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교경>은 부처님이 입멸에 즈음하여 제자들에게 마지막으로 설법하는 장면을 설하고 있는 경전이다. 산스크리트 원전과 티벳본은 전하지 않고 한역본만이 유일하게 남아 있는 경으로 5세기 초 구마라집(鳩摩羅什)이 번역했다. 부처님은 녹야원에서 최초의 설법으로 교진여 등 다섯 비구를 교화하고, 최후의 설법에서 수발타라를 제도함으로써 중생제도의 사명을 마치게 되니, 부처님께서는 이제 곧 쿠시나가라의 사라쌍수 아래에서 입멸할 것임을 예고한다. 그런 다음 제자들에게 자신의 입멸 후에는 계율을 잘 지키고 모든 욕망을 삼가하며, 마음을 한곳에 머물게 하여 흩어지지 않도록 집중해서 깨달음의 지혜를 얻으라고 설한다. 그리고 법신(法身)은 언제 어느 곳에서나 항상 머물러 있지만, 세간은 끊임없이 변해가니 부처님의 입멸을 슬퍼하지 말고 노력에 노력을 경주하여 하루빨리 해탈을 얻음은 물론 지혜의 광명으로써 무명의 암흑을 벗어나야 할 것이라고 가르치고 있다. 이것이 부처님의 최후의 가르침으로서, 부처님의 만년의 일을 설한 아함의 <열반경>이나 마명이 지은 <불소행찬> 등과 문체가 비슷하다. 특히 <불소행찬>의 제26품 <대반열반품>과는 문체는 다르나, 내용상 일치하는 점이 많아 이러한 경전들과 <유교경>은 밀접한 관계가 있음을 알 수가 있다. 이 경은 달리 <불유교경> <불수반열반약설교계경> <불임반열반약설교계경> <불임반열반경>이라고도 한다. 부처님의 임종이라는 극적인 무대를 배경으로 불교의 근본적인 가르침을 매우 간결하게 설하고 있어, 중국.우리나라.일본 등지에서 널리 유포되었으며 주석서나 강론의 종류도 매우 많은 편이다. 그래서 <유교경>은 일상의 수행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42가지 덕목담이요 최초의 한역경전인 <사십이장경>과 당나라 때의 선사인 위산영우(僞山靈祐)가 지은 <위산경책>과 더불어 선가에서 불조삼경 (佛祖三經)의 하나로서 중시해 오고 있는 경전이다.
< 경 내용 >
이 유교경(遺敎經)은 부처님께서 입멸에 즈음하여 제자들에게 남긴 최후의 유계(遺戒)를 내용으로 한 경전으로써 제자들에게 마지막으로 설법하는 정경을 그리고 있다. 이를테면 부처님께서는 녹야원에서 최초의 설법으로는 수발타라(須跋陀羅)를 구제하여 중생제도의 모든 사명을 마치면서 사라쌍수 아래에서 곧 열반에 들 것임을 미리 알린 것이다. 그때에 부처님은 여러 제자들에게 입멸 후에는 바라제목차(戒經)를 스승으로 삼고 계를 지키며, 신심을 잘 다스려 다섯 가지의 욕망을 삼가고, 정적을 얻도록 노력하며, 선정을 닦아 깨달음의 지혜를 얻을 것을 부촉하신 것이다.
이 경전에 중국에서 한역된 것은 5세기 초에 구마라집에 의해서이며, 단권으로 구성되어 있다. 경명으로는 불수반열반약설교계경(佛垂般涅槃略說敎誡經)이라고 하거나 불임반열반약설교계경(佛臨般涅槃略設敎戒經) 또는 불임반열반경(佛臨般涅槃經)이라고도 한다. 산스키르스트본이나 티벳트본 등은 없고 오직 이 한역본만이 유일하게 전해지고 있는데, 역시 부처님의 만년(晩年)의 사적을 내용으로 한 아함부의 열반경 혹은 마명(馬鳴)의 불소행찬(佛所行讚) 등과 문체상의 유사점이 많아서 서로 밀접한 관계가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특히 불소행찬의 제26품인 대반열반품(大般涅槃품)과는 운문과 산문의 다름이 있지만 내용상에 있어서는 일치는 부분이 많은 것이 특색이다.
이 경전은 또한 일찍이 선가에서 그 교훈적인 내용 때문에 사십이장경(四十二章經) 및 위산경책(僞山磬策) 등과 함께 불조삼경(佛祖三經) 중의 하나로 애독되어 전해 지는데, 이에 관한 주석서로는 불수반열반약설교계경보주(佛垂般涅槃略說敎誡經寶註) 1권(守千註, 了童 補)을 위시하여 당 태조의 어주(御註) 1권, 지원(智園)의 소(疏) 2권과 과(科) 1권, 정원(淨源)의 논소절요(論疏節要) 1권, 광선초(廣宣 ) 1권 및 절요과(節要科) 1권 등이 일반일들에게 알려지고 있다.
