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스승 석가모니

근본불교

소리없는 아우성 2012. 12. 2. 23:11

근본불교

1. 여는 말

2. 아함경의 구성

3. 너무나 인간적인 붓다 석가모니

4. 경전에 나타난 인간붓다의 여러모습들

5. 지혜의 道 / 스스로에 귀의하고 진리에 귀의하라

6. 분석적인 가르침 / 현재가 중요

7. 여미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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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여는 말

우리들이 지금까지 알고 있었던 불교란, 교조인 불타 석가모니의 순수한 가르침(敎法) 이기보다는, 조사의 언행이나 선사들의 직설적인 자기주장, 혹은 절에 가서 복을 비는 것쯤으로 잘못 이해되어 온 실정이다.

불교란 더 말할 것도 없이 부처님의 가르침이며, 나아가 스스로 부처가 되는 길 이다. 그럼에도 불타 석가모니의 인간과 사상이 무엇인지 소홀히 다루어 지고 있다. 부처님의 원초적인 가르침이 무엇인지, 그 원형이 어디에 근거를 두고 있는 지를 알지 못하고서는 불교의 실체를 파악하기 어렵다.

지금까지 우리나라에서는 근본불교에 대한 학문적인 인식이나 탐구가 거의 없었다. '소승불교'라고 해서 거들떠 보려고도 하지 않았다. 그래서 우리들은 그저 들은 풍월로, 혹은 지레 짐작으로 저마다 자기 불교를 이루어온 셈이다.

인간의 사상은 항상 그 원천으로 돌아가 살펴볼 필요가 있다. 그렇게 함으로써, 사상은 그 원초적인 정신을 회복하게 되고 새로운 활력을 얻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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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아함경의 구성

불교란 더 말할 것도 부처님의 가르침이며 나아가 스스로 부처가 되는 길이다.
이 경은 석가모니 부처님의 원초적인 가르침을 직접 느낄 수 있는 소박한 언어들로 구성되어 있다.

아함(阿含)이란 팔리어(남방불교의 경전용어)의 Agama에서 음역된 것으로 '오는것' '귀착(歸着)'의 뜻이다. 그러므로 아함경이란 '전해진 경전' 또는 '전승의 경전'을 가리킨다.

그럼, 어떻게 전래된 것인가.
석가모니 부처님이 열반하신 후 5백여명의 장로비구들이 왕사성 밖에 있는 동굴(七葉窟) 주변에 모여 평소 스승(부처)이 가르친 교법과 계율을 편집했으며 이를 제 1결집 또는 5백결집이라 한다.

그때 성립된 그대로가 오늘날 우리들이 대하는 것과 같은 방대한 '아함부의 여러 경전'을 이룬 것은 물론아니다. 제1결집에서 편집된 것은 어디까지나 이 경의 모체가 되었을 뿐 전해 내려오면서 얼마쯤의 변화와 증대와 혹은 재편집을 거쳐 오늘에 이른것이다.

아함경은 다음과 같은 구성으로 이루어져 있다.

1. 한역(漢譯) 4아함

장(長) 아함경 22권 30경(經)
중(中) 아함경 60권 224경
잡(雜) 아함경 50권 1362경
별역(別譯) 잡아함경 16권 364경
증일(增一) 아함경 51권 472경

2. 팔리어 5부 경전

장부 경전 34경
중부 경전 152경
상응부 경전 56상응 7762경
증지부 경전 11집 9557경
소부 경전 15분


이와 같은 근본불교의 뿌리인 아함경은 일부의 경전을 가리킨 말이 아니고, 방대한 경전의 집적(集積)에 붙여진 이름이다. 그러므로 "아함부의 여러 경전"이란 명칭이 알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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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인간적인 , 너무나 인간적인 붓다 석가모니

2,500년이란 오랜 세월이 흘러간 이제 우리는 부처님을 만날 길이 없다. 그러나 살아있을 때의 모습과 분위기와 그 말씨를 비교적 생생하게 전하고 있는 것이 아함경과 그 당시 승단의 생활규범을 기록한 율장(律藏)이 유일한 통로 이다.
아함경의 서술은 아주 소박하고 단순하고 솔직하다. 사람의 혼을 일깨우는 가르침이 다 그렇듯이 현학적인 논리가 게재되면 거기에는 거짓이나 속임수가 섞이기 쉽다.

