붓다의 죽음 안양규 동국대 불교학과 교수
I. 서 언
『대반열반경』(Mahaparinibbana-Suttanta, 이하 열반경)은 붓다의 마지막 순간을 자세히 기록하고 있다. 열반경이 편집될 시기의 불교도들이 어떻게 붓다의 죽음 또는 그의 본질을 이해하고 있었는가를 보여주는 것이다. 붓다의 죽음을 주제로 하고 있는 대반열반경은 크게 두 종류로 나눌 수 있다. 대승불교의 대반열반경과 초기불교의 대반열반경이 그것이다. 두 종류의 대반열반경이 모두 붓다의 입멸을 소재로 다루고 있지만, 그 접근 방식과 그 입멸에 관한 해석에는 커다란 차이가 보인다.
본고에서는 초기 불교의 열반경을 중심으로 하여 역사적인 붓다의 열반을 살피고자 한다. 붓다는 자신의 죽음, 내지 입멸을 어떻게 맞이하였는지 그리고 초기 불교도들이 어떻게 붓다의 입멸을 기억하고 이해하고 있었는가를 살핌으로써, 성인의 죽음이 우리에게 던져주는 의미에 대해 살피고자 한다.
이런 주제들을 다루기에 앞서 죽음과 열반이라는 용어에 대해 명확히 해 둘 필요가 있다. 열반 내지 대반열반이라는 말이 흔히 붓다의 위대한 죽음을 대신해서 관용적으로 사용되고 있다. 그렇지만 엄밀히 말해서 “죽음”과 “열반 내지 대반열반”은 분명히 다르다. 붓다고사(Buddhaghosa)의 정의를 빌리자면, “죽는다”에 해당하는 팔리어는 “kalam Karoti”이다. Kala는 문자 그대로 시간을 의미하는 것으로, 인간의 생명과 관련하여 쓰일 때는 이 세상에 태어날 때 받은 수명의 길이를 말하는 것이다. Kalam Karoti는 자신이 부여받은 시간 즉, 이 세상에서 머물 수 있는 육신의 시간을 마친다는 의미이다. 이 세상에 태어나는 자는 모두 자신에게 배당된 kala가 있는 것이다. 붓다도 예외일 수 없다. 죽음은 태어난 자는 누구나 피할 수 없는 것이지만 열반은 生ㆍ死의 시간을 벗어난 것이다.
붓다고사에 의하면, 붓다는 반열반에 들어가기 위해 자신의 수명을 다했다(kalam Akari)고 한다. 붓다의 죽음이라고 언표할 땐 붓다의 육신의 죽음을 의미하는 것으로 이해해야 하는 것이다. 붓다의 입멸이라고 했을 땐 불생불멸의 열반에 들어간 붓다라고 이해하는 것이 정확하다. 본고에서 붓다의 죽음이라고 했을 땐 육신과 관련된 것임을 다시 주지시키고 싶다. 그렇지만 본고에서 이 두 용어가 명확하게 구분되어 사용되지 못하는 경우도 볼 수 있을 것이다. 그 이유는 열반경에서 육신의 죽음과 동시에 성취되는 열반이 운위되기 때문이다.
II. 죽음을 맞이하는 붓다의 태도
우선 열반경의 내용을 간결히 정리해 두자. 대반열반경은 왕사성의 영취산에서 붓다가 아자투사투(Ajatasattu)왕의 자문에 응답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붓다는 날란다를 거쳐 파탈리푸트라에서 간지즈강을 건너 베살리(Vesali)에 도착한다. 벨루바(Beluva)에서 우안거를 시작한 직후, 붓다는 격심한 질병에 걸리게 된다. 파바(Pava)에서 춘다가 올린 최후의 공양 수카라맛다바(Sukaramaddava)를 드시고, 붓다는 질병에 걸리게 된다. 붓다는 쿠시나라(Kusinara)의 외곽에 있는 동산에서 살라(Sala) 나무 밑에서 입멸하고 말라족이 붓다의 장례를 치른다. 열반경은 불탑을 건립하는 이야기로 끝을 맺는다.
