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 공부방(2)

六. 맑은 친구를 사귀고 싶을 때...

소리없는 아우성 2012. 12. 4. 12:25

친구를 사귀되 내가 이롭기를 바라지 말라.
내가 이롭고자 하면 의리를 상하게 되나니
그래서 부처님께서 말씀하시되
''순결로써 사귐을 길게하라'' 하셨느니라.


삶이라는 긴 여행 동안,
우린 참으로 많은 사람들과 인연을 맺게 됩니다.
사람 사람과의 부딪힘 그 연장이 우리의 삶일 것입니다.

그렇기에 사람과의 관계란
우리 삶의 너무나도 소중한 부분입니다.
이 세상 모든 사람이 나의 친구 아님이 없습니다.
오랫동안 사람들은 ''진정한 친구''에 대해
많은 생각을 가지며 수많은 정의를 내려 왔습니다.

부처님께서 내리신 ''진정한 친구''는
''순결''이 앞선 관계입니다.
그 순결이란 내가 이롭기를 바라지 않는 것이라 했습니다.

내가 이롭기를 바라지 않는다는 말은
온전히 나를 비워버린 아상 없는 순수한 마음으로
상대를 아끼고 사랑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친구와 나를 둘로 나누어 놓으면
자연스레 나를 위하려는 마음이 생기게 마련이고,
나를 위하려는 마음은 이기적인 마음으로 치닫게 되기 쉽습니다.


진정한 친구, 순결로써 사귐을 이루는 친구는
‘나’ ‘친구’ 하고 나누지 않는 ‘참된 하나’를 이루는 관계입니다.
그래야 아상이 사라진
‘맑은 순결’의 사귐을 이룰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린 상대를 대할 때, 친구를 사귀게 될 때
머릿속은 컴퓨터가 되곤 합니다.
수없이 많은 분별심을 일으킵니다.

그 분별심의 대부분은 아상(我相)에서 비롯되는데,
대개가 이 친구를 사귀면 나에게 어떤 이익이 되는가
하는데 초점이 맞춰진 경우가 많습니다.

어떻게 하면 나에게 조금 더 이득이 될까 하는
이해타산의 계산기가 빠르게 돌아갑니다.
그러나 문제는 그런 이기적인 마음을
우린 잘 알지 못한다는 데에 있습니다.
너무도 빨리 스쳐지나가는 미세한 마음이기에 그렇습니다.

마음을 관찰해 본 수행자라면
대인관계에 있어 내 마음의 미세한 이기적 분별심을
알아채어 본 경험이 있을 것입니다.

똑같은 일상에서도 내가 하는 일에는 무척이나 너그럽고
상대의 일에는 철두철미한 마음을 일으킵니다.
차를 타고 가다가 내 앞에 상대의 차가 끼어들면
마음속에 진심(성냄)이란 놈이 고개를 치켜들고 화를 내다가도
어느새 나의 차 또한 상대의 차 앞을 과감하게 끼어드는 모습을
관찰하게 되고는 마음이 뜨끔한 경험!
누구라도 쉽게 해 보았을 것입니다.

오히려 이 정도면 선한 사람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오히려 상대를 탓하며
''이 것도 안 끼워주는 괴씸한 놈...''하는 마음이 앞섭니다.
참으로 어이없는 광경이지만 사실 우리 마음 그대로의 모습입니다.

진정한 수행자는 자신에게 철저하고
타인에게 관대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런 마음의 이기적인 모습은
비단 모르는 상대에게만 일으키는 감정은 아닙니다.

잘 알고 지내는 친구들에게 조차
이런 마음은 끊임없이 일어납니다.
친구에게 만원짜리 밥을 한 끼 사고나면
우린 ''만 원'' 만큼의 기대심리를 안고 친구를 대합니다.

그래서 ''이다음에 그 친구가 살 차례지...'' 하는 마음에서부터
작게는 ''만 원 만큼은 사겠지...'' 하는 마음까지도 일어납니다.
훗날 친구가 5천원 짜리 밥을 한 끼 내는 것으로는
여전히 마음 속에 ''남은 5천원 어치'' 만큼의 괴로운 마음을 가집니다.

''나는 만원짜리 샀는데... 넌 이것밖에 안 사줘...''
우선은 이 말에 유치하다는 생각을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일상이 계속된다고 했을 때
우린 분명 그 친구에게 괴로운 마음의 분별심을 일으킬 것입니다.
5천원어치 만큼의 진심을 안고 친구를 대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만 오천원 짜리 밥을 대접받게 되면
오히려 더해진 오천원어치 만큼의 행복감을 느낍니다.

이처럼 우리 마음 깊은 곳에서 일어나는 분별심은
철저한 계산기와도 같습니다.
문제는 바로 이런 분별심을 우린 잘 모르고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그 마음을 알아채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 아상의 좁은 소견을 올바로 보게 되면
그 속에서 나온 분별심 조차 고개를 숙이며 달아나게 됩니다.

''순결''로써 친구를 사귀란 말은
''나'' 잘 되고자 하는 아상을 버려
자신의 이익만을 저울질하여 이해타산을 따지려는 분별심 없이
순수하게 친구를 대하라는 말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친구에게 또한 베푼 만큼 돌아온다는
철저한 인과의 법칙은 그대로 적용이 됩니다.
친구에게 순결로 대하면 대할수록,
나의 이익을 거두고 진심으로 친구를 위할 때
그 마음은 법계가 알아주고 부처님이 알아주는 법입니다.

애써 드러내려 하지 않아도
남모르게 조용히 일으킨 순결한 한마음은
대지를 감동시키고 우주를 울릴 수 있습니다.

상대를 이롭게 하는 마음은
상대의 마음이 아닌 나의 마음이기에
내 마음이 먼저 밝아지게 되어 있습니다.

나를 위한 마음은 나를 죽이는 마음이며
상대를 위한 마음은 나를 진정 살리는 마음입니다.

‘나’를 위해 친구를 사귀는 일 보다
나를 버리고 오직 ‘친구’를 위해 친구를 사귀는 일이
훨씬 더 나를 행복하게 만들고 순결하게 만들어 줍니다.

그렇다고 순결로써 사귈 만한 친구를
애써 찾아 나서는 어리석음을 범해서는 안 됩니다.
또한 친구에게 순결로써의 사귐을 바랄 필요도 없습니다.
그냥 내가 먼저 순결로써 다가서면 그 뿐입니다.
그것으로 나의 사귐은 크게 빛을 발하게 될 것입니다.

친구를 사귈 때는
바라는 마음을 놓아버려야 순수해 지는 것입니다.
내가 먼저 순수해 지면
그냥 그것으로 나의 순결스런 사귐은 이루어 진 것입니다.

보통은 내가 너에게 이런 순수한 친구이니
너도 나에게 의리있고 우정어린 친구가 되어야 한다는
미세한 ‘바라는 마음’ ‘계산된 마음’이 깔려 있게 마련이거든요.
그 마음을 놓을 수 있어야 참된 순수가 피어나는 것입니다.

이처럼 순결로써 친구를 대할 때
사귐은 깊어지고 함께 밝아지는 도반이 될 것입니다.
억겁을 두고 함께 하는 밝은 도반이 될 것입니다.

< 법상스님의 목탁소리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