감기에 걸려 앓는 부처님(잡아함, 44:4 天經)

등이 아파 눕고 싶다고, 지친 성자의 뜻을 그대로 전하는 부처님(중아함, 53 有學經)

탁발에 나갔지만 얻지 못하고 빈 바릿대로 돌아오는 부처님(SN. 4:18 團食)

한 사람의 바라문에게 질책당하면서 침묵하는 부처님(잡아함, 42:7 阿受羅)

과식하여 헐떡거리면서 찾아온 어떤 왕에게, 항상 양을 알맞게 먹으면 그렇게 고통을 당하지 않고 오래 살게 될거라고 말하는 부처님(잡아함, 42:6 大食)

대승경전에서는 찾아 볼 수 없는 인간적인 모습이 수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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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경전에 나타난 인간붓다의 여러모습들

불타 석가모니는 어떤 사람이었을까. 몇개의 초기 경전을 통해서 그 인상을 일아보고자 한다.

1) 밧카리라는 병든 비구를 주인공으로 한 경전(SN. 22:87, 잡아함경 47:25 밧카리)

그는 마가다의 서울 왕사성에 있는 어떤 도공의 집에서 병을 치료하고 있었다. 그의 병은 조금도 차도가 없이 점점 깊어져 이제는 회복할 기미조차 보이지 않아 절망적이다. 그래서 그의 마지막 소원은 다시 한번 부처님을 뵙고 예배를 드렸으면 했다. 병간호를 하던 시자가 죽림정사에 가서 이런 뜻을 전하자 부처님께서 도공의 집을 방문한다. 밧칼리가 병상에서 몸을 일으키려고 하자 스승은 만류하면서 머리맡에 앉는다.

"대덕이여, 저는 더 살아날 가망이 없읍니다. 조금도 회복의 기미가 보이지 않습니다. 그래서 생각던 끝에 마지막으로 부처님을 뵙고 발에 예배를 드리고 싶었습니다."

이 때 부처님이 그에게 한 말은 경전에 이와 같이 기록되어 있다.

"밧칼리여, 너는 내 이 무너질 육신을 볼지라도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 너는 이렇게 알아라. 법을 보는 자는 나(여래)를 본다. 나를 보려거든 법을 보아라."


2)또 하나의 경전(소부경전 여시어경 92)에는 이런 내용이 담겨 있다.

"비구들이여, 가령 어떤 비구가 내 옷자락을 잡고 내 뒤를 발자국마다 따른다 할지라도, 그가 욕망의 격정을 품고 성난 마음을 품었거나 그릇된 소견을 지니고 게을러서 깨달음이 없다면, 그는 내게서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이고 나는 그에게서 멀리 떨어져 있는것이나 다름이 없다. 왜냐하면 그 비구는 법을 보지 못하기 때문이며, 법을 보지 못하는 자는 나를 보지 못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비구들이여, 또 어떤 비구가 내게서 백일이 걸릴만한 먼 거리에 떨어져 있다고 할 지라도, 그가 애욕을 품지 않고 성내거나 그릇된 소견을 지니지 않으며, 게으르지 않아 깨달음이 있다면 그는 내 가까이에 있는 것이고 나는 그의 곁에 있는 것이나 다름이 없다. 왜냐하면 그 비구는 법을 보고 있고, 법을 보는 자는 나를 보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3) 아함경에는 선우(善友)라는 경전이 여럿 들어 있다. 그만큼 착한 친구에 비중을 두고 있다.(SN. 45:2 羊, 잡아함경 27:15 선우)

부처님께서 석가족이 살고 있는 한 마을에 머무르고 있을 때, 시자인 아난다가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대덕이여, 곰곰히 생각해 보니 우리들이 선량한 친구들과 같이 있는 것은 이 길의 반에 이른 것이나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 말에 부처님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아난다여, 그렇지 않다. 그렇게 생각해서는 안된다. 선우(善友)는 이길의 전부이니라."

그러면서 부처님은 더 자세히 그 뜻을 말씀하셨다.

"아난다여, 너희들은 나를 선우로 삼았기 때문에 늙지 않으면 안될 몸이면서 늙음에서 자유롭게 될 수 있고, 죽지 않으면 안될 인간이면서 죽음으로 부터 자유로울 수 있다(老死에서 해탈).
이와 같이 생각할 때 착한 벗을 가지고 착한 친구들과 함께 있는 것은 이 길의 전부임을 알 수 있을 것이다."


