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행관련 글들

수련이 아닌 수행을 ......

소리없는 아우성 2012. 12. 4. 11:02

 

심신 괴롭히는 것은 고통만 뒤따라

더불어 사는 삶 실천해야 참 수행자


여러분들은 수행과 수련을 혼동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불자들 1% 중에 99%는 수련을 수행으로 오해하고 있습니다.

수련은 잘하면 힘이 생깁니다. 그러나 이것은 정법이 아닙니다. 해탈로 가는 길은 아니란 말입니다.수행은 자기 업식을 바꾸는 것입니다. 생활습관이나 사고방식, 다시 말해 카르마를 바꾸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수행을 하다가 부작용이 생기는 일은 없습니다.
그러나 훈련이나 단련은 하다가 부작용이 생길 수 있습니다. 수행을 하게 되면 자기가 행복해지고, 가정이 화목해지고, 자기가 가진 돈을 세상에 필요한 데 쓰게 되고, 봉사하고픈 마음이 일어나게 됩니다.
반면에 수련의 경우 힘은 생길지 몰라도 화가 나면 그 힘을 갖고 보복하는 데 쓰고, 그 힘을 가지고 돈 버는 데다 쓰게 됩니다. 수련하는 사람 중에는 정신분열증이 생기는 사람도 있습니다. 수련하다가 상기가 되거나 미치거나 하는 여러 증상이 나타납니다.
수행을 한 게 아니고 수련을 했기 때문에 그래요. 가볍게 자기를 알아차리고 뉘우치고 돌아보고 해서 해탈로 가야 하는데 그러지 않고 이를 악다물고 결심을 하고 각오를 하면서 하니까 터지는 거예요. 기의 조화가 깨져서 생긴 문제예요. 수행을 하라고 하니까 복을 구하려고 이산 저산 헤매는 사람도 있고 수행을 위해서 전 세계 온갖 지도자를 찾아 헤매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들은 심리적으로 뭔가를 얻으려고 방황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뭔가를 찾아 헐떡거리는 중이란 말이지요.
수행은 얻을 것이 없는 줄을 알아서 있는 그 자리에서 지금 편안한 길로 들어가는 것이지 장소를 옮긴다고 해서 되는 게 아닙니다.
불교에서 말하는 수식관은 자기 호흡의 상태를 알아차리는 것입니다. 자연 상태의 호흡을 있는 그대로 지켜보면서, 다만 들어가고 나오는 것을 알아차리는 것인데 상기가 될 이유가 뭐가 있겠어요? 상기가 된다는 것은 무엇인가를 하려고 애쓰거나 참느라고 악을 쓴다는 것입니다. 수행은 그렇게 애쓰는 것이 아니고 마음을 평안히 하고 현재의 상태에 대한 알아차림이 지속되는 깨어있음입니다.

여러분들이 수행을 하고 법문 들어서 좋아졌다 해도 자기 혼자만 좋은 정도의 수준에 머무른다면 그것은 작은 이익에 안주하는 것과 같습니다.
이런 사람은 타인을 위해 직접 봉사하고 보시하는 게 잘 안 됩니다. 그런 카르마를 극복하려면 남을 위해 보시하고 봉사해야지 자신의 복을 위해서 보시하거나 복을 구하지 말아야 합니다. 이렇게 이타행을 할 때, 남도 좋고 나도 좋은 법의 이치를 깨달을 수 있습니다.
부처님 법은 부처님의 삶에 근원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부처님께서 어떻게 깨달음을 얻고 어떻게 살아가셨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부처님은 온갖 장애 가운데서 어떻게 구애받지 않고 살아가셨는지, 어떻게 세상을 변화시켰는지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세상에 끌려 다니는데 그분은 세상에 끌려 다니지 않고 오히려 세상을 변화시켰습니다. 사람을 죽인 살인자를 오히려 성인으로 만들었고, 자식이 죽어서 슬피 우는 사람을 편안하게 만들었습니다.
명상을 배운다, 명상 수련한다, 참선한다고 해서 다 똑같이 수행이라고 보시면 안 됩니다.

수행해서 결과인 그 인격이 어떻게 변화했느냐 하는 게 중요합니다.
세상 속에서 더불어 살면서 남에게 보탬이 될 때 진정한 수행자라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법륜 스님 정토회 지도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