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 공부방(1)

정(定)

소리없는 아우성 2012. 12. 4. 12:05

정(定)
간택력(簡擇力) 갖춰 지혜로운 삶 전개 지향에 촛점

S: samādhi P: samādhi T: ting nge 'dzin E: meditative concentration,
Cs: 三摩地, 三摩提, 三摩帝, 三昧地, 三摩底, 三昧


석가모니붓다가 자각을 넘어 이타의 길로 들어선 것은 미혹(迷惑)에서 갈팡질팡하는 중생들도 감로(甘露)의 맛을 알게 하려는 것이었듯이, 불교는 ‘무엇(what)’이 아닌 ‘어떻게(how to)’에 그 지향점이 있다 할 수 있다. 따라서 ‘불교’ 자체를 종교나 철학으로 규정하는 것은 결과론적이고 곁가지에 지나지 않을 뿐, 보다 근본적으로는 최고의 안락을 향한 ‘수행체계’라 해야 할 것이다.
수행에 대한 수많은 언급과 설명 가운데 정(定), 곧 산스끄리뜨 사마디(samādhi)는 그것의 요체요, 기체라 할 수 있다. 정은 계(戒)·혜(慧)와 더불어 3학을 이루고, 8정도 가운데 정정(正定)으로, 5근과 5력에서는 정근(定根)과 정력(定力)으로 한 축을 구성하고 있는데, 이는 수행함에 있어 가장 근간을 이루기 때문이다.

정(samādhi)은 ‘집중’ ‘전념’ ‘몰입’ 등 폭넓은 의미 가져

‘삼매(三昧)’라는 음사어로 많이 알려져 있는 정(定)은 사실 본래 음가가 ‘사마디’이다. 완전한 명상에 의해 이끌어지는 의식 상태를 나타내는 술어인 사마디는 명상적 집중의 높은 단계이자, 명상을 통한 정신적 수습을 말한다.
사마디는 그 뿌리를 사마다(samadha)에 두고 있는데, 그것은 다시 ‘sam + a +dha’로 분석된다. 여기서 ‘sam’은 ‘함께’ ‘통합된’, ‘a’는 ‘향하여’, ‘dha’는 ‘얻는 것’ ‘쥐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사마디는 ‘통합을 향해 나아감’ 또는 ‘통합을 얻음’이란 의미가 된다. 흐트러진 것을 한 데 모은다는 뜻이다.
사마디는 다시 말하면, ‘집중’ ‘전념’ ‘몰입’ 등이 사마디의 의미가 된다. 풀어서 말하면, ‘마음을 하나의 대상에 오롯이 쏟게 하는 것’ 또는 ‘마음이 하나의 대상에 머물러 움직이지 않는 상태’라 할 수 있다. 또 모든 외적 감각이 제거된 침착하고 평온한 내적 상태이다. 반면 마음이 흐트러지고 어지럽게 움직이는 상태를 산위(散位)라 한다.
그러나 이러한 표현이 정(定)의 의미를 그대로 드러낸다고 하기는 어렵다. 경론에서 정(定)은 상당히 폭넓은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왜냐면, 정(定) 자체의 의미는 앞의 설명과 같지만, 수행단계나 처하는 국면에 따라 조금씩 다른 의미를 함축하더라도 모두 정(定)의 범주에 포함되기 때문이다.

