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존사이트 / 성철스님 법어집 / 장경각 / 불기 2536.4.
운융사상에 투철한 천태교학의 중도설은 삼제원융(三諦圓融), 일념삼천(一念三千)등의 대표적인 교리에서도 드러나지만 한편으로는 쌍차쌍조(雙遮雙照)로도 이를 대변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불교 여러 종파의 중도설을 말하면서 쌍차 쌍조가 중도의 근본 내용임을 누차 말하였는데, 이 쌍차 쌍조를 누구보다도 능란하게 구사하며 중도를 밝힌 이가 바로 천태 지자스님입니다.
중도의 내용은 쌍차쌍조로 그것은 부사의한 부처님 경계이지 보살의 경계는 아닙니다. 위에서 '쌍으로 양변을 차단하여 바르게 중동에 들어간다'고 하니 혹시 잘못 이해하여 쌍으로 양변을 차단하는 것과 따로 중도가 있는 것같이 생각할지 모르지만, 이 표현은 구름이 걷히니 해가 드러난다는 식입니다.구름이 걷히면 해가 드러나고 해가 드러나면 구름이 걷히는 만큼, 쌍차와 쌍조에는 절대로 간격이나 거리가 있을 수 없습니다. 언어로써 표현하자니 쌍차쌍조이지, 실상을 알고 나면 쌍차가 곧 쌍조이고 쌍조가 곧 쌍차로서 언제든지 차조(遮照)가 동시이며 그 둘을 분리할 수 없습니다.
'종일토록 말함'은 쌍조이다. 아무리 쌍조하여도 그 자취가 적정하여 설한 것이 없기 때문에 종일토록 말하여도 아무말도 하지 않은 것이 됩니다. 또 '종일토록 말하지 않음'은 쌍차이다. 종일토록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어도 말한 것이 됩니다. 이와같이 쌍차가 쌍조이고 쌍조가 쌍차가 되니 대광명이 적적한 가운데 미진수의 불찰을 덮고도 남으나 그 자체는 공공적적(空空寂寂)해서 한 가지 상도 볼 수 없습니다.
'중(中)은 둘이 아니다'는 것은 모든 것이 다 원융하다는 말이며, '능통하다'라는 것은 일체가 막힌 데 없이 무애하다는 말입니다. '하나의 참된 도리(一實話)'는 자성 · 법계 · 법성 · 진여 등을 말하는데, 무애자재한 중도의 대지혜가 걸림없이 하나의 참된 도리를 비추는 것을 중도관이라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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