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본 불교 이야기

3-7 부처님의 질문(2)

소리없는 아우성 2012. 12. 10. 06:03

3-7 부처님의 질문(2)

 

또 하나의 응용문제

이번에는 육처를 주제로 한 응용문제의 예를 들어보기로 한다. 한 경*(남전 상응부경전(35ㆍ105)執取. 한역 잡아함경(7ㆍ6) 三受)에 따르면 역시 기원정사에 계실 때 부처님은 제자들에게 이런 질문을 던진 적이 있었다.

비구들이여, 도대체 무엇이 있음으로써 무엇을 집착함으로써 즐거운 또는 괴로움이 생기는 것인가?


이번에도 제자들은 즉시 대답하지 못했다. 아마도 응용문제였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제자들은 ‘원하옵건대 그것에 대해 설명해 주옵소서’라고 간청했다. 제자들은 청을 받은 부처님은 그들을 위해 설명해 나갔다.


비구들이여, 눈(眼)이 있고 눈이 취함으로써 너희들 안에 즐거움이나 괴로움이 생기는 것이다. 또 귀와 코와 혀와 몸과 뜻이 있고 그것이 무엇을 취함으로써 너희들 안에 즐거움이나 괴로움이 생기는 것이다.


경전의 표현은 조금 지루할 정도로 자상하고 반복적이다. 한꺼번에 육근을 다 말하는 것이 아니라 눈ㆍ귀ㆍ코ㆍ혀를 차례대로 예를 들면서 똑같은 설명을 반복한다. 부처님이 제자들과 이런 질문과 답변을 반복하는 의도는 무엇인가. 부처님이 육처에 대해 자상한 질문을 거듭하는 의도는 이런 점을 인식시키기 위해서이다.


“비구들이여, 너희들은 어떻게 생각하느냐. 눈(眼)은 상주이겠는가 무상이겠는가.”

“부처님이시여, 물론 무상한 것입니다.”

“무상이라면 괴로움인가 즐거움인가.”

제자들의 대답은 물론 괴로움이라고 대답했다.

“그러면 만약 무상이고 괴로움이고 변화하는 것에 집착하지 않아도 괴로움이나 즐거움이 생기겠는가


제자들은 그렇지 않다고 대답했다. 이어서 부처님은 육체의 나머지 부분에 대해서도 낱낱이 같은 질문을 던지고 같은 대답을 얻어내고 있다. 그리고 또한 결론은 앞에서와 같이 해탈을 얻고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고 가르치고 있다.

부처임이 제자들에게 질문을 하고 답변을 유도한 다음 내리는 결론의 내용은 언제나 같다. 예를 들면 오논 또는 육체에 대한 질문을 하고 있지만 그것을 정리해 보면 바른 지혜(正智)로써 그런 것들을 관찰하고 그런 것들을 염리하라는 것이 강조되고 있다. 그리하여 그러 것들을 염리할 수 있게 될 때, 탐욕을 떠날 수가 있고, 탐욕을 떠날 수 있게 될 때 해탈할 수 있게 된다. 해탈할 수 있으면 거기에 해탈했다는 자각이 생기고 ‘이제 나의 미혹한 삶은 끝났다. 청정한 삶을 이미 성취했다. 더 이상의 미혹한 삶을 반복하는 일은 없다’고 하는 경지에 도달하게 된다. 부처님은 이 점을 몇십 번 몇백 번 수없이 반복해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결론이 의미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이 실천단계에 속한다. 그러나 이에 앞서 나오는 문답식의 질문은 분명히 지혜의 단계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두 개의 부분이 ‘그와 같이 관찰하고’라는 구절에 결부됨으로써 무상→고→무아의 지혜체계는 염리→이탐→해탈의 실천체계로 연결된다. 이러한 이유로 해서 부처님의 제자인 비구들은 지혜의 눈(智目)과 함께 실천의 발(行足)을 겸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물론 부처님의 문답방법은 이것만은 아니다.

이를테면 사제(四諦) 즉 네 가지 명제로 된 체계에 대해서 부처님은 제자들과 수없이 문답을 반복하고 있다. 그런 과정을 통해 제자들은 부처님이 가르치고자 하는 참뜻을 이해하고 있다. 그래서 그들은 만약 부처님의 질문을 받는 일이 있으면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이것은 괴로움이다… 이것은 괴로움의 원인이다… 이것은 괴로움이 소멸된 상태다…이것은 괴로움을 소멸시키는 방법이다…’하고 거침없이 대답할 수 있었다. 많은 경전들은 이렇게 스승과 제자가 사제의 논리구조에 따라 묻고 대답하는 모습을 기록해 놓고 있다.

경전의 기록에 나타나는 부처님의 설명방법은 매우 견고하고 정확한 논리구조를 가지고 있다. 현실을 어떻게 인식하느냐 하는 문제에 있어 부처님은 무상→무아→고라는 틀을 사용한다. 그리고 해탈의 방법 또한 분명하다. 염리→이탐→해탈이라는 틀이 그것이다. 부처님은 이 정형을 한 번만으로 끝내는 것이 아니라 기회있을 때마다 수없이 반복해서 강조한다. 이 강조는 어느덧 제자들이 모든 사물을 관찰하고 인식하는 기본적인 사고방식의 정형이 된다. 이것은 ‘인류의 스승’으로서의 면모를 여실히 보여주는 것이라고 생각된다.


설명방법의 탁월함

사실 부처님의 설법을 찬찬하게 음미해 보면 이분이야말로 참으로 자상한 스승이었구나 하는 생각을 거듭하게 된다. 특히 문답식으로 정형화돈 설법의 태도는 요즘의 교육방법론과 비교하여 손색없는 뛰어난 방법이란 점에서 어떤 경이로움마저 느끼게 한다.

교육방법에 관한 한 문답식 이상 가는 것은 없다. 일방적이고 주입적인 방법은 강의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본다면 한결 편하고 쉬운 것이다. 그러나 듣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일방통행과 같은 설법이 썩 좋은 방법은 못 된다. 알아들을 수 없고는 논외로 하더라고 친밀도에서만 하더라도 문답식이 더 좋다. 또한 학습효과랄까 성과적 측면에서 말한다 하더라도 문답식의 효과가 탁월하다. 무엇보다 스승과 제자가 언제든지 서로의 이해수준을 직접 확인할 수 있기 때문에 쓸데없는 오해를 제거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이 점에서 부처님은 비구들에게 언제나 좋은 스승이 될 수밖에 없는 조건을 갖추고 있었다고 해도 좋다.

아함의 여러 경전들을 읽어나가다 보면 부처님 그분이 가르치고자 했던 진실이 무엇이었던가를 금방 알아차릴 수 있게 된다. 이것은 부처님의 설법내용이 워낙 탁월한 데도 있지만 그 방법이 내용 못지않게 문답식을 선택하고 있음에도 원인이 있다. 지금까지 많은 사람들은 부처님의 설법내용의 탁월함에만 관심을 갖고 형식에 대해서는 그리 중요성을 부여하지 않았다. 그러나 조금만 주의를 기울여 살펴보면 내용 못지않게 설법형식의 뛰어남에 또한 감탄하게 된다. 흔히 간과하기 쉬운 이 점에 대해 우리는 새로운 관심과 주목을 기울여야 한다. 부처님이라는 위대한 인류의 교사의 그 교사다운 모습을 가장 잘 드러내고 있는 것이 바로 이 ‘문답식 설법에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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