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밤이 길어요 여름밤이 길어요 당신이 계실 때에는 겨울밤이 짧더니 당신이 가신뒤에는 여름밤이 길어요. 책력의 내용이 그릇되었나 하였더니, 개똥불이 흐르고 벌레가 웁니다. 긴 밤은 어데서 오고 어데로 가는 줄을 분명히 알았습니다. 긴 밤은 근심의 바다의 첫 물결에서 나와서, 슬픈 음악이 되고 .. 님의 침묵 2016.07.31
만족 만 족 세상에 만족이 있느냐, 있다면 나에게도 있으리라. 세상에 만족이 있기는 있지마는, 사람의 앞에만 있다. 거리는 사람의 팔 길이와 같고, 속력은 사람의 걸음과 비례가 된다. 만족은 잡을래야 잡을 수도 없고, 버릴래야 버릴 수도 없다. 만족을 얻고보면 얻은 것은 불만족이요, 만족.. 님의 침묵 2014.08.05
두견새 두견새 두견새는 실컷 운다. 울다가 못 다 울면 피를 흘려 운다. 이별한 한(恨)이야 너뿐이랴마는 울래야 울지도 못하는 나는 두견새 못 된 한(恨)을 또 다시 어찌하리. 야속한 두견새는 돌아갈 곳도 없는 나를 보고도 「불여귀 불여귀(不如歸 不如歸)」 님의 침묵(沈默) : 한용운(韓龍雲) 님의 침묵 2014.04.27
사랑하는 까닭 사랑하는 까닭 내가 당신을 사랑하는 것은 까닭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다른 사람들은 나의 홍안(紅顔)만을 사랑하지마는 당신은 나의 백발도 사랑하는 까닭입니다. 내가 당신을 그리워하는 것은 까닭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다른 사람들은 나의 미소만을 사랑하지마는 당신은 나의 눈물.. 님의 침묵 2013.12.08
달을보며 달을보며 달은 밝고 당신이 하도 그리웠습니다. 자던 옷을 고쳐 입고 뜰에 나와 퍼지르고 앉아서 달을 한참 보았습니다. 달은 차차 당신의 얼굴이 되더니 넓은 이마, 둥근 코, 아름다운 수염이 역력히 보입니다. 간 해에는 당신의 얼굴이 달로 보이더니 오늘밤에는 달이 당신 얼굴이 됩니.. 님의 침묵 2013.07.07
당신이 아니라면 당신이 아니라면 당신이 아니라면 포시럽고 매끄럽던 얼굴이 왜 주름살이 잡혀요. 당신이 그리웁지만 않다면, 언제까지라도 나는 늙지 아니할 테여요. 맨 첨에 당신에게 안기던 그때 대로 있을 테여요. 그러나 늙고 병들고 죽기까지라도, 당신 때문이라면 나는 싫지 않아요. 나에게 생명.. 님의 침묵 2013.06.03
꿈이라면 꿈이라면 사랑의 속박이 꿈이라면 출세(出世)의 해탈도 꿈입니다. 웃음과 눈물이 꿈이라면 무심(無心)의 광명도 꿈입니다. 일체만법(一切萬法)이 꿈이라면 사랑의 꿈에서 불멸(不滅)을 얻겠습니다. 님의 침묵(沈默) : 한용운(韓龍雲) 님의 침묵 2013.04.06
그를 보내며 그를 보내며 그는 간다, 그가 가고 싶어서 가는 것도 아니요, 내가 보내고 싶어서 보내는 것도 아니지만, 그는 간다. 그의 붉은 입술, 흰 이, 가는 눈섭이 어여뿐 줄만 알았더니, 구름 같은 뒷머리, 실버들 같은 허리, 구슬 같은 발꿈치가 보다도 아름답습니다. 걸음이 걸음보다 멀어지더니,.. 님의 침묵 2013.03.18
모순 모 순 좋은 달은 이울기 쉽고 아름다운 꽃엔 풍우(風雨)가 많다. 그것을 모순이라 하는가. 어진 이는 만월(滿月)을 경계하고 시인은 낙화(落花)를 찬미하느니 그것은 모순의 모순이다. 모순이 모순이라면 모순의 모순은 비모순이다. 모순이냐 비모순이냐 모순은 존재가 아니고 주관적이다.. 님의 침묵 2012.12.31
차라리 차라리 님이여, 오셔요. 오시지 아니하려면 차라리 가셔요. 가려다 오고, 오려다 가는 것은 나에게 목숨을 빼앗고, 죽음도 주지 않는 것입니다. 님이여, 나를 책망하려거든 차라리 큰 소리로 말씀하여 주셔요. 침묵으로 책망하지 말고. 침묵으로 책망하는 것은 아픈 마음을 얼음 바늘로 찌.. 님의 침묵 2012.12.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