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스승 석가모니

붓다의 깨달음(5) - 모든 것은 연결되어있다

소리없는 아우성 2012. 12. 2. 22:57

모든 것은 연결되어있다

이것이 없으면 저것도 없다

셋째, ‘이것이 없으면 저것도 없다’는 것은 존재와 상황의 소멸에 대한 공간적인 표현으로, 이 세상의 모든 존재의 소멸과 존재가 만들어내는 상황의 소멸들은 어떤 한 가지도 우연히 사라지거나, 홀로 독자적으로 소멸하는 법은 없으며 공간적인 연관관계에 의존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앞서 ‘이것이 있으면 저것도 있다’에서 살펴보았듯이 존재의 생성에 모든 존재들의 상호의존과 관계성이 담겨 있듯이 존재의 소멸에도 마찬가지로 모든 존재들의 상호연관의 연기법은 적용된다.

앞에서 자동차를 예로 들었는데, 만약 아무리 좋은 자동차라도 엔진이 고장 나 버렸다면 그 자동차는 더 이상 굴러갈 수 없을 것이다. 타이어가 펑크가 나도 마찬가지고, 타이어휠이 고장 나도 마찬가지며, 미션이나 기어가 고장 나도 자동차는 더 이상 자동차로써의 기능을 잃어버린다. 하다못해 기름이 없어도 자동차는 무용지물이 되 버리며, 그 자동차를 운전할 사람이 없어도 자동차는 그 기능을 상실하고 만다. 이처럼 자동차를 구성하고 있는 어느 한 요소만 없어지거나 고장이 난다고 하더라도 자동차는 더 이상 자동차로서의 기능을 잃어버린다. 그렇기에 ‘이것이 없으면 저것도 없다’는 소멸에 대한 연기법의 공간적인 표현을 볼 때 엔진이 없으면 자동차도 없고, 타이어가 없으면 자동차도 없고, 기름이 없으면 자동차가 없고, 운전자가 없으면 자동차도 없게 되는 것이다. 이처럼 모든 존재의 소멸은 저홀로 독자적인 소멸을 이루는 것이 아니라 공간을 함께 하고 있던 수많은 연기되어진 원인과 조건들이 소멸 될 때 ‘~로 말미암아’소멸되는 것이다.

상황의 소멸도 마찬가지다. 지금 내가 거처하고 있는 절은 규모가 작고 강원도의 산골에 위치 해 있다 보니 처음에는 법회나 기도가 있는 날인데도 신도님들이 한 분도 오시지 않아 법회를 열지 못한 적도 있었다. 처음에는 낙심 아닌 낙심이 되었지만, 이것도 다 인연이구나 하고 마음을 돌리니 오히려 그 시간에 미루었던 다른 일들을 할 수 있었다. 손바닥도 부딪혀야 소리가 나는 것처럼 이와 같이 모든 것은 인연이 화합하여 모였을 때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지 어느 한 쪽에서 응해 주지 않으면 그 법회는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이니, ‘이것이 없으면 저것도 없다’는 소멸의 법칙에서 보듯이 신도가 없으면 법회도 없을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이렇게 모든 일들은 인연화합을 통해 만들어지고 인연화합이 되지 않으면 소멸되는 것이니 이러한 연기의 법칙을 거스를 필요는 없는 것이다. 인연을 거스르게 되면 거기에는 고통이 따른다. 신도가 없으면 법회가 없다는 연기의 이치를 받아들이지 못했다면 투덜투덜 거리면서 마음에 고통이 뒤따랐을 것이다. 그런데 신도가 없어 법회가 없었지만 또 다른 새로운 포교의 방법을 모색하거나 그 시간에 새로운 일을 시작하였다면 ‘이것이 없으면 저것도 없다’라는 소멸의 법칙을 받아들여 새롭게 ‘이것이 있으면 저것이 있다’는 생성의 법칙으로 바꿀 수도 있는 것이다. 이처럼 연기의 법칙은 온 우주를 운행하는 근원이 되는 이치이기 때문에 마음에서 거스르는 순간 괴로움이 시작되지만 받아들이는 순간 평화가 깃들게 되고 또 다른 새로운 삶이 시작된다.

그래서 연기법에서 보았을 때 모든 생성은 곧 소멸을 의미하고, 소멸은 또 다른 새로운 생성을 의미한다. 생과 사가 둘이 아닌 한바탕에서 이루어지는 연극과도 같은 것이다. 그러니 생성을 즐거워하며 집착하고 소멸을 괴로워하며 두려워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이것이 있으므로 저것이 있고, 이것이 없으면 저것도 없다’는 존재의 생성과 소멸에 대한 이치를 받아들이면 생과 사도 자유롭고, 성공과 실패에도 그렇게 연연해 하지 않을 수 있으며, 있고 없음, 소유와 무소유, 부와 가난 등의 분별 속에서 자유로워 질 수 있을 것이다.

이처럼 ‘이것이 있으므로 저것이 있다’는 존재의 발생의 원칙과 ‘이것이 없으면 저것도 없다’는 존재의 소멸에 대한 원칙은 모두 공간적인 연기의 해석으로 이 세상의 모든 존재들은 지금 여기에서 더불어 존재하는 것들이며, 서로 서로 의존관계를 이루었을 때만 존재의 의미를 얻을 수 있으며, 어느 한 가지 원인이나 조건이 소멸되면 다른 의존관계를 이루었던 모든 것들도 도미노처럼 차례로 소멸될 수 밖에 없음을 의미한다. 이 원칙은 나아가 이 우주적인 한 공간에서 이 우주, 이 세계, 이 나라를 이루고 있는 일체 모든 존재들은 서로 서로 더불어 살아가는 존재들로써, 서로가 서로의 생성과 소멸에 영향을 주고 받으며, 상의상관하고, 상호의존하는 결코 따로 따로 떼어낼 수 없는 한생명이며 한몸, 한마음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여기에서 동체대비(同體大悲)의 불교적 자비사상이 움트는 것이다. 온 우주가 둘이 아닌 한 몸으로 동체이며, 그렇기에 네가 있기에 내가 있고, 네가 행복하면 나도 행복하며, 네가 사라질 때 나도 사라지고, 네가 괴로울 때 나 또한 괴로울 수 밖에 없는 생명공동체로써 하나인 것이다. 나라는 실체가 있어 나만 잘 먹고 잘 살면 되는 것이 아니라 내가 곧 우주이며, 내가 곧 일체 모든 존재와 둘이 아닌 하나로써 그들의 행복이 곧 내 행복이 되는 것이다. 그러니 어찌 더불어 살아가는 이 우주의 모든 생명을 내 몸처럼 아끼지 않을 것인가. 내 행복이 곧 일체 모든 존재의 행복에 전적으로 달려있다면 나를 돌보는 것 처럼 남을 돌보고, 나를 돌보는 것 처럼 자연을 돌볼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이것이 바로 연기를 바탕으로 하는 자비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