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본 불교 이야기

6-1 설법의 기본태도

소리없는 아우성 2012. 12. 10. 06:18

6-1 설법의 기본태도


부처님은 깨달음을 성취하신 뒤 세상을 떠날 때까지 끊임없는 여행과 설법으로 일관된 삶을 살았다. 부처님이 성도하던 때의 나이가 35세, 열반에 들었을 때의 나이가 80세이니까 무려45년의 세월을 그렇게 보낸 셈이 된다. 그것은 젊은 예수가 신의 계시를 받고 겨우3년 동안 사람들을 위해 가르쳤던 것과 비교할 때 매우 긴 세월이었다. 예수가 홀연히 나타나서 홀연히 떠나갔다면 부처님 그분은 오랜 세월동안 쉬지 않고 광막한 인도의 곳곳을 누비며 지혜의 가르침을 폈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부처님의 가르침은 거의 반세기에 이르는 동안의 것임에도 불구하고 그 사이에 거의 이렇다 할 변화가 없다는 사실이다. 널리 알려진 일이지만 부처님은 가는 곳마다, 만나는 사람마다 대상의 근기에 따라서 여러 가지로 설법을 폈다. 이를 소위 ‘대기설법’이라 한다. 이 설법에는 실로 많은 비유가 동원되고 있다. 알아듣기 쉬운 비유의 설법이야말로 부처님의 설법에 한 특징을 이룬다.

부처님의 설법 가운데 몇 가지는 아예 비유를 중심으로 해서 이루어진 것도 있다. 이미 앞에서 예로 든 바 있듯이 독화살에 비유한 을 비롯해 헝겊을 비유한≪전유경(箭喩經)≫을 비롯해 헝겊을 비유한 ≪포유경(布喩經)≫, 밧자를 위해 불의 비유로 설법한 ≪바차향다화유경(婆蹉鄕多火喩經)≫등은 비유 설법의 대표적 경들이다. 그러나 이러한 비유들은 아무리 여러 가지라 하더라도 그 바탕은 언제나 정연한 것이었으며 혼란스럽지 않았다. 따라서 우리들은 어떠한 경전을 읽더라도 그것이 언제쯤의 설법 인지를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이는 예수의 설교가 짧은 기간임에도 그 전반과 후반이 현격한 변화를 보여주는 것과는 매우 다르다.

물론 부천님의 설법도 쉽게 그 시기를 짐작할 수 있는 경우도 있다. 예를 들어 어떤 경전은 젊은 시절의 부처님을 연상할 수 있는 것이 있다. 그 중 하나가 성도를 한 부처님이 설법을 주저하는 모습을 묘사한 한 경*(남전 상응부경전12 獅子 한역 잡아함경 (39·21) 獅子)이다. 이 경은 부처님이 설법자로 나서기 전의 두려움이랄까 주저함이 악마의 속삭임이라는 형식으로 표현되고 있다. 이는 연대기 적으로 보면 분명히 젊은 정각자의 모습이 분명하다. 장년의 모습을 추측할 수 있는 것도 있다. 한 경*(남전 상응부경전(4·20) 統治. 한역 잡아함경 (39·19) 作王)은 부처님이 잠시 권세와 재물에 대한 생각을 하고 있었음을 암시하고 있다. 내용은 이렇다.


어느 날 부처님은 이상의 정치형태에 대해 생각했던 모양이다. 살생없는 통치, 누구에게나 억울함을 주지 않는 통치, 그러한 정치는 있을 수 없는 것일까, 이렇게 생각하는 부처님에게 악마가 나타나 ‘당신이 스스로 통치에 나서보라’고 속삭였다.

“부처님은 지금 무엇이든지 뜻대로 이룰 수 있습니다. 만일 결심만 한다면 설산을 변하게 해 황금이 되게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부처님은 다음과 같은 시로 악마의 유혹에 대답했다.


저 설산을 변하게 하여 황금이 되게 하고

다시 또 그 두 배가 되게 한다 하여도

능히 한 사람의 욕심을 채울 수는 없다.

이것을 안다면 사람들이여 바르게 행동하라


이것은 세속적 권력에 대한 욕망을 암시한다. 부처님의 이러한 생각은 아마도 장년 이후 정식적 가르침만으로 세상을 구원하는 데 한계를 느낀 나머지 한 번 떠올려 본 생각일 것으로 추측된다.