이상 붓다의 마지막 여정 중에서 먼저 붓다가 겪었던 질병을 살펴보자. 벨루바(Beluva)에서 우안거를 시작한 직후 붓다에게 격심한 질병이 일어났고 그 질병은 너무나 고통스러워 죽을 정도였다고 경전에서 묘사하고 있다. 그러나 붓다는 자신의 제자들이 여러 곳에 흩어져 있어 마지막으로 자신을 볼 기회가 사라지게 될 것을 염려하여 자신의 병고를 극복하여 수명을 연장하였다.
“붓다는 질병의 고통을 정념하고 정지한 채 불평하지 않고 견디어 냈다. 그리고 생각했다.‘나의 제자들에게 알리지 아니하고 비구 승가에게 기별하지 아니하고 반열반에 들어가는 것은 적절하지 아니하다. 나는 이 질병을 정진력으로 이겨내어 수명을 붙잡아 두어야 하겠다.’“ 붓다가 이 질병을 이겨내지 못했었더라면 죽을 수밖에 없었다. 노년에 질병을 겪는 것은 붓다도 예외가 아니었다. 다만 붓다는 질병의 고통에도 불구하고 정신을 잃거나 혼미하지 않았던 점을 주목해야 할 것이다.
열반경 자체 내에서, 붓다는 자신의 육체를 낡아빠진 수레에 비유하고 있다. "나는 이제 늙고 노쇠하고 고령이다. 인생의 여로를 꽤 걸어 80세이다. 마치 낡은 수레가 가죽끈의 도움으로 움직이듯이, 여래의 몸도 가죽끈의 도움으로 움직일 뿐이다.” 다른 경전에서도 붓다는 노년의 육신에 대해 이렇게 말하고 있다. “지금 여래의 몸은 피부와 살이 다 많이 느슨해졌다.
오늘의 이 몸은 이전과 많이 다르다. 왜냐 하면, 대개 몸을 받으면 질병으로 핍박(逼迫)을 받기 마련이다. 마땅히 병이 든 중생은 병으로 핍박을 받고, 죽음에 처한 중생은 죽음의 핍박을 받는 법이다. 지금 여래는 이미 늙었다. 내 나이 이미 80이 넘었느니라.”
열반경에서 장거리 여행 도중 나타나는 노령의 흔한 피로와 질병을 목격하게 된다. 경전에서 우리는 붓다의 노쇠한 징후와 모습을 여기저기에서 목격할 수 있다. 춘다가 올린 최후 음식을 취한 후 붓다는 피를 배설하는 병고를 당하거나 갈증을 호소하는 장면이나 몸이 불편해 누워 휴식을 갖는 장면도 볼 수 있다. 2600여 년 전 그 당시로 보아 80세라는 고령의 나이에 이른 붓다는 자주 질병으로 고통 받고 있었던 것으로 경전은 전하고 있다. 그 이전에도 붓다는 등병이나 두통으로 고통 받았다고 경전은 전하고 있다. 결국 붓다의 육신도 우리의 육신과 다를 바가 없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우안거 때 발생한 병고를 극복하고 베살리로 돌아와 3개월 후에 입멸할 것이라고 붓다가 선언하자 아난다는 슬퍼한다. 이에 붓다는 아난다에게 가르친다. “아난다여! 이전에 소중하고 사랑스런 모든 것에 변화가 있고, 이별이 있고, 소멸이 있다고 내가 가르치지 않았느냐? 아난다여, 어떻게 이것이 가능하겠는가? 생(生)한것, 존재하게 된 것, 조립된 것은 반드시 멸하게 마련이다. 어떻게 소멸하지 않도록 기대할 수 있겠는가? 그러한 것은 불가능하다.” 상기 인용문은 분명히 어느 누구도, 심지어 붓다조차도 무상법(無常法)을 벗어날 수 없음을 보여주고 있다.
팔리어본 『열반경』에 의하면, 붓다가 춘다가 준비한 음식을 먹을 때, 치명적인 질병이 일어났다. 붓다는 그 질병의 고통을 견디어냈다. 그 날 새벽에 입멸한다. 춘다가 준비한 음식을 먹은 후 질병에 걸린 것은 역사적 사실이지만 춘다의 음식이 곧 질병의 원인이라고 속단하기는 온전하지 못하다.
