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행관련 글들

팔정도의 의미 및 수행

소리없는 아우성 2012. 12. 4. 10:57

 

서각-제17회 곰달래서각회전 출품작
송운 이금영書幷刻



팔정도와 수행

한경수 지음

이 글은 <월간 붓다> 2001년 2월호, pp. 20-22에 게재된 것이다.

팔정도는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다섯 비구들에게 한 첫 설법[初轉法輪]에서 감각적인 즐거움과 고행 수행을 떠난 중도(中道)로서 가장 먼저 설해졌다. 그리고 입멸하시기 직전 마지막 제자가 된 수밧다와의 대화에서는 이 팔정도가 있는 수행체계에서만 완벽한 깨달음을 얻은 자가 나온다고 말씀하신다. 그러므로 팔정도는 초기불교의 가장 근간이 되는 수행법이었다고 할 수 있다.

팔정도는 사성제의 마지막 지분인 도성제(道聖諦)에 속하는데 '괴로움'을 소멸시키는 길, 또는 방법이다. 여기에는 여덟 가지 지분이 있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1. 올바른 견해[正見]

이것은 사성제인 괴로움[苦], 괴로움의 원인[集], 괴로움의 소멸[滅=涅槃], 괴로움을 소멸시키는 방법[道]을 확실히 꿰뚫어 아는 것이다. 사성제를 통해 인생의 괴로움 전반에 대한 확실한 통찰이 있어야 진정한 수행이 시작되고 괴로움도 제거할 수 있다. 그러므로 올바른 견해가 팔정도에서 가장 중요하다. 나머지 일곱 지분은 이 올바른 견해의 도움을 받아야 제대로 수행될 수 있다.

달리 설명하면 올바른 견해는 올바른 알아차림[正念]과 올바른 노력[正精進]의 도움을 받아 우리의 몸과 마음[五蘊]에서 일어나는 모든 현상들이 '무상(無常)하고 괴로움[苦]이고 무아(無我)이다'고 통찰하는 것이다. 이 통찰이 있어야 어떤 것에도 집착하지 않고 성내지 않고 미혹하지 않게 되어 해탈할 수 있게 된다.

 

2. 올바른 생각[正思惟]

이것은 탐욕스러운 생각, 노여워하는 생각, 생명체를 해치려는 생각이 없는 것이다. 인생의 괴로움을 통찰해서 '올바른 견해'가 생긴 사람에게는 자신과 남에게 피해를 주는 생각이 일어나지 않는다. 생각[意業]은 대단히 중요하다. 생각에 의해 말[口業]과 행동[身業]이 나오기 때문이다.

3. 올바른 말[正語]

생각이 바르면 거짓말, 이간하는 말, 거친 말, 쓸데없는 말[잡담]을 삼가게 된다. 수행자로는 법담(法談)이 아니면 침묵을 지켜야 한다.

4. 올바른 행위[正業]

생각이 바르면 행위도 바르게 된다. 살생, 도둑질, 삿된 성행위를 삼가는 것이 ?올바른 행위?이다. 수행자는 몸으로 짓는 모든 나쁜 행위를 삼가야 한다.

5. 올바른 생활[正命]

이것은 생활의 수단인 옷[가사], 음식, 침구, 탕약 등을 구하되 법답게 하는 것이다. 세속인으로서는 직업을 갖되 남에게 남에게 피해를 주거나 비난받을 만한 직업을 피하는 것이고, 수행자로서는 자신에게 주어진 것만 가지고 거짓없이 청정한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6. 올바른 노력[正精進]

이것은 ① 이미 일어난 마음의 악하고 불건전한 상태가 사라지도록 꾸준히 힘써 노력하는 것, ② 아직 일어나지 않은 마음의 악하고 불건전한 상태가 일어나지 않도록 꾸준히 힘써 노력하는 것, ③ 아직 일어나지 않은 마음의 선하고 건전한 상태가 일어나도록 꾸준히 힘써 노력하는 것, ④ 이미 일어난 마음의 선하고 건전한 상태를 더욱 닦아 익히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참선을 할 때 게을러지거나 무기력하고 졸음이 올 때 마음을 가다듬고 정신을 바짝 차려 수행의 대상을 분명히 알아차리려고 노력하는 경우도 '올바른 노력'에 해당한다.

