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 공부방(1)

근(根)

소리없는 아우성 2012. 12. 4. 12:01

근(根)
‘기관’보다는 ‘기능’에 초점 맞춰진 술어
‘근기(根機)’ 의미도 가져

불교한역경전 상 근(根)에 해당하는 산스끄리뜨는 indriya와 mūla가 있다. 일반적으로 ‘근·경·식(根境識)’이라 할 때의 근은 전자를 가리킨 것이며, ‘선근(善根)·불선근(不善根)’이라 할 때는 근본(根本)을 의미하는 후자를 가리킨 것이다. 여기서 살펴볼 것은 전자, indriya이다.

S·P: indriya, T: dbang po, E: faculty, Cs: 因姪唎焰


근(根)은 증상(增上: 강력한 세력의 작용)의 의미
불교 교리를 접하다보면 자주 듣는 말 중에 안근·이근·비근·설근·신근의 5근이 있다. 이 말을 설명할 때 대부분은 눈·귀·코·혀·몸이라 하고, 그 말을 듣는 사람들은 대부분 상식선에서 생각하고 외형적 기관의 eyes·ears·nose·tongue·body로 이해한다. 하지만 eyes는 안(眼)일뿐, 안근(眼根)과는 다르다. 곧 근(根)에는 무언가 다른 의미를 갖고 있다는 말이다.

어원적으로 볼 때 근(根)의 원어인 indriya의 어근은 √ind와 √indh 2가지이다. √ind는 ‘가장 월등한 힘을 갖다’는 의미이고, √indh는 ‘밝게 드러내다’는 의미이다. 《구사론》3권(T29-13b12)에서 “가장 월등한 자재함과 밝게 드러냄을 근(根)이라 한다”고 한 것도 이러한 두 가지 어근에 의거해 설명한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이 둘의 의미를 다 포섭해 논서에서는 인드리야가 증상(增上: ādhipatya)의 의미를 갖는다고 한다. 증상이란, 기본적으로 ‘뛰어남’·‘우세함’·‘탁월함’ 등을 의미하는데, 여기서는 이것을 바탕으로 ‘강력한 세력을 더해 사물이 강대해지도록 전진을 조장하는 작용’이다.

22근 가운데 다섯은 네 군데서, 넷은 두 군데서,
다섯과 여덟은 염오와 청정에서 각각 따로 증상하네
그렇다면 일체만법 가운데 어떤 것들이 증상의 의미를 갖는 근이 될까? 이에 대해 아비달마논사들은 22가지로 정리했다. 곧 ‘22근’이라 말하는 것으로서, ‘사물에 대해 증상의 의미를 특별히 갖고 있는 22가지 법’이란 의미이다.《4아함》에는 그것이 여러 곳에 나눠서 설명되어 있을 뿐 하나로 모아 ‘22근’이라 한 곳은 보이지 않는다.
이제 무엇에 근거해 그 22가지 법이 증상의 의미, 곧 근(根)이란 이름을 갖게 됐는지 살펴보자.

먼저 안근(眼根)·이근(耳根)·비근(鼻根)·설근(舌根)·신근(身根)은 5색근(五色根)이라 하는데, 물질적 요소로 그 모양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가시적인 눈·귀·코·혀·몸을 말하는 부진근(扶塵根)과 눈에 보이지 않는 그것의 기능인 승의근(勝義根)으로 구성돼 있다. 근·경·식 3사(三事)를 말할 때의 근의 의미가 그렇듯이, 교학에서 말하는 근도 승의근의 의미가 짙다.
이러한 5근은 각각 (1)몸을 아름답게 하고 (2)몸을 보호하며 (3)인식과 그에 따른 마음작용을 발생하고 (4)지각 대상을 함께 하지 않는다는 것에 증상의 의미가 있다.
한편 의근(意根)은 (1)후유(後有)를 잇고 (2)자유자재로 대상을 따라 조작[行]한다는 데에 증상의 의미가 있다.

이어 여근(女根)·남근(男根)·명근(命根)이 있다. 남근과 여근은 남자와 여자가 갖추고 있는 성기와 그 기능으로서, 이것도 5근처럼 승의근과 부진근이 있다. 여기서도 그 기능인 승의근에 초점을 맞춰 이해해야 한다. 이 두 근은 (1)유정(有情)을 여자와 남자로 구별 짓고 (2)또 형체·말소리·유방 등에서 구별 짓는다는 데에 증상의 의미가 있다. 수명(壽命)을 의미하는 명근은 (1)같은 부류의 성질[衆同分]을 잇고 (2)유지한다는 데에 증상의 의미가 있다.

접촉[觸]에 따라 받아들이는 느낌의 5가지 분류인 낙근(樂根)·고근(苦根)·희근(喜根)·우근(憂根)·사근(捨根)은 색근과 구별하기 위해 5수근(五受根)이라 한다. 이 5수근은 탐(貪) 등 번뇌에 순응해 증가시킴으로써 염오함에 대해 증상의 의미가 있다.

번뇌를 제거하고 성도(聖道)로 나아갈 수 있게 하는 수승한 작용인 신근(信根)·근근(勤根)·염근(念根)·정근(定根)·혜근(慧根)은 5무루근(五無漏根)이라 하며, 37보리분법 가운데 한 축인 5력(五力)이기도 하다. 이 5무루근은 청정한 법들을 발생하고 성장시킨다는 데에 증상의 의미가 있다.

3무루근(三無漏根)이라 하는 미지당지근(未知當知根)·이지근(已知根)·구지근(具知根)의 본질은 모두 의근·낙근·희근·사근·5무루근의 9가지 근이지만 각각 견도(見道)·수도(修道)·무학도(無學道)에서 발생된다는 차이가 있다. 3무루근도 5무루근처럼 청정함에 대해 증상의 의미가 있다.

그래서 《잡집론》5권(T31-715c16)에서 처음 6근은 경계의 증상, 남·여근은 산출의 증상, 명근은 유지의 증상, 5수근은 이숙과를 향유함의 증상, 5무루근은 탐욕을 제거한 세간 청정함의 증상, 3무루근은 탐욕을 제거한 출세간 청정함의 증상이라 한 것이다.

근기(根機)도 근의 의미
한편, 인드리야(indriya, 根)에는 증상(增上)의 의미와 더불어 근기(根機)의 의미도 있다. 근기란 붓다의 가르침을 받아들이는 능력 및 교화할 수 있거나 교화될 수 있는 능력을 말한다. 예컨대 불법(佛法)을 만나 온갖 어려움 속에서도 혼신을 다해 배우려는 자가 있고, 혹여 만나더라도 고개를 돌려버리는 자가 있으며, 아예 만나지도 못하고 한 삶을 마감하는 자가 있는 것도 근기가 다르기 때문인 것이다. 이러한 차이 때문에 예리한 근기[利根]과 중간정도의 근기[中根]과 둔탁한 근기[鈍根]의 구별이 있고, 또한 8만4천 방편이 있다.

석가모니붓다는 설법할 때 항상 그 말을 들을 대상의 근기를 먼저 살피고 그에 알맞게 설법했는데, 이를 대기설법(對機說法) 또는 수기설법(隨機說法)이라 한다. 이 때 스승의 근기와 배우는 자의 근기가 서로 계합하는 것을 두기(逗機)라 하며, 이를 선가(禪家)에서는 투기(投機)라 하기도 한다.

김영석/불교저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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