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가의 의의
상가(Samgha;僧家)란 불교에서 '교단이라는 의미로 쓰여지고 있는 용어다. 그 유래는 불교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부처님 당시 인도는 널리 알려진 바와 같이 많은 종교가들이 사문(沙門)이란 이름으로 불리웠으며 그들은 여러 곳을 유세(遊說)하며 제자들을 모아 교단을 조직했다. 이러한 종교가들을 때로는 '상가의 소유자)', '가나의 소유자'라고 불렀다. 이는 당시의 종교단체가 '상가' 또는 '가나'라고 불리고 있었음을 뜻하는 것이다.
상가 또는 가나는 본래 단순히 집단이라는 의미를 가진 말이다. 그러나 구체적으로 이런 이름으로 불리었던 집단은 방금 말한 종교단체 외에 동업조합(同業組合), 즉 길드와 같은 경제조합과 공화정체(共和政體)의 국가가 있었다. 이러한 집단의 공통된 성격은 동일한 목적을 가지고 모인 사람들이 만드는 공동체로, 그 성원은 서로가 평등하며, 동일한 규율에 승복하며, 가입은 개인의 자유의지에 의하며, 집단의 의사결정은 성원들의 합의제에 의하는 것 등이다. 자유의지에 의한 가입은 실제의 경우는 종교단체에만 국한될 지 모르나 이 말이 사용된 배경에는 소속을 태생에 의해 결정하는 카스트(자티집단)제도와는 달랐을 것으로 예상된다. 즉 당시 인도사회가 바라문을 4성의 최고종성으로 생각하고 있었음에 반해 이같은 카스트 규제에서 벗어나와(出家) 자유롭게 되는데서 사문의 상가가 성립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공화정체의 국가가 상가라 불린 것은 태어날 때부터 지배자가 되는 세습의 왕이 아니라 합의에 의해 즉 구성원들의 의지로 지배자를 선출하는 것을 일컬어서 불렀던 것으로 생각된다.
불교교단은 그 성립유래에서 분명히 사문의 종교단체 가운데 하나지만 교단의 운영에 있어서는 상가국가의 대표라 할 수 있는 밧지족의 베살리 마을의 합의제를 본딴 것으로 보인다. 베살리는 부처님 재세시 강대국이었던 마가다국으로부터 독립을 지켰던 도시국가로 경제적 번영을 자랑하고 있었다. 부처님은 종종 이 지방을 찾아와 안거를 했으며 먼 훗날까지 불교교단의 중요한 근거지였던 나라다. 또 부처님으로부터 오래도록 쇠퇴하지 않을 것으로 찬양을 받은 나라로도 유명하다.
《열반경》에 의하면 부처님은 최후의 안거를 베살리 교외에서 보냈다고 하는데 이보다 앞서 부처님은 라자그리하(王舍城)를 나와 갠지스 강변의 파탈리 마을을 향할 때 있었던 다음과 같은 얘기가 있다.
당시 마가다국은 베살리를 공격할 거점으로 파탈리 마을에 성을 쌓고 있었는데 부처님은 이를 보고 일곱 가지 조건이 없어지지 않는 한 베살리는 쇠망하는 일이 없을 것이라고 예언했다. 그 일곱 가지 조건이란 이런 내용이다.
①밧지족 사람들은 자주 회의를 연다. 그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모인다.
②화합해서 회합하고 화합해서 결의하고 화합해서 일을 처리한다.
③옛부터 정해진 밧지족의 법을 지킨다.
④연장자를 존경한다.
⑤밧지족 자녀에게 부당한 결혼을 강요하지 않는다.
⑥내외의 사묘(寺廟)에 공양을 바친다.
⑦성자(아라한)를 보호하고 존경한다.
이를 '칠불쇠법(七不衰法)'이라고도 하는데 부처님은 이어 다음과 같은 일곱 가지를 지킨다면 불교교단도 오래도록 번영할 것이라고 예언한다.
①비구(修行者)들이 종종 회합을 갖는다.
②일치화합해서 회의를 열고 결의해서 상가의 일을 처리한다.
③새로운 제도를 만들거나 옛 제도를 버리든가 하지 않고 정해진 규칙을 준수한다.
④장로·선사·도사를 존경하고 그가 하는 말을 잘 듣는다.
⑤욕망이 생기더라도 거기에 지지 않도록 노력한다.
⑥왕후대신과 가까이 하지 않으며 마을에서 떠난 곳에서 사는 것을 좋아한다.
⑦수행에 전념함으로써 그것을 보고 훌륭한 친구들이 들어오고 들어온 자는 마음 편히 교단에 머물게 한다.
이밖에도 부처님은 다섯 종류나 되는 '칠불쇠법'을 말하고 있으나 중복되는 부분이 있으므로 생략한다. 불교의 상가는 또 대해(大海)에 비유해 다음과 같은 특징이 있다고 경은 전하고 있다.
①대해는 해변에서 멀어질수록 깊어지듯 상가에는 입문하고 나면 점차 배움(學)이 깊어진다.
②대해의 물이 해안을 넘치지 않듯이 제자들을 계율을 파괴하지 않는다.
③대해는 사체(死體)를 떠나보내도 반드시 해변으로 밀어 올린다. 마찬가지로 상가는 계율을 범한 자를 반드시 응징하여 묵과하지 않는다.
④모든 강들은 대해로 들어가면 각자의 이름이 없어진다. 마찬가지로 상가에 입단하면 사회적 계급, 신분, 성명을 버리고 동등하게 사문석자(沙門釋子)로만 불리운다.
⑤대해는 아무리 많은 강물이 흘러들어도 수량(水量)에 증감이 없듯이 상가의 수행자들도 아무리 증가해도 또한 열반에 들어도 증감이 없다.
⑥대해에 들어온 물은 모두 소금맛이 되듯이 상가의 성원은 똑같이 해탈미(解脫味)를 맛본다. ⑦대해는 온갖 보물의 보고(寶庫)이듯이 상가는 미묘하고 고원(高遠)한 가르침(法)과 계율이 있다.
⑧대해에는 각종 대어가 살고 있듯이 상가에는 위대한 제자들이 살고 있다.
이러한 비유 중에 특히 ④는 4성평등의 주장으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그러나 이 이념은 상가 내에서만 실현된 것으로 인도사회 전체의 개혁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또한 이상의 선언은 불교의 상가가 인도사회에서 일종의 치외법권적인 힘(國王權力의 不介入)을 의미한다. 이것은 불교상가가 출세간의 것,
즉 보통 사회와는 차원을 달리하는 집단으로 도덕적으로도 뛰어난 모범 집단임을 세상으로부터 인정받고 있었음을 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