그런가 하면 또 어떤 경전에서는 이미 늙어서 쇠약해진 애처로운 모습도 볼 수 있다. 그리고 또 어떤 경전에서는 스승보다 먼저 세상을 떠난 사리풋타(舍利弗 )와 대화하는 장면도 있다. 이 경은 부처님이 아직 만년에는 이르지 않은 것도 추측할 수 있게 한다. 그러나 이렇게 경전의 배경을 통해 설법한 시기를 추정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그 내용에서 사상의 변화나 또는 태도의 변화를 찾아낼 수는 없다. 왜냐하면 부처님의 사상은 처음부터 끝까지 수미일관(首尾一貫) 움직이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아무리 변화가 없다고 하더라도 우리들은 부처님 만년의 설법에서 약간의 변화를 발견할 수 있다. 특히 입멸을 앞둔 마지막 수개월 동안의 여행과 죽음을 기록한 한 경*(남전 상응부경전 16 大般涅槃經. 한역 장아함 2 遊行經)에 나타나는 부처님의 설법에는 역시 다른 경전에서 볼 수 없는 무엇인가 다른 점이 있다. 물론 여기에도 부처님의 설법 바탕은 역시 불변적인 것이다. 그런 뜻에서는 새로운 변화란 조금도 없다. 그러나 이제 부처님은 이 지상에서의 삶을 끝내고 그 사랑하는 제자들과 영원히 작별하지 않으면 안 되는 때가 되었다. 이러한 것이 예상되었을 때 당연히 부처님의 관심의 초점이 된 것은 당신이 없는 교단의 장래였으리라고 생각된다. 이헌 관점에서 이루어진 부처님의 설법에는 역시 다른 경전에서는 보기 어려운 긴장의 빛이 나타나고 있다.

널리 알려진 일이지만 부처님은 듣는 사람의 근기에 알맞은 설법을 하기 위해 매우 직접적으로 표현해야 할 일도 우회적으로 말하거나 양보해서 말한 적이 많다. 예컨대 최초의 재가신자가 된 야사의 부모에 대한 설법은 출가자들에 했던 그것과는 차이가 있다. 이것은 차제설법(次弟說法 )이라 한다. 이 설법은 죽은 후 하늘나라에 태어나고 싶어하는 사람에게 그것을 부인하려고 하기보다는 널리 베풀고 선행을 닦음으로서 생천(生天)이 이루어진 것이라고 가르친다. 또 ≪육방예경(六方禮經)≫에서 보듯이 여섯 방향으로 예배하는 것을 습관으로 하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그 습관을 그대로 지키도록 했다. 다만 예배의 뜻을 바꾸어 놓음으로써 그가 부처님의 가르침을 쉽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다시 말해 냉철한 이성으로 파악한 진리를 직설적으로 말하기보다는 본래의 정연한 논리체계를 흩트리지 않는 범위에서 어느 정도 양보를 하면서 설득해 나가는 것이었다.

그러나 사정은 이제 좀 달라졌다. 부처님 당신이 열반에 든 후 지혜의 가르침을 어떻게 확대시켜 나가야 할 것인가에 대해 관심을 가져야 했다. 제자들의 입장에서 본다면 부처님이 생존해 있을 때는 직접 찾아보고 의문 나는 일이 있으면 물어보는 것으로 해결이 되지만 부처님이 안 계신 세상에서는 무엇인가 의지할 대상, 또는 표준이 필요하다는 요구이기도 했다. 부처님의 입장에서도 이것은 마찬가지였다. 제자들이 궁금해 하는 것이 있다면 직접 가르쳐 주어야 하는데 입멸후에는 그것이 가능하지 않다는 점에서 어떤 표준을 제시해 두어야했다. 이런 상황이≪유행경≫에 나타나는 과제이다.

부처님이 마지막 여행은 오랜 전도의 거점이었던 라자가하를 출발해 북쪽으로 향하여 비사리를 지나 쿠시나가라의 말라족의 땅인 사라나무 숲에 이르른다. 여기서 임종을 맞이함으로써 막을 내린다. 그 기간중에 비사리에 이르렀을 때 우기가 시작되어 그곳에서 안거에 들어갔다.

인도는 옛날이나 지금이나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 무서운 습도와 숨막히는 고온이 그것이다. 부처님이 비사리에서 여름안거를 보낼 때도 그랬다. 늙고 쇠약한 부처님은 이 마지막 안거를 보내면서 무서운 병에 걸렸다. 그 병은 너무나도 격렬한 고통을 수반한 것이어서 노쇠한 부처님으로서는 감당하기 힘든 것이었다. 그러나 부처님은 있는 힘을 다해 그 고통을 참으면서 겨우 생명을 유지하였다. 그때 부처님은 고통을 참으면서 이렇게 생각했다고 한*(남전 대반열반경 (2·23) 한역 유행경 2)은 기록하고 있다.


지금 내가 제자들에게 말하지 않고 최후의 말을 남기지 않고 죽는다면 그것은 내가 평생 해온 일에 상응하는 것이 아니다. 나는 어떻게 하든 노력해서 이 병을 참고 수명을 보존해야 한다.


어떤 비장함까지 엿보게 하는 이 기록에는 임종을 앞두고 마지막 광명의 불꽃으로 제자들에게 최후의 가르침을 베풀고자 하는 늙은 스승의 의지가 역력히 보인다. 그러면 과연 이때 부처님이 제자들에게 말하고자 한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자비와 지혜의 길’을 걸어가려면 사람이 궁극적으로 의지해야 할 곳(依支處)이 어디인가에 관한 것이며, 또 그 길을 함께 가려는 사람들의 모임인 교단의 존재형태에 관한 타협없는 원칙에 관한 것이었다. 그것은 또한 부처님이 평생동안 가르쳐 온 모든 불법을 압축적으로 규정하는 것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