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본 불교 이야기

근본불교의 기본적 성격

소리없는 아우성 2012. 12. 10. 05:33

근본불교의 기본적 성격




45년간의 설법(說法)

부처님이 설법을 시작하신 후 세상을 떠날 때까지는 약 45년간이었다. 거의 반세기에 이르는 그 긴 세월을 이 스승은 쉬지 않고 광막한 인도의 곳곳을 누비면서 설법하였다. 이것은 참으로 희귀(稀貴)한 일이다. 그것보다 더 희귀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이 세월에 이르는 설법은 시종부동(始終不動)의 원리에 의해서 일관되었으며 거의 변화가 없다는 점이다. 성도(成道)에서 최초의 설법에 이르는 동안에 닦은 기저(基底)는 그 이후 변하며 흔들리는 일이 없었다. 이것은 지혜와 실천의 길을 가는 교조(敎祖)로서는 매우 지당하며 어울리는 일이었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면 이것을 예수 그리스도의 설법과 비교해 볼 때 다음과 같은 점을 지적할 수 있다. 예수 그리스도가 복음을 설교하기 시작한 후부터 그 비극적인 최후에 이르는 동안은 1년 혹은 길어도 3년을 넘지 않는다. 말하자면 그는 돌연히 나타나서 홀연히 떠나간 것이다. 그 설법의 기간은 부처님에 비하면 매우 짧다. 더욱이 그 짧은 기간의 설법은 그 전반과 후반에 있어서 눈에 뜨이는 변화를 보여주고 있다. 그 태도에 있어서도 그 내용에 있어서도 혼동(混同)할 수 없는 현격한 차이(差異)가 있다.

그런데 여기 부처님의 설법은 거의 반세기에 이르는 긴 동안의 것임에도 그 사이에 거의 주목할 만한 변화가 없는 점이다.


주지(周知)하는 바와 같이 이 스승은 때에 따라서 곳에 적합하도록 또 사람들의 근기(根機)에 상응(相應)해서 여러 가지로 그 법을 전개하였다. 소위 대기설법(對機說法)이었다. 그러나 그러한 설법은 아무리 가지각색이라하여도 그 바탕에 있는 것은 언제나 정연하였으며 혼란스럽지 않았다. 따라서 우리는 어떠한 경전을 듣고서 그것은 언제쯤 설교한 것인가를 쉽게 짐작할 수는 없는 것이다. 물론 쉽게 알 수 있는 경우도 있다. 예를 들면 어떤 경전에서는 아직도 젊은 이 스승의 모습을 볼 수 있다. 또 어떤 경전에서는 이미 늙어서 쇠약한 스승의 애처로운 모습을 볼 수 있다.도 어떤 경전에서는 이 스승보다 먼저 세상을 떠난 샤알리푸트라(舍利弗)가 아직도 건재(健在)하며 별로 만년(晩年)의 것은 아니리라고 추측할 수 있는 것도 있다.


그러나 이 스승의 설법에는 그 사상의 변화나 혹은 태도의 뉘앙스에 따라서 대략 시기를 추측할 수 있는 가능성은 거의 없다. 그 긴 세월을 통해서 이 분의 사상은 처음에서 끝까지 부동(不同)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 태도는 언제나 침착하였으며 그리고 간곡한 것이었다.


이 길의 기본적 성격을 설명한 경전

그러나 아무런 변화없는 것 속에서 우리는 이 스승의 만년(晩年)의 설법에 관해서 좀 주의해야 할 변화를 발견할 수 있을 것 같다. 특히 마지막 수개월에 있었던 유행(遊行)과 그 죽음을 기록한 《유행경(遊行經)》에 있어서의 이 스승의 설법에는, 역시 다른 경전에서는 볼 수 없는 그 무언가 다른 점이 있는 듯하다.


물론 부처님의 설법의 부동(不同)의 바탕에는 조금도 흔들림이 없었다. 그런 뜻에서는 역시 새로운 변화는 조금도 없다. 그러나 이제 이 스승은 이 지상(地上)에서의 삶을 끝내고 그 사랑하는 제자들과 영원히 작별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이러한 것이 예상되었을 때 당연히 이 스승의 관심의 초점이 된 것은 멸후(滅後)의 교단(敎團)의 실태였으리라고 생각된다. 여기에 하나의 새로운 시야(視野)를 확대시킬 수 있다. 이와 같은 관점에서 이루어진 스승의 설법에는 역시 다른 경전에서는 보기 어려운 긴장과 빛이 있었다.


