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이 사밧티의 기원정사에 있던 어느 날이었다.
이교도 사상가인 파챠(婆蹉)가 찾아와서 여러 가지 이야기를 나누다가 해탈이라는 주제에 이르게 되었다.
"세존이시여, 당신의 가르침에 따라 수행하여 해탈한 자는 어디에 태어납니까?"
"파챠여, 다른 곳에 가서 태어난다는 생각은 옳지 않습니다."
"그러면 아무데도 가지 않는다는 말입니까?"
"간다든지, 가지 않는다든지 하는 생각도 이미 적당치 않습니다."
파챠는 해탈한 자는 죽은 후 어딘가에서 다시 태어난다는 생각밖에 할 수 없었기 때문에 부처님의 말씀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러자 이번에는 부처님이 질문을 하면서 그를 유도했다.
"파차여, 이번에는 내가 질문을 할 터이니 생각하고 있는 대로 대답해 주시오. 만약 지금 당신 앞에 불이 타고 있다면 그것을 어떻게 보시겠습니까?"
"세존이시여, 그것은 불이 타고 있다는 것뿐이겠지요."
"맞습니다. 그러면 그 불이 왜 타고 있느냐고 묻는다면.....?"
"그것은 장작이 있기 때문에 타고 있겠지요."
"그렇소, 그렇다면 이제 그 불이 꺼졌다고 한다면 어떻게 생각하시겠습니까?"
"그것은 불이 꺼졌기 때문이겠지요."
"그러면 파챠여, 그 불은 꺼져서 어디로 갔느냐고 묻는다면?"
"그것은 질문이 이상하지 않습니까? 불은 장작이 있어서 타고 있다가 그것이 다 타서 꺼졌을 뿐인데 꺼진 불이 어디로 갔다고 볼 수는 없지 않습니까?"
대화가 여기에 이르자 파챠는 스스로 자신의 질문이 잘못된 것임을 알고 부처님께 귀의했다.
여기서 부처님은 해탈열반(解脫涅槃)을 설명하고 있다.
열반에 이른다는 것은 죽은 뒤 하늘로 올라가서 다시 태어난다는 것과는 전혀 다른 것이다.
사람들은 이 세상에서 탐욕과 노여움의 불에 타고 있기 때문에 인생을 괴로운 것이라고 생각한다.
다시 말해서 번뇌의 불꽃에 시달리고 있다. 그 번뇌의 모습을 관찰하여 근본을 끊어 버린다면 번뇌의 불꽃은 다시는 타지 않을 것이며 거기에서 비로소 맑고 평온한 인생을 찾을 수 있는 것이다.
그것이 번뇌를 해탈해서 열반에 이르는 것이다. 이와 같이 열반이란 불이 꺼진 상태로 불교가 지향하는 궁극적인 이상의 경지이다.
사람들은 이 세상에서 탐욕과 노여움의 불에 타고 있기 때문에 인생을 괴로운 것이라고 생각한다.
다시 말해서 번뇌의 불꽃에 시달리고 있다. 그 번뇌의 모습을 관찰하여 근본을 끊어 버린다면 번뇌의 불꽃은 다시는 타지 않을 것이며 거기에서 비로소 맑고 평온한 인생을 찾을 수 있는 것이다.
그것이 번뇌를 해탈해서 열반에 이르는 것이다. 이와 같이 열반이란 불이 꺼진 상태로 불교가 지향하는 궁극적인 이상의 경지이다.
-홍사성의 불교사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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