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 입문 교리

3-2 신앙적 불타관의 발생

소리없는 아우성 2012. 12. 13. 10:15

불(佛)과 여래


여래10호의 명칭 가운데 불타의 본질을 나타내는 술어로서 가장 중요한 것은 '불(佛)'과 '여래(如來)'다. 이미 설명했듯이 붓다란 각자(覺者)이며 깨달았다고 하는 과거분사에 유래한다. 그 원어가 갖는 의미는 '눈을 뜨다'라는 것이다. 또 어리석음의 반대인 '현명하다'는 의미로도 일반에서는 쓰여졌으나 '진리를 깨달은 자'라는 의미가 일반적이다. 그러나 불교에서 교주를 부르는 용어가 된 후에는 가장 일반적으로 깨달음을 나타낸 말로써 보편성을 갖게 됐다. 이것은 불교의 종교적 특색이기도 하다. 부처님의 경우는 일반적인 깨달음의 체험과 구별하는 뜻에서 무상정등각(無上正等覺)과 같은 수식어가 많이 붙여지기도 했다.

이와 같이 불타는 언어의미상으로도 명백하게 의심을 가질 여지가 없지만 이와는 달리 그 동의어로 사용되고 있는 타타가타(如來)에 대해서는 약간의 설명을 요한다. 타타가타 부처님 재세시에 이미 수행을 완성한 사람에 대해서 일반적으로 쓰여진 이름의 하나로 생각되고 있으나 그 의미는 '이와 같이 훌륭하게 된 사람'이라는 것이다.
타타가타는 산스크리트어의 복합사로서 ①tatha+gata ②tatha-agata 두 가지로 나누어진다. ①은 '여거(如去)'로서 티베트어역은 이 해석을 나타낸다. ②는 '여래(如來)'로서 한역에서 통상 쓰이는 말이다. ①의 gata에는 안다(知), 이해한다(解)는 의미도 있다. 이 번역의 예에서 보이는 것과 같이 티베트 불교는 깨달음을 중요시하고 중국불교는 부처님의 자비를 표면에 나타내고 있는 것으로 보여진다.

그러나 산스크리트어의 아가타는 다시 여러 가지 의미를 포함하고 있다. 먼저 영어의 Come과 같은 a-gam(오다)이라는 동사는 어느 지점에의 도달을 나타낸다. 때문에 시점의 위치에 따라서 여기나 저기 어느 곳에도 쓰여진다. 《대지도론(大智度論)》등의 설명에서도 여래의 어의는 이 아가타가 가진 두 가지 방향으로 해석되고 있다. 특히 여(如)는 미오(迷悟)에 치우침 없이 불변이나 그것이 청정하게 되었을 때 여래라고 불리우는 해석도 있다(대승장엄경론). 또 a-gta를 시간적으로 과거에서 현재에 이르기까지 즉 점차 전래해 왔다는 해석도 있다(보성론). 그러니까 여래라는 말은 교리의 확립과 더불어 중요한 의미가 덧붙여진 것이다. 다시말해 '여(如)'라는 것은 진여(眞如)를 의미하는 것이 되었고 '이와 같은(tatha) 것이었다(ta)'라는 뜻을 가짐으로써 있는 그대로의 진실한 것을 나타내는 말이 된 것이다. 그것은 바로 부처님에 의해서 깨달아진 진리(제행무상 또는 연기의 진리)를 말한다.

불전에서 부처님은 '자각각타각행원만(自覺覺他覺行圓滿)'한 사람으로 불려지고 있다. 여기서 자각이란 지혜의 활동을 말하는 것이며 각타는 자비의 마음을 의미한다. 붓다는 따라서 지혜와 자비의 두 발(雨足)에 의해서 서 있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 지혜, 자각이라고 하는 측면을 깨달은 진리와의 관계에 의해서 호칭할 때 붓다는 '이와 같이 온 자(여래)'로 해석된다. 그래서 중생구제를 위해 중생과 함께 세간에 모습을 나타내어 각타의 활동을 하는 점을 '이와 같이 왔다'고 해석하고 '여래'라고 부르는 것이다.

이와 같이 '여거'와 '여래'는 깨달음과 중생구제라고 하는 붓다 활동, 말하자면 왕상(往相)과 환상(還相)이라고 하는 방향성을 나타내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타타가타라고 하는 하나의 말속에 포함되어 있다. 이 해석을 가능케 하는 것은 첫째, 산스크리트형의 복합사가 가진 다의성(多義性)이며 그것을 추진하는 원동력은 붓다, 즉 진리를 깨달은 자를 진리(如=法)와 일체인 자, 진리를 체득한 자라고 생각되는 불교적·인도적 절대자관이다.
그러나 이 점을 논하기 위해서는 대승에서의 불신관(佛身觀:法身)의 확립 과정을 먼저 이해하지 않으면 안된다. 이에 앞서 지금은 그에 대한 경과를 먼저 고찰해야 하겠다.

불타의 전생


성도 이전의 부처님을 호칭할 때 흔히 사용하는 표현은 '보살'이다. 이 용어는 탄생 이전의 전생에까지 소급 적용되고 있다. 보살은 보리살타의 약칭(또는 訛音의 음사)으로서 성도를 전제로 한 붓다 전신의 호칭으로 사용되어 왔다.

