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철스님 백일법문

[스크랩] 백일법문 [제3장 중관사상] 2. 삼론종

소리없는 아우성 2012. 12. 10. 08:46
2. 삼론종

 

세존사이트 / 성철스님 법어집 / 장경각 / 불기 2536.4.

 

인도의 중관파를 중국에서는 삼론종이라 하는데 삼론종이란 용수보살의 「중론」과 역시 용수보살의 저술인 「십이문론(十二門論)」, 그리고 용수의 제자인 제바보살의 「백론(百論)」을 가리킵니다. 이 삼론을 한문으로 번역한 이가 바로 구마라집(鳩摩羅什) 법사이므로 삼론종의 개조는 구마라집으로 봅니다. 이 구마라집의 문하에서는 삼론의 연구가 활발하여 승예(僧叡)·승조(僧肇)등의 뛰어난 삼론학자가 다수 배출되어 여러 저술을 남겼습니다. 

삼론종의 학문적 계승은 구마라집 이후 약 100년 뒤에 활약한 승랑(僧朗)부터 그 법맥이 확실합니다. 승랑은 고구려 요동( 東)출신으로 중국의 북쪽지방에서 구마라집의 교학을 배워 삼론과 화엄에 뛰어났으며, 강남으로 와서 여러 사람들을 가르쳤습니다. 특히 관료이며 현학가(玄學家)인 주옹(周 )은 승랑에게 사사하여 삼종론(三宗論)을 지어 삼론종의 기본 뜻을 밝히었고, 불심천자(佛心天子)라는 양(梁) 무제(武帝)는 승랑에게 승전(僧詮 ) 등 열 명의 승려를 보내 수학하게 하였습니다. 

삼론종에는 예로부터 고삼론(古三論)과 신삼론(新三論)의 구별이 있으며, 승랑 이후부터를 신삼론이라고 규정합니다. 삼론학의 대성자인 길장(吉藏)은 승랑을 섭령대사(攝嶺大師) 혹은 섭대산사(攝山大師)라고 부르며 매우 존중하였으며 길장의 교학 정립에 승랑대사의 학설이 지대한 영향을 끼쳤음을 잘 반영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고구려의 승랑대사에 의해 발전된 중국의 삼론학은 열 명의 제자 중 지관사(止觀社)의 승전(僧詮)에게 상승되고, 다시 흥황사(興皇寺) 법랑(法朗)에게 계승되어 삼론교학은 길장(吉藏)에 의해 집대성되었습니다. 

길장(:549∼623)스님은 그의 조부(祖父)가 안식국(安息國:parthia)에서 중국 남쪽으로 이주해 온 독실한 불교 가문에서 태어났으며, 어릴 때 아버지를 따라 유명한 역경승(譯經僧)인 진제삼장(眞제三藏)에게 찾아가서 길장이라는 이름을 얻었습니다. 

그는 11세에 출가하여 구족계를 받은 뒤 그 명성이 더욱 높아지고, 수(隋)나라로 통일된 후 가상사(嘉祥寺)에서 7∼8년간 머물며 삼론을 연구한 인연으로 그를 가상대사(嘉祥大師)라고도 합니다. 그 뒤 천태종의 지의(智 )스님과 교류가 있었으며, 나중에 수 양제(陽 煬帝 )의 칙명으로 혜일사(慧日寺), 일엄사(日嚴寺)에 거주하며 삼론과 법화경 등을 연구하였습니다. 

그는 중국 제일의 찬술가에 속할 만큼 많은 저술을 하였는데, 현존하는 것만으로도 26부 110권이나 됩니다. 그 가운데 대표적인 저서로는 「삼론현의(三論玄義)」, 「중관론소(中觀論疏)」, 「이십문론소(二十門論疏)」, 「백론소(百論疏)」, 「이제의(二제義)」와 「화엄경유의(華嚴經遊意) · 「유마경유의(維 經遊意)」·「금강경의소(金剛經義疏)」·「법화경의소(法華經義疏)」등이 있습니다.

이렇게 길장스님의 저서는 대부분 반야·유마·법화·화엄 등 대승불교 초기의 중요경전과 용수 교학인 삼론에 관한 것들이며, 특히 용수 교학에 관하여 빼어난 저술을 가장 많이 지었습니다. 길장스님은 중론·십이문론·백론의 삼론을 근본으로 삼아 삼론종을 집대성하여 교학 발전에 공헌을 많이 하였으나, 문자에만 치중하여 실제로는 마음을 열지 못한 것으로 여겨집니다.

그래서 살론종의 종지(宗旨)에 있어서 공을 설하고 중론을 근본 뜻으로 삼았지만, 중론의 깊은 뜻을 바로 보았다고 취급하지는 않습니다. 이 스님은 천태(天台)스님과 동시대인으로 자기가 천태스님을 알기 전에는 자신의 의견이 옳고 용수보살의 뜻을 근본적으로 잘 계승하여 이것을 충분히 발휘했다고 생각했는데, 나중에 천태스님의 저술을 보고는 자기가 실제로 불법의 정점에 어느 정도 다가가다 말았을 뿐 사실은 부처님의 근본 뜻을 알지 못했으며 중론을 바로 보지 못했다고 스스로 말한 분입니다.

그래서 자신의 저술을 힘이 미치는 데까지 스스로 불질러버리고 자신의 저술이 잘못되어 중대한 과오를 범했다고까지 한 사실이 있습니다. 그러나 삼론에 대한 연구는 이 스님의 견해가 참으로 깊어서 비록 삼론종이 천태종이나 화엄종에 비하여 그다지 큰 비중을 차지하지는 않지만, 불교학을 논하는 데 있어서는 삼론종을 빼놓을 수가 없습니다. 따라서 삼론종에서 말하는 근본원리가 어떤지 대략적인 설명만 하겠습니다. 