4) 사실주의 자였던 부처님(SN. 35:23 一切, 잡아함경 13:17 生聞一切)

부처님이 사위성의 기원정사에 계실때 비구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비구들이여, 무엇이 전부( 一切)를 이루고 있는가. 그것은 눈과 빛(물체)이고, 귀와 소리, 코와 냄새, 혀와 맛, 몸과 감촉, 생각과 현상(관념)이다. 이것을 이름하여 일체라 한다.
만약 어떤 사람이 '나는 이것 말고 다른 일체를 말하겠다'고 한다면 그것은 단지 말 뿐이므로 다른사람의 질문을 받으면 설명 할 수 없어 곤경에 처하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있지도 않은 것을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일종의 소박한 인식론에 불과하지만, 부처님이 그와 같이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혀로 맛볼 수 있는 것 등을 전부라고 단정한 것은 주목할 만한 일이다. 세상의 종교인들은 흔히 현실 밖에 있는 추상적인 세계에 대해서 말하려는 경향이 짙다. 그런데 여기에서 부처님은 관념적이고 비현실적인 세계에 관계된 것을 거부하고 있다. '독 묻은 화살의 비유'를 말한 경전에도 나오듯이, 부처님은 사후세계에 대해서 말하려고 하지 않았다.


소부경전 중 여시어경(如是語經) 102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비구들이여, 나는 아는것, 보는 것에 대해서와 번뇌의 소멸에 대해서 말한다. 알려지지 않은 것,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는 다."


제자들은 부처님의 설법에 대한 회상을 다음과 같이 표현하고 있다.

(SN.40:10 帝釋).

"세존에 의해 잘 말해진 법은 현생적(現生的)이고 즉시적(卽時的)인 것이다. '눈 있는 자는 와서 보라'고 했듯이, 열반의 길로 인도 함으로써 지자(智者)는 스스로 알아 차릴수 있다."


5) 욕설을 침묵으로 갚는 부처님(SN. 7:2, 잡아함경 42:89)

부처님이 마가다의 왕사성 밖에 있는 죽림정사에 계실때, 그 근처에 지체높은 바라문이 살고 있었는데, 그 집안의 한 젊은이가 부처님께 출가하여 제자가 되었다.
그 바라문은 집안의 수치라 생각하여 부처님을 찾아와 노발대발 갖은 욕설을 퍼부었다.

(이런 때 부처님은 결코 상대하는 일이 없다. 잠자코 들으면서 폭풍이 가라앉기를 기다린다.노여움에 대해서 노여워 하지 않음이 진정한 승리임을 알기 때문)

바라문의 욕소리가 잦아지자 부처님은 이와 같이 반문한다.

"바라문이여, 당신집에도 친구나 친척 등 방문객이 찾아올 때가 있읍니까 ? "

"물론 우리집에도 손님이 찾아오지요."

"그때 당신의 집에서는 손님한테 음식을 내놓는 일이 있읍니까 ? "

"그건 물을 것도 없소."

"바라문이여, 그때 만약 손님이 음식을 들지 않으면 그것은 어떻게 처리합니까? "

"그건 할 수 없지요. 우리 집에서 먹을 수 밖에요."

(부처님의 반문은 일단 끝난다)

조용한 목소리로 바라문에게 다시 말을 잇는다.

"바라문이여, 방금 당신은 내게 온갖 욕지거리를 퍼부었소. 그러나 나는 그것을 조금도 받아들이지 않았소. 그러니 그 욕지거리는 당신 것이오. 어서 추심하시오. 만약 내가 당신의 욕설에 맞장구를 치거나 욕설로써 응수했다면, 주인과 객이 같은 음식을 먹은 거나 다름이 없었을 것이오. 그러나 나는 조금도 그 음식에 손을 대지 않았으니, 그것은 당신이 먹을 수밖에 없지 않소?"

바라문이 반성하는 빛을 보이자 부처님은 게송으로써 말씀하셨다.

" 성난 사람에게 화내어 대꾸하면
거듭 악이 되는 것을 알아야 한다.

성난 사람에게 화로써 갚지 않으면
그는 두개의 승리를 얻는다.

남이 성낸것을 보고
정념(正念)으로 자신을 진정시킨 사람은
자기 자신을 이기고
또 남을 이기게 된다. "

이 게송을 듣고 바라문은 깊이 뉘우쳐 부처님께 출가하여 제자가 되었다고 경전은 맺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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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지혜의 도

다음으로 근본불교의 기본적인 성격에 대해 이야기할 순서에 이르렀다.

