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인을 위한 불교 이야기

2. 부처님의 출생과 어느 선인의 예언

소리없는 아우성 2012. 12. 3. 09:52

 

부처님의 출생 - 옆구리에서 옆구리로

불교는 물론 일반적 불교 전통에 의하면 기원전 6세기 경 히말리야 산맥 밑자락, 지금 네팔과 인도 변경 부근에 카필라 성이 있었는데, 거기에 샤캬(釋迦)족에 속하는 슈도다나(淨飯王, Śuddhodana)라는 왕과 그의 아름다운 왕비 마야(摩耶, Māyā) 부인이 살고 있었다.

사실 후대 문헌에서 ‘왕’이라고 나왔지만, 그 당시 수많은 부족들의 지도자였던 ‘라자’(rāja)들 중 하나로, 동서 80킬로미터, 남북 60킬로미터 되는 조그마한 지역의 족장이나 추장(chieftain) 정도라 볼 수 있다.아무튼 이들에게는 결혼 후 여러 해가 지나도록 아이가 없었다.

그러다가 마야 부인이 45세 쯤 되는 어느 날 꿈을 꾸었는데, 하늘에서 큰 코끼리가 코에 흰 연꽃을 가지고 나타나 부인 주위를 몇 바퀴 돈 다음 부인의 오른 쪽 옆구리로 들어갔다. 이렇게 하여 마야 부인은 임신을 하게 되고, 출산 기일이 되어오자 그 당시의 관습대로 아이를 낳기 위해 친정집으로 가게 되었다.

가마를 타고 친정으로 가는 도중 룸비니라고 하는 동산에 이르러 무우수(無憂樹) 나무 가지를 잡으려고 오른 손을 드는 순간 아기가 왼쪽 옆구리를 통해 나오고, 나오자마자 북쪽을 향해 길게 일곱 발자국을 걸어가, 오른손으로 하늘을, 왼손으로 땅을 가리키며, 사자와 같이 우렁찬 목소리로, “하늘 위와 땅 아래에 나밖에 존귀한 것이 없다”(天上天下唯我獨尊)고 선언했다. 이 아기가 바로 고타마(Gautama) 혹은 싯다르타(Siddhārtha, ‘목적을 이룬 이’)로서 장차 부처님이 될 아기였다.



천상천하유아독존 - 길이요 진리요 생명

여기서 “천상천하유아독존”에 대해 한 마디 하고 지나가자. 일반인도 이런 말을 들으면, “그야말로 머리에 피도 마르지 않은 처지에 교만이 극에 달했구나. 어찌 세상 천지에 자기만 존귀한 존재라 하는고...” 할 수도 있고, 특히 그리스도인들 중 더러는 “예수님은 어찌하고 자기가 유일하게 존귀하다는 건가?”하는 말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나’(我)라는 것이 무엇일까? 앞으로 이야기해 가면서 더욱 분명해지겠지만, 여기서 ‘나’는 역사적으로 태어난 개인적인 이 한 몸으로의 ‘나’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구태여 말한다면 일단 ‘우주적인 나’ 혹은 ‘큰 나(大我)’라 이해하고 있으면 좋을 것 같다.

어린 부처님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 속에 있는 ‘초개인적 자아(transpersonal self)’ ‘참된 자아’ 같은 것이라 할 수 있고, 이렇게 역사나 개인을 초월하여 보편적인 실재로서의 ‘나’가 이 우주에서 그 어느 것보다 존귀하다는 뜻이라 이해하는 것이다.

비슷한 경우를 예로 들면, 예수님도 스스로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나를 거치지 않고서는, 아무도 아버지께로 갈 사람이 없다.”(요한복음14:6)고 했다. 여기에서 예수님이 말하는 ‘나는’이 무슨 뜻일까?

예수님도 “아브라함이 태어나기 전부터 내가 있다.”(요8:58)고 한 것을 보면 이 때 ‘나’라고 하는 것도 역사적인 한 개인을 넘어서는 근원적인 ‘나’를 지칭하는 것이고, 결국 이것이 바로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 한 것이라고 이해할 수 없을까 생각해 본다.



어느 선인의 예언

부처님의 이름으로 고타마, 싯다르타 외에 나중에 붙은 샤캬무니(釋迦牟尼, Śākyamuni, ‘샤캬족의 성자’), 세존(世尊) 등등이 있다. 부처님을 '석가'라고만 하는 것은 엄격히 말해 정확한 것이 아니다. '석가'란 개인 이름이 아니라 종족 혹은 가문의 이름이기 때문이다.

