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 부처님의 전도선언(1)
불교 교단의 태동
부처님이 바라나시(波羅捺)의 이시파타나 미가다야(仙人住處 鹿野苑) 에서 다섯 수행자를 대상으로 했던 최초초의 설법은 성공적이었다. 그 설법의 대요는 이미 앞에서 설명한 대로이다. 한 경전*(남전 상응부경전(56.11,) 여래소설. 한역잡아함경 (15.15) 轉法輪)에서는 다음과 같은 구절을 기록해 놓고 있다.
부처님이 이와 같이 법륜을 굴렸을 때(정법을 宣說했을 때) 땅에 있는 신들이 큰소리로 말했다.
“부처님께서는 바라나시의 이시파타나 미가다야에서 위없이 위대한 법륜(法輪)을 굴리셨다. 그것은 이미 사문이나 바라문, 또는 천신 ㆍ악마ㆍ범천 그밖에 이 세상 누구라도 뒤집을 수 없는 것이다.“
이 경전은 계속해서, 하늘에 있는 여러 신들도 그것을 듣고나서 차례차례로 소리 높여 같은 말을 했던 까닭을 설명한 뒤 이렇게 끝맺고 있다.
"눈 깜짝할 찰나에 그 음성은 범천의 세계에까지 달했다. 그리고 대천세계(大千世界)는 크게 흔들리며 진동했다. 또한 무한하고 광대한 광명이 이 세상에 나타난 많은 신들의 위광까지도 초월했다. "
이러한 묘사는 물론 신화적 표현이다. 이러한 것들이 의미하는 것은 예부터 일정하게 어떤 사실을 상징하는 것이다. 그것은 결코 애매한 것이 아니다. 이 구절의 일부분인 천지의 신들이 최초의 설법을 축하하고 ‘누구도 뒤집을 수 없다’고 말하고 있다. 이것은 이로써 불법이 확고부동하게 확립되었음을 신화적 표현으로 나타낸 것이다. 또 뒷부분에서 ‘세계가 진동하고 무량광대한 광명이 나타났다’는 것은 앞서 말한 바 부처님의 생애에서 최상의 큰일(大事)임을 나타내는 경전문학의 수법이다. 예부터 불교도들이 이 최초의 설법을 ‘초전법륜’ 이라하여 부처님의 생애 가운데 중요한 사건으로 꼽은 사고방식의 근원도 여기에 있다.
여기서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앞에서 말했던 ‘정각자의 고독’에 관한 것이다. 그것은 부처님이 아직 보리수 밑에 앉아 있을 때의 일이다. 경전은 그때를 ‘존경할 것도 없고 의지할 곳도 없는 생활은 괴롭다…’고 불가사의한 부처님의 가슴 속을 묘사하고 있다. 부처님은 이제 그 고독을 떨치게 된 것이다. 그러나 부처님의 할 일은 이제부터였다. 부처님은 정녕 정각자였다. 부처님이 자신에게 그것은 더없이 기쁜일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문득 깨달은 것은 그러한 깨달음을 가슴 속에 품고 있는 사람은 이 넓은 세상에서 혼자뿐이라는 사실이었다. 그것은 몹시 외롭고 불안한 일이었다.
사실 사상이라는 것도 개인에게만 내재하는 한, 아직 사상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그것을 세상에 드러내야만 비로소 하나의 확립된 사상이 된다. 그러하여 부처님은 마침내 설법을 결심하고 사제(四諦)라는 실천체계를 갖춘 뒤 이시파타나 미가다야에 이르러 다섯 명의 비구를 설득시켰다. 앞서 인용한 《전법륜경》의 말씀은 이로 인해 비로소 이 세상에 불교라는 종교가 생겨나게 되었음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사람들의 이익과 행복을 위해
이로부터 얼마 동안 부처님은 이시파타나 미가다야에 머물고 있었다. 다섯 명의 비구들과 함께였다. 율장《대품》(1.1)에 ‘그때 이 세상에는 여섯 명의 성자가 있었다’는 기록이 보인다. 그러나 이 조그만 교단이 언제까지나 그대로는 아니었다. 얼마 후 이 바라나시의 장자의 아들 야사라는 젊은 청년이 합류했고 그의 친구들도 잇따라 부처님에게 귀의해 출가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어느 사이엔가 그 작은 교단은 ‘61명의 성자’로 불어나게 되었다. 이때 부처님은 그들을 모아놓고 유명한 ‘전도선언(傳道宣言)’을 했다. 이것은 교단사적 입장에서 볼 때 매우 중요한 사건이었다. 한 경*(남전 상응부경전(4.5)係蹄.한역 잡아함경(39.16)繩索)에서는 이 사실을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나는 이렇게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은 바라나시의 이시파타나 미가다야에 머물고 있었다. 그때 부처님은 ‘비구들이여’하고 제자들을 불렀다. 비구들은 ‘부처님이시여’ 하고 대답했다. 부처님은 비구들을 향해 말했다.