많은 대기설법(對機說法)에 있어서는, 이 스승은 분명히 그 근기(根機)에 알맞게 설명하기 위해서 여러 번 양보적(讓步的)으로 말하고 있다. 예를 들면 죽은 후의 생천(生天)의 소원을 품는 사람들에게 대해서는 그 소원을 그대로 두며, 그에게 적합하게 설교하며 지도하였다. 또 예를 들면 육방(六方)을 예배(禮拜)하는 것을 그 습관으로 하는 사람들에게 대해서는, 그 습관은 그대로 지키게 하면서 그들을 교도하였다. 그 정연하며 움직이지 않는 바탕에는, 그러한 양보(讓步)를 하면서도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다.


그러나 사정은 이제 좀 변하여졌다. 내가 죽은 후의 이 길의 실태, 이런 것이 관심의 초점이 될 때 이제 다시 한번 더 분명하게 이 길의 기본적인 모습을 후대(後代)의 사람들을 위해서 규정하여 두지 않으면 안 되었다. 이런 상황이 이 《유행경(遊行經)》에 있어서의 모든 설법의 첫 번째 과제였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스승의 최후의 여행은 라쟈그리하(王舍城)에서 출발하여 북쪽으로 향하여 밧다리촌(지금의 파트나)에서 강가―(간지스강)를 북쪽에서 건너며 뱃살리(毘舍離)를 지나서 쿠쉬나가라의 맛라(末那) 족(族)의 소속 영토인 사라(沙羅)의 숲에 다달았으며 거기에서 큰 임종(臨終)을 맞이함으로써 막을 내린다. 그 도중에 뱃살리에 이르렀을 때 우기(雨期)가 시작하였다.

그것은 지금이나 옛날이나 변하지 않는 무서운 습도와 숨막히는 고온(高溫)의 기간이다. 일행은 정한 대로 우안거(雨安居)에 들어갔지만 늙고 쇠약한 부처님은 그때 무서운 병에 걸렸다. 격통(激痛)에 몹시 시달린 늙은 몸은 거의 사경(死境)에 이르렀다. 그러나 부처님은 힘을 다하여 그 병을 참으며 겨우 생명을 유지하였다. 그때 부처님은 고통을 참으면서 이렇게 염원하였다고 경전은 기록하고 있다.


“지금 내가 제자들에게 고(苦)하지도 않으며 최후의 고계(敎誡)를 남기지도 않으며 사라진다면 그것은 나에게 있어 상응(相應)한 일은 아니리라. 나는 지금 노력하여 이 병을 참으며 수명(壽命)을 보전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그러면 과연 부처님은 이러한 때를 당해서 그 제자들에게 무엇을 말하려고 한 것일까. 그것은 이 길을 가려는 자의 마지막 모습이며 그 구극(究極)의 의지처(依支處)에 관한 것이며 또 그 교단(敎團)의 존재형태에 관한 타협 없는 발언(發言)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이 경전에서 이 길의 가장 기본적인 성격에 관한 가르침의 말씀을 의심할 바 없는 명확한 것으로서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이다.


법(法) 앞에서는 평등(平等)하다는 것

그 하나는 이 불교 승가(僧伽)의 기본적 성격에 관한 발언(發言)이었다. 부처님은 병고를 참고 견디면서 겨우 원기를 회복할 수가 있었다. 그때 아난다(阿難)는 이 스승에게 절을 한 다음,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세존이시여, 세존께서는 건강을 회복하셨습니다. 세존께서 전에 병이 심하였을 때 저는 온몸에서 힘이 쭉 빠지며 사방이 캄캄해진 듯한 느낌뿐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때 저는 세존께서는 무엇인가를 비구 승가(僧伽)에 관해서 말씀하는 일이 없이 세상을 떠나실 리가 없다고 생각하였을 때 어느 정도 마음의 안도를 느꼈습니다.”


