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인을 위한 그리스도교 이야기

[인류의 스승] 도마

소리없는 아우성 2013. 11. 3. 11:19

[인류의 스승] 도마

 

깨달음 강조했던 예수의 참 뜻 전한 성자

 

 

2000년 전 원리주의자 에 의해 폐기된 도마복음 저자
1945 년 이집트 니그함마디서 사해문서와 함께 발견
부활·원죄·종말 대신 진리에 대한 밝은 지혜 가르쳐

 

 

.

도마는 지금까지 살펴본 “인류의 스승” 중에서 조금은 특별한 인물이다. 그는 최근까지도 그리스도교 전통에서 특별히 존경 받는 인물은 아니다. 그리스도교 성경에 포함된 복음서들에 보면 그가 예수님의 열 두 제자 중 하나였다는 것 이외에 별로 알려진 것이 없다. 그 뿐 아니라『요한복음』에서는 세 번씩이나 도마를 믿음이 없는 제자, 따라서 바람직하지 못한 제자로 묘사하고 있기까지 하다(11:16, 14:5, 20:24).『요한복음』에 나와 있는 그의 이야기를 옮기면 대략 다음과 같다.

 

 

기독교, 믿음 없는 인물로 폄훼

 

다른 제자들이 예수님이 부활했다고 전해주자, 도마는 “내가 그의 손의 못 자국을 보며 내 손가락을 그 못 자국에 넣으며 내 손을 그 옆구리에 넣어 보지 않고는 믿지 아니하겠노라.”고 했다. 여드레가 지나서 도마를 포함한 제자들이 집에 있는데, 예수님이 닫힌 문을 통해 들어와 도마에게 “네 손가락을 이리 내밀어 내 손을 보고 네 손을 내밀어 내 옆구리에 넣어 보라. 그리하여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고 했다. 이에 도마가 감명을 받고, 예수님을 향해 “나의 주님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20:28)하는 고백을 했다. 예수님이 마지막으로 한 말씀하시면서, “너는 나를 본 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이 복되도다.”고 했다. 따라서『요한복음』이 정경으로 받아들여진 이후 그리스도교 역사에서 2천 년 가까이 도마는 ‘의심하는 도마(doubting Thomas)’로 알려지는 수모를 당하게 되었다고 볼 수 있다.

 

이렇게 수모를 당하던 도마가 우리에게 위대한 스승 중 한 분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가 인도로 건너가 그리스도교를 전파하였다는 전설 때문도 아니고, 또 다른 사도들과 함께 성인으로 추대되었기 때문이 아니다. 결정적인 이유는 그가 예수님의 가르침 중 가장 깊은 차원의 가르침을 취하여 그것을 『도마복음』이라는 이름의 복음서로 우리에게 전해주었다는 사실 때문이다.

 

『도마복음』이란 지금의 성경에 포함되어 있지 않은 복음서들 중 하나다. 그리스도교 초기에는 지금 성경에 포함된 4복음서 이외에 여러 가지 복음서들이 있었다. 그러나 초대 교회 교부들에 의해 이런 복음서들 중 오로지 네 개의 복음서만이 그리스도교 정경에 포함되고 다른 것들은 폐기처분 당했다. 이렇게 폐기처분 당한 복음서들 중 일부가 1945년 이집트 나그함마디라는 마을 부근 산기슭에서 발견되었다.

 

나그함마디 문서 뭉치들 속에는 모두 52종의 문서가 들어 있었는데, 이 중에서 사람들의 관심을 가장 많이 끈 것이 바로 『도마복음』이다. 초기 그리스도교 전통에서 도마가 ‘쌍둥이’를 의미하는 그의 이름 때문에 예수님의 쌍둥이 형제로 알려져 있었던 것도 그 이유 중 하나이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도마복음』에 나타난 예수님, 그가 전하는 ‘비밀의’ 메시지가 놀랍기 그지없었기 때문이다.

 

『도마복음』은 “살아 계신 예수께서 말씀하시고 디두모 유다 도마가 받아 적은 비밀의 말씀들”이라는 선언으로 시작한다. 도마가 간취해서 우리에게 전해주는 예수님의 말씀은 모든 사람들이 상식적으로 알아들을 수 있는 보통의 말씀이 아니라 정말로 가장 깊은 차원의 진리를 찾는 소수의 사람들만이 꿰뚫어볼 수 있는 ‘비밀의 말씀’이라는 뜻이다. 예수님이 하신 말씀 중에서 표층 혹은 현교(顯敎, exoteric)적 차원이 아니라, 정말로 열린 마음을 가진 사람들만 이해할 수 있는 심층 혹은 밀의(密意, esoteric)적 차원의 말씀을 전하겠다는 이야기이다.