붓다는 춘다의 공양이 정각 직전의 수자타 공양처럼 최상의 과보를 가져온다고 칭찬하며 춘다를 위로한다. 정각 전의 공양처럼 입멸 직전의 최후 공양이 붓다의 원기를 회복시키는데 도움을 주었다고 역설함으로써, 붓다가 단순히 식중독으로 죽었다는 생각을 부정하고 있다.
붓다는 쿠시나라에서 입멸하였다. 쿠시나라는 붓다 당시에도 매우 조그마한 마을이었던 것 같다. 붓다가 이곳에서 입멸하려고 하자 시자 아난다가 큰 도시에서 입멸할 것을 붓다에게 간청한다. 세속적인 관습에 순응하려는 아난다의 간청을 붓다는 거절한다. 즉 과거 전생에 이 땅은 풍요롭고 아름다운 거대한 수도였기 때문에 여기서 입멸하겠다는 것이다. 지난 과거세에 여러 번 이곳에서 전륜성왕으로 죽었지만 이번 생애에는 마지막으로 붓다로서 입멸하여 다시 태어나는 일이 없을 것이다라고 밝히고 있다. 붓다가 자신의 고국 카필라바수트를 가는 도중 쿠시나라에서 입멸했다고 해석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이렇게 되면 붓다는 자기가 원하지 않는 곳에서 객사한 것이다. 이런 객사설에 대항하여 붓다는 의도적으로 쿠시나라를 선택했다는 것이다.
쿠시나라의 살라(Sala) 숲에 도착한 붓다는 아난다(Ananda)에게 말했다. “아난다여! 너는 한 쌍의 살라나무 사이에 침대(mancakam)의 머리를 북쪽으로 향하도록 준비하여라. 아난다여! 나는 지쳐있어 누워야겠다.” 아난다는 붓다의 뜻대로 침대를 준비했다. 경전은 이어 붓다의 마지막 자세를 묘사하고 있다. “그때 세존은 우협으로 사자와(獅子臥)(siha-seyyam)를 하고 한 발을 다른 한 발에 포갠 채 정념(正念)하고(sato) 정지(正智)하고(sampajano) 있었다.” Sato와 sampajano는 붓다의 누운 자세를 묘사하는데 있어 주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Sato와 sampajano는 팔리어 《열반경》 자체 내에서 여러 번 등장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몇 가지 예를 들면 안거 직후 붓다의 질병 극복을 묘사할 때, 수명을 방기할 때, 마지막 공양 직후 질병이 일어날 때, 이 두 용어가 함께 사용되고 있다. 붓다가 노령이라는 이유로, 여행의 피로라는 이유로, 질병이라는 이유로 평상시와 달리 정신이 흐려있지 않았고 오히려 깨어 있음을 역설하고 있는 것이다. 자칫 이런 상황에선 깨어있기가 쉽지 아니한 것인데 경전은 붓다가 정념을 유지하고 있었다라고 밝히고 있다. 사자라는 이미지를 이용하여 강건함과 위엄을 붓다의 모습에 부가하고 있다.
팔리어본?열반경?에 의하면 붓다는 제자들로부터 불법에 의심이 없다라는 말을 듣고 다음과 같은 최후의 가르침을 남긴다. “비구들이여! 이제 나는 너희들에게 말한다. 제행(諸行)은 소멸되기 마련이다. 방일하지 않고(appamadena) 정진하라.” 무상한 세계에서 벗어나도록 정진하라는 가르침은 붓다의 유언으로 제자들에게 남겨졌을 법한 내용이다. 불방일의 원어는 appamada 인데 부정접두사 a와 pamada로 이루어진 말이다. Pamada는 어떤 자극에 의해 정신이 마비된 것을 가리키는 말로 특히 만취한 상태를 가리킨다. 따라서 appamada는 마음이 깨어 있는 상태를 의미한다.
단순히 무엇인가를 게으름 피우지 않고 열심히 하는 것이(diligent) 아니라 마음이 또렷이 각성(覺醒)한 상태(vigilance)이다. 불방일의 가르침은 결국 붓다(깨어 있는 자, 覺者)라는 말과 상통하는 것이다. 붓다는 최후의 유교로 불방일을 남겼다는 것은 붓다 자신도 최후 순간까지 “깨어있음”을 의미하게 되는 것이다.