이 말의 뜻을 헤아려 보자. 아난다가 이해한 바에 의한다면 이 스승은 지금 현재 이 교단(敎團)의 지도자이다. 그가 세상을 떠난다면 반드시 다음 지도자에 대한 지명(指名)이 있을 것이다. 그런데 아직도 그러한 말이 없기 때문에 최후의 때는 아니라고 생각하였다는 것이다. 그러나 부처님의 생각은 달랐다.


“그러면 아난다여, 비구들은 나에게 무엇을 기대하고 있단 말인가. 나는 안도 없이 바깥도 없이 모든 법을 설명하였다. 여래의 법에는, 어떤 것을 제자에게 숨기는 것 같은, 스승만이 가지고 있는 비밀은 없다.

진실로 아난다여, 만일 내가 나는 비구승가의 지도자이다 라든가, 비구승가는 나에게 의지하고 있다든가,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면 나는 최후를 맞이해서 비구승가에 관해서 무엇인가를 말하지 않으면 안 되리라.

그러나 아난다여, 나는 이 비구승가의 지도자도 아니며 또 비구승가는 나에게 의지하고 있다고도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러므로 아난다여, 나는 최후에 있어서도 비구승가에 관해서 말할 아무것도 없다.”

앞에서 지적한 것처럼 이 불교승가에 있어서는 모든 구성원이 서로 선지식(善知識=착한 벗)이며 평등하며 화합하는 단체가 되어 서로 도우며 격려하는 것을 그 근본정신으로 한다. 따라서 거기에는 지배하는 자도 없으며 지배받는 자도 없으며 모든 사람이 법 아래 있으면서 평등하다. 부처님도 또한 본래는 이러한 평등화합한 단체의 한 사람의 단원임에 불과하다.


그렇다면 부처님의 후계자로서 어떤 사람이 지명되어야 한다는 생각은 전혀 필요없는 일이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 교단에 있어서 부처님의 지위는, 역시, 어떤 특별한 것이었으리라고 생각하는 것도 무리한 일은 아니다. 이 길은 바로 부처님이라는 스승에 의해서 깨달아졌으며 설명되었으며, 사람들은 이 스승에 의해서 가르침을 받으며 인도되어 여기에 몸을 던진 것이다. 몸을 던진 후에도 언제나 이 스승을 우러러보며 법을 근본으로 하며 규범으로 하며 의처(依處)로 하면서, 오늘에 이르렀다.


따라서 그 직제자(直弟子)들이 여기에 그 길의 주(主)가 있으며 지도자가 있었다고 생각한다 해도 그것은 결코 도리에 어긋난 것은 아니리라. 그러나 한 번 더 곰곰이 생각하며 이 길의 본래의 모습을 더듬어 보면, 그것은 법을 근본으로 하면서 모든 사람이 평등하다는 것을 앞세우는 길이어야 할 것이다. 이러한 점을 부처님은 지금 아난다에게 가르치신 것이다.


자기의 주인은 자기 뿐이다

그 두 번째에는, 이 길은 법 아래서 모든 사람이 자주(自主)이여야 한다는 발언(發言)이었다. 앞에서 말한 것에 관해서 부처님은 다시 또 아난다를 위해서 다음과 같이 가르치셨다.


“그런고로 아난다여, 그대들은 여기에 스스로를 섬(洲)으로 하며 스스로를 의소(依所)로 하며 다른 사람을 의소(依所)로 하지말며 법을 섬(洲)으로 하며 법을 의소(依所)로 하여 다른 것을 의소(依所)로 하지 않으면서 주(住)하는 것이 좋으리라.

아난다여, 진실로, 이 시각에 있어서도, 또 내가 죽은 후에 있어서도 스스로를 섬(洲)로 하며, 스스로를 의소(依所)로 하며, 다른 사람을 의소로 하는 일없이 또 법을 섬(洲)으로 하며 법을 의소로 하며, 다른 것을 의소로 하지 않으면서 수행(修行)하려는 사람이야 말로, 아난다여, 그러한 사람은 내 비구들 가운데서 최고의 지위에 있는 자이다.”