예전부터 인도의 종교학자나 사상가들은 그들이 지닌 종교와 사상을 다음 세가지 범주로 나누었다. 그것은 또한 인간이 지닌 여러가지 종교적인 요구이기도 하다.


희생, 예배, 고행 등으로 이루어진 종교, 이는 '의례(儀禮)의 도(道)' 다. 바라문교가 여기에 속한다.


절대적 귀의에 의한 신앙으로 이루어진 종교, 이는 '신앙의 도' 다. 기독교와 회교가 이 범주에 속한다 .

종교의 지적인 부분을 중심으로 이루어진 종교, 이는 '지혜의 도' 다. 불교가 여기에 속한다.


1)불교는 이와 같이 지혜의 도로서 출발한다.

우리는 인생을 곧잘 나그네에 비유한다. 한평생 살아가노라면 예측할 수 없는 일에 부딪친다. 그래서 좌절하고 절망하고 혹은 탐하고 성내고 싸우고 혹은 울고 웃는다.

여기에서 새로운 눈을 뜨고, 지혜를 일으키고 올바른 길을 걸어, 마침내 자유의 경지에 이르도록 가르치게 된다.

불타 석가모니가 성도후 최초로 어떤 설법을 했느냐 하는 것은, 불교의 성격을 말하는데에 중요한 소재가 될 수 있다. 그는 녹야원에서 다섯사람의 수행자(이들은 그뒤 5비구가 된 최초의 제자)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수행자들이여, 진리를 구현하려는 출가 수행자는 양 극단에 가까이해서는 안된다. 하나는 온갖 욕망에 집착하는 것. 그것은 저열하고 비천한 범부의 소행이다. 현명한 삶의 할 일이 아니다.

다른 하나는 지나친 고행을 하는 것. 그것은 다만 스스로를 괴롭힐 뿐 현명한 사람의 할 바가 아니다. 그것은 또한 도리에 맞지도 않는다.
나는 이 두개의 극단을 버리고 중도(中道)를 깨달았다. 그것은 눈을 열고 지혜를 일으키고 깨달음과 열반에 이르는 길이다. "(초전법륜경)

이것은 불타 자신의 체험에서 나온 말이다. 출가 전 세속적인 쾌락의 생활과 출가 후 극단적인 고행에서 얻은 교훈이다.

진리의 말씀(法句經) 제40송에는 이런 내용이 실려 있다.

이 몸은 물항아리처럼 깨지기 쉬운 줄 알고
이 마음을 성곽처럼 굳게 하여
지혜의 무기로 악마와 싸우라
싸워 얻은 것을 지키면서 꾸준히 정진하라.

불교는 '부처님의 가르침'만이 아니라, 우리 자신이 부처가 되는 길(成佛의 道)이기도 하다. 따라서 초기불교는 '지혜의 도' 이면서 '개인의 도' 이기도 했다. (이는 후기 대승불교에 의해 '대중의 도'로 확산된다)

2) 자기의 의지처는 자기 뿐이다(自歸依 法歸依) (SN. 3:60 상가라경)

부처님이 기원정사에 계실 때 상가라라는 한 바라문이 찾아와 부처님께 물었다.

"덕이 높으신 분이시여, 우리들 바라문은 신 앞에 제사를 올리고 희생을 바쳐(짐승을 잡아 제사 지내는 일) 자신과 남들을 위해 재앙을 없애고 복을 비는 길을 닦습니다. 그런데 세존의 제자들이 하는 짓을 보니, 오로지 자신만을 다루고 자신만을 문제삼고 자신의 고뇌를 없애는 일에만 전념하는 것 같습니다. 그것은 말하자면, 자기 한 사람만을 위해 닦는 길이 아니겠습니까 ?"

부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바라문이여, 당신은 이 일을 어떻게 생각합니까. 이 세상에 여래. 정각자가 나타나 이와 같이 말합니다. '--이것이 길이다. 이것이 실천이다. 나는 이길을 가고 몸소 실천하여 번뇌가 사라지고 해탈을 얻었다. 그대들도 와서 이 길을 가면서 몸소 실천하여 번뇌를 없애고 해탈을 얻으라.'고
이 말을 듣고 사람들이 그 길로 가서 해탈을 얻은 이가 수백, 수천, 수만에 이른다면 그래도 이길을 자기 한 사람만을 위한 길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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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분석적인 가르침

열반경(DN.16)에서 부처님은 병석에서 일어나자 비탄에 잠긴 아난다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하신다.