“비구들이여, 나는 이 세상의 모든 올가미에서 풀려났다. 그대들 또한 모든 올가미로부터 자유로워졌다. 비구들이여, 그러니 이제 유행*(遊行:to go on journey, cārikam carati. 여행을 다니는 것. 傳道와 다르지 않음)하라. 많은 사람들의 이익과 행복을 위해서 세상을 불쌍히 여기고 인천(人天)의 이익과 행복을 위해서 두 사람이 한 길로 가지 말라. 비구들이여, 처음도 좋고 중간도 좋고 마지막도 좋게 논리정연하고 정확한 표현으로 법을 설하라. 그리고 진정으로 원만하고 청정한 범행을 설하라. 사람들 가운데는 아직 때묻지 않은 사람도 많다. 하지만 그들도 설법을 듣지 못한다면 금방 타락할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설법을 들으면 곧 깨달을 것이다. 비구들이여, 나 또한 법을 설하기 위해 우루벨라의 세나니마을(將軍村)로 갈 것이다.”
그때 못된 악마(마라)가 부처님께 다가와 게(偈)로써 말했다.
당신은 인천(人天)의 세계에서
악마의 올가미에 걸렸도다.
악마의 밧줄에 묶였도다.
사문이여, 너는 나에게서 벗어나지 못하리라.
이에 부처님도 게로써 답했다.
나는 인천의 세계에서
악마의 올가미로부터 벗어났다.
악마의 밧줄로부터 벗어났다.
마라여, 너는 이미 패배하였다.
그러자 악마는 ‘부처님은 나를 알고 있다. 부처님은 나를 간파하고 있다’고 외치면서 도망치고 말았다.
이것은 아주 작은 경전에 불과하다. 그러나 이 작은 경전에 매우 중요한 의미가 담겨져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무엇보다 먼저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은 이 경전의 본문에 나타나고 있는 정연한 생각과 표현이다. ‘비구들이여, 나는 이 세상의 모든 올가미에서 풀려났다. 그대들 또한 모든 올가미로부터 자유로워졌다’라는 구절은 부처님이 전도선언에 앞서 자신과 제자들이 성취한 깨달음에 대해서 명쾌하게 말한 것이다.
“비구들이여, 이제 유행하라. 많은 사람들의 이익과 행복을 위해, 세상을 불쌍히 여지고 인천의 이익과 행복을 위해서 두 사람이 한 길로 가지 말라.”
여지서 ‘유행(遊行)’이란 오늘날 우리들이 말하는 전도를 뜻한다. 부처님은 전도의 목적이 다른 사람의 이익과 행복을 위하는 것임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그리고 한 사람이라도 더 많이 구제하기 위해 여러 사람이 같은 곳을 갈 것이 아니라 흩어져서 혼자 다니라고 당부하고 있다.
“비구들이여, 처음도 좋고 중간도 좋고 끝도 좋게 논리 정연하고 정확한 표현으로 법을 설하라. 그리고 진정으로 원만하고 청정한 범행을 설하라.”
이것은 설법을 할 때 사람들을 향해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를 가르친 대목이다. 그것은 처음부터 끝까지 논리정연하고 바른 표현으로 해야 한다는 것이다. 계속해서 부처님은 ‘나 또한 법을 가르치기 위해 우루벨라의 세나니마을로 갈 것이다’라고 말한다. 우루벨라의 세나니 마을은 부처님이 과거 수행하고 깨달음을 얻었던 곳이다. 부처님은 아직 그곳에서 진리를 가르치지 못했다. 그래서 부처님 자신은 다시 그곳으로 가서 설법을 하겠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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