중국이나 한국 불교에서 스님이 되면 속성을 버리고 ‘석광옥’ 같이 ‘석’을 성으로 하는 것은 이제 ‘석가 가문의 일원이 되었다는 뜻이다. 우리가 가장 많이 쓰는 ‘부처’라는 말의 본래 말인 ‘붓다’는 고유명사가 아니라 보통명사, 혹은 존칭으로서, 산스크리트어로 ‘깨친 이’라는 뜻이다.

한문으로는 ‘각자’(覺者)라 하고, 영어로는 ‘the Awakened’ 혹은 ‘the Enlightened’라 한다. 따라서, 엄격하게 말하면 깨침을 이루기 전, 곧 성불하기 전의 ‘부처’는 문자적 의미로서의 ‘부처’는 아니다.

이렇게 태어난 싯다르타는 사실 그 이전에 도솔천(兜率天, Tusita-deva)에서 보살로 오래 살고 있었다. 그러다가 이 세상에 새로운 부처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알고 시기, 장소, 가정, 어머니 등 여러 가지 조건을 감안한 다음 가장 적절하다고 생각됐을 때, 도솔천을 후임자 미륵(彌勒) 보살에게 맡기고 이 지상으로 내려오기로 결정한 다음 마야 부인의 몸으로 들어간 것이다.

마야 부인의 몸으로 들어간 코끼리는 사실 싯다르타 자신이었다. 마야 부인이 미혼의 ‘처녀’가 아니었기에 이것을 ‘동정녀 탄생’이라 할 수는 없지만, 아무튼 남자의 도움이 없이 아기를 낳았다는 의미에서 ‘단성 탄생’(parthenogenesis)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32가지 성인의 상을 타고난 아기

아기가 태어났을 때 히말리야 산 아래 ‘아시타’라는 한 선인(仙人, risi)이 있었는데, 하늘에서 기뻐하는 천사들로부터 카필라 성에 장차 진리를 널리 펼 아기가 태어났다는 소식을 듣고, 자기도 아기를 보기 위해 직접 카필라 성을 향해 ‘공중으로 날아’갔다.

그는 어린 싯다르타를 보고 크게 기뻐하였다. 그는 아기에게서 이른바 32 가지 중요한 성인의 상(好相)과 80 가지 부차적 상들을 발견하고 아이가 보통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32 가지 성인의 상이라는 것은, 피부가 금색이었다든가, 몸에서 빛이 난다든가, 두 눈썹 사이에 털이 있다든가, 손가락이 섬세하고 길다든가, 발이 평평하다든가, 팔이 길어 꾸부리지 않고 선 채로 무릎을 만질 정도라든가, 귓밥이 길어 어깨에 닿을 정도라든가, 발바닥에 바퀴 그림이 그려져 있다든가, 손가락이 오리발처럼 서로 붙었다든가 하는 등이었다.

이런 것은 그 당시 귀인들이, 예를 들어, 무거운 귀걸이를 했기에 귓밥이 길어지고, 또 많은 위인들이나 신들의 목상이나 석상에서 손가락 사이를 완전히 파내면 손가락이 쉽게 부러질 염려가 있기에, 그 사이를 파내지 않고 남겨둔 것을 보고 특별한 사람은 귓밥이 길거나 손가락이 오리발처럼 되어 있는 것으로 해석한 결과라 볼 수 있을 것이다.

물론 불상을 만들 때 이런 특징을 다 반영하면 부처님이 사람이 아니라 무슨 외계인이나 괴물처럼 보일 수밖에 없기 때문에 역사적으로 그 중 특별한 것 몇 가지만을 반영하고 있다.



이 아이가 가르칠 때 그것을 들을 수 없구나

그리고 나서 아시타 선인은 울었다. 아기가 장차 부처님이 될 것인데, 자기는 너무 나이가 많아 이 아이가 자라나 진리를 가르칠 때 거기서 그것을 듣지 못할 것이기에 그것이 안타까워 운다고 했다. 자료에 따라 이야기가 조금씩 다르지만 아무튼 그는 아기에 대해 중요한 예언을 했다.

아기가 집에서 나가지 않고 세속의 삶을 살면 위대한 성왕이 될 것이고, 반면 인생사의 비참한 현실이나 출가 구도자의 평온한 모습을 보게 되면 출가하여 위대한 스승, 부처님이 되리라는 예언이었다.

어머니 마야 부인은 아기를 낳은 지 7일 만에 세상을 떠나 도솔천으로 옮겼디. 많은 영웅들의 이야기에서 어머니는 영웅들을 이 세상에 나게 하는 것만으로도 큰 임무를 수행한 것이라 여기고 이렇게 출산 후 편히 쉬도록 하는 일이 보통이었다. 어린 싯다르타는 아버지의 후실이 된 이모의 손에서 자라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