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 공부방(2)

五. 일을 시작할 때...

소리없는 아우성 2012. 12. 4. 12:24

일을 꾀하되 쉽게 되기를 바라지 말라.
일이 쉽게 되면 뜻을 경솔한데 두게 되나니,
그래서 부처님께서 말씀하시되
''여러 겁을 겪어서 일을 성취하라’하셨느니라.


모든 일을 쉽게쉽게 하고자 했던 우리의 일상에
크게 경종을 울려 주는 글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무언가 열심히 일하고 그에 합당한 결과를 바라기 보다
쉽게 쉽게 일을 하고 한 일에 비해 보다 낳은 결과를 바라며
요행수를 바라며 살아가기 쉽습니다.

장애 없이 쉽게만 일들을 해 나가다보면
자칫 자만한 마음과 경솔한 마음이 생기기 쉽습니다.
자만심과 교만, 경솔한 마음은 우리의 의지를 경박게 만들 것이며,
스스로를 유능하고 대단하다고 생각하며 남을 얕보기 쉽습니다.
‘나 잘났다’고 하는 아상만 키우는 꼴이 되는 것입니다.

그로인해 제 멋대로 판단하고 가늠하며
경박한 마음으로 모든 일을 도모하게 됩니다.
그렇게 생각나는대로 자신의 잣대에서 일을 재어볼 수는 있지만,
일이 성취되고 안되고는 마음처럼 쉽게 되지 않는 법입니다.
모름지기 일을 이룸은 제 업을 따르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마음만 앞서고, 의욕만 앞선다고 일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제 복력과 수행력을 깨쳐보고, 제 업에 순응하는 일을 해야 할 것이며,
모자라는 일이라면 그만큼 복을 짓고, 원을 세워
정진하는 마음으로, 기도하는 마음으로 일을 도모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니 일이 잘 됨을 오히려 경계하고,
일에서 있을 어려움을 공부재료로 알아야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옛 성인께서 ‘일의 어려움을 안락으로 삼으라(以事難爲安樂)’ 하셨으며
‘여러 겁을 겪어 일을 성취하라’ 하신 것입니다.

쉽게 되기를 바라는 마음은 욕심이며 집착입니다.
열심히 노력하기보다는 쉽게 많은 것을 얻으려는 마음이니 욕심이요,
마음을 놓아버리지 못하고 그 일에 얽매여
어떻게든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니 집착인 것입니다.
이런 나태한 마음, 쉽고 간단하게 처리되기를 바라는 마음,
일을 잘 해야겠다는 생각이 오히려 자신에게 커다란 장애가 됩니다.

무슨 일이든 일의 시작에서는 마음을 비우는 작업이 우선되어야 합니다.
그 텅 빈 마음의 기초 위에 다시 꽉 채우는 작업을 시작하는 것입니다.

''마음을 비우는 작업''이란
그 일에 대한 집착과 일의 성취에 대한 지나친 욕심을 비우는 것입니다.
사사로운 욕심과 집착을 가지게 되면
일에 대한 인연과 기운의 자연스런 흐름을 거스르게 되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반드시... 꼭 되어야 한다''는 고정된 마음은 오히려 일을 그르
치기 쉽게 만듭니다.

''반드시 해야만한다''는 것처럼 어리석은 마음은 없습니다.
''나 없으면 안되'' 하는 마음, ''이것만은 반드시 해야 되'' 하는 마음,
이것이 우리네 중생들의 가장 큰 병통입니다.
우리네 인생에 있어서 절대적으로 꼭 해야만 하는 것은 없습니다.
그 어떤 절대적인 기준을 둔다면 이미 그것은 진리가 아닙니다.
어디에도 머물지 않고 걸리지 않는 것이 진리의 향기입니다.

이를테면 식당 경영을 시작하려는 사람이
마음을 비우지 못하고 욕심과 집착에 사로잡히게 되면
음식을 만들 때 온전한 정성을 쏟지 못하게 됩니다.
오직 마음에 돈을 벌려는 마음, 식당을 키우려는 마음만 크기 때문에,
음식 먹는 사람은 어떻게 되었든 조금 싼 재료, 나쁜 재료를 쓰더라도
돈을 벌어야 한다는 마음으로 꽉 채워졌기 때문입니다.

모름지기 식당 경영인의 마음은 오직 음식과 음식을 먹는 사람에게
온전한 정신을 쏟아부을 수 있어야 하지만,
음식보다 돈에 더 마음이 가 있다면 일은 성취되어질 수 없는 노릇입니다.
음식장사하는 사람 마음이 음식에 있어야지 돈에 있어서는 안된다는 말입니다.

그러니 식당 경영을 시작하려 한다고 했을 때
우선적으로 돈에 대한 욕심과 집착어린 그 마음을 놓아야 한다는 말입니다.
일을 시작하면서 생겨나는 모든 문제점들을 해결하고자 할 때에도
모든 해결책은 ‘돈’을 중심으로 하기보다 ‘음식’을 중심으로 해야 합니다.
돈이 조금 많이 들더라도 음식에 정신을 쏟겠다는 마음이라야 한다는 것이지요.

