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자의 기본 예절--일타스님저(요약)

7. 법문 듣는 법

소리없는 아우성 2012. 12. 3. 09:25

 

1. 법문 듣는 자세

'법 (法)' 자 '문 (門)' 자 뜻 그대로 진리의 세계로 들어 가는 문이 법문인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법사의 설법을 통하여 법의 문을 열 수 잇는 열쇠를 얻어 그 열쇠로써
법의 문을 열고깨달음과 행복이 가득한 부처님의 세계로 들어서면 되는 것이다.


법사를 존중하라

법을 주관하는 스님을 법주(法主) 또는 법사(法師)라고 한다.그런데 법사의 겉모습이
보잘 것 없다거나설법의 내용이 서투르고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하여 '시원찮다'
'못났다'는등의 생각을 일으키거나가벼이 여겨서는 안된다.

겉으로 나타난 모습만 보고 법사를 판단하다 보면 참된 배움의 길로 들어서지 못할 뿐
아니라 도와는 점점 멀어지게 된다.

"어떤 사람이 길을 가다가 횃불을 들고 가는 죄인을 만났는 데,
그 사람이 밉다고 하여 불빛까지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구렁텅이에 빠지고 말리라."

실로 법문은 등불과 같은 것이다. 그러므로 모름지기 법문을 들을 때는 법을
존중하고 법사를 존경하는마음 부터 가져야 하는 것이다.


중도의 자세로 임하라.

설법을 들을 때는 어떠한 자세로 임해야 하는가?
그 무엇 보다도 먼저 법문을 듣고 " 나는 절대 못한다"는 퇴굴심(退屈心)과 귀에
익은 이야기라 하여"그까짓 것 쯤이야"하는 용이심(容易心)을버려야 한다.

곧 중도의 자세로 법문에 임하여 마음가짐을 거문고 줄 고르듯 하여야 한다


마음을 비우고 들어라

법문을 참으로 나의 것으로 만들기 위하여는 법문을 들을 때 모름지기모든
생각을비우고 들어야 한다.

속효심도 내지 말고 나태심도 내지 말고
슬금슬금 가다 보면해 돋을 때 아니 올까

깨달음은 조급함이나 게으름과 함께 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무엇과 함께 하는가?
텅빈 마음과 함께 한다. 마음이 완전히 비어있을 때 법문은 온전히 나의 것이 된다.
실로 법문을 들음에 있어서는 나에게 맞는 다는 생각이나 맞지 않는다는 생각,
법문을 잘한다는 생각, 못한다느 셍각까지도 비워야 한다.
모든 것이 번뇌 망상이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번뇌 망상들을 완전히 비울 때 곧 감로(甘露)의 법문이 고스란히 담기게
되는 것이다.진정항 법문은 말로 설명하고 귀로 듣는 것이 아니라빈 마음으로
설하고 빈 마음으로 듣는 것이다.


말만 듣는자가 되지 말라

우리 불자들은 결코 법문을 귀로만 듣는 자가 되어서도 입으로만 되새기는 자가
되어서도 안된다.이것은 지식에 불과할 뿐 결코 지혜가 될 수 없다.
법문은 진리의 세계로 들어가기 위해 배우는 것이다. 그러므로 법문을 듣는 이는
귀로 듣지않고마음으로 들어야 하며 '알 지(知)'가 아니라 '지혜 지(智)를
이루어야 한다.

독사가 물을 마시면 독을 만들고
소가 물을 마시면 젖을 만든다.
지혜롭게 배우면 보리를 이루고
어리석게 배우면 생사를 이룬다.

모름지기 마음을 비우고 법문을 들어 보라. 머지않은 날, 틀림없이 깨달음이 찾아들
것이요,법의 문을 열 수 있는 열쇠를 손에 쥘 것이다.



2. 법문을 나의 것으로

참 법문을 잘 분별 하라

첫째 : 법을 의지하되 사람을 의지하지 말라 (依法 不依人)
법을 중요시 할 뿐 사람의 모야새를 보고 옳고 그름을 판단하지 말라는 말씀이다.

둘째 : 지혜를 의지하되 분별의식을 의지하지 말라 (依智 不依識)
지혜는 진리의 세계이고 내가 인식하고 있는 알음알이를 표준으로 삼아 따지기를

즐기는 것이 중생이다.
중생의 세계는 식의 놀음이요 성인의 세계는 지혜의 놀음이니,
지혜를 의지할 뿐 식을 의지해서는 안된다는 가르침이다.

셋쌔 : 뜻을 의지하되 말을 의지하지 말라.(依意 不依話)
같은 말이라도 때에 따라서 다르게 쓰일 수가 있다.
하는 짓이 너무나 귀여워 "고놈 참 얄밉네."라고 했을 때 그 말은 정말
미워서 한 말이 아닌 데도 말만 듣고 화를 낸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바로이런 경우에 처했을 때 뜻에 의지할 뿐 말에 의지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넸째 : 요의 법문을 의지하되 불요의 법문을 의지하지 말라(依了意 不依不了意)
같은 말이라도 완전히 그 뜻을 요달하여 진리의 세계를 완벽하게 말한 것을
요의 법문이라 하고완벽하게 밝힌 것이 아닌 한 과정만을 이야기한 것을
불요의 법문이라 한다.
"살생하지 말라"는 계의 경우 자기가 직접 살생하지 않았다고 생각하여
고기를 먹는 것을 불요의,고기를 먹으면 살생의 간접적 동기를 마련해 주는
것이라 하여 고기를 먹지 않는 것을 요의라 한다.


명상의 시간을 가져라.

법문은 언어와 문자를 매개체로 하되 언어와 문자를 떠난 것이다.
반드시 법문이 끝나면 묵묵히 앉아 관하여야 한다.<묵좌관지(默座觀之)>
모름지기 법의 문 안으로 들어서고자하는 불자라면 네가지를 갖추어야 한다.

첫째는 친근현선(親近賢善), 법을 잘 아는 선지식 곧 스승을 만나야 한다.
둘째는 친문정법(親聞正法), 부처님의 정법을 잘 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셋째는 사유기의(思惟其意), 들은 법문의 뜻을 잘 생각하여 자기의 것으로
만들라는 것으로묵좌관지가 곧 이것이다.
넷째는 여설수행(如說修行), 일단 자기의 것으로 만든 법문의 내용대로 잘
실천하라는 것이다.

이렇게 진리의 법문을 '나'의 것으로 만들면서 꾸준히 공부하다 보면 일월(日月)과
같은 지혜가 생겨나게 되고, 지혜가 생기면 자성법문(自性法門), 자성불도(自性佛道)를
이룰 수 있게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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