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철스님 백일법문

[스크랩] 백일법문 [제5장 열반경 등의 사상] 2. 인왕반야경

소리없는 아우성 2012. 12. 10. 09:06
2. 인왕반야경

 

세존사이트 / 성철스님 법어집 / 장경각 / 불기 2536.4.

 

이 경전의 본래 명칭은 인왕반야바라밀경 (仁王般若婆羅蜜經)으로 반야경 계통의 경전이지만 여타의반야경과는 다소 상이하여 많은 반야경 중 최후에 설해진 경이라고 여겨집니다. 신라나 고려에서 나라와 국민이 안녕을 위하여 자주 개최되던 인왕백고좌회(仁王百高座會)의 사상적 근거가 된 경전입니다. 

여기에 인용한 것은 이제(二諦)에 관한 일부분으로, 그 내용은 제일의제(第一義諦)와 세제(世諦)의 관계가 둘인가 하나인가 라는 질문에 대하여 이제는 하나며 둘이 아니라는 것〔一非不二〕임을 답변한 것입니다. 

보살이 제일의(第一義) 가운데서 항상 이제(二諦)를 비추어 중생을 교화하니 부처와 중생이 하나며 둘이 아니니라. 왜냐하면 중생이 공(空)한 까닭에 보리(菩提)를 공한 데 둘 수 있고, 보리가 공한 까닭에 중생을 공한 데 둘 수 있으며, 일체법이 공한 까닭에 공공(空空)이니라. 왜냐하면 반야는 모습이 없고 이제(二諦)는 허공이니 반야가 공하여 무명으로부터 살바야해 (薩婆惹海)에 이르기까지 자신의 모습이 없고 다른 것의 모습이 없기 때문이다. 
다섯 가지 눈〔五眼〕을 성취할 때는 보아도 보는 것이 없으며 내지 일체법도 또한 감수하지 않느니라. 
菩薩이 於第一義中에 常照二諦하여 化衆生하니 佛及衆生이 一而無二니라. 何以故오 以衆生空故로 得置菩提空이요 以菩提空故로 得置衆生空이요 以一切法空故로 空空이니라 何以故오 般若無相하고 二諦虛空이니 般若空하여 從無明乃至菩婆若海가 無自相無他相故라. 五眼을 成就時에 見無所見이요..... 乃至一切法도 亦不受니라. [大正藏 8, p. 829 상. 중]

'보살이 제일의 가운데서 항상 이제를 비추어 중생을 교화한다'는 것은 쌍차(雙遮)를 내버리고 쌍조(雙照)에 입각해서 하는 말입니다. 이제(二諦)란 제일의제(第一義諦)와 세제(世諦) 두 가지 진리를 말합니다. 제일의제는 진제(眞諦)·승의제(勝義諦)라고도 하는데, 이는 일반 세간에 드러난 상식으로 범부가 아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이 둘을 모두 버리는 것을 쌍차라 하고, 그 둘을 모두 관조하는 것을 쌍조라고 합니다.

또 '부처와 중생이 하나며 둘이 아니다'라는 대목이 있는데 여기서 한편으로 의심되는 바가 있을 것입니다. 앞에서는 오직 부처님의 경계에서만 십이인연을 알고 중도를 알며 부처님의 경계에 들어가기 전에는 모른다고 했고, 여기서는 보살이 항상 이제를 비춘다고 하니 그러면 보살도 이제를 쌍조하여 중도를 아는 것이 아닌가 하고 의심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여기서는 부처와 중생이 하나이고 둘이 아니라는 데에 참된 의미가 있습니다. 이 말은 십이인연과 중도를 바로 깨쳐서 실제로 쌍차쌍조된 사람은, 그 사람을 보살이라 하든지 중생이라 하든지 부처라 하든지 마구니라 하든지 아무런 관계가 없다는 것입니다. 오직 중도를 바로 깨쳐 이제를 쌍조하는 데에 중점이 놓여 있지 그 명칭은 무어라 해도 관계없습니다.

그러므로 여기에서 보살이 본다는 것과 앞에서 불지(佛智)에 들어가야만 십이인연을 알 수 있다는 것은 서로 모순되지 않습니다. 원시경전의 초전법륜에서는 아라한이 여섯이 있다고 설하여 법을 바로 깨친 사람을 아라한(阿羅漢)이라 표현했습니다. 여기서 아라한이란 말은 중도를 깨친 사람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깨친 내용이 동일하기 때문에 표현에 있어서는 아라한이라 하든지 보살이라 하든지 부처라 하든지 아무런 관계가 없습니다. 그 다음 '이제(二諦)가 허공'이라는 것은 쌍차(雙遮)에 입각해서 하는 말입니다. 쌍차에서 이제가 완전히 떨어지면 이제(二諦)를 쌍조(雙照)하는 것이 안될래야 안 될 수 없습니다.

그래서 누구든지 일체가 공함을 깨쳐서 쌍차가 되면 그곳이 곧 쌍조이니, 이것은 진공(眞空)이면 묘유(妙有)요 묘유이면 진공이라는 말과 상통합니다. 쌍차라 하든지 쌍조라 하든지 그 내용은 결국 똑같은 것이며, 쌍차쌍조하여 중도를 정등각(正等覺)하면 거기서 여래의 5안(五眼) 즉 육안(肉眼)·천안(天眼)·혜안(慧眼)·법안(法眼)·불안(佛眼)의 다섯 가지 눈〔五眼〕을 원만하게 구족하여 일체법에 걸림이 없이 자재하게 됩니다.

이렇게 되면 보살이라 해도 좋고 아라한이라 해도 좋고 중생이라 해도 좋고 무어라 해도 좋습니다. 실제로 중도를 깨쳐서 그 경계가 쌍차쌍조가 됐나 못 됐나 이것이 문제지 말에는 아무런 관계가 없습니다.

 

 

 

 

출처 : 고전 취미 붙이기
글쓴이 : 無爲修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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