부처가 되기 위한 수행은 역사상의 부처님 경우는 6년의 고행이 있었을 뿐이지만 입멸이후 부처님에 대한 신격화가 진행됨에 따라 그 수행은 탄생이전의 전생으로 소급되어 다시 그 기간도 3아승지겁라는 까마득한 기간까지 소급되었다.아승지라는 것은 무수(無數)라는 의미의 최고의 수단위로써 10의 1백 40승을 말한다. 겁도 또한 많은 햇수(年數)의 단위로써 그 종류는 여러 가지가 있으나 여기서는 우주가 성립, 존속, 파괴되는 일순환을 의미하고 이를 대겁(大劫)이라 한다. 1대겁은 수십만억 년에 해당한다. 부처님은 이같이 많은 세월동안 '육도만행(六度萬行)'을 닦아 왔다고 한다. 6도라는 것은 보시에서 반야에 이르는 6바라밀을 말한다. 그 구체적인 실천의 모습은 여러 가지《자타카》에 나타나 있다.

그 결과 부처님은 열 여덟가지의 보통사람이 따르지 못하는 불덕(佛德:18不共佛法)을 구비하여 서른 두가지의 위대한 인물의 모습(32相)을 갖추게 되었다고 한다. 18불공불법(十八不共佛法)은 아함경에 의하면 10력(十力)·4무외(無畏)·삼념주(三念住)·대비(大悲)의 열 여덟항목을 가리키는데 이것은 아비달마에서 확정된 교리다.10력은 부처님 특유의 10가지 지역(智力)으로 ①도리·비도리를 판별하는 힘 ②법과 그 과보와의 관계를 아는 힘 ③여러 가지 선정에 통달한 힘 ④중생의 근기를 아는 힘 ⑤중생의 욕구와 이해 정도를 아는 힘 ⑥중생의 성격을 아는 힘 ⑦업에 따라 생기는 세계를 아는 힘 ⑧과거세의 기억을 아는 힘 ⑨미래를 예견하는 힘 ⑩번뇌가 다해서 해탈을 자각하는 힘 등이다.

사무외란 부처님이 다음 네가지 점에서 두려움을 갖지 않는 것을 말한다. ①일체 모든 법을 평등하게 깨달아 다른 이의 힐난을 두려워하지 않음(正等覺無畏) ②온갖 번뇌를 다 끊어 외난을 두려워하지 않음(漏永盡無畏) ③보리를 장애하는 것을 다 알아서 다른 이의 비난을 두려워하지 않음(說障法無畏) ④고통의 세계를 벗어나는 요긴한 길을 표시해서 다른 이의 비난을 두려워하지 않음(說出道無畏)등이 그것이다.

삼염주는 부처님은 다음의 경우 정지정념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①중생이 부처님을 신봉해도 부처님은 환희심을 내지 않고 마음이 평정한 상태. ②중생이 한결같이 귀를 기울여 설법을 듣지 않아도 마음이 태연한 것. ③한 곳에서 하나는 열심히 듣고 하나는 전혀 듣지 않아도 기뻐하거나 근심하지 아니하는 것 등이다. 이는 부처님이 남의 칭찬이나 희롱에 마음이 움직이지 않음을 말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대비라는 것은 부처님이 항상 중생의 고난을 구제하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을 말한다.

대승에서는 18불공불법을 앞에서 말한 것과 약간 달리 설명한다. 대승의 18불공불법은 ①∼③신구의(身口意) 3업에 대해 과실이 없는 것 ④중생에 대한 평등심 ⑤선정에 의한 안정 ⑥모든 것을 포용하고 버리지 않는 힘. 이상 여섯 가지는 계학(戒學)에서 생기는 것이며 무주열반(無住涅槃)의 인(因)이 되는 것이다. ⑦∼⑪중생제도의 의욕·정진노력·염력·선정·지혜 다섯가지 점에 대해서 감퇴하지 않는 것 ⑫해탈해서 뒤로 물러서지 않는 것. 이상 여섯 가지는 정학(定學)에서 생긴다. ⑬∼⑮중생제도를 위해 지혜의 힘으로 신구의 3업을 나타내는 것. ?∼?과거·미래·현재의 일을 잘 아는 것. 이상은 혜학(慧學)에서 생긴다.

18불공불법과는 달리 32상은 부처님의 형상에서 불덕(佛德)을 찾는 방법이다. 32상을 세는 방법은 일정하지 않으나 주가 되는 것으로는 머리에 육계(肉 )가 있을 것, 미간에는 백호(白毫), 손가락사이에는 물갈퀴, 발가락에는 천복륜(千輻輪), 음부가 감추어져 있을 것, 신체 전체가 부드럽게 융기되어 있을 것, 마흔 개의 치아, 두 개의 흰 이빨, 오른쪽으로 감겨 돌아간 모발, 목에는 세 개의 턱주름 등이 있어야 한다. 이는 옛부터 불상을 조각할 때 주안점이 되어 왔다. 부처님에게는 또 부차적인 특징으로 '80종호'가 붙어져서 32상과 합해서 '상호'라고 불리운다.

부처님은 또한 3명 6통 등의 신통력을 구비했다고 생각되어졌다. 3명 6통이란 ①숙명통(과거세의 일을 아는 힘) ②천안동(미래의 일을 예견하는 힘) ③누진통(현재의 인생고를 알고 그 원인인 번뇌를 끊는 힘) ④천이통(세계의 모든 소리를 듣는 힘) ⑤신족통(자유로이 세계를 변현하는 힘) ⑥타심통(타인의 마음을 아는 힘)등이다. 이 가운데 최초의 세 항만을 별도로 떼서 3명이라고 한다.
이같은 불덕과 상호, 신통력은 오랜 보살로서의 수행기간 중에 항상 제불을 모시고 공양했으며 한량없는 선근과 복덕을 닦았기 때문에 생긴 것이라는 것이 불교도들의 믿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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