님의 침묵

쾌 락

소리없는 아우성 2012. 9. 25. 12:51

 

 


쾌 락

님이여, 당신은 나를 당신 계신 때처럼 잘 있는 줄로 아십니까.
그러면 당신은 나를 아신다고 할 수가 없습니다.


당신은 나를 두고 멀리 가신 뒤로는,
나는 기쁨이라고는 달도 없는 가을 하늘에 외기러기의 발자취 만큼도 없습니다.


거울을 볼 때에 절로 오던 웃음도 오지 않습니다.
꽃나무를 심고 물 주고 북돋우던 일도 아니합니다.
고요한 달 그림자가 소리 없이 걸어와서 엷은 창에 소곤거리는 소리도 듣기 싫습니다.

가물고 더운 여름 하늘에 소낙비가 지나간 뒤에
산 모롱이의 작은 숲에서 나는 서늘한 맛도 달지 않습니다.
동무도 없고 노리개도 없습니다.


나는 당신 가신 뒤에 이 세상에서 얻기 어려운 쾌락이 있습니다.
그것은 다른 것이 아니라 이따금 실컷 우는 것입니다.


님의 침묵(沈默) : 한용운(韓龍雲)

'님의 침묵' 카테고리의 다른 글

모순  (0) 2012.12.31
차라리   (0) 2012.12.17
우는 때  (0) 2012.06.25
비 밀  (0) 2012.05.14
꿈과 근심   (0) 2012.03.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