이 한역경전은 어휘의 구사나 문체에 있어서 매우 유려하며, 또한 부처님의 임종이라는 극적인 무대를 배경으로 하여 불교의 근본문제인 계율의 지킴과 욕망의 단절, 음식의 섭취, 수면문제, 성내는 것, 교만하지 말 것 등 열 대여섯 가지의 항목에 걸친 내용들을 집중적으로 열거하여 교설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점 때문에 윤리성을 강조하는 불교계에서 수행을 전문으로 하는 사람들이 이 경전을 정독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하겠다.
그리하여 그 교설내용의 대강을 간추려 보면, 첫째 계율문제에 있어서는 계경(戒經)을 스승으로 삼도록 부촉하신 말씀과 같이 자신의 수행이나 승단을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계율을 잘 지키는 것이 필수적이며, 이를 가치로 보면 마치 길을 잃은 사람이 어두운데서 불빛을 만난 듯 하고 가난한 이가 보배를 얻은 듯 할 정도로 값진 것으로서 스승이 없을 때는 계율이 스승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계율을 지킬 때는 단순히 지악(止惡)의 입장에서 이를 단속만 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걸림이 없는 마음에서 우러난 지킴, 즉 지선(至善)ㆍ작선(作善)ㆍ봉선(奉善)의 입장에서 이를 실천하면 계율이 곧 생활이어서 갈등이나 어떤한 고초도 따르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입장은 부처님께서 이 세상에 살아 계실 때나 돌아가시고 안 계실 때에도 사정은 마찬가지라고 하시면서 간곡히 서두에서 말씀하시고 계시는 것이다.
다음으로는 욕망의 조절문제를 설하시고 계시는데, 이미 계율을 받은 사람을 마땅히 오근(五根)을 잘 다스려서 분별심을 내지 않게 해야 한다고 설하시고, 마음을 방종하여 다섯 가지 욕심에 물들게 하지 말라고 당부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이를 단속하기 위해서는 마치 소를 먹이는 사람이 회초리를 들고 소에게 보여 남의 곡식 밭을 침범하지 못하게 하는 것과 같이 해야 하나니, 만약에 우리의 다섯 가지 감각기관이 하는 대로 걷잡을 수 없이 활활 타올라서 자신은 물론 승가 전체를 병들게 한다는 것이다.
음식의 문제에 있어서도 단순히 이를 몸을 지탱하기 위해서 먹는 정도로만 생각해야지, 여기에 분별심을 내어서 음식 자체를 좋은 것이라고 한다든지 아니면 맛이 없는 좋지 않는 것 등으로 헤아린다면 이는 음식은 먹는 것이 아니고 욕심을 먹는 것이 되기 때문에 수행인으로서는 여러 가지로 수행에 방해가 된다는 것이다. 이렇게 먹는 문제에 관하여 부처님 당시나 그의 입멸 직후에 진보주의자와 보수주의자 사이에서 격론의 대상이 된 것은, 그만큼 그때 당시에 식량문제가 어려웠다는 사실성도 시사해 주지만 나태하고 분별심을 잘 내는 수행자에게는 이로 말미암아서 여러 가지의 장애를 불러 일으키기 때문일 것이다. 아무튼 음식 그 자체를 약과 같이 자기 몸에 좋은 것으로 생각하고, 자기를 지탱해 주는 유일한 외부의 물질로 인식해서 거친 것인지 좋은 것인지 분간하지 말고 이왕이면 고맙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이를 섭취하라는 것이다.
잠을 자는 것도 하나의 습성이므로 자나치게 적게 자는 것도 몸을 유지하기에는 어렵지만 그렇다고 너무나 많이 자는 것도 나태함을 기르기 때문에 정진할 수 있을 정도의 최소한의 수면은 유지하라는 것이다. 그리고 수도하는 사람들은 하루 중에서 어느 때 보다도 초저녁과 새벽녘에 자기 전공분야의 경전 등을 열심히 읽어 그 의미를 파악하는 것이 진취적이라는 것과 함께 무상법을 터득하기 위해서는 잠을 잘 조절해서 이를 아껴 해탈의 길로 빨리 가라고 당부하고 계시는 것이다.
이어서 백 가지의 장애물인 성내는 문제와 교만하지 않고 겸손하는 문제, 아첨하지 않고 마음 곧게 먹는 문제 등 십여 가지가 더 교설되고 있지만 여기서는 생략한다.
결론적으로 이 유교경은 부처님께서 자신의 입멸을 제자들이 슬퍼하지 말고 계율 등을 잘 지켜서 지혜를 얻어 무명의 어둠을 떨쳐버리고 해탈하라는 최후의 스승다운 부촉의 말씀들이 절절히 엮어져 있는 것이다. 따라서 오늘날 한번쯤 읽는다면 아마도 그전 보다는 새로운 안목의 지혜가 홀연히 자기도 모르게 마음 속에 자리잡고 있는 것을 인식할 수 있을 것으로 짐작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