삼론종의 학설은 다른 종파와 마찬가지로 교판(敎判)과 교리(敎理)로 구분하여 살필 수 있습니다. 삼론종의 교판으로는 이장삼륜(二藏三輪)의 교판설이 있는데, 이장(二藏)이란 전 불교의 가르침을 성문장(聲聞藏)과 보살장(菩薩藏)으로 구분한 것입니다.
길장스님이 만년에 설한 삼륜(三輪)은 세 종류의 법륜(法輪)으로, 그 중에서 근본법륜(根本法輪)은 화엄경을, 지말법륜(枝末法輪)은 화엄에서 법화에 이르기까지 일체의 대·소승경을, 섭말귀본법륜(攝末歸法輪)은 법화경을 각각 말합니다. 그리고 삼론종에서 받드는 삼론과 반야경이 삼륜 중지말법륜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삼론종의 교리는 기본적으로 파사현정(破邪顯正)을 지향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파사(破邪)란 외도와 소승 등 범부의 망정(妄情)을 깨뜨려 언어가 미치지 못하고 생각이 이르지 못하는 도(無名道)를 체달함이며, 현정(顯正)이란 무애한 바른 관찰인 중도실상을 득오(得悟)함입니다.

이는 바로 망정을 깨뜨려 무소득의 진공을 얻는 것이니 파사 외에 다로 현정이 있다고 인정하지 않고 파사가 그대로 현정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파사현정의 기치 아래 삼론종에서 적극 주장하는 교리로는 이제론(二諦論)과 팔불중도(八不中道)가 거론됩니다.

이제는 법상종 등에서 설하는 이경(理境) 이제가 아니라 언교(言敎) 이제입니다. 이경이제(理境二諦)는 법상종만이 아니라 성실종(成實宗)등에서도 주장한 것인데 세속제와 제일의제(第一議諦)의 이제를 진리의 형식으로 봅니다. 즉 세간의 도리를 설하는 세속제는 중생에게 진실이고, 출세간의 도리를 설하는 제일의제는 성현에게 진실이므로, 범부와 성인에 따라 진리 자체에 두 가지가 있음을 설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삼론종의 언교이제(言敎二諦)는 그와는 달리 이제를 교화의 수단으로 봅니다. 즉 진리와 도리로서의 이제가 아니고, 범부와 성인을 교화하기 위한 설법의 형식 또는 수단으로 이제를 설합니다. 이러한 이제론에 바탕하여 보다 발전적인 구조를 지닌 것이 삼중이제(三重二諦)와 사중이제(四重二諦)입니다. 그 근본 뜻은 당시에 성행하던 비담종(毘曇宗)과 성실종(成實宗), 섭론종(攝論宗)등의 이제설을 차례로 물리치고 언어를 잊고 생각을 끊은 진실한 경계를 주장하고자 한 것입니다. 

삼종론에서는 이 밖에 「중론」의 처음에 나오는 불생불멸(不生不滅)·부단(不斷不常)·불일불이(不一不異)·불래불거(不來不去)의 팔불(八不)역시 중도를 밝힌 것이라 하여 팔불중도(八不中道)라 말합니다.
이것은 중생들이 제법에 대하여 미혹된 견해를 일으키는 생멸(生滅)·단상(斷常)·일이(一異)·거래(去來)의 여덟 가지 미혹을 하나하나 부정하여 중생들의 미혹을 씻어 없애므로 이 팔불에 의해 중도를 나타내는 것입니다. 이 팔불에 기초하여 중도의 지극함을 논하는 이론으로 세 가지 중도설이 있습니다.

그것은 세제와 진제 그리고 제삼제인 이제합명(二諦合明)을 건립하여, 각각 세제중도(世諦中道), 진제중도(眞諦中道), 그리고 이제합명중도(二諦合明中道)의 세 가지를 말합니다. 이 세 가지 중도설의 기본형을 제시하면 세제중도는 불생불멸(不生不滅)을 말하고, 진제중도는 비불생부불멸(非不生非不滅)을 말하며, 이제합명중도는 비생멸비불생멸(非生滅非不生滅)을 말합니다. 중도를 이와같이 세 종류로 구성하게 된 것은 불이중도(不二中道)를 주장하고자 한 것이라 볼 수 있습니다.

이상의 교리들을 정리하면 이제에 기초하여 삼중·사중으로 전개된 이제설(二諦說)은 파사의 역할을 담당하고, 팔불에 의해 변론된 세 가지 중도설〔三重中道說〕은 현정의 활약을 한 것이라 규정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여러 가지 삼론교학의 성립은 고구려 승랑대사의 학설에 연원한 바가 적지 않은 것입니다. 임종시에는 '태어나서 죽으나 본래 태어남도 없고 죽음도 없다'는 뜻을 말한 사불포론(死不怖論)을 남기고 75세로 결가부좌하여 천화하였습니다.

이처럼 대사의 초연한 경지에서 열반을 맞이하는 모습이 드러나므로 그가 단지 문자에 집착한 교학승(敎學僧)만은 아니었다고 보는 견해도 있습니다. 그 후 현장(玄裝)스님이 전한 법상종(法相宗)이 홍기하면서 삼론종은 쇠퇴하였지만, 길장스님의 삼론교학은 고구려와 일본에 전파되었습니다.

 

 

 

출처 : 고전 취미 붙이기
글쓴이 : 無爲修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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