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이 막혀 길이 막혀 당신의 얼굴은 달도 아니건만 산 넘고 물 건너 나의 마음을 비춥니다. 나의 손길은 왜 그리 짧아서 눈앞에 보이는 당신의 가슴을 못만지나요. 당신이 오기로 못 올 것이 무엇이며 내가 가기로 못 갈 것이 없지마는 산에는 사다리가 없고, 물에는 배가 없어요. 뉘라서 사다리를 .. 님의 침묵 2011.09.08
선사의 설법(說法) 선사의 설법(說法) 나는 선사의 설법을 들었습니다. "너는 사랑의 쇠사슬에 묶여서 고통을 받지 말고 사랑의 줄을 끊어라. 그러면 너의 마음이 즐거우리라."고 선사는 큰 소리로 말하였습니다. 그 선사는 어지간히 어리석습니다. 사랑의 줄에 묶이는 것이 아프기는 아프지만, 사랑의 줄을 .. 님의 침묵 2011.05.15
복 종(服從) 복 종(服從) 남들은 자유를 사랑한다지마는 나는 복종을 좋아하여요. 자유를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당신에게는 복종만 하고 싶어요. 복종하고 싶은데 복종하는 것은 아름다운 자유보다도 달콤합니다. 그것이 나의 행복입니다. 그러나 당신이 나더러 다른 사람을 복종하라면 그것만은 복.. 님의 침묵 2011.04.13
잠 없는 꿈 잠 없는 꿈 나는 어느 날 밤에 잠 없는 꿈을 꾸었습니다. "나의 님은 어디 있어요 나는 님을 보러 가겠습니다. 님에게 가는 길을 가져다가 나에게 주셔요, 꿈이여." "너의 가려는 길은 너의 님이 오려는 길이다. 그 길을 가져다 너에게 주면 너의 님은 올 수가 없다." "내가 가기만 하면, 님은.. 님의 침묵 2011.04.11
나의 길 나의 길 이 세상에는 길도 많기도 합니다. 산에는 돌길이 있습니다. 바다에는 뱃길이 있습니다. 공중에는 달과 별의 길이 있습니다. 강가에서 낚시질하는 사람은 모래 위에 발자취를 냅니다, 들에서 나물 캐는 여자는 방초를 밟습니다. 악한 사람은 죄의 길을 쫓아갑니다. 의(義)있는 사람.. 님의 침묵 2011.02.28
? ? 희미한 졸음이 활발한 님의 발자취 소리에 놀라 깨어 무거운 눈썹을 이기지 못하면서 창을 열고 내다보았습니다. 동풍에 몰리는 소낙비는 산모롱이를 지나가고 뜰앞의 파초잎 위에 빗소리의 남은 음파가 그네를 뜁니다. 감정과 이지가 마주치는 찰나에 인면(人面)의 악마와 수심(獸心).. 님의 침묵 2011.01.18
산골 물 산골 물 산골 물아 어디서 나서 어디로 가는가. 무슨 일로 그리 쉬지 않고 가는가. 가면, 다시 오려는가 아니 오려는가. 물은 아무 말도 없이 수없이 얼크러진 '등 · 댕댕이 · 칡덩쿨' 속으로 작은 담은 넘어가고, 큰 담은 돌아가면서 쫄쫄 꼴꼴 쏴 소리가 양안(兩眼) 청산(淸山)에 반향(反.. 님의 침묵 2010.12.22
나룻배와 행인 나룻배와 행인 나는 나룻배 당신은 행인 당신은 흙발로 나를 짓밟습니다. 나는 당신을 안고 물을 건너 갑니다. 나는 당신을 안으면 깊으나 앝으나 급한 여울이나 건너갑니다. 만일 당신이 아니 오시면 나는 비바람을 쐬고 눈비를 맞으며 밤에서 낮까지 당신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당신은 .. 님의 침묵 2010.12.06
산 거 (山居) 산 거 (山居) 티끌 세상을 떠나면, '모든 것을 잊는다' 하기에 산을 깍아 집을 짓고 돌을 뚫어 새암을 팠다. 구름은 손인 양하여 스스로 왔다 스스로 가고 달은 파수꾼도 아니언만 밤을 새워 문을 지킨다. 새소리를 노래라 하고 솔바람을 거문고라 하는 것은 옛사람의 두고 쓰는 말이다. 님 .. 님의 침묵 2010.12.04
꽃이 먼저 알어 꽃이 먼저 알어 옛집을 떠나서 다른 시골에 봄을 만났습니다. 꿈은 이따금 봄바람을 따라서 아득한 옛터에 이릅니다. 지팡이는 푸르고 푸른 풀빛에 묻혀서 그림자와 서로 따릅니다. 길가에서 이름도 모르는 꽃을 보고서 행여 근심을 잊을까 하고 앉았습니다. 꽃송이에는 아침 이슬이 아.. 님의 침묵 2010.11.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