7. 올바른 알아차림[正念]

이것은 남방 불교권에서 널리 수행되고 있는 위빳사나 수행에 해당하여 사념처(四念處)를 닦는 것이다. 사념처란 ① 몸, ② 느낌, ③ 마음의 상태, ④ 법(法: 수행의 다섯 가지 장애, 오취온 등)에 대한 '알아차림'[念]이다. 여기서 '알아차림'이란 위의 네 가지 수행 주제에 대해 아무 판단 분별없이 있는 그대로 주시함[念]과 동시에 분명하게 알아차리는[正知] 것이다.

지면관계상 이들 가운데 대표적인 두 가지만 좀더 구체적으로 살펴보기로 한다. ( 두 가지 모두 '몸에 대한 알아차림'의 여섯 가지 세부 주제 가운데 들어 있다.)

첫째, 안반념(安般念)으로 호흡을 알아차리는 수행이다. 먼저 조용한 곳에서 고요히 앉아 허리를 똑바로 펴고 코 끝 호흡이 스치는 지점에다 의식을 둔 채 호흡이 들고나는 것을 주시한다. 자연스럽게 호흡하면서 들숨이 길면 길다고 알아차리고, 날숨이 길면 길다고 알아차린다. 들숨이 짧으면 짧다고 알아차리고 날숨이 짧으면 짧다고 알아차린다. 다시 말하면, 코 끝에다 의식을 둔 채 들고나는 호흡을 주시하되, 아무 판단 분별없이 있는 그대로 호흡의 상태를 분명하게 알아차리는 것이다. 이때 주의할 것은 호흡을 알아차리는 수행을 하고 있는데 무릎이 아프다던가 하는 어떤 느낌[감각]이 일어나면 호흡에 대한 알아차림을 중단하고 그 느낌으로 의식을 가져가 그 느낌을 있는 그대로 알아차려야 한다. 그 느낌이 사라질 때까지 알아차림을 계속하다가 그 느낌이 사라지면 다시 코 끝으로 의식을 가져와서 호흡 알아차리기를 계속한다. 어떤 생각이 수행 도중에 일어나면 마찬가지로 의식을 코 끝에서 거두어 그 생각으로 가져가서 그 생각이 사라질 때까지 그 생각을 있는 그대로 알아차린다. 그 생각이 사라지면 다시 코 끝으로 의식을 가져와서 호흡 알아차리기를 계속한다.

수행을 그만두고 싶을 때도 ?그만두고 싶다?는 그 마음[의도]를 알아차려야 하고, 자리에서 일어설 때고 먼저 일어서려는 의도를 알아차리고 천천히 일어서되 일어나는 몸의 전 과정을 분명히 알아차리면서 일어나야 한다.

첫 번째 '호흡의 대한 알아차림'이 정적이라면, 두 번째는 동적인 활동을 하는 경우 우리 몸에 대한 알아차림이다. 앞으로 갈 때나 뒤돌아서 갈 때 이것을 분명하게 알아차리고, 앞을 볼 때나 뒤를 볼 때도 이것을 분명히 알아차린다. 팔, 다리, 몸을 구부릴 때나 펼 때 이것을 분명히 알아차린다. 가사[옷]를 입거나 발우[그릇]를 들 때도, 마시고, 씹고, 맛볼 때도, 대소변이 마려울 때도 이것을 분명히 알아차린다. 걷고, 서고, 앉고, 잠자고, 깨어나고, 말하고, 침묵을 지킬 때 등 모든 상황에서 이것을 분명히 알아차린다. 이것은 행주좌와(行住坐臥) 어묵동정(語默動靜)의 모든 행위를 빠짐없이 '지금 여기'에서 분명하게 알아차리는 수행이다.

'올바른 알아차림' 수행은 불교에만 있는 독특한 수행법이며, 이 수행을 해야 우리의 몸과 마음에서 일어나는 모든 현상이 무상하고 괴로움이고 무아임을 깨닫는 '올바른 견해'가 생겨 해탈하게 된다.

