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 공부방(1)

괴로움(苦)

소리없는 아우성 2012. 12. 4. 12:08

괴로움(苦)
“괴로움, 존재자의 속성 아닌 제거할 대상”
“1차 괴로운 느낌 2차 파급 이어지지 않아야”

S: duh.kha, P: dukkha, T: sdug bsngal, E: suffering, Cs: 豆佉


불교의 궁극적 목표는 해탈, 곧 벗어남이다. 그리고 그 벗어나고자한 곳은 괴로움(苦)이다. 광대한 8만4천 법문도 결국은 이 괴로움의 원인을 파악해 괴로움이 무엇인지를 바르게 알고, 그 괴로움을 없애는 방법을 터득하고 수행해서 괴로움을 완전히 없애버린 것 다름 아니다. 석가모니 붓다가 성도 후 가장 먼저 가르친 내용이기도 한 이것은 불교의 출발점이자 종착점이라 할 수 있다.
이 모든 것을 논하기엔 능력과 지면에 한정이 있는 만큼, 여기서는 괴로움의 의미와 더불어 확실한 이해가 필요한 그 발생양태를 중심으로 살펴보겠다.

두카(duh.kha)의 내용과 성질

두카(duh.kha), 곧 ‘苦(고)’의 의미는 우리가 생각하는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곧 슬픔, 고통, 고생, 고뇌, 불편, 불행, 걱정 따위의 의미를 갖고 있다. 비록 ‘괴로움’이라 번역하지만, 두카의 의미를 괴로움에 한정해서 이해한다면 그것은 곁가지로 가는 길일 것이다. 이것의 상대어인 수카(sukha, 樂)는 그와 반대로 행복, 희열, 기쁨, 만족, 유쾌 따위의 의미를 갖는 ‘즐거움’이라 번역할 수 있겠다.
괴로움의 내용은 4고(四苦), 8고(八苦)라는 말로 거의 정형화되어 있다. 4고란 태어나고 늙고 병들고 죽게 되는 괴로움[生ㆍ老ㆍ病ㆍ死苦]이며, 8고란 여기에 좋아하는 사람과 헤어지는 괴로움[愛別離苦], 싫어하는 사람과 만나는 괴로움[怨憎會苦], 자신의 목적을 성취하지 못하는 괴로움[求不得苦], 5온의 취착으로 야기된 괴로움[五陰盛苦]을 더한 것이다.

또 괴로움은 그 성질에 따라 세 가지로 나누기도 한다.
①일반적인 괴로움(苦苦性, duh.kha-duh.khatā): 우리가 일상에서 겪는 육체적․심리적 괴로움이다. 예컨대 배고픔, 질병, 더위 따위의 마음에 들지 않은 모든 괴로움이다.
②조건지어짐의 괴로움(行苦性, sam.skāra-duh.khatā): 평온한 느낌과 3계에 속하는 행(行, sam.skāra)들이 조건 지어진 것임을 보고 느끼는 괴로움이다.
③소멸됨의 괴로움(壞苦性, viparin.āma-duh.khatā): 애착하는 사람이나 사물이 죽거나 파괴되어 몸과 마음을 핍박하는 괴로움이다. 예컨대 욕계5욕락ㆍ색계4선ㆍ무색계4선ㆍ멸진정 따위의 마음에 드는 모든 즐거운 느낌으로 발생한 괴로움이다.
이 가운데 ①은 직접적인 괴로움인 반면, ②와 ③은 그 자체가 괴로움이 아니어도 그것들에 집착해 괴로움이 발생되기 때문에 간접적인 괴로움이라 한다.

괴로움은 제거 대상, 무상성은 통찰 대상

일체법이 무상하다는 것은 자명한 이치이다. 하지만 무상성(無常性) 자체는 우리에게 괴로움으로 직접 다가오지 않는다. 다만 무상성을 제대로 통찰하지 못하고 그것에 집착함으로써 마음이 요동쳐 괴로움이 발생할 뿐이다. 예컨대 5온 그 자체가 괴로움인 것이 아니라 5온을 나[我], 나의 것[我所]이라고 취착하는 것이 괴로움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무상한 것은 괴로움이다’란 표현은 ‘취착하고 있는 5온의 무상함이 괴로움이다’고 이해해야지, ‘무상한 것은 무엇이든지 괴로움이다’로 이해해서는 안 된다. 만약 무상한 것이 바로 괴로움이라면 갈애(渴愛, tan.hā)의 발생에 관계없이 무상한 것은 항상 괴로움이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집성제(集聖諦)의 내용이 그렇듯이 괴로움의 원인은 갈애이지, 무상이 아니다.
그러므로 무상성은 존재자의 속성일 뿐이며 통찰해야 할 대상이지만, 그 자체를 괴로움으로 보는 것은 무리이다. 반면 괴로움은 존재자의 속성이 아니라 통찰을 넘어 소멸시켜야 할 대상이다.

두 번째 화살을 피해야

《잡아함》17권(T2-120a22)을 보면, “거룩한 제자는 육체적 접촉으로 괴로운 느낌을 발생해 큰 고통이 닥치고 죽을 지경이더라도 근심하거나 슬퍼하거나 원망하거나 울부짖거나 심리적 발광을 일으키지 않는다. 그런 때에 있어서 하나의 괴로운 느낌, 곧 육체적인 괴로운 느낌만 발생할 뿐, 심리적인 괴로운 느낌은 발생하지 않는다.”고 했다.
붓다는 5온으로 구성된 유정이라면 누구라도 받아야하는 육체적인 괴로움을 첫 번째 화살로, 갈애로 발생한 괴로움을 두 번째 화살이라 표현했다. 첫 번째 화살은 범부와 성인을 막론하고 누구나 맞을 수 있지만 지혜로운 이는 두 번째 화살을 맞지 않는다. 괴로운 느낌과 접촉해도 성인은 분노를 느끼지 않고 분노의 경향도 가슴 속에 두지 않기 때문이다. 붓다가 4성제에서 소멸시켜야 한다고 말한 괴로움은 첫 번째 화살이 아닌 이 두 번째 화살임을 직시해야 할 것이다.
예컨대 데바닷따가 라즈기르(Rajgir)의 산에서 석가모니붓다에게 바위를 굴려 붓다의 발에 상처를 입혔을 때, 붓다는 괴로움을 경험했을까? 당연히 붓다는 아픔을 느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단지 육체적인 괴로움일 뿐 심리적인 괴로움으로 확대되지 않았다는 데에 논의의 본질이 있는 것이다.

김영석/불교저널 기자

'불교 공부방(1)'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서원(誓願)  (0) 2012.12.04
욕망[欲]  (0) 2012.12.04
분별(分別)  (0) 2012.12.04
견(見)  (0) 2012.12.04
중생(衆生)  (0) 2012.12.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