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화(法華)라는 뜻은 부처님께서 깨달으신 경지를 진흙탕에 뿌리를 내리고 있지만 결코 그 더러움에 물들지 않고 아름답게 피어난 연꽃에 비유한 말이다.
법화부 경전은 불교경전 가운데 가장 넒은 지역과 가장 많은 민족들에 의해 수지 독송된 대승경전 중의 꽃이라고 할 수 있다.
'법화경'은 범어 Siddharma Pundarika-Sutra의 번역이다. 싯다르마란 바른 진리(正法), 푼드리카는 하얀 연꽃(白蓮), 수트라는 경(經)이라는 의미로 직역하면 '하얀 연꽃 같이 올바른 가르침'이다. 그래서 '법화경'을 최초로 한역한 서진의 축법호는 원래 제목을 살려서 '정법화경(正法華經)'이라고 옮겼다. 또 요진의 구마라집은 '바른'이라는 단어를 '묘(妙)'라는 의미로 해석해서 '묘법연화경(妙法蓮華經)'이라고 번역했다.
'법화경'의 한역으로서는 서진의 축법호(Dharmaraksa)가 서기 276년에 번역한 '정법화경' 10권과 요진의 구마라집(Kumarajiva)이 406년 번역한 '묘법연화경' 7권, 그리고 수나라 때 사나굴다(Jnanagupta)가 601년 번역한 '첨품묘법연화경' 7권이 있다.
이상의 3역본 가운데 구마라집이 번역한 '묘법연화경'이 아름다운 문체와 평이한 번역으로 가장 널리 수지 독송되어 왔다. 특히 '법화경'의 총 28품 가운데 제 25품 '보문품(普門品)'은 일명 '관음경'이라 불리면서 관음신앙 성립에 큰 영향을 준 민간 경전으로 독송되었다. 또한 수나라의 천태대사 지의는 '법화경'의 교리를 체계적으로 정립, 해석함으로써 화엄사상과 함께 중국불교 교학의쌍벽을 이루는 천태종을 수립하였다.
'법화경'이 모든 경전 가운데 가장 널리 독송되고 많은 주석서가 씌어진 이유로는 다음의 네 가지를 들 수 있다.
첫째, '법화경'은 독송하기에 매우 우아하고 편리한 경전이라는 점이다. '법화경'은 자신이 독송하거나 타인이 독송하는 소리를 들어도 깊은 종교적 감명을 받게 된다. 범어에서 한어로 옮겨진 미려한 번역문도 아름답거니와 내용도 종교적인 색채가 풍부하여 잔잔한 감동의 세계로 이끈다.
둘째, '법화경'에는 '경권수지(經卷受持)'를 권하는 문장이 많다. 본 경전에서는 이 경을 받아 지니는 공덕이 매우 크다고 설해지고 있으며 이 점은 '법화경'의 후반에서는 '법화경'을 수지하고 독송하며 해설, 서사, 공양하면 큰 공덕을 얻는다고 자주 설해진다. 여기서의 공양이란 '법화경'의 경권을 법신사리(法身舍利)로서 불단에 모시고 향과 꽃으로써 공양하고 예배, 찬탄하는 것을 말한다. 물론 경전 수지의 공덕은 '반야경'에서도 강조되고 있지만 사경의 측면에서 본다면 '법화경'의 경권 수지는 매우 성행했다. 그 한 실증으로서 네팔, 중앙아시아 등지에서도 '법화경'의 범어 필사본이 다수 발견되고 있는 것이다.
셋째, '법화경'은 부처님의 대자비를 설한다. 이 점도 '법화경'이 존중받는 이유 중의 하나라고 생각된다. '법화경'의 비유품에서는 부처님의 대자비를 다음과 같이 표현한다.
온갖 중생 그 모두 내 자녀이거니와
향략에 깊이 탐착하여 지혜 지닌 자 없도다.
삼계는 평안하지 않아서
마치 불난 집 같으니
괴로움 가득하여 매우 두렵도다.