 

『도마복음』이 전하는 비밀의 말씀이란 무엇인가? 『도마복음』은 성경에 포함된 복음서들과 달리 기적, 예언의 성취, 십자가, 부활, 승천, 재림, 종말, 최후 심판, 대속 등에 대한 언급이 거의 없다. 대신 내 속에 있는 神性, 참나를 아는 ‘깨달음’을 계속해서 강조한다. 프라즈나(prajňā), 반야(般若), 통찰, 꿰뚫어봄, 직관과 같은 계열의 말이기도 하다. 『도마복음』에 등장하는 예수님은 ‘나를 믿으라’라는 말을 한 번도 하지 않는다. 계속해서 ‘깨달으라’ ‘깨치라’고 타이른다.

 

『도마복음』의 한 절을 인용해 보자. 3절에 보면, “여러분 자신을 깨달아 아십시오. 그러면 남도 여러분을 알 것이고, 여러분도 자신이 살아 계신 아버지의 자녀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고 했다. “너 자신을 알라.” 그 유명한 ‘그노시 세아우톤’이다. 알아야 할 것, 깨쳐야 할 것 중 내가 누구인가를 아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뜻이다. 내가 바로 살아 계신 아버지의 아들·딸이라는 사실, 내 속에 하느님을 모시고 있다[侍天主]는 사실, 이 하느님이 바로 내 속 가장 깊은 차원의 ‘참나’ 혹은 ‘얼나’에 다름 아니라[人乃天]는 엄청난 사실을 ‘깨달음’―이것이야말로 바로 이 삶에서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가장 귀중한 ‘진주’ 같은 진리라는 것이다.

 

 

도마, “예수의 비밀 가르침 담았다”

 

 

 

그런데 이『도마복음』에는 도마 자신에 관해서 재미있는, 그러면서 의미심장한 이야기가 나온다. 거기 제13절에 보면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자기가 누구인지 말해보라고 했다. 먼저 베드로라는 제자가 “선생님은 의로운 메신저와 같습니다.”고 했다. 마태가 그 다음으로 예수님은 ‘지혜로운 철인’과 같다고 했다. 도마가 마지막으로 “선생님, 제 입으로는 당신이 누구와 같다고 감히 말할 수가 없습니다.”고 했다. 그러자 예수님이 도마를 향해, “나는 자네의 선생이 아닐세. 자네는 내게서 솟아나는 샘물을 마시고 취했네.하는 말을 하고 그를 데리고 물러나 그에게 무언가 세 가지를 말해 주었다고 한다.

 

도마가 자기 동료들에게 돌아오자 동료들은 그에게 “예수님이 자네에게 무슨 말씀을 하셨는가?” 하고 물어보았다. 도마가 그들에게 “예수님이 내게 하신 말씀 중 하나라도 자네들한테 말하면 자네들은 돌을 들어 나를 칠 것이고, 돌에서 불이 나와 자네들을 삼킬 것일세.하는 대답을 했다.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하는 이야기가 지금의 성경에 포함되어 있는 공관복음서에도 나온다. 공관복음서에 나오는 이야기와 여기 『도마복음』에 나오는 이야기의 가장 중요한 차이점은, 공관복음서에는 “선생님은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십니다.” 하는 베드로의 고백만 있을 뿐 ‘도마의 침묵’에 대해서는 언급이 없다는 점이다.


