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과정과 사문유관(四門遊觀)의 ‘충격’: 형이상학적 눈뜸
싯다르타의 성장과정- 과보호?
정치적 인물이었던 아버지로서는 당연히 어린 왕자가 집을 나가지 않고 세속에 머물러 있으면서 위대한 성왕이 되기를 바랐다. 싯다르타에게 7세부터 학문에 전념하게 했는데, 어느 자료에 의하면 한문까지 알았다고 했다.
아들이 16세 되었을 때에는 그를 위해 인도의 세 계절에 따라 세 개의 궁을 짓고, 거기다 4천 혹은 4만 무희들을 두는 등 모든 수단을 동원해서 아들을 기쁘게 하므로 아들이 세속에서 떠나는 일이 없도록 하려고 애썼다. 왕자가 16세 혹은 19세 되었을 때에는 아름다운 공주 야쇼다라(Yaśodharā)를 배필로 정해주기도 했다.
왜 ‘세 계절’인가? ‘추운 계절, 더운 계절, 그리고 우기’의 세 계절이라고 한다. 그러나 필자가 1987년 2월에 인도 뉴델리를 비롯 부처님이 처음으로 설법한 사르나트(Sarnath) 등지를 방문한 경험에 의하면, 인도에는 ‘더운 계절, 더 더운 계절, 못 견디게 더운 계절’ -- 이렇게 세 계절이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 때가 겨울인데도 방에 선풍기와 모기장이 있어야 잠이 올 정도였기 때문이다.
왕자 싯다르타가 결혼했다는 것은 당연한 것으로 여긴다. 그런데 예수님의 경우는 어떤가? 요즘엔 그 당시 모든 유대인 남자들에게 결혼해서 “생육하고 번식하라” 하느님의 명을 따르는 것이 하나의 신성한 의무로 여겨졌음을 감안할 때 예수님도 분명 결혼했으리라 보는 학자들이 많다.
막달라 마리아가 그 부인이었고, 심지어 그 사이에서 딸이 있었다는 전설까지 있다. 이런 생각을 가장 널리 퍼뜨린 것이 최근 댄 브라운(Dan Brown)이 쓴 베스트셀러 <다빈치 코드>라는 소설이다. 물론 결혼했는지 안했는지 이를 증명할 길은 없다. 그러나 예수님이 결혼을 하면 안 된다는 특별한 이유라도 있었을까?
신화의 본질 알면 '다빈치코드'논란도 없을 것
여기서 부처님의 출생 이야기 같은 이런 ‘신화적’ 이야기가 무엇을 의미하는가 잠깐 살펴보고 지나가기로 하자. 코끼리가 겨드랑이로 들어가는 꿈을 꾸고 아이를 임신하게 되었다거나, 아이가 옆구리로 나왔다거나, 나오자마자 큰 소리로 말을 하게 되었다거나 하는 이야기를 우리가 문자 그대로 역사적 사실에 대한 기술이라 믿을 수 있는가 하는 문제이다.
우리가 이런 이야기를 접하게 될 때 이런 이야기는 믿을 수 없는 거짓으로 취급해야 하는 것일까? 한갓 옛날의 허튼 소리로 여기고 무시해버리면 그만인가? 신화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알면 이런 이야기를 두고 믿을 수 있느냐 없느냐, 혹은 거짓이냐 아니냐 하는 질문 자체가 성립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이런 이야기는 역사적 사실이나 생물학적 사실과 상관없이, 고대의 많은 영웅 신화에 나오는 영웅들의 위대함을 극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동원된 이른바 ‘비보통적 출생 신화’의 한 가지 예라 볼 수 있다. 신화는 기본적으로 읽는 사람이나 듣는 사람에게 정보(information)를 주기 위한 것이 아니라 변화(transformation)를 주기 위한 것이라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이런 이야기에서 우리는 생물학적 혹은 역사적 정보를 얻으려 해서는 안 된다. 이런 이야기의 문자적 뜻이 아니라 이런 이야기가 의도하는 종교적 의미에 주의를 집중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부처님은 그처럼 위대한 분이다. 그런 위대한 분을 보통 말로는 표현할 수가 없다.’ 그럴 때 이런 신화적인 표현으로 그 분의 위대성을 드러내려고 하는 것이다.
부처님이 이렇게 출생했기에 위대한 것이 아니라, 그가 위대했기에 이런 신화적 이야기로 그의 위대함을 그린 것이라 보아야 한다. 이런 이야기는 부처님의 위대성을 말하기 위한 무대장치와 같은 것이다.
문자적, 물리적, 생물학적 정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떻게라도 부처님의 그 엄청난 위대성을 효과적으로 표현하려 한 그들의 마음가짐의 표현을 아름답게 보아야 하는 것이다. 신화를 이렇게 이해하면, 예수님을 비롯하여 노자님이나, 심지어 김알지, 박혁거세의 ‘비보통적’ 출생 이야기의 성격을 이해하기 쉬워진다.