8. 올바른 집중[正定]

호흡과 같은 어떤 특별한 주제[<청정도론>에는 40가지 주제가 언급됨]에 마음을 일심으로 집중하는 수행이다. 이 수행으로 사선(四禪)을 성취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삼매(三昧)니 무아지경(無我之境), 심일경성(心一境性)이니 하는 것은 이 수행의 결과로 이루어진다. 이 수행을 하면 번뇌가 그치게 되고 마음이 고요해지기는 하지만 완전한 깨달음이 오는 것은 아니다.

팔정도는 삼학(三學)으로 분류될 수 있다. '올바른 말', '올바른 행위', '올바른 생활'은 계학(戒學)에, '올바른 노력', '올바른 알아차림', '올바른 집중'은 정학(定學)에, '올바른 견해'와 '올바른 생각'은 혜학(慧學)에 속한다. 삼학은 서로 돋고 도움을 받는다. 삼각대에 다리 하나가 없으면 넘어지듯이 삼학에서도 어느 하나만 부족해도 올바른 수행이 되지 않는다


빠알리 경전으로 팔정도의 의미

조준호 지음

이 글은 <월간 붓다> 2001년 2월호, pp. 12-13에 게재된 것이다.

팔정도(八正道)의 원어는 '아리요 아탕기꼬 막가(Ariyo atthangiko magga)'이다. 그대로 번역하면 '여덟 개 부분으로 이루어진 성스러운 도(道)'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팔정도와 함께 팔성도(八聖道)라고도 한역되었다. 팔정도에 대해 독립적으로 설해진 경전도 있지만, 중요한 것은 사성제의 도성제(道聖諦)의 내용으로 나타난다는 점이다. 사성제(四聖諦)는 고집멸도(苦集滅道)이다. 한마디로 표현하면, '고(苦)의 원인(集)을 멸(滅)하는 방법(道)'이다. 불교의 궁극적인 목적은 고를 멸하는 것으로 그것이 성취된 경지를 열반(涅槃)이라고 한다. 그러므로 부처님의 가르침이 모두 사성제에 포섭된다. 고라는 인간의 현실을 극복할 수 있는 구체적인 실천 수행법을 제시하는 것으로, 이는 부처님의 가르침이 이론적인 가르침으로서 그 가치가 있는 것이 아니라 실천 수행 속에 있음을 잘 보여준다. 그리고 팔정도는 그 중심에 위치해 있다.

 

1. Ariyo atthangiko magga

이른 시기의 부처님의 가르침은 빠알리어로 전해져 온다. 빠알리는 우리말과 달리 영어와 같이 복수를 분명히 표시한다. 여덟 가지의 팔정도를 단수로 쓰고 있다. 그 이유는 마치 여덟 가지를 가진 한 나무와 같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팔정도는 그 자체로서 열반을 성취하기 위한 오직 하나의 실천법이라는 뜻의 일승도(一乘道: ekayana-magga)로 표현되기도 한다. 단수로 쓰인 중요한 이유는 뒤의 '팔정도의 수행순서'에서 더 설명된다.

 

2. Ariyo

Ariyo는 '성(聖)스러운'이라는 뜻인데, 사성제와 함께 왜 성스러운 이라는 말을 특별하게 붙였을까 하는 점이다. 그것은 팔정도가 '성스러운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의 고귀한 수행법'이라는 뜻과 함께 '성스러운 사람들이 가진 실천법'이라는 뜻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불교에 발심(發心)을 낸 모든 사람들은 성스러운 삶을, 고귀한 삶을 살려고 하는 사람들임을 나타내준다. 더 구체적으로는 사향사과(四向四果)에 있는 사람들을 뜻한다.

 

3. Magga

사성제에서 제(諦)로 번역되어 '진리'라고 알려져 있으며, 또한 다른 곳에서는 도(道)라고 번역되어 '궁극적인 경지를 성취한 상태'를 의미하는 말로 생각할 수 있으나, 사실은 사성제의 세 번째인 멸성제를 이루기 위한 실천 수행법인 도성제의 팔정도를 의미한다.

 

4. Samma

정견(正見)으로부터 정정(正定)까지 모두 정(正)을 의미하는 Samma는 '(올)바른'의 뜻과 함께 '완전한', '완성된' 또는 '모든 것을 포함한 것'과 같은 뜻이 있다.