국면에 따른 의미 달라

《성유식론요의등》5권(T43-753b18)에 설명하고 있는 정(定)의 7가지 다른 이름을 살펴보면 그 구분이 보다 확실해진다.
①사마히따(samāhita, 三摩呬多, mnyam par gzhag pa): 등인(等引)으로 의역한다. ‘등(等)’은 마음의 들뜸이나 가라앉음을 제거하고 균형을 유지해서 몸과 마음이 편안한 상태이며, ‘인(引)’은 자력으로 발생시킨다는 의미이다. 그래서 사마히따는 몸과 마음이 사마디에 고정되거나 집중돼 몸과 마음의 일치를 가져오는 명상이라고 한다. 유심위(有心位), 무심위(無心位), 정위(定位)에서는 가능하지만 산위(散位)에서는 불가능하다.
②사마디(samādhi, 三摩地, ting nge 'dzin): 정(定)의 본질[本體]로서, 등지(等持)로 의역한다. 마음이 균등하게 대상을 받아들여 유지한다는 의미이다. 마음을 정리하거나 고정시키는 것에 의해, 대상에 안정되고 조화된 마음 활동 상태에 의해, 흐트러지고 산만한 마음의 소멸에 의해, 평정한 마음에 의해 고정되거나 방해받지 않은 마음이며 또한 대상에 완전하게 집중시킨 주의력으로부터 도출되거나 도움이 되는 정신적 평정상태이다. 이 사마디의 목표는 괴로움과 윤회의 속박으로부터의 해방이지, 무아경ㆍ황홀ㆍ망연 같은 추상개념과는 구별된다.
③사마빳띠(samāpatti, 三摩鉢底, snyoms par 'jug pa): 정(定)의 특징[自相]으로서, 등지(等至)로 의역한다. 고요함이 지속되는 명상적인 평형상태로서, 글자 그대로는 ‘달성’ ‘도달’ ‘성취’를 의미해 이미 몸과 마음이 균형잡힌 상태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이 상태는 정신적 에너지의 통합에 의해 이뤄진다. 이것을 수행하면 현전하는 대상을 바르게 받아들여 광명을 발생하고 경쾌하고 수승하며, 염오한 것이나 염오하지 않은 것을 대하더라도 물러남이 없게 된다.
④드야나(dhyāna, 馱那演那, 禪那, 禪, bsam gtan): 정려(靜慮)로 의역한다. 명상적인 전념, 고요하게 분별함 등의 의미이다. 모든 주관과 객관의 장애들로부터 마음 자체가 자유롭고 사고와 인식의 절대적 무관심과 절멸 상태에 도달함을 통한 네 가지 단계들이 4가지 선이다. 유심위, 무심위, 유루(有漏), 무루(無漏), 색계의 정(定)에서는 가능하지만 무색계의 정(定)에서는 불가능하다. 곧 색계는 4선(四禪)인 반면 무색계는 4정(四定)이다.
⑤찌따이까그라따(cittaikāgratā, 質多翳迦阿羯羅多, sems rtse gcig pa, sems rtse gcig pa nyid): 정(定)의 본성으로서, 심일경성(心一境性)으로 의역한다. 마음을 하나의 대상에 집중·고정시킨다는 의미이다. 그 대상은 경우에 따라 유익할 수도 유익하지 않을 수도 있다. 따라서 유익한 대상에 마음을 집중해야 하는데, 이것을 선심일경성(善心一境性, kuśala-cittāikāgratā)이라 한다.
⑥샤마타(śamatha, 奢摩他, zhi gnas): 지(止), 적정(寂靜) 등으로 의역한다. 산란한 마음을 제거하고 상념을 그친 마음의 적정한 상태를 의미한다. 또는 활동하는 마음을 쉬게 하는 것, 자신의 최면, 어떤 장소나 국면에 견실하게 고정된 마음으로도 규정된다. 유심위(有心位)의 청정한 정(定)에서만 가능한 이 수행은 사고의 흐름을 멈추는 데에 겨냥하고 있다. 이 샤마타를 통해 일체의 바깥 대상과 망념을 그쳐서 특정한 대상에 몰입하며, 위빠샤나(vipaśyanā, 觀)를 통해 바른 지혜로 그 대상에 대한 철학적 존재론적 이치에 관해 관찰하고 조사하고 가려낸다.
⑦드리쉬따다르마수카비하라(dr.s.t.a-dharma-sukha-vihāra, 現法樂住, mthong ba'i chos la bde bar gnas pa): 현재세에 해탈의 법락(法樂)에 머무른다는 의미로, 정(定)에 결과에 의지해 이 이름이 있다. 무학(無學)의 성자가 유익한 정려를 수습해 해탈의 법락에 머무르는 것으로, 속이는 생각을 완벽하게 제거하고 심신이 정지한 명상상태로 묘사된다. 이것은 색계의 네 근본정(根本定)에서만 가능하고 근분정(近分定)과 무색계에는 있을 수 없다.

정(定)의 구분

정(定)은 또 입정의 단계, 질적 차이 및 심사(尋伺)에 따른 단계 등에 의해서도 여러 가지로 구분된다. 간략히 도식화하면 다음과 같다
이러한 불교의 정(定)은 고대 인도의 요가처럼 고요히 앉아 산란한 마음을 없애는 명상의 차원에 머무르지 않고 더 나아가 사마디의 경지에서 근원적인 지혜로 일체의 사물과 진리를 볼 수 있는 ‘힘’을 갖추어 지혜로운 자기의 삶을 전개하는 데에 지향점이 있다는 것이 그 특징이라 할 수 있다.

김영석/불교저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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