그리고 ''다시 꽉 채우는 작업''이란
사사로운 욕심과 집착을 비운 가운데 밝은 이타의 ''원(願)''을 세우는 것입니다.
발원은 ''승화된 욕심''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거칠게 일어난 일에 대한 맹목적인 열정을 승화시켜
내 마음과 주위의 인연을 자연스런 흐름으로 이어주는 맑고도 강한 마음입니다.
발원의 마음 속에는 이기적인 마음보다 이타적인 마음이 크며
집착하는 바가 없기 때문에 설사 일이 잘 안 되더라도 마음은 그에 걸리지
않을 수 있습니다.

일이란 모름지기 자연스런 일의 흐름을 탈 수 있을 때라야 매끄러운 법입니다.
자연스런 일의 흐름이란 인연을 따르고, 업을 따르는 일을 말합니다.
마치 물이 흐르는 것처럼 자연스러워야 한다는 말입니다.
물이 흐르고 싶다고 애써 고집하거나, 분별함이 없이
그저 순리에 내맡기고 흐르는 것처럼 일 또한 그러해야 합니다.

일에 대한 의욕과 집착으로 안 되는 일이라도,
밝은 원을 세워 정진을 하면 그 원이 무르익을 즈음
일의 흐름이 어느 순간 자연스럽게 되어지는 쪽으로 흐름을 타게 됩니다.
그 이전에는 거칠것이 많고, 온갖 벽에 부딪치던 일들이
자연스럽게 되어지는 인연을 만나 순조롭고 매끄럽게 일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크게 원 세운 그 밝은 마음이 내 업을 바꾸고
나아가 주위를 바꾸고 일에 대한 인연을 바꾸어 놓기 때문입니다.

결코 ''일''의 노예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가 스스로 만들어 놓은 ''일''이라는 관념 속에 스스로 얽매여
그로 인해 괴로워하고 심지어 그 때문에 자살도 하고
그렇게 노예의 삶을 사는 것이 우리네 인생입니다.

욕심과 집착이 없는 밝은 발원을 가지고 행한 일은
향을 사르듯 우리의 마음을 맑게 다잡아 주며
한 줄기의 향이 주위를 향기롭게 하듯 내 주위를 향기롭게 만들어 줍니다.
그 맑고 향기롭게 나툰 안팎의 한마음은
자연스럽게 나를 바꾸고 주위를 바꾸어 마음 먹은 일이 스스로 되어지도록
만들어 줍니다.
내 주위의 모든 조건들이 모두 한마음으로 부처님이 되어 나의 일을 거들
어 주기 때문입니다.

쉽게 하려는 마음, 빨리 하려는 마음, 보다 잘 하려는 마음,
이것이 오히려 장애가 되어 일을 그르침을 알고
욕심과 집착을 거둔 마음, 밝게 세운 발원의 마음, 텅 비어 그 무엇도 담
을 수 있는 마음,
이것이 나를 이끌고 나의 사업을 이끄는 한마음 주인공이 됨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일의 결과에 대하여
잘되었느니 못되었느니, 좋으니 싫으니 하는 분별심을 내지 말아야 합니다.
잘 안된 일도 잘 되기 위해 잠시 안 되는 일일 수도 있으며
잘 된 일도 언제 또 다시 안 될 수 있는 일임을 알아야 합니다.

새옹지마(塞翁之馬)란 말처럼
언제까지고 우리의 현실은 한없이 지옥과 극락을 번갈아 다닐 것입니다.
우리가 살아온 억겁의 인연 속에 지어 온 무수한 선업과 무수한 악업의 고리는
수 억겁(億劫)을 정진하며 닦아가야 할 업식(業識)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좋고 싫은 그 어느 쪽에도 마음이 놀아나서는 안 될 것입니다.
한 순간 정진으로 행복하겠다면 욕심입니다.
한 순간 노력으로 뜻을 성취하겠다면 욕심입니다.

''여러 겁을 겪어서 일을 성취하라''는 부처님의 말씀은
이런 우리의 번잡한 마음에 다시금 옷깃을 여미게 해 줍니다.
응무소주 이생기심, 마땅히 머무는 바 없이 마음을 내라,
마음을 비우라는 말은 아무것도 하지 말라는 말이 아닙니다.
함이 없이 하라는 도리인 것입니다.

최선을 다해 열심히 일하되
어디에도 마음이 머물러서는 안 된다는 말입니다.
집착심을 비워야 한다는 말입니다.
어렵게 이루어 낸 결과물 속에는 무량한 복덕이 가득합니다.
그러나 쉽게 이루어 낸 결과물 속에선
자만과 경솔함 만이 우리의 앞길을 가로막을 것입니다.

< 법상스님의 목탁소리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