부처님을 무상정등각자(無上正等覺者)라고 할 때 '등'자와 같다. 따라서 보통 정견은 '바른 견해'라고 번역하고 있지만 '완전한 견해'라고도 해석할 수 있다. 즉, 바른 것은 완전하고, 완성된 것이고, 일체에 이른 것이라는 의미이다. 나머지 팔정도의 내용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므로 팔정도는 완전한 인격을 위한 실천법임과 동시에 열반을 성취한 완전한 인격자들의 삶의 방식이며 자세하고도 할 수 있다.

 

5. 팔정도의 내용

팔정도의 여덟 가지는 다음과 같다. 정견(正見: Samma-ditthi), 정사유(正思惟: Samma-sankappa), 정어(正語: Samma-vaca), 정업(正業: Samma-kammanta), 정명(正命: Samma-ajiva), 정정진(正精進: Samma-vayama), 정념(正念: Samma-sati), 그리고 정정(正定: Samma-amadhi)이다. 경전에 많은 내용들이 설명되어 있다. 하지만 지면 관계상 모두 소개하고 설명할 수는 없고, 다만 종래에 잘못 이해되고 있는 몇 가지를 점검해 보면, 두 번째의 정사유에 있어 흔히 '바른 생각'이나 아니면 그대로 '바른 사유'로 번역되지만, 원어에 따라 더 정확하게 현대적인 번역을 한다면 '바른 의도'로서, 적극적인 목적이나 계획을 가지고 마음을 일으키는 것으로 올바른 마음가짐 또는 마음 챙기는 것이나 '완전한 의도'를 뜻한다. 그리고 이와 함께 일곱 번째의 정념은 정사유의 뜻과 혼돈스럽게 '바른 생각'으로, 또는 '바른 기억'으로 잘못 번역되어 이해되고 있다. 념(念)의 원어는 기억이라는 뜻 이외에도 문맥에 따라 의미가 달리 쓰인다. 최근의 우리말 번역에 있어 '알아차림', '주시', '마음 챙김', '각성' 등으로 다양하게 번역하고 있지만, '수동적 주의집중의 상태'가 더 정확한 의미이다. 이는 뒤의 정정의 내용인 사선(四禪)을 통해 완성되는 것으로서 선정을 통해 지극히 마음이 가라앉아 편안하고 고요한 상태가 계속되면, 언제부터인가 일상적인 사유 작용과 감정이 쉬면서 마음은 분명히 깨어 있는 상태를 말한다. 이제까지 스스로의 사유와 감정과 하나되어 움직이는 '능동적인 활동'으로부터 일정한 거리를 두고 대상화시켜 볼 수 있는 '수동적인 주의집중이 이루어진 상태'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염의 작용적인 측면이 바로 세계와 인간 존재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를 볼 수 있는'[如實知見] 바탕이 된다. 그렇게 완성된 념(念)에 의해 대상화 된 몸과 느낌, 마음, 그리고 법을 관찰하는 사념처(四念處)가 긍극적으로 완성된 념으로서 정념이다. 불교의 궁극적인 목적은 다름 아닌 여실지견을 통해 열반을 성취하는 것 이외에는 아니다.

 

6. 팔정도의 수행 순서

팔정도의 수행 순서에 있어 몇몇 경전에서는 정견부터 순서대로 이루어져 정정에 이르는 것처럼 설명되어 있다. 하지만 이는 편의상의 설명방법이고 실제로는 동시에 팔정도를 모두 병행하며 수행해야 하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 흔히 차제(次第) 수행법은 제일, 제이 등과 같이 표현되고 있는 데 반해, 팔정도의 원어는 여덟 가지 수행 덕목의 내용인데도 불구하고 단수로 쓰인 것을 통해서도 그러한 성격을 나타내고 있다. 즉 각각의 팔정도가 서로 분리되어 독립적으로 수행해야 할 법이라기보다는 동시에 병행해서 닦는 것이다. 마치 여덟 가지를 가진 한 나무와 같이 팔정도 가운데 하나를 중점적으로 닦더라도 각각이 다른 7개와의 관련 속에서, 또는 포섭시키면서 수행해야 하는 것이다.

 

7. 팔정도 수행의 결과

따라서 팔정도 수행에 따라 탐(貪)·진(瞋)·치(痴) 삼독(三毒)과 일체의 고를 여의고, 열반을 성취하고, 해탈하여, 성불(成佛)할 수 있는 법이라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