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 최초의 설법(1)
녹야원에 이르다
나무 밑에서 여러 가지 생각을 정리하던 부처님은 이윽고 일어나 바라나시를 향해 출발했다. 최초의 설법을 위해서였다. 우루벨라에서 바라나시까지라면 대단히 먼 거리였다. 옛날 사람들은 그 거리를 19유순*(由旬:a distance of about 7 miles, yojana. 거리의 단위. 1유순은 약 7마일 정도의 거리. 하루 걸어서 갈 수 있는 거리를 말함)이었다고 말했다. 말하자면 18일이 걸리는 거리였다는 것을 뜻하는 듯하다. 부처님은 왜 18일이나 걸리는 먼 곳으로 설법을 하러 가야 했을까. 초전법률에 대해 기록하고 있는 율장 《대품》(1.1)은 그 사정을 이렇게 쓰고 있다.
그리하여 부처님은 생각하시었다. ‘나는 먼저 누구를 위해 법을 설해야 할 것인가. 이 법을 신속하게 깨달을 자는 누구일까.’
그때 부처님에게는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내가 일찍이 찾아보았던 알라라 카라마*(Āḷāra Kālāma:부처님이 깨달음을 얻기 전에 가르침을 들었던 스승)는 현명한 분이었다. 총명하고 영리하고 마음이 깨끗한 분이었다. 나는 먼지 그 분을 위해 설법하리라. 그 분은 신속하게 이 법을 깨달을 것이다.’
그러나 그때 천신이 있어 모습을 나타내지 않고 부처님에게 알라라 카라마는 이미 죽은 지 7일이 지났다고 말했다. 부처님은 이미 그가 죽은 것을 알고 탄식하지 않을 수 없었다. 부처님은 다시 자신의 설법을 듣고 빨리 깨달을 수 있는 사람으로 역시 자신을 지도했던 웃다카 라마풋타*(Ūddaka Rāmaputta:부처임이 깨달음을 얻기 전 가르침을 들었던 스승)를 생각했다. 그러나 그때 도 천신이 나타나 그는 어젯밤에 죽었다고 말했다. 부처님은 다시 안타까운 마음이 되었다.
‘아아, 알라라 카라마와 웃다카 라마풋타는 큰 손해를 보았다. 그 분들이라면 이 법에 대해 빨리 깨달을 수 있었을텐데.’
부처님은 다시 생각했다. 그렇다면 누구를 대상으로 설법해야 할까. 누가 빨리 이 법을 깨달을 수 있을까. 그때 부처님의 생각에 떠오른 사람이 있었다.
‘저5명의 수행자에게 나는 여러 가지로 신세를 졌다. 내가 전심으로 정근(精勤)하고 있을 때 그들은 여러모로 나를 도와주었다. 그래, 나는 먼저 그 5명의 수행자에게 설법하리라.’
부처님은 다시 그들이 어디에 있을까를 생각했다. 부처님은 그 5명의 수행자들이 바라나시의 이시파타나 미가다야(仙人住處 鹿野苑)에 있음을 알았다. 그리하여 부처님은 우루벨라에서 바라나시를 향해 출발했다.
이와 같은 이야기는 중부(中部)경전 26, 성구경(聖求經, 한역 중아함경204, 羅摩經)에도 나온다. 그 내용은 모두 사실에 가까운 것이라고 생각된다. 그러나 우리가 보다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은 바라나시의 이시파다나 미가다야라는 장소다.
바라나시라는 도성은 예부터 카시(迦尸)의 수도로 알려진 정치와 경제의 중심지였던 듯하다. 그런데 부처님이 생존했을 당시에는 코살라와 마가다라는 두 강대국이 번갈아 침략해 피폐해졌지만 문호나 사상의 측면에서는 많은 사상가와 수행자들이 모이는 장소가 되어 있었다. 이시파타나란 선인주처(仙人住處)란 뜻으로 사상가들이 모이는 곳을 나타내고 있다. 이렇게 볼 때 부처님이 그 처음이 설법지로 멀리 바라나시의 이시파타나 미가다야까지 여행을 했다는 사실은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초전법륜
마침내 바라니시의 이시파타나 미가다야에 도착한 부처님은 그것에서 5명의 수행자를 찾아냈다. 그러나 그들은 부처님을 반갑게 맞아주지 않았다고 한다. 앞에서 인용한 율장 《대품》은 계속해서 이렇게 전하고 있다.
"저기 오고 있는 자는 사문 고타마다. 그는 사치스러운 사내이며 고행을 포기하고 사치에 빠져 있다. 그가 오더라도 인사하지 않겠다. 일어나 맞이하지도 말고 의발(衣鉢)도 주지 말자. 그저 자리만은 마련해 주겠다. 앉고 싶으면 앉으라지. "
이러한 말투로 보아 그들과 부처님은 구면의 관계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좀 더 상세하게 말하면 그들은 부처님이 고행수행을 하고 있을 때는 찬탄의 눈으로 바라보며 시중도 들어주던 동료들이었다. 그러나 얼마 후 부처님이 고행을 포기하자 실망하여 경멸의 침을 뱉고 곁을 떠났다. 그러나 그들은 부처님이 그들 앞에 나타나자 일어나서 맞아주었고 어떤 사람은 발 씻을 물도 떠다 주었다고 한다.
