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래가 이 공과 유의 집착을 제거하기 위해 세 번째 시기에 요의교(了義敎)를 말씀하시니 「해심밀경」등의 모임에서 모든 것이 오직 식뿐이라는 등 마음밖에 법이 없다고 설하여 처 음의 유집을 부수고, 안으로 식이 없지 않으므로 모든 것이 다 공하다는 집착을 버려 유견과 무견을 떠나 바르게 중도에 머무르게 하였다. 전제의 도리에 깨쳐 증득함이 분명히 있고 속 제 중에 묘하게 능히 머물면서 버리느니라.
바로 앞에서 해설한대로 한 쪽은 유를 집착하고 또 한 쪽은 공을 집착해서 서로 옳다고 다투기에 여래께서 공과 유의 집착을 제거하기 위하여 세 번째 시기에 비밀히 말하지 않고 요의교, 즉 중도사상을 제대로 다 표현한 「해심밀경」을 설하여 일체 모든 것이 오직 식만 있지 객관적인 경계는 없다고 하여 유식(唯識)을 주장합니다.
이와같이 유식종에서는 모든 경계는 오직 식뿐이며 경계라는 것은 모두 식의 소산이라 하여 마음밖에 법이 없음〔心外法無〕을 주장하여 객관을 부정하는 것입니다. 이것으로써 모든 법이 실유한다는 유집(有執)을 부수어 버립니다.
즉 유견에 사로잡힌 사람들은 경계를 대하여 법에 집착하지만 그것은 오직 식만이 있고 경계는 없다는 유식무경(唯識無境)의 이치를 모르기 때문이며, 이 심외법무의 도리로 유집을 타파합니다. 또 유집을 부수어서 일체가 공하게 되므로 전체가 다 공하니 아무것도 없는 것이 아닌가 하겠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즉 안으로 식이 분명히 있다〔非無內識〕고 주장하여 일체가 다 공하다는 집착을 또한 타파합니다. 따라서 먼저 오직 식만 있고 경계는 없다고 하여 경계를 부수어 버리고 그 다음에 공한 가운데 활동하는 식이 있으므로 아주 없는 것이 아니니 전체가 다 공이라 하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이리하여 유집도 부수어 버리고 무집도 부수어 버려 유견과 무견을 다 떠나게 됩니다. 소승에서 주장하는 유견도 떠나고 대승에서 주장하는 무견·공견도 다 떠나 바로 중도에 들어가 진제의 도리에 대한 깨침이 분명히 있게 됩니다. 모든 것이 다 공하다고 하여 아주 텅 비어서 아무 것도 없다고 하면 이것은 단공(斷空)에 떨어져 공견외도(空見外道)가 되고 불교가 아닙니다.
왜 그런가 하면 진제의 도리에 분명히 깨침이 있어 일체가 공한 가운데 유가 있고, 또한 속제(俗諦) 중에 묘하게 능히 머물러 있으면서 버리게 되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속제라는 것은 유(有)를 말하고 버림〔捨〕은 공으로 보아 결국 유가 공이라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맨 마지막 구절인 '진제의 도리에서 깨쳐 증득함이 있다'함은 공이 즉 유이고, '속제 중에 묘하게 능히 머물면서 버린다'함은 유가 즉 공으로서 공즉시색 색즉시공과 아주 비슷한 뜻이 됩니다. 이렇게 되면 중도가 안될래야 안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첫 번째 시기(第一時)와 두 번째 시기(第二時)에 서는 유와 공을 각각 집착하여 공과 유가 완전히 상통하지 못했지만, 공견과 유견을 다 버려놓고 보니 진제 중에 속제가 있고 속제 중에 진제가 있으며, 공 중에 유가 있고 유 중에 공이 있어 서로 상즉한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보면 쌍차쌍조와 비슷한 설명이기는 하지만, 이것은 일종의 상(相)에 집착한 것으로 천태나 화엄과 같이 사사무애하고 원융무애한 완전한 이론전개는 되지 못한 것이라고 나중에 현수스님의 공격을 받게 됩니다.
또 지금 이 논은, 이치는 유식의 삼성·십지·인과와 행위의 상(相)을 밝힌 대승이다. 그 러므로 세 번째 시기 중도의 가르침임을 알아야 하느니라. 又今此論은......理明唯識三性十地因果行位了相大乘이라 故知第三時中道之敎也니라. {唯識述記 ; 大正藏 43 p.230상}
유식을 근본으로 하는 이 성유식론은 유식에서 설하는 삼성(三性)과 십지(十地)와 인과(因果)와 행위(行位)의 상(相)을 밝힌 대승〔了相大乘〕입니다. 모든 상을 밝힌 유식법상종이라 하는 것은 불교의 근본인 중도종(中道宗)이지 유견이나 무견에 속한 변견(邊見)은 아니라고 합니다.
그러나 전에도 여러 번 말했지만 법상종에서 주장하는 것은 상세히 검토해 보면 화엄이나 천태에서 말하는 상즉상입(相卽相入)하는 원융무애한 교리와는 거리가 멉니다. 그리하여 실질적인 중도가 아니고 일종의 중간입장이 되어버려 실제로 중도라고는 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법상종에서 주장하는 제3시 즉 소승의 유와 반야의 공이 상즉한 것을 설할 때, 자기네는 공(空)중에 유(有)가 있고, 유중에 공이 있다고 말하지만, 실제로 화엄이나 천태에서 말하는 것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고 하는 것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