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 공부방(1)

삼법인의 의미

소리없는 아우성 2012. 12. 4. 11:28

연기법에 따르면 이 세상 우주는 아무렇게나 아무 법칙도 없이 그냥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연기라는 진리의 법칙에 따라 움직이는 법계(法界)임이 드러난다. 단순한 세계가 아니라 진리의 세계 즉 법계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연기의 진리에 의해 운행되는 우주법계는 어떤 특성을 가지고 있을까.

일체 모든 존재의 속성이기도 하며, 이 우주에 존재하는 일체 모든 것들의 일반적인 특성이기도 한 것, 그것이 바로 삼법인(三法印)이다. 삼법인은 연기법의 또 다른 이름이요, 또 다른 표현이라고도 할 수 있다. 이 세상 모든 것이 연기된 존재이기 때문에, 그로인해 삼법인의 특성이 나타나기 때문이다. 즉 연기된 모든 것은 세 가지 공통된 일반적인 특성을 가진다.

그러면 먼저 삼법인이란 말의 의미를 살펴보면, ‘세 가지 법의 도장’‘세 가지 진리의 표지(標識)’란 뜻을 가진다. 법인(法印)이란 말 그대로 ‘법의 도장’‘진리의 도장’이란 의미다. 우리가 도장을 찍어 줄 때는 내가 확실하고 틀림없다는 것을 확인시켜 주기 위한 것이고, 인간사의 모든 일들은 아무리 입으로 이렇다 저렇다 해 봐야 결국에는 도장을 찍어 주고 나야 그것이 제 힘을 발휘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즉 도장을 찍어준다는 것은 분명하고 확실한 것에 대한 종지부를 찍는 일이다.

이처럼 삼법인이라는 것은 이 세 가지 진리야말로 분명하고 확실하며 틀림없는 진리라는 종지부를 찍는 진리의 마침표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예로부터 삼법인은 ‘불교의 징표’‘진리의 기준’‘진리의 근거’가 되어왔다.

즉 이 가르침이 불교인가 아닌가, 정법인가 사법(邪法)인가가 궁금하다면 삼법인이라는 기준에 맞는지 틀리는지를 살펴보면 된다. 삼법인에 근거한 가르침이라면 불교이며 정법이지만 삼법인의 기준에 어긋난다면 그것은 불교라고도 정법이라고도 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그렇기에 불교 이외의 어떤 사상이나 종교나 가르침이 옳은 것인지 그른 것인지를 판단할 수 있는 불교적인 근거가 되는 것 또한 삼법인이다.

사실 요즘 불교를 보면 삼법인에 근거하지 않은 비불교적인 요소들도 불교라는 이름으로 자리 잡고 있으며, 온갖 사상과 종교와 가르침들이 난무하는 사상이 혼탁한 시대이다보니 이것이 정법인지 사법인지를 구분하기 어려운 요소들이 많다.

온갖 명상 단체들이 난립하고 있고, 어떤 곳에서는 수십, 수백, 수천만원을 요구하며 깨달음을 사고 파는 행위들도 버젓이 일어나고 있다. 의외로 너무나도 많은 사람들이 ‘쉽고 빠른’ 그런 단체의 수련법에 유혹당하고 매료당한다. 그러나 필자에게 상담을 요청한 수많은 사람들 중에는 온갖 명상수련단체에서 수많은 돈을 들이고 시간을 들여 수련한 결과 부처가 되었다고 혹은 깨달음을 얻었다고 인가(?)까지 받았지만, 결국 정신장애를 겪거나 정신분열을 일으키는 분들도 많았고, 사기를 당하거나, ‘이게 아니다’ 싶어 다시 불교를 찾는 이들도 적지 않았다.

이런 복잡다단한 사상의 혼탁을 경험하는 현대인들에게 있어서 그것이 정법인지 아닌지, 불교인지 아닌지, 옳은 것인지 그른 것인지를 판단할 수 있는 근거와 기준은 그 어느 때보다도 간절히 요청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러한 시대에 더욱 중요성이 부각되고 있는 가르침이 바로 삼법인의 가르침이 아닌가 한다.

삼법인은 세 가지로 나타나는데, 그 내용에 있어 남방 상좌부 전통의 불교와 북방의 대승불교 전통에서 말하는 내용에 한 가지 차이가 있다.

남방 상좌부 불교에서는 삼법인을 제행무상(諸行無常), 일체개고(一切皆苦), 제법무아(諸法無我)라고 하지만, 북방의 대승불교에서는 제행무상, 제법무아, 열반적정(涅槃寂靜)을 삼법인의 정형으로 보고 있다. 혹은 사법인(四法人)이라고 하여 제행무상, 일체개고, 제법무아, 열반적정을 모두 포함시키기도 하고, 때로는 오법인이라고 하여 여기에 제법개공(諸法皆空)을 포함시키기도 한다.

제행무상과 제법무아는 같은데 일체개고와 열반적정이 다른 이유는, 일체개고와 열반적정은 동일한 사실에 대한 시각차이에 의한 것이라고 보여진다. 즉 깨달음의 얻지 못한 중생의 눈에서 보면 나고 늙고 병들고 죽는 이 세상의 모든 것이 괴로움으로 보이지만, 깨달음을 얻은 부처의 눈에서 본다면 나고 늙고 병들고 죽는다는 이 모든 사실까지도 공(空)한 것으로써 그 이면에는 적정한 열반이 자리 잡고 있음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부처님께서는 깨닫고 보니 중생이 없으며 모두가 이미 깨달은 부처였다고 한 말씀과 같은 맥락이다.

경전에서는 이상의 네 가지 진리의 법인을 사유함으로써 모든 괴로움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 증일아함경』에서는 “비구들이여, 죽음을 면하고자 한다면 네 가지 진리의 법인을 사유하라. 네 가지란 무엇인가. 첫 번째는 제행무상이며, 두 번째는 일체개고, 세 번째는 제법무아이며, 네 번째는 열반적정이다. 비구들이여, 이 네 가지 진리의 법인을 사유하라. 왜냐하면 그로써 생노병사, 근심, 슬픔, 번뇌 등 모든 괴로움에서 근본적으로 벗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비구들이여, 이 네 가지 진리를 성취하라.고 말하고 있다. 죽음을 면한다는 것은 곧 사고팔고라는 근본적인 괴로움에서 벗어난다는 의미다. 생노병사와 근심, 슬픔, 번뇌 등 모든 괴로움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이 바로 삼법인, 사법인을 사유하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우리 인간이 겪고 있는 그 모든 괴로움을 벗어나는 길, 그 길이 바로 사법인의 사유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