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를 뿌려야 열매를 거둔다
마성 지음
산에 살다 보면 자연의 숨결을 온몸으로 느낀다. 도회지에서는 감지하기 어려운 계절의 변화를 직감할 수 있다. 며칠 전부터 봄이 오는 소리가 들린다. 얼었던 대지가 서서히 녹고 새싹이 움틀 채비를 하고 있다. 올해의 봄은 예년보다 빨리 다가올 것 같다. 이곳 마을 주민들도 가을에 거두어들일 풍성한 결실을 기대하면서 서둘러 밭을 갈고 씨를 뿌릴 것이다.
씨를 뿌려야 열매를 거둘 수 있다는 것은 만고불변의 진리다. 그런데 우리 주변에는 일확천금을 꿈꾸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다. 오늘도 복권 당첨을 기다리고, 주식 시황에 일희일비하는 사람들이 많다. 경마와 경륜장에서 대박이 터지기를 학수고대하고 있다. 그들은 가슴 조이며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다단계 판매로 큰돈을 손쉽게 벌 수 있다고 가까운 친척과 친구도 끌어들인다. 이로 인해 인간 관계가 단절된 경우도 허다하다. 나는 그들을 볼 때면 몹시 가슴이 아프다.
얼마 전 출가자인 나에게까지 다단계에 가입하라고 찾아온 사람이 있었다. 그 사람은 나를 존경하는 스님이 아닌 다단계 포섭 대상으로 생각한 것이다. 그에게 내색하지는 않았지만, 심한 모욕감과 불쾌감으로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나는 개인적으로 노름꾼을 가장 싫어한다. 내가 출가하게 된 직접적인 동기가 노름이었기 때문이다. 아버지께서 노름으로 그 많던 재산을 모두 날려버렸다. 고향집과 토지, 그리고 세 척의 선박도 모두 남의 손에 넘어갔다. 결국 우리 가족은 고향을 떠나 진해로 이사했다. 단칸방에서 다섯 식구가 함께 살았다. 초등학교 3학년 때의 일이다. 그때부터 암울한 청소년기를 보내면서 인생의 의미를 깊이 생각하게 되었고, 결국 고등학교 1학년 때 스스로 출가하여 스님이 되었다.
도박은 한 개인의 가정을 파괴할 뿐만 아니라 사회를 병들게 하는 최대의 죄악이다. 사람들은 모이면 화투나 포커 게임을 한다. 나는 장난으로도 화투놀이를 하지 않는다. 화투만 보면 내 어릴 때 그 비참했던 기억들이 되살아 나기 때문이다.
도박이 성행하는 사회는 건전한 사회가 아니다. 뿌리 뽑아야 할 사회악(社會惡) 가운데 하나다. 도박은 노력하지 않고 일확천금을 꿈꾸는 아주 나쁜 행위다. 남의 호주머니에 있는 돈을 나의 호주머니로 가져오겠다는 발상은 탐욕의 극치다. 도박꾼은 사회에서도 인정 받지 못한다.
부처님은 <교계시가라월경(혹은 육방예경)>에서 재산을 낭비하는 여섯 가지 행위에 대해 언급하셨다. 여섯 가지란 음주, 방탕, 유흥, 노름, 악한 친구와의 교제, 게으름이다. 이 가운데 노름[도박]에는 여섯 가지 위험이 있다. 이기면 원한을 낳고, 지면 잃은 재산 때문에 슬퍼하며, 재산이 탕진 되고, 그의 말은 의회나 법정에서 신뢰 받지 못하며, 친구와 동료들의 경멸을 받으며, 사람들이 노름꾼은 좋은 남편이 될 수 없다고 얘기하기에 결혼 상대를 구하지 못하게 된다.
이와 같이 요행이 판치는 사회는 건전한 사회가 아니다. 근면 성실한 사람이 잘 사는 사회가 우리가 꿈꾸는 불국토이다. 사행심(射倖心)은 불교의 적이다. 불교에서는 선인선과(善因善果) 악인악과(惡因惡果)의 연기법(緣起法)을 근간으로 삼고 있다. 만일 선인을 심지 않았는데, 선과를 받는다면 이러한 연기의 법칙에 위배된다.
요즘 불교계에서 논란이 되고 있는 기복신앙도 이러한 사행심에서 나온 것이다. 엄격히 말해서 복은 빌어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복은 지어야만 받을 수 있는 것이다. 부처님께서는 <견의경(堅意經)>에서 "열매를 얻으려거든 씨를 뿌려라. 선을 심으면 복을 얻고 악을 심으면 재앙을 얻는다. 종자를 심지 않고는 과실을 얻지 못하나니 그 마음을 올바르게 가지면 복은 스스로 그 몸에 돌아올 것이다." [大正藏 17권, p.535: 種穀隨種而生. 種善得福. 種惡獲殃. 未有不種而獲果實. 當正爾心. 福自歸身.]라고 말씀하셨다.
나는 지금까지 단 한번도 요행수를 바란 적이 없다. 씨를 뿌리지 않고 열매를 거둘 수 없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열매를 빨리 얻으려고 서두르지도 않는다. 일정한 시간이 지나야 열매를 맺는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화려한 직위나 높은 자리도 원하지 않는다. 그런 것은 모두 부질없는 것임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지금 여기서 최선을 다해 쉼 없이 정진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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