《열반경》은 붓다가 열반에 들기 전 이 세상에서의 그의 마지막 상태를 설명하고 있다. 붓다는 최후로 제자들에게 가르침을 설한다. 그러고 나서 ”세존은 제1정려(jhanam)에 이른다. 제1정려에서 나와 제2정려에 이른다. 제2정려에서 나와 제3정려에 이른다. 제3정려에서 나와 제4정려에 이른다. 제4정려에서 나와 공무변처(空無邊處)에 이른다. 공무변처에서 나와 식무변처(識無邊處)에 이른다.
식무변처에서 나와 무소유처(無所有處)에 이른다. 무소유처에서 나와 비상비비상처(非想非非想處)에 이른다. 비상비비상처에서 나와 상수멸(想受滅)에 이른다. 그리고 나서 세존은 상수멸에서 나와 비상비비상처에 이른다. 비상비비상처에서 나와 무소유처에 이른다. 무소유처에서 나와 식무변처에 이른다. 식무변처에서 나와 공무변처에 이른다. 공무변처에서 나와 제4정려에 이른다. 제4정려에서 나와 제3정려에 이른다. 제3정려에서 나와 제2정려에 이른다. 제2정려에서 나와 제1정려에 이른다. 제1정려에서 나와 제2정려에 이른다. 제2정려에서 나와 제3정려에 이른다. 제3정려에서 나와 제4정려에 이른다. 제4정려에서 나온 즉시 반열반하였다.”
붓다의 입멸과정이 정각처럼 선정과 밀접히 연계되어 있다는 것은, 붓다는 마지막 순간까지 늘 “깨어 있음”을 말하려는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깨어있는 자”를 의미하는 붓다(Buddha)라는 용어가 역사적인 붓다에게 가장 맞는 호칭일 것이다. 육신이 죽는 순간에서도 의식이 혼미한 것이거나 신비로운 황홀 상태에 있었던 것이 아니라 자신과 그 주위에 일어나고 있는 것에 대하여 또렷하게 깨어있음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붓다의 탄생을 전하는 문헌에서도 붓다는 탄생할 때 또렷이 깨어있었다고 강조하고 있다. 탄생부터 입멸까지 붓다는 온전하게 깨어 있는 사람(覺者)이었던 것이다.
III. 붓다의 죽음에 대한 제자들의 태도 및 견해
1) 열반경에 보이는 견해
붓다가 입멸하자 제자들이 붓다의 입멸과 관련하여 게송을 짓는다. 이들 게송들을 살펴보면 붓다의 입멸을 목격한 제자들의 심정이나 견해를 엿볼 수 있다. 열반경엔 4개의 게송이 나오고 있다.
먼저 브하르마 사함파티(Brahma Sahampati)의 게송을 소개하자.
“이 세상의 모든 존재들, 모든 육체들은 부수지고 만다.
이 인간 세계에서 필적할 만이 없는 스승조차도
위대한 힘을 갖춘 여래ㆍ정득각(Sambuddho)이 반열반하였네“
천신의 왕인 제석천(Sakka)은 붓다의 입멸을 지켜본 뒤 다음과 같이 게송을 남겼다.
“제행(諸行)은 무상(無常)하여 생멸한다,
만들어진 것은 소멸한다. 제행의 소멸이 행복이네“
천안 제일의 아누룻다(Anuruddha)는 다음의 게송을 짓는다.
“들숨도 날숨도 없이, 마음은 동요없이 머물고
탐욕에서 자유로운 성자는 죽어 평화를 이루었네
꺼진 불꽃처럼 성자의 마음은 해탈하였네“
붓다를 그림자차럼 따라다니며 시중하였던 아난다(Ananda)는 이렇게 읊고 있다.
