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 공부방(1)

겁(劫)

소리없는 아우성 2012. 12. 4. 12:10

겁(劫)
겁설(劫說)은 ‘손가락’일 뿐

S: kalpa P: kappa T: bskal pa E: kalpa Cs: 劫波, 劫跛, 劫簸, 羯臘波, 劫﨟波


관념적 극대 시간


겁(劫)의 산스끄리뜨 원어는 깔빠(kalpa)로, 분별시분(分別時分)·분별시절(分別時節)·장시(長時)·대시(大時) 등의 의역어가 있다. 하지만 이것의 표기에서 대표어는 ‘겁(劫)’이다. 겁은 온전한 표기가 아니다. 깔빠에 해당하는 한자 음사어 ‘劫波’ ‘羯臘波’ 등으로부터 편리성에 의해 한 글자로 줄여 사용된 말이다. 마치 보리살타(菩提薩埵; bodhisattva)를 줄여 보살(菩薩)이라 하는 것과 같다.
고대인도 브라흐만교에서 익히 사용해오던 시간 단위인 겁(劫)은 불교에 차용돼 계산할 수 없는 무한히 긴 시간을 대표하는 술어가 됐다. 세계가 성립·존속·파괴·공무(空無)가 되는 하나하나의 시기를 말하며, 측정할 수 없는 시간, 즉 몇 억만 년이나 되는 극대한 시간의 한계를 가리킨다.
윌리엄 모니엘 사전에 따르면 깔빠에는 ‘적당한’, ‘신성한 가르침’, ‘제1의무’, ‘어느 한 쪽’, ‘치료’, ‘닮은’, ‘천국의 나무’ 등 수십 가지의 의미가 있다. 하지만 시간 상의 의미가 여타의 의미들을 희석시켜버렸다. 그 사전에서는 ‘엄청난 기간의 시간(a fabulous period of time)’으로 정의한다. 덧붙여 ①브라흐만의 하루 ②1,000유가(yugas) ③인간의 43억 2천만년, ④측량용의 세계의 존속기간이라고 설명한다.
이러한 여러 의미에서 불교는 시간적 관점에서만 깔빠의 의미를 취한다. 예컨대 《대지도론》38권(T25-339b24)에서는 “시간 가운데 최소는 60찰나 가운데 1찰나[念]이고, 최대는 겁(劫)이라 한다”고 정의한다. 또 《석가씨보》(T50-84c8)에서는 “서역의 산스끄리뜨로는 깔빠[劫波]라 하고, 이곳에서는 큰 시간[大時]로 의역한다. 이 1대시의 그 햇수는 셀 수 없다”고 한다. 이러한 측면에서 보더라도 불교 우주론에서 있어서 깔빠는 시간 단위 상에 자리하고, 또 가장 긴 시간으로 규정되었음을 알 수 있다.
《대비바사론》135권(T27-700c5)에서는 “시간을 분별하기 때문에 겁이라 한다. 찰나와 납박과 모호율다의 시간을 분별해 낮과 밤을 이루고, 낮과 밤의 시간을 분별해 반달, 달, 해를 이루며, 반달 등의 시간을 분별해 겁을 이룬다. 겁은 바로 시간을 분별하는 가운데 극치이기 때문에 통칭을 붙인다”고 한다. 곧 겁이 본래 어떤 한 시기의 의미이긴 하지만 보통 그것의 극대 시간을 취해서 겁이라고 이름한 것임을 알 수 있다.