이와 같은 언급은 이미 앞에서도 말한 것이지만 아무리 강조하여도 충분하다고 말할 수 없는, 말하자면 불교에 있어서는 매우 기본적이며 그리고 가장 중요한 점이다.

세상에는 종교를 신(神)에게 매달리는 인간의 길이라고도 한다. 신앙(信仰)이란 이러한 길에서 인간이 신(神)에게 절대적으로 빙의(憑依)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많이 있다. 그러나 이제 부처님에 의해서 시작된 이 길에서 있어서 인간은 절대적으로 의지할 의처(依處)는 없다. 이런 뜻에서 이 길은 무엇에도 의지할 것이 없는 자주(自主)의 길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 점에 대해 유명한 《법구경(法句經)》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자기의 의소(依所)는 자기 뿐이니라.

다른 것에 무슨 의소가 있겠는가.

자기가 능히 조어(調御)되었을 때

사람은 얻기 어려운 의소를 얻는 것이다.


이것은 다시 바꾸어 말하면 앞에서 부처님의 말씀처럼 진실로 의지할 것은 다만 자기와 그리고 법 뿐이라는 뜻이 된다.


자기 형성(形成)의 의지처(依支處)

이것을 다시 오늘날의 이해(理解)에 알맞도록 설명한다면, 이 길은 철두철미(徹頭徹尾) 인간의 자기 형성의 길로서 존재한다고 말할 수 있다. 생각컨대 이 길에 있어서 간구(懇求)되는 것은 신(神) 앞에 머리를 숙이며 죄를 용서받으며 구원받는 것은 아니다. 또 신의 은총에 의해서 천국에 가는 것도 아니다. 하물며 노력하지 않으면서 재물을 얻으려는 것도 아니며, 또 공로 없이 영예(榮譽)가 주어지기를 기다리는 것도 아니다. 이 길에서 간곡히 추구되는 단 하나의 길은 앞에서 《법구경》의 표현으로서 말한다면 잘 조어(調御)된 자기의 확립(確立)이다. 이것을 현대용어로 말한다면 인간의 훌륭한 자기 형성이라 할 수 있다.


그러면 어떠한 자기를 형성하여야 하는가. 그 이상상(理想像)은 곧 부처님이다. 그러면 어떻게 하여 자기를 이러한 경지에까지 이르도록 할 수 있는가. 그 이론과 실천은 여러 방편(方便)으로 이 스승에 의해서 설명되었다. 더욱이 이 스승은 이미 그 이상(理想)의 인간상을 자기 한 몸에 구현(具現)하면서 ‘그대들도 오라’고 손짓하고 있다. 만일 이 길을 구현(具現)하는 이론에 관해서 또는 실천에 관해서 조금이라도 의혹이 생긴다면, 이 스승은 언제나 간곡하고 명쾌한 해답을 주었던 것이다. 그것은 이 스승의 제자들 간에 처(處 )해 있었던 상황(狀況)이었다.

그런데 지금 이 스승은 얼마 후에는 임종(臨終)의 때를 맞이하게 될 것이다. 그것을 생각한 아난다는, 슬픔과 함께 당황하게 되었던 것이다.


아난다는 자기의 처소에 가서 문빗장을 입으면서 서럽게 눈물 흘리며 울었다.

“아! 나는 아직도 배워야 할 것이 많이 남아 있는데, 그런데 이 스승은 나를 남겨 두고 떠나시는 것인가.”

그때, 그를 찾고 있던 비구의 목소리가 들려 왔다.

“친구 아난다여, 스승이 그대를 부르고 있소.”

그가 황급히 스승의 앞에 다가갔을 때 스승은 그를 돌아다보면서, 먼저 오랫동안 시자(侍者)로서의 노고(勞苦)를 치하하였다. 그리고 그에게 다음과 같이 설명하였다.

“아난다여, 혹시 너희들 가운데 이렇게 생각하는 자가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우리의 스승의 말씀은 이제 끝났다. 이제 이미 우리에게는 스승이 없다’라고,

그러나 아난다여, 나에 의해서 설교된 교법과 계율(戒律)은 내가 간 후에도 너희들의 스승이 되리라.”


이것도 또한 부처님 멸후(滅後)의 불교의 모습에 관한 중대한 발언이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