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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 아잔타의 한 석굴 | | 경전의 전파
부처님의 가르침을 엮은 경전은 부처님 제자들이 부처님 법을 모으기 위해 열린 네 번의 모임(결집;結集)을 통하여 형성되었습니다. 부처님이 돌아가신 직후 열린 첫 번째 모임에서는 부처님의 말씀을 엮은 경장(經藏)과 율장(律藏)이 만들어 졌고, 두 번째 모임에서는 율장의 해석에 관해 보수적인 견해와 진보적인 견해가 나왔습니다. 마가다국 아쇼카왕(阿育王, Asoka)의 주도로 열린 세 번째 모임에서는 경장과 율장을 논리적으로 해석한 논장(論藏)이 만들어졌으며, 쿠샨왕국의 카니시카(迦貳色迦, Kani?ka)의 주도로 열린 네 번째 모임에서는 세 번째 모임에서 이루어진 삼장을 해석하는 주석서와 함께 대승경전(大乘經典)이 만들어졌습니다. 대승경전은 B.C. 2세기에 인도에서 일어난 힌두이즘(Hinduism)에 대응하여 일어난 대승불교 운동(大乘佛敎運動)이라는 것의 영향으로 만들어진 것입니다.
결집이라 불리는 이 네 번의 모임은 크게 두 가지로 구분되어 집니다. 부처님이 열반하시고 난 뒤 바로 있었던 첫 번째와 율장에 대한 해석에 관한 문제를 논의 하던 두 번째는 출가 수행자를 중심으로 모임이 이루어졌습니다. 이 두 결집은 부처님이 각 지역을 돌아다니시면서 전해주신 법을 한곳으로 모으는 작업 이였습니다. 아쇼카왕의 후원으로 이루어진 세 번째 결집과 카니시카왕의 후원으로 이루어진 네 번째 결집은 왕의 후원 하에 이루어진 결집이며 부처님의 법을 논리적으로 해석하고 인도이외의 지방으로 법을 전파시키기 위해 이루어진 모임 이였습니다. 이것으로써 경전의 전파는 아쇼카왕에 의한 전파와 카니시카왕에 의한 전파, 두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습니다.
첫 번째 경전의 전파는 아쇼카왕에 의한 것으로 B.C. 3세기 아쇼카왕의 법에 의한 정복이라는 이념에 따라 주변국으로 경전을 전파 하였습니다. 부처님이 열반하신 후 200년 뒤 아쇼카 왕의 후원으로 열린 세 번째 모임에서 만들어진 경전들은 부처님 말씀을 그대로 엮은 것이며, 이것은 인도의 가장 남쪽에 있는 스리랑카를 통하여 지금의 동남아시아 지역으로 퍼져나갔습니다.
두 번째 경전의 전파는 쿠샨왕조의 카니시카왕에 의한 것 이였습니다. 부처님이 열반하신 후 300년 뒤 카니시카왕의 후원으로 열린 네 번째 모임이 있었던 시기에 이루어진 대승경전은 카슈미르(Kashmir)에서 전파되기 시작하여 인도의 북쪽으로 퍼져 나갔습니다. 이 대승경전이 중국지역으로 전파된 시기는 A.D, 1세기 한(漢)나라 시대로 보고 있으며 이후 4세기에는 중국에서 한국으로 7세기에 이르러서는 중국에서 티벳으로 전달되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