이 이야기를 읽으면 선불교『육조단경(六祖壇經)』에 나오는 이야기가 생각난다. 잘 아는 이야기지만, 인도에서 건너온 달마대사(達磨大師)가 소림사에 머물며 9년간의 면벽(面壁) 참선을 끝낸 뒤 그곳을 떠나려고 하면서 제자들을 불러놓고 각각 그동안 깨달은 바를 말해보라 했다고 한다. 한 제자가 나와서 뭐라고 하자, 달마는 “너는 내 살갗을 얻었구나.” 한다. 다음 제자가 나와 또 뭐라고 하자, “너는 내 살을 얻었구나.” 한다. 또 다른 제자가 나와 뭐라고 하자, “너는 내 뼈를 얻었구나.” 한다. 드디어 그의 수제자 혜가(慧可)가 나와 스승에게 경건하게 절을 올린 다음 가만히 서 있을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에 달마는 그를 보고 “너는 나의 골수를 얻었구나.” 했다. 깨달음에도 정도의 차이가 있고, 구경(究竟)의 깨달음에 이르면 이를 말로 표현할 수 없음을 보여주는 예이다. 여기 『도마복음』에서도 도마가 그가 깨친 진리는 말로 할 수 없다는 것을 침묵을 통해 웅변적으로 말한 것이 아닐까?

 

예수님이 도마에게 “나는 자네의 선생이 아닐세.”라고 한 것도 의미심장하다. 중국의 고전 『장자』를 살펴보자. 공자의 제자 안회가 공자에게 찾아와 이런저런 말로 자신의 수행이 깊어지는 것 같다고 보고하였다. 공자는 거기에 대해 특별히 관심을 기울이는 기색이 없었다. 그러다가 안회가 자기는 좌망(坐忘), 즉 앉아서 모든 것을 잊었다고 하니 공자가 깜짝 놀라 “그게 무슨 말이냐?” 하고 묻는다. 안회가 모든 앎을 몰아내고 잊어버리는 것이라고 하자 공자는 안회를 보고 “청컨대 나도 네 뒤를 따르게 해다오.” 하고 부탁한다.


예수님이 도마에게 “나는 자네의 선생이 아닐세.”라고 한 말도 이런 문맥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이런 깊은 경지에 이른 도마, 여기 표현대로 예수님이 주는 물을 마시고 완전히 ‘취한’ 도마에게, 예수님은 이제 더 이상 선생님일 필요가 없고, 깨달음에 있어서 이제 둘은 동격임을, 그의 이름 그대로 ‘쌍둥이’임을 선언한 셈이다. 도마가 이런 경지에 이르렀기에 예수님은 그를 데리고 나가 그에게만 특별한 비법을 전수할 수 있게 되었다.

 

 

불교-기독교 잇는 가교 평가

 

1945년 이집트 니그함마디에서 발견된 ‘도마복음’

 

 

.

예수님이 도마를 따로 불러 일러주었다는 그 비밀이라는 것은 또 무엇인가? 구체적으로 무엇이라는 언급은 없지만, 다른 제자들처럼 아직 완전한 깨달음에 이르지 못한 사람들이 들으면 기절초풍할 무엇, 심지어 그것을 전하는 사람을 돌로 쳐 죽일 수 있을 정도로 공분을 일으키는 엄청나고 혼란스러운 무엇이었음에 틀림없다. 궁극 진리란 상식의 세계, 당연히 여겨지는 세계를 뛰어넘는 역설(逆說)의 논리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道德經』에서는 “웃음거리가 되지 않으면 도라고 할 수가 없다.(41)라고 했다. 진리를 듣고 돌로 쳐 죽이려는 것과 크게 웃는 것에는 차이가 있지만, 진리가 보통 사람들이 이해하기에는 도무지 말이 안 되는 무엇이라는 것을 말해준다는 점에서는 같다.

 

이처럼 도마는 『도마복음』에서 제자들 중 가장 위대한 제자로 그려져 있다. 그러나 우리가 도마를 특별히 ‘인류의 스승’의 반열에까지 올리는 것은 그가 전해주는 『도마복음』이 그리스도교는 주로 현교적인 가르침이라고 생각하던 많은 사람들에게 가히 혁명적이라고 할 만큼 밀의적 기별을 전해주기 때문이다. 어느 학자는 1945년 『도마복음』의 발견이 주는 정신史적 충격이 같은 해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투하된 원자폭탄의 위력에 버금가는 것이라고까지 말했다. 필자가 『도마복음』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이유 중 하나는 이것이 불교와 그리스도교를 잇는 가교의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점 때문이다. 그리스도교에서 잃어버리거나 등한시되던 심층적 가르침을 되살리게 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해준 그가 참으로 고마울 따름이다.

 

『도마복음』에 대해 더 자세한 것을 알기 위해서는 필자가 최근에 펴낸 『또 다른 예수: 비교종교학자 오강남 교수의 도마복음 풀이』(2009)를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오강남 캐나다 리자이나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