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蘊), 그리고 5온과 5취온 | |
5온에서는 무상을, 5취온에서는 괴로움을 보아야 | |
스깐다(skandha), 온(蘊). 온 한 글자는 그 자체로서 큰 중요성을 띠지 않는다. 하지만 불교 핵심술어 가운데 하나인 5온으로 재탄생함으로써, ‘5온’ 두 글자로 일체법을 포섭하는 깊이까지 감으로써 결코 가벼이 넘길 수 없는 글자가 돼 버렸다. 이 5온 자체의 말에는 유루의 5온이 있고 무루의 5온이 있다. 전자는 익히 들어본 5취온이며, 후자는 붓다와 아라한이 갖추고 있는 5가지 공덕인 5분법신(五分法身) ― 계신(戒身)·정신(定身)·혜신(慧身)·해탈신(解脫身)·해탈지견신(解脫知見身)이다. 여기서는 무루의 5온을 제외한 5온 자체와 5취온을 중심으로 살펴볼 것이다. 온(蘊)은 적취, 덩어리, 집합 부류의 의미 스깐다(skandha)를 구역에서는 음(陰) 또는 중(衆) 등이라 했지만 현장(玄奘)이 온(蘊)으로 한역한 이후 보편적으로 온으로 사용하고 있다. 여기서도 ‘온’으로 통용할 것이다. 첨언컨대, 이와 같이 신·구역어가 혼용되는 술어를 하나로 통일하는 작업도 앞으로 필요하다. 스깐다는 ‘뛰어오르다’, ‘흘러나오다’ 등의 의미를 갖는 √skand로부터 파생된 단어로서, 그 의미는 논서에 따라 차이가 있다. 예컨대《변중변론》에서는 시간적․공간적으로 성질이나 양 등이 여러 가지라는 면에서 비일(非一), 하나로 모여 있다는 면에서 압축[總略], 성질별로 분류되어 있다는 면에서 분류[分段]로 의미를 구분한다. 또《구사론》에서는 여러 부류가 하나로 모여 있다는 면에서 화합취(和合聚), 결과를 짊어지고 있다는 면에서 어깨[肩], 성질별로 분류되어 있다는 면에서 분류[分段]로 의미를 구분한다. 《마하지관》에서는 진리를 덮어 감춘다는 면에서 덮음[蔭蓋], 여러 가지가 모여 있다는 면에서 적취(積聚)로 의미를 풀이한다. 이러한 의미들 가운데 여기서 주목하는 것은 적취, 덩어리, 모음, 집합, 쌓임 같은 부류의 의미로서의 ‘온’이다. 현장이 ‘蘊’으로 한역한 것도 이러한 의미들을 부각시키기 위해서임을 유추해볼 수 있다. 이런 저런 색들은 색(色)일 뿐, 색온은 아니다 일체법을 분류하는 3과설(三科說) 가운데 하나인 5온(五蘊, pañca-skandha)은 말 그대로 다섯 가지 온, 곧 색온(色蘊), 수온(受蘊), 상온(想蘊), 행온(行蘊), 식온(識蘊)을 말한다. 이 가운데 색온은 물질측면으로, 나머지 4온은 정신측면으로 구분해, 5온은 인연으로 생긴 일체유위법을 포함하게 된다. 다른 분류법과 비교해보면 5온은 5위 75법 가운데 무위법을 제외한 72법을, 5위 100법에서도 무위법을 제외한 94법을 포함한다. 색온은 색의 온, 곧 여러 가지 물질대상의 집합체를 말한다. 그런데 색온을 단순히 지(地)·수(水)·화(火)·풍(風) 4대(四大)로 이루어진 물질적인 부분이라 설명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색온은 이런 저런 색들을 한 데 뭉쳐서 지칭한 것이 아니라 어떤 하나의 색의 이러저러한 양태들을 한 데 뭉친 것이기 때문이다. 《잡아함》2권에서 “비구들이여, 어떠한 물질이든 과거세에 속하든 미래세에 속하든 현재세에 속하든 내적이건 외적이건 거칠건 미세하건 저열하건 탁월하건 멀리 있건 가까이 있건 무엇이든지 이와 같은 것을 색온이라고 부른다”고 한 것에서도 알 수 있다. 나머지 4가지 온도 마찬가지이다. 이런 저런 느낌은 수(受)일 뿐 수온이 아니며, 이런 저런 표상은 상(想)일 뿐 상온이 아니며, 이런 저런 조작은 행(行)일 뿐 행온이 아니며, 이런 저런 인식은 식(識)일 뿐 식온이 아님을 직시해야 한다. 어떤 사람들은 이러한 5온을 5취온과 동일하게 생각하기도 하는데, 이 둘은 분명히 구분되는 것이고 그 차이를 알아야 한다. 5취온은 모두 심리작용일 뿐 5취온(五取蘊, pañca upādāna-skandha)은 취(取: 번뇌)에 의해 발생하거나 취를 발생시키는 유루의 5온으로서, 5수음(五受陰)이라고도 한다. 곧 취로부터 발생하거나 취를 발생하는 다섯 가지 온이라는 의미로서, 색취온(色取蘊), 수취온(受取蘊), 상취온(想取蘊), 행취온(行取蘊), 식취온(識取蘊)이 그것이다. 《구사론》3권에서는 취온의 의미에 대해 “일체 번뇌를 통틀어 취(取)라 하는데, 온이 취로부터 발생하거나 온이 취에 부속되거나 온이 취를 발생하기 때문에 취온이라 한다”고 했다. 한편 《잡집론》1권에서는 “취와 합하기 때문에 취온이라 한다. 취는 모든 온들 가운데 있는 욕탐(欲貪)이다”고 했다. 그래서 《품류족론》2권에서는 색취온에 대해 “루(漏)가 있고 취(取)가 있는 색들이 과거세나 미래세나 현재세에 있으면서 욕심을 발생하거나 탐욕․성냄․무지를 발생하거나 하나하나 심소에 따르는 수번뇌를 발생할 때에 생기는 것을 색취온이라 한다”고 했다. 그 밖의 네 가지도 이러한 방식으로 설명된다. 곧 불선법이나 번뇌법들이 발생할 때 생기는 심리작용인 것이다. 여기에는 5온에서 식온이 마음이고 수온·상온·행온이 심리작용인 반면, 5취온 전체는 모두 심리작용이라는 큰 특징이 있다. 다른 관점에서, 온은 유루와 무루에 다 통하지만 취온은 유루에만 통한다. 또 온은 고성제·집성제·도성제 3가지에 속하지만, 취온은 고성제와 집성제에만 속한다는 차이점이 있다. 5온에서 괴로움을 볼 수 없다 우리가 자주 암송하는 《반야심경》문구 가운데 ‘조견오온개공(照見五蘊皆空)’이 있다. 5온이 공(空)임을, 무상임을 관하는 것은 반야(般若)로 5온이 연기임을 통찰하는 것이다. 5온가합(五蘊假合)이란 표현도 이를 말하는 것이다. 이러한 통찰을 통해 일체의 존재에 대한 애착을 끊고 무명을 소멸시킬 때 열반의 감로수(甘露水)를 맛보게 된다. 따라서 5온 자체는 괴로움이 될 수 없고 다만 5온을 통해 무상함을 관찰해야 하는 것이며, 그 5온을 ‘나’이며 ‘나의 것’이라고 취착하는 5취온이 바로 괴로움임을 알아야 한다. 김영석/불교저널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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