생로병사와 우환의 불길이 항상 타오르고 있도다.
여래는 불난 집(화택: 火宅)같은 삼계(三界)를
이미 벗어나 고요히 임야에 한가하게 머물지만
저 불길 속에 있는 중생 모두가 내 자녀이거늘
이제 여기 이리도 고난이 많아
오직 나만이 구할 수 있도다.
타이르나 이를 아니 들으니
욕망에 탐착함이 깊은 탓이니라.
이 밖에도 '법화경'에는 '궁자의 비유', '좋은 의사의 비유' 등과 같이 부처님 의 대자비를 보여주는 내용이 많다.
넷째, '법화경'은 웅대한 불신론(佛身論)을 전개한다. '법화경'의 '여래수량품'에서는 이 세상에 출현하신 석가모니 부처님을 가야근성(伽耶近城)의 부처님이라고 부르고 있다. 붓다가야에서 성불하신 석가모니 부처님은 팔십 세의 나이로 쿠시나가라에서 입멸하셨지만 이는 중생을 제도하기 위해서 생명을 보이신 방편신(方便身)일뿐, 실은 무한한 과거에 성불하신 구원실성(久遠實成)의 부처님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부처님의 수명은 무량하다는 것이다. 즉 '법화경'은 역사적, 인격으로서의 석가모니 부처님이 불법을 펴기 위한 방편신(方便身)이며 석가모니 부처님의 법신은 영원하다는 신앙의 요체를 설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 천태종(天台宗)의 근본경전이고, 현재 한국불교 근본경전의 하나로서 불교전문강원의 수의과(隨意科) 과목이다. 매우 넓은 범위에 걸쳐 여러 민족에게 애호되었던 이 경은 기원 전후에 서북인도에서 최초로 소부(小部)의 것이 만들어졌고, 2차에 걸쳐 증보되었다.
한국에는 구마라습(鳩摩羅什)이 번역한 《묘법연화경》 8권이 가장 널리 보급되었고, 제25품 <관세음보살보문품(觀世音菩薩普門品)>은 관음신앙의 근거가 되어 존중되어 왔다. 가장 중요한 사상은 회삼귀일사상(會三歸一思想)이다. 삼승(三乘)이 결국 일승(一乘)으로 귀일(歸一)한다는 것으로 부처가 설한 여러가지의 법(法)은 깨달음에 도달하기 위한 방편일 뿐, 시방불토(十方佛土)에는 오직 일불승(一佛乘)의 법만이 있음을 밝혀 부처가 되는 길은 누구에게나 가능하다는 것을 천명한 것이다. 이 사상은 한국불교의 전통을 회통적 귀일불교(會通的歸一佛敎)로 이끌었고, 한민족의 화사상(和思想)에도 큰 밑거름이 되었다. 7권 28품.
묘법연화경 경판
《삼국유사》에 이 경의 이름이 보이고, 의천(義天)의 《신편제종고장총록(新編諸宗敎藏總錄)》에 이에 대한 연구주석서들이 보이고 있어 삼국시대부터 널리 유통되었음을 알 수 있다. 고려시대에는 공덕경(功德經)으로 되어 필사(筆寫) 및 간행이 활발했는데, 초기에는 주로 왕실을 중심으로 금과 은의 사경이 성행했고, 후기에는 금자원(金字院)·은자원(銀字院) 등 사경 전문기관을 설치해 금·은으로 대장경을 필사했다.
조선시대에는 배불숭유정책(排佛崇儒政策)으로 사찰이 핍박을 받았지만 경전은 꾸준히 간행되었다. 이 때는 경전독송이라기보다는 경전신앙(經典信仰)에 의해 시주자들의 공덕을 위해 간행되었다. 고려 때의 법화경 유통에 대한 공덕사상이 조선 초에도 계승되어 금자법화경(金字法華經)이 여러 번 이루어졌으며, 세조 때에는 간경도감을 설치해 불교경전을 간행했다. 현존판본을 보면, 고려시대의 것이 3종이고 조선왕조의 것이 117종이며 현존하는 법화경판은 34종 3036매이다.