“머리카락이 주뼛 설 정도로 두려웠네
모든 것을 성취한 정등각이 반열반하니“
이상 네 개의 게송은 붓다의 죽음을 직접 목격한 자들의 것으로 경전에 전해져 내려오고 있기 때문에 붓다의 직제자들의 심정을 잘 보여주고 있다. 브라흐마 사함파티는 육신의 죽음은 -설령 붓다조차도- 피할 수 없는 사실임을 되새기고 있다. 제석천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제행의 소멸 즉 열반을 언급하고 있다. 아누룻다의 게송은 붓다의 죽음 과정을 가장 구체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호흡이 사라지고 마음은 어떠한 동요없이 해탈하였다고 전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아난다의 게송은 붓다를 잃은 일반 제자들의 심정을 잘 대변하고 잇다.
부모를 잃은 아이의 심정 즉 홀로 이 세상을 살아가야 하는 두려움이 잘 드러나고 있다. 아난다의 게송은 아라한과에 이르지 못한 제자들의 슬픔과 두려움을 표현하고 있는 것이어서 아라한과를 이룬 아누룻다의 게송과는 큰 차이가 보인다. 아누룻다는 담담하게 붓다의 죽음을 지켜보고 있는데 비해 아난다는 세속적인 감정을 여과없이 드러내고 있다.
붓다의 죽음에 대한 반응과 태도는 두 가지로 크게 대조되어 나타나고 있다. 번뇌를 다한 제자와 그렇지 못한 제자는 각각 다르게 반응한다. “번뇌를 극복하지 못한 비구들은 울고, 머리를 쥐어뜯고, 손을 공중에 휘저으며 땅에 엎드려 앞뒤로 구르고 울부짖는다. ‘너무나 빠르구나! 세존의 입멸이; 너무나 빠르구나! 선서의 입멸이; 너무나 빠르구나! 세상의 눈이 사라짐이.’ 탐욕에서 벗어난 비구들은 정념하고 정치한 채 인내하며 말했다.
‘제행은 무상하다. 슬퍼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 세속적인 번뇌에서 벗어난 아라한들은 붓다의 죽음을 목격하며 붓다가 가르친 제행무상을 기억하는데 비해 그렇지 못한 비구들은 머리를 헤쳐 풀고, 땅에 엎드려 앞뒤로 구르는 등 극단적인 슬픔을 표출하고 있는 것이다. 사랑하는 부모를 잃은 자식의 심정과 같은 것이다.
이렇게 슬퍼하는 것은 아무런 소용이 없다는 것을 아라한들은 가르치고 있다. 아누룻다는 슬퍼하고 있는 제자들에게 붓다의 가르침을 상기시키고 있다. “벗들이여! 이제 울지 마시오. 신음하지 마시오. 일찍이 세존께서 가르치지 않았습니까? ‘즐겁고 기쁜 것들은 모두 변하여 헤어지게 되고 사라질 수밖에 없다’고. 왜 이렇게 슬퍼합니까? 태어난 자, 생성된 것, 만들어진 것은- 그것이 무엇이든- 모두 사라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것이 사라지지 않게 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아누룻다는 제행이 무상하다는 것을 상기시키며 붓다의 육신조차도 부모화합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므로 소멸될 수밖에 없다고 가르치고 있다. 따라서 사라질 수밖에 없는 육신을 영속하게 만들려고 하는 것은 불가능한 것이므로 이런 엄연한 사실을 불평하거나 바꾸거나 슬퍼한다고 해서 무슨 소용이 있느냐고 가르치고 있는 것이다.