하지만 부처님이 자신이 터득한 진리를 그들에게 설법하려고 했을 때, 그들은 완강하게 그것을 거절했다. 그들의 가슴에는 고행을 포기한 ‘타락한 수행자’의 인상이 아직까지 생생하게 남아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고행을 버리고 사치에 빠져버린 사문 고타마가 위대한 진리를 깨달았다고는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 그럼에도 부처님은 두 번 세 번 거듭해서 자신이 터득한 진리를 말씀하려고 했다. 그러나 그들은 계속 거부했다. 그러자 부처님은 스스로 자신의 얼굴을 가리키며 말했다.
“수행자들이여, 그래들은 일찍이 나의 얼굴 모습이 이토록 빛나고 있는 것을 본 적이 있는가.”
부처님은 거룩한 깨달음을 성취한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빛나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인간이 지혜의 광채는 그 얼굴에까지 나타나는 법이다. 그들도 그것을 잘 알고 있는 터이므로 부처님의 말을 듣고 다시 한 번 그 얼굴을 쳐다보았다. 부처님의 얼굴은 과연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광채로 빛나고 있었다. 그들은 약간 놀라는 기색이었다. 부처님은 비로소 자신이 깨달은 바를 이야기할 수 있었다. 이 같은 과정에 대한 한 경*(남전 상응부경전(56.11), 如來所說. 한역 잠아함경(15.17) 轉法輪)은 이렇게 말하고 있다.
이렇게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은 바라나시의 이시파타나 미가다야에 계셨다. 그곳에서 부처님은 5명의 비구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비구들이여, 출가한 수행자는 두 가지의 극단에 치우쳐서는 안된다. 그 두 가지란 이런 것이다. 애욕에 탐닉하는 것은 하열(下劣)하고 비천한 범부가 하는 짓이다. 성스러운 것이 아니며 쓸모없는 일이다. 또한 고행을 일삼는 것도 다만 괴로울 뿐이며 성스러운 일이 아니다. 아울러 쓸모없는 짓이다.
비구들이여, 여래는 이 두 가지의 극단을 버리고 중도(中道)를 깨달았다. 그것을 눈을 뜨게 하고 지혜를 생기게 하며 적정(寂靜)ㆍ증지(證智)ㆍ등각(等覺)ㆍ열반(涅槃)에 이르게 하는 것이다. 비구들이여, 그러면 여래가 눈을 뜨고 지혜가 생기고 적정ㆍ증지ㆍ등각ㆍ열반에 이르게 하는 중도를 깨달았다고 하는 것은 어떤 것인가. 그것은 성스러운 여덟 가지의 도를 말하는 것이다. 즉 정견(正見)ㆍ정사(正思)ㆍ정어(正語)ㆍ정업(正業)ㆍ정명(正命)ㆍ정정진(正精進)ㆍ정념(正念)ㆍ정정(正定)이다. 비구들이여, 이것이 여래가 깨달을 수 있었던 중도이며, 이것이 눈을 뜨고 지혜가 생기고 적정ㆍ증지ㆍ등각ㆍ열반에 이르게 한 것이다.“
최초 설법의 서사(序詞)라 하기에 부족함이 없는 이 설법에 의하면 그 속에는 분명히 5비구의 비판에 대한 변명이 담겨져 있다. 즉 ‘출가한 수행자는 두 가지 극단에 치우쳐서는 안 된다’는 언명(言明)이 그것이다. 여기서 두 가지 극단이란 쾌락주의와 금욕주의를 말한다. 특히. 이 가운데 후자 다시 말해 금욕주의도 극단이라는 지적은 그들이 비난해 마지않는 고행의 포기에 대한 변명이었던 것이다.
그러면 무엇 때문에 두 가지 극단적 입장이 비판되어지는 것일까. 이유를 경전은 ‘무의상응(無義相應, anatthasamhita)’이라는 말로 표현하고 있다. ‘도리 없는 일’이라는 정도의 의미로서 요즘말로 하면 불합리하다는 뜻이다. 고행이 얼마나 불합리한 것인가는 그가 먼저 몸으로 체험했던 일이었다. 부처님이 여기서 말하는 것은 체험에 의해 증명된 것이었다.
이러한 비판과 변명이 있을 후 부처님이 스스로 선택한 새로운 실천적 입장을 제시한다. 경전은 그것을 ‘여래는 두 가지 극단을 버리고 중도(中道)를 깨달았다’고 말한다. 이어서 그 ‘중도란 여덟 가지 성스러운 도리를 말한다. 즉 정견ㆍ정사ㆍ정어ㆍ정업ㆍ정명ㆍ정정진ㆍ정념ㆍ정정을 말한다.’ 이것이 이른바 중도요 팔정도이다. 여기에서 중도는 부처님이 선택한 새로운 실천적 입장의 명칭이고 팔정도는 그것을 펴서 8가지 실천 항목으로 나란히 정리해 놓은 것이다.
그러면 어떤 이유로 중도라는 입장이 선택되고 또한 팔정도라는 항목들이 제시되는 것일까. 그러한 사상적 근거는 계속해서 부처님에 의해 ‘사제설법(四諦說法)’이라 부르는 것으로 초전법륜의 중심을 이루는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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