들으면서 “걸림이 생겨났구나!”하는 말을 했다. ‘걸림’이라는 말의 산스크리트어가 ‘라훌라’(R?hula) '라훌라’가 그대로 새로 태어난 아기의 이름이 되었다.

그 날은 보름달이 비치는 밤이었다. 자기 부인과 새로 난 아들을 보기 위해 부인의 처소로 갔다. 환한 달빛을 받으며 엄마 품에 자고 있는 아들을 바라보면서 한번 안아보고 싶었지만 그렇게 되면 부인이 깨고, 울고불고... 이런 일을 피하기 위해 그는 조용히 나오면서 속으로 말한다. “성불하고 돌아오리라.” 그리고는 말에 타고 마부를 앞장세워 잠자고 있는 성을 뒤로했다.



하루 쌀 한톨로 이어진 고행

이렇게 시작한 구도의 삶이 6년간 계속되었다. 처음에는 마가다의 수도 라자그라하에 가서 어느 스승의 가르침을 받기로 했다. 스승이 가르치는 수행을 다 이루었지만 자기가 원하는 참된 경지에 이를 수 없었다. 다음으로 찾아간 스승에게서도 역시 목적과 방법에 있어서 만족스런 가르침을 얻지 못해 떠나고 말았다.

그 후 우르빌바(Urvilv?)라고 하는 곳으로 옮겨 네란자라 강변 아름다운 곳에 자리를 잡고 고행을 시작했다. 이 때 다른 고행자 다섯 명도 합류했다. 고행을 얼마나 열심히 했는지 하루에 쌀 한 톨씩으로 살았다고 하기도 하고 대추 한 알씩으로 살았다고도 한다.

이를 악물고, 혀를 입천장에 붙이고, 마음을 조절하려고 애를 썼다. 땀이 비 오듯 하고 귀에서는 광풍이 부는 듯한 소리가 났다. “내가 배를 쓰다듬으려고 하면 등뼈가 잡히고, 다리를 쓰다듬으면 털이 저절로 떨어져 내렸다”고 할 정도였다. 맑고 곱던 안색은 흑갈색으로 변했다.

몇 년 동안인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오래 동안 이런 식으로 고행하고 있었는데, 도저히 육체적으로 더 이상 감당할 수가 없었다. 이런 극도의 고행으로는 뜻을 이룰 수 없다고 믿고, 이른바 중도(中道)를 택하기로 결심하고 우유죽 한 그릇을 얻어먹게 되었다.

함께 고행하던 다섯 친구들은 싯다르타가 이렇게 음식을 먹는 것을 보고, 이제 그가 고행을 포기하고 사치스런 생활로 타락한 것으로 여기면서 그를 떠나버렸다. 그들에게는 죽 한 그릇이 ‘사치스런’ 것이었다.



죽음의 신 '마라'의 세 가지 시험

저녁이 되었다. 출생할 때와 출가할 때와 마찬가지로그 날도 보름날이었다. 싯다르타는 숲 속 깊이에 있는 ‘보리수’ 밑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 밑에서 동쪽을 향해 앉아 성불하기 전에는 그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겠다는 결심을 했다. “살갗이나 힘줄이나 뼈가 말라도 좋다. 살과 피가 말라도 좋다. 그러나 완전한 깨달음에 이르기 전에는 이 자리를 뜨지 않으리.”

이 때 마라(M?ra)라고 하는 죽음의 신이 싯다르타에게 접근한다. 그를 유혹해서 마지막 구도의 길을 포기하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여러 가지 이본(異本)이 있어서 이야기가 각각 다르지만 팔리어 경전들이나 아슈바고샤의 글을 종합해 보면 대략 다음과 같이 ‘세 가지 시험’으로 정리될 수 있다.

첫째, 마라는 무시무시한 마군(魔軍)을 이끌고 와 싯다르타가 수행을 포기하도록 위협했다. 그러나 싯다르타는 지금까지 쌓아온 선업과 선행의 힘으로 자기 주위에 보호막을 형성해서 머리카락 하나도 흐트러지는 일이 없었다.

둘째, 마라는 그의 세 딸을 데리고 나타났다. ‘불만,’ ‘쾌락,’ ‘욕망’이라는 이름의 세 딸이었다. 32 가지 남자를 유혹하는 방법 등을 동원해서 싯다르타를 구도의 길에서 넘어지게 하려 했지만 이도 역시 실패였다.

셋째, 마라는 이제 싯다르타의 공덕을 부인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앉아 있어도 성불 같은 것은 꿈꿀 수 없으니 모두가 헛일이라는 뜻이다. 마라의 수많은 군대가 마라의 증인이 되어주었다. 그러나 싯다르타를 위해서는 아무도 증언해 줄 이가 없었다. 마라는 의기양양하게, “그대는 패배자다”하고 선언했다. 싯다르타는 “오, 마라여, 만물의 공평한 어머니, 이 대지가 나의 증인이다”고 선언하며 오른 손 손가락 끝을 땅에 댔다.

그러자 괴성과 지진이 나고 땅이 갈라지며 대지의 어머니가 증인으로 나타났다. 마라와 그의 군대는 혼비백산 도망치고 말았다. 불상 중에 ‘항마촉지인상’(降魔觸地印像)이라고 하여 오른 손 손끝을 땅에 대고 있는 모습이 많은데, 이것은 이때의 장면을 묘사하고 있는 것이다.



예수님도 세 가지 시험을 받았는데

당연히 그리스도인들로서는 예수님이 마귀로부터 받은 세 가지 시험을 생각하게 된다. 신화학자 조셉 캠벌(Joseph Campbell)은 그의 책 『천의 얼굴을 가진 영웅(The Hero with a Thousand Faces)』에서 고대 세계의 여러 가지 영웅 신화들을 모아보면 영웅들의 모험적 여정에는 일종의 공통적 모형이 발견된다고 주장하고, 이것을 그는 ‘monomyth’라 부른다.

여기에는 크게 네 가지 단계가 있는데, 첫째 출가(leaving home), 둘째 어려움을 넘김(threshold), 셋째 궁극 목적을 성취함(ultimate boon), 넷째 되돌아감(return)이다. 부처님의 생애는 이 모형에 가장 잘 맞는 전형적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캠벌에 의하면, 영웅들이 자기들이 목적하는 바를 찾아 길을 떠난 이후 이처럼 마라나 사탄 같은 존재로부터 받는 시험이나 유혹이란 사실 일상적인 것에 만족하지 못하고 더 높은 정신적인 가치를 추구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속으로 겪게 될 수밖에 없는 그‘알지 못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 ,’‘자기가 추구하는 것이 이렇게 애써 구할 가치가 있는 것인가 하는 불안감,’‘내가 이런 일을 해 낼 수 있을까 하는 자신에 대한 의구심’ 등을 신화적으로 표현한 것이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