2) 열반경 주석서 및 설일체유부의 논서에 보이는 견해
붓다고사나 설일체유부는 붓다의 잠재 수명을 100세 내지 120세로 보고 있기 때문에 그 한계를 넘어서는 수명 연장이 가능하지 않는 것으로 보았다. 붓다고사는 붓다가 새로운 수명을 연장한 것이 아니라 시기 상조의 죽음을 연기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주장함으로써 업보의 교리와 상충하는 것을 피할 수 있었다. 한편 유부의 논사들도 붓다가 연장한 수명은 부이숙업(富異熟業)을 수이숙과(壽異熟果)로 전환한 것으로 여김으로써 새로운 수명을 생성시킨 것이 아님을 주장했다. 이상과 같은 불타관은 매우 현실적이면서도 붓다를 지나치게 보통 인간으로 만들지 않고 있다. 한편, 지나치게 신격화되고 있는 것도 반대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붓다고사는 붓다의 육신의 무상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사랑하고 소중한 모든 것으로부터 이별이 있기 때문에, 비록 그(붓다)가 10원만(圓滿)을 성취하고, 정각을 이루고, 법륜을 굴리고, 이중의 기적을 보이고 신들을 감화시켰지만, 태어난 것, 발생한 것, 만들어진 것, 부패하기 마련인 것, 즉 여래의 육신이 쇠퇴하지 않기란 불가능하다.” 《청정도론(淸淨道論)》에서도 불신(佛身)의 무상을 얘기하고 있다. 붓다고사는 이러한 무상법이 붓다의 육신에도 적용된다고 가르치고 있다. “심지어 대인(大人)(Mahapurisa)이 가지고 있는 32 상 80 종호로 그의 육신이 장엄되어 있는 세존도, 비록 그의 법신은 완벽하여 온갖 보배로운 품성을 지니고, 모든 면에서 청정하고, 어떠한 위대한 명예, 어떠한 위대한 명예, 어떤 위대한 신통력 등을 지니고 있지만, 심지어 그분조차도 죽음의 소낙비에 갑자기 소멸되었다. 마치 거대한 불꽃이 빗물에 의해 소멸되어 버리듯이.”
밀린다팡하(Milindapanha)에서 나가세나 비구는 밀린다왕이 왜 붓다가 신통력을 사용하지 않고 입멸하게 되었는가 하는 질문을 예견하여 대답한다; “왕이시여! 발생한 모든 것(bhava)에 관한 한, 세존은 어떠한 욕심도 없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것들은 여래에 의해 비난되었습니다.” 나가세나 비구는 자신의 견해를 강화하기 위해서 경전을 인용한다. “비구들이여! 심지어 약간의 똥 덩어리도 심한 악취를 발생한다. 비구들이여! 나는 매우 잠시라도, 아니 눈 깜짝할 사이의 기간이라도 유(有)(bhava)를 칭찬하지 않는다.” 붓다는 유를 똥 덩어리와 견주고 있다. 똥이 더러워 잠시라도 보관할 필요도 없이, 육체도 마찬가지로 전혀 애착의 대상이 되지 못한다는 것이다. 나가세나 비구는, 붓다가 재생을 가져오는 모든 것을 분뇨에 비견했기 때문에 신통력을 사용하여 有(존재)에 집착하고 더 살려고 하지는 않았다고 결론짓고 있다.
『아비달마대비파사론』은 왜 세존이 수명을 버렸는가 하는 문제에 앞서, 얼마나 많이 붓다는 자신의 수명을 포기했는지 다루고 있다. 두 가지 설이 제시되어 있다. 첫 견해는 석가모니불(釋迦牟尼佛)의 수명은 120세였는데, 그는 80세만 향유하고 나머지 40년은 버렸다. 두 번째 견해는 석가모니불의 수명은 100세였는데, 그는 80세만 향유하고 나머지 20년은 버렸다. 두설 중 어느 것이 옳은지 답을 내리지 않고 계속해서 왜 20년이나 40년을 더 살지 아니하고 80세에 목숨을 포기했는지에 대해서 몇 가지 설을 소개하고 있는데 그 중 하나에 의하면 세존은 수명에 탐욕이 없음을 보여주기 위해 일찍 수명을 버렸다고 한다. 대조적으로 유정들은 수명에 탐착하여 부지런히 원적(圓寂)을 추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붓다의 입멸 원인의 논의에서 우리는 먼저 유념해 두어야 할 것은 붓다의 반열반이 어떤 외적인 요인에 의해 강요되었거나 갑작스런 사고에 의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노구의 몸으로 여행 중 외진 곳에서 자신의 뜻과 상관없이 갑작스럽게 죽음을 맞이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아비달마대비파사론』에서 4종의 죽음을 설명한 뒤 붓다는 횡사가 아님을 분명히 하고 있다. 붓다의 경우에는 자신의 의지력으로 선정에 들어가 반열반에 들었다. 자신의 의도하에 이루어진 점이 횡사와 특별히 다르다. 보통 유정들은 목숨이 다할 대 모든 힘이 다하여 초라하게 보이면서 죽지만, 붓다는 자신의 몸과 위세를 그대로 간직한 점에서 큰 차이가 보인다는 것이다.