산술적 측량은 불가, 불필요, 무의미

겁의 시간적 길이를 현대 시간개념으로 환산하면 얼마나 될까? 일반적으로 1소겁을 16,800,000년, 1겁을 336,000,000년, 1대겁을 1,334,000,000년으로 설명하기도 한다. 하지만 겁의 길이를 산술적 분석 방법을 통해 접근하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다.
《잡아함》34권(T2-242b22)에서는 겁의 길이를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비유컨대, 사방이 1유순(由旬, 약15km)이고 높이도 그러한 쇠로된 성(城)에 겨자씨를 가득 채워놓고, 어떤 사람이 백년에 한 알씩 집어내 그 겨자씨가 남김 없더라도 겁(劫)은 끝나지 않는다”고 한다. 같은 곳에서 “사방이 1유순인 깨지지도 무너지지도 않는 큰 돌산을 어떤 사람이 가시국(Kāśi, 迦尸)에서 생산되는 무명으로 백 년에 한 번씩 스치고 스침이 끊이지 않았을 때 그 돌산이 마침내 다 닳는다 해도 겁은 끝나지 않는다”고 한다. 전자를 개자겁(芥子劫)이라 하고, 후자를 반석겁(磐石劫)이라 한다.
또 삼천대천세계를 먹으로 삼아 그 먹이 다 닳도록 갈아서 만든 먹물로 일천국토를 지날 때마다 한 방울씩 떨어뜨린다고 하고, 그 먹물이 다 없어질 때까지 지나온 모든 세계를 부수어 만든 수없는 먼지 하나하나를 1겁으로 하고, 그 모든 겁을 3천진묵겁이라 한다. 또 5백천만억 나유타아승지의 삼천대천세계를 부수어 먼지를 만들어 5백천만억 나유타아승지의 세계를 지날 때마다 그 먼지를 하나씩 떨어뜨려 그 먼지가 다 없어질 때까지 지나온 모든 세계를 다시 먼지로 부수어서 그 중 한 먼지를 1겁으로 하고, 그 모든 먼지수의 겁을 5백진묵겁, 또는 5백억진묵겁이라 한다. 이것을 진묵겁(塵墨劫)이라 한다.
이러한 정의들을 산술적 분석방법으로 측량하기에는 사실 불가능하고 불필요하며 무의미하다. 이것들이 드러내고자한 것은 찰나에 상대해 시간의 극대와 극소, 인간이 상상하는 시간의 상대적 장단일 뿐이며, 그 핵심은 불교의 궁극점인 괴로움[苦]의 해결에 연관돼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1찰나가 1겁이 될 수 있고 1겁이 1찰나가 될 수 있는 것이다.

겁설의 진의는 열반을 증득케 하는 것

총체적으로 볼 때 겁의 시간적 양은 멀고 길어서 그것을 계산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겨자씨나 큰 바위나 먼지 등을 통한 산술적 표현은 모두 수치적 환산이 아니라 멀고 무한하다는 관념적 환산이다.
그렇다면 실생활과 거리가 먼 이러한 개념들을 왜 사용한 것일까? 《잡아함》34권에서는 겁의 설명에 이어 바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비구여, 겁은 이와 같이 길다. 이와 같이 긴 백천만억 겁 동안 큰 괴로움이 계속 이어져 뼈가 언덕을 이루고 피고름이 흘러가는 냇물을 이루는 지옥·축생·아귀의 악취(惡趣)가 있다. 비구여, 이것을 ‘시작이 없는 생사에 오랫동안 윤회하면서 괴로움의 본질을 알지 못한다’고 한다. 비구여, 그러므로 이와 같이 배워서 모든 존재[有]를 없애고 더 이상 확대시키지 말아야 한다”고 한다.
여기서 유추할 수 있는 의미는, 겁은 유정(有情)의 시작이 없는 윤회(輪廻)를 말하며, 무명(無明)이 지속되는 기간을 말한다는 것이다. 괴로움의 본질을 직시해 무명이 없는, 윤회가 없는 열반을 증득케 하는 데 방편의 길목에 겁이 있음을 말한다. 1겁이 몇 년인가를 헤아리고자 골몰하는 것은 손가락에 모든 신경을 쏟은 것일 뿐, 달은 안중에도 없는 짓임을 알아야 할 것이다.

김영석/불교저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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