사문유관(四門遊觀)의 ‘충격’: 형이상학적 눈뜸
싯다르타는 화려한 궁중에서 생활했지만 거기에서 궁극적인 만족을 얻지 못하고 홀로 인생의 의미에 대해 곰곰 생각하는 일이 많았다. 그가 서른 살 가까이 되던 어느 날 궁중 밖 세상을 한 번 돌아보고 싶은 생각이 들어, 아버지에게 허락을 구했다. 아버지도 어른이 된 아들의 청을 거부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드디어 아들은 마차에 타고 마부 찬다가와 함께 궁궐 밖으로 나가게 되었다.
첫날 궁궐 동쪽 문으로 나가 보게 된 처음 광경은 말할 수 없이 늙은 꼬부랑 ‘노인’이었다. 싯다르타는 이 광경을 보고 마부에게 저것이 뭐냐고 물어 보았다. 마부는 늙은이라고 말하고, 우리도 다 늙어가고 있고, 늙으면 저렇게 되는 것이 어쩔 수 없는 인간의 운명이라고 설명했다. 왕자는 너무나 큰 충격을 받아 서둘러 궁으로 들어오고 말았다.
두 번째 남쪽 문으로 나갔을 때는 ‘병든 사람’을 보게 되었다. 다시 큰 충격을 받고 서둘러 궁으로 돌아왔다. 세 번째 서쪽 문으로 나갔을 때는 ‘죽은 사람’을 보게 되었다. 죽음이란 모든 인간이 피할 수 없는 절대적 운명이라는 사실에 더욱 큰 충격, 다시 귀가.
네 번째 북문으로 나갔을 때는 어느 출가 수행자(沙門, śramaṇa)을 보게 되었다. 마부는 이런 사람은 생로병사라는 인생의 기본적인 문제에 대한 답을 찾아 집을 나선 사람이라 설명했다. 이를 두고 전통적으로 ‘사대문을 돌며 보았다’는 뜻에서 ‘사문유관’(四門遊觀, four passing sights)이라 한다.
그런데 싯다르타는 왜 이렇게 큰 ‘충격’을 받았을까? 그의 마차에 충격흡수장치가 없었기 때문이었을까? 요즘처럼 캐딜락 같은 차를 타고 나갔으면 그렇게 충격을 받지 않았어도 되었을까? 물론 정통적 답은 그가 그런 것들을 ‘처음’ 보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30에 가까운 사람이 아직 이런 것들을 모르고 있었다는 것이 말이 되는 소리일까? 자기 아버지만 보아도 이제 80 노인이 되었을 것이고, 자기 생모가 어떻게 되었는가 물어보았다면 사람들이 생모의 죽음을 말해 주었을 것이다.
그 뿐인가? 4천 명인가 4만 명이 된다는 무희들 중 춤을 추다가 갑자기 아파서 기절하는 이가 없을 수 없었을 것이다. 도저히 30에 가까운 사람이 삶의 이런 기본적인 사실들을 아직 모르고 있었을 수는 없다.
부처님도 서른에 '참 나'에 대한 새로운 심각성 느껴
그러면 정말로 왜 그렇게 큰 충격을 받았을까? 그의 ‘나이’와 관계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어렸을 때는 비록 그런 것들을 보았어도 ‘실감’이 나지 않았다. 그야말로 “보아도 보지 못하고”의 상태였다. 생로병사 같은 인생의 중대사가 정말로 실감나려면 어느 정도 나이가 되어야 한다. 영어로 해서 ‘realize’한다는 말은 그전까지 진짜 같이 보이지 않던 것이 진짜처럼 보이게 된다는 뜻이다. 그러면 왜 그 때에 가서 생로병사가 진짜처럼 보이게 된 것인가?
심리학자 융(Carl G. Jung, 1875-1961)의 말에 의하면 30대 초반이 되어야 인생사에서 참 나는 누구인가를 물어보게 되는 ‘개인화 과정’(individuation process)이 생기기 시작한다는 것이다. 인생의 여러 가지 문제를 비로소 바로 나 자신의 문제로 심각하게 보기 시작하게 된다는 말이기도 하다.
캐나다의 정신과 의사이면서 문필가였던 벅(Richard M. Bucke, 1837-1902)은 사람이 살아가다가 어느 단계에서 특별 의식에 접하게 되는데, 이런 의식을 그는 ‘우주의식’(cosmic consciousness)라고 하고, 이것이 보통 30대 전후해서 생긴다고 했다. 30세에 침례를 받으면서 하늘이 열리는 것을 본 예수님이나, ‘30에 입(立)했다’고 하는 공자님이나, 그 외 많은 종교지도자들이 30세경에 특별한 종교적 체험을 하게 되었다.
어쩌면 부처님도 이제 30에 접어들면서 이런 문제들이 바로 자기 자신의 문제라는 새로운 심각성으로 육박해 옴을 느끼게 된 것이고, 이를 좀 더 극적으로 묘사한 것이 이런 이야기로 전해 내려오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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