수명을 다한 여래 사후 존속문제에 대해 붓다고사는 어떻게 이해하고 있을까? 다음의 주석에서 그의 견해를 엿볼 수 있다. “입멸의 날, 붓다는 다음과 같이 생각하니 행복했다. ‘이제 오늘 나도 수백 수천의 많은 붓다들이 들어간 불사(不死)의 대반열반(Mahaparinibbana)이라는 도시에 들어갈 것이다.”
붓다고사가 열반을 도시로 비유한 것은 단순한 우연이 아니라 의도적으로 이루어진 것이다. 열반의 도시를 묘사하는데 사용된 불사(不死)(amata)라는 말도 주목할 만한 의미가 있다. 붓다는 윤회에서 벗어났으므로 죽어 재생하는 일은 없다. 생자필멸(生者必滅)의 이치가 적용되는 것이 윤회의 세계이다. 열반은 불생(不生)이고 불사(不死)이다. 이런 이유로 열반은 태어남도 죽음도 그리고 죽어 태어나는 일이 없는 것으로 설명된다. 따라서 열반을 성취한 붓다도 불사다 불생이다라고 논리적으로 유추할 수 있을 것이다.
유부의 논사는 붓다의 최후 가르침을 다음과 같이 이해하고 있다. “너희들 비구들은 재묵(裁默)하고 제행(諸行)이 소멸되는 것이다 라고 관찰하라.” 붓다가 최후로 이런 가르침을 설한 이유를 제자들의 슬픔을 막기 위한 것이라고 한다. 비구들이 붓다가 장차 입멸하므로 그 슬픔이 극심하였다. 그래서 붓다는 그 비애를 멈추게 하여 제행무상을 관하도록 한 것이다. 붓다는 최후의 가르침을 통해 무상법에 집착하지 말고 그것을 초월한 법을 추구하도록 했다고 논사들은 이해하고 있는 것이다.
IV. 결 어
육신의 죽음을 맞이하는 붓다의 태도는 한마디로 “깨어 있음”이라고 할 수 있다. 육신의 노쇠, 질병, 죽음을 초연하고 평정하게 대하고 있는 것이다. 질병을 이겨내어 생명을 연장한 것도 자신의 육체에 대한 애착에서가 아니라 제자들을 위한 것이었다. 입멸 3개월 전에 자신의 죽음을 알린 것은 수동적으로 육신의 죽음에 희생당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인 것이다. 무상한 육신의 생사에 구속되지 아니하고 거기로부터 자유로움을 보여준 것이다.
보통 사람들처럼 붓다도 부모로부터 인간의 육신을 지니게 되었으므로 늙고 병들고 죽는다. 붓다는 자신의 신체를 오래된 집에 비유하고 있다. 세월이 지나면 집은 낡아 마침내 허물어지고 말 듯이 육신도 시간의 진행에 따라 노화되어 결국 죽게 된다. 그런데 그 집을 지탱하고 있던 대지는 여전히 계속되듯이 붓다의 육신은 허물어지고 말지만 마음은 대지와 같이 안정되어 있다고 밝히고 있다.
붓다는 육신의 죽음에서 벗어나는 길에 대해 말씀하신다. “지금 여래의 몸은 쇠하고 늙었다. 마땅히 이 육신은 사멸하는 과보를 받아야 한다. 그런 까닭에 모든 비구들아, 너희들은 마땅히 나지도 않고 늙지도 않으며, 병들지도 않고 죽지도 않는 영원히 고요한 열반(涅槃)을 구해야 하고, 은애하는 이와 헤어짐에 있어서 무상(無常)한 것이고 변하는 것이라는 것을 항상 기억하도록 해야 한다.”
범부들은 육신을 '나'(我)또는 '나의 것'(我所)으로 여기며 애착한다. 그러나 붓다는 육신은 무아라고 가르치고 있다. 죽은 앞에서 자신이 애착했던 육신은 허무하게 사라지게 된다. 사람들은 육신의 죽음을 대하면서 두려워하거나 애통해하지만 붓다는 무상한 육신 너머에 있는 열반을 추구하라고 가르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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