묘법연화경 문화재 지정
지정명칭이 《묘법연화경》인 것 가운데 대표적인 문화재를 들면 다음과 갈다.
① 1373년(공민왕 22) 다갈색의 저지(楮紙)에 은니로 쓴 것이다. 당시 봉상대부 지옥주사로 있던 허칠청(許七淸)의 시주로 간행되어 보존이 잘 되어 왔다. 국보 제185호.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② 책끝에 1240년(고종 27) 최이(崔怡)의 명으로 사일(四一)이 입수한 송본(宋本)에 의거, 조판(雕板)했다는 기록이 있다. 2첩 중 간기(刊記)를 잃은 판본은 자획(字畵)에 마멸이 없고, 인쇄가 깨끗하다. 지질도 두껍게 잘 뜬 저지가 흰색을 그대로 띠고 있다. 보물 제692호.
③ 보물 제692호와 동일 판본으로 책끝의 기록으로 보아 전(前) 보양판관 김씨 등의 시주로 펴낸 것임을 알 수 있다. 시기는 고려 말경으로 추정된다. 보물 제962호. 관문사 소장.
④ 보물 제692호와 동일 판본이다. 책끝에 도움을 준 시주자들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어 고려 말쯤 펴낸 것으로 보인다. 보물 제977호. 개인 소장.
⑤ 1288년(충렬왕 14) 승려 재색(齋色)이 간행한 것이다. 본문은 매행 16자씩 배열하고, 윗부분에는 과주(科註)를 달아 본문과 선(線)으로 연결되게 했다. 보물 제918호. 개인 소장.
⑥ 1382년(우왕 8) 판각된 소자본(小字本) 《법화경》의 후쇄본 및 복각본(覆刻本)이다. 보물 제960호. 개인 소장.
⑦ 정확한 간행시기는 알 수 없으나, 1401년(조선 태종 1) 신총(信聰)이 태조의 명으로 간행한 《수능엄경(보물 제759호)》과 본문 글씨가 같아 그 때 간행된 것 같다. 보물 제968호. 호암미술관 소장.
⑧ 권4~권7에 해당하는 책. 1405년(태종 5) 안심사에서 간행하였다. 책끝에 권근(權近)의 발문이 있으며, 청색 명주로 된 표지 위에 <묘법연화경 권제사지칠(妙法蓮華經卷第四之七)>이라는 금니(金泥)로 쓴 제첨이 붙어 있다. 보물 제961호. 원명사 소장.
⑨ 1405년(태종 5) 성달생·성개 형제가 아버지의 명복을 빌기위해 옮겨 쓴 것을 신문이 목판에 새겨 찍어낸 것이다. 책머리에 고려 우왕의 극락왕생을 위해 정씨(鄭氏)라는 사람이 시주하여 새긴 변상도(變相圖)가 붙어 있다. 보물 제971호.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⑩ 1448년(세종 30) 효령대군(孝寧大君)과 안평대군(安平大君)이 발원하여 간행한 것이다. 책머리에 변상도, 책끝에 안평대군이 손수 써서 새긴 발문이 있다. 보물 제766호. 개인 소장.
⑪ 1482년(성종 13) 인수대비(仁粹大妃)가 명숙공주(明淑公主)의 천도(薦度)를 위하여 1470년 세조비인 정희대왕대비(貞喜大王大妃)에 의하여 판각된 목판에서 찍어낸 경전 중 하나이다. 권말에 김수온(金守溫)·강희맹(姜希孟)의 발문이 있다. 보물 제936호. 개인 소장.
⑫ 1488년(성종 19) 성종의 계비인 정현왕후(貞顯王后)가 딸 순숙공주(順淑公主)의 천도를 위하여 역시 1470년에 판각된 목판에서 찍어낸 것으로, 왕실의 불교신앙의 일면을 살펴볼 수 있다. 보물 제950호. 개인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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