"아난다여, 너희들은 내게 무엇을 더 기대하는 거냐. 안으로나 밖으로나 낱낱이 법을 설했다. 여래의 법에는 어떤 부분이든지 제자에게 감추는 일은 없다.

아난다여, 만약 내가 출가 승단의 지도자라든가 승단이 내게 의지하고 있다고 생각한다면, 나는 최후를 맞아 승단에 대해서 무엇인가를 말하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 그러나 나는 승단의 지도자가 아니고 출가 승단이 내게 매어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나는 임종에 당해서도 너희들에게 할 말이 없다."

그러면서 이런 말을 남긴다.

"너희들은 자신을 의지하고 남을 의지하지 말라. 법(진리)에 의지하고 남에게 의지하지 말라. 이와 같이 하면 누구나 수행자로서 최고의 경지에 도달하게 될 것이다. "

자기야말로 자신의 주인
어떤 주인이 따로 있을까
자기를 잘 다룰 때
얻기 힘든 주인을 얻은 것이다."
(진리의 말씀, 60송)

이와 같은 교훈이 후기 선(禪)불교에 오면 '마음'의 문제로 변용된다. 그래서 "마음 밖에서 찾지 말라" "문으로 들어온 것은 집안의 보배가 될 수 없다." 고 강조한다.

1)초기불교는 분석적인 가르침이다.

불교가 '지혜의 도'로서 출발했다는 데에는 그것이 '분석적인 가르침'이었다는 것을 내포하고 있다. 불타 석가모니의 가르침을 자세히 살펴보면, 세계와 인생에 대해 행한 지적 작업은 주로 관찰과 분석이었다. 투철한 관찰로써 사실대로 보았고, 치밀한 분석으로서 대상을 여러가지 요소로 나누었던 것이다.

이를테면, 인간을 구성하고 있는 요소를 다섯가지로 나누고 있다(5온). 즉 색(色), 수(輸), 상(想), 행(行), 식(識) 인데, 색은 물질적인 요소이고 수상행식은 정신적인 요소이다. 이 다섯가지가 화합하여 인간을 이룬다고 보았다.

보리수 아래서 정각(바른 깨달음)을 이룬 다음 명상을 계속하여, 연기(緣起)의 법칙을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우다나경 1:1-2)

"이것이 있으므로 저것이 있고
이것이 일어나므로 저것이 일어난다.
이것이 없으므로 저것이 없고
이것이 멸하므로 저것이 멸한다."

존재와 현상의 상관관계를 말한 이것은 '연기의 공식'이다.
그가 출가에 직면해서 지녔던 과제는 생노병사이다.

"수행자들이여, 내가 정각을 이루기전 수행자 시절에 일심으로 이와 같이 생각했다.
'참으로 이 세상은 고통속에 있다. 나고, 늙고, 병들고, 죽고, 다시 태어나고 .... . 그러면서도 그 고통으로부터 벗어날 줄을 모른다. 도대체 어느 때 가서야 이 고통, 이 늙음과 죽음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 '

이때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무엇이 있기 때문에 늙음과 죽음이 오는가 ? 그렇다. 생이 있기 때문에 늙음과 죽음이 오는구나.'

이와 같이 차례차례 생각한 결과 무명(無明)에 의해 행(行)이 있고, 식(識). 명색(明色). 육입(六入). 촉(觸). 수(受). 애(愛). 취(取). 유(有). 생(生). 노사(老死) 등 12가지에 의한 연기의 연쇄에 이르게 된다. 즉 12연기의 이법을 깨닫는다.

이와 같이 분석한다는 것은 단순히 세상을 분별하여 조각조각 해체하는 데에 그 뜻이 있지 않고, 문제를 단순화시켜 이법의 본질을 추구하려는 것이다.

2)초기불교는 형이상학적인 물음을 지양, 현재를 최대한으로 살것을 강조한다.

불타 석가모니는 내세적인 것이나 형이상학적인 문제에 대해서는 거의 언급을 하지 않았다. 그것은 우리들의 현실생활에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같은 시대 인도의 사상계에서는 6 파철학이 성행, 불필요한 논쟁을 일삼았던 것과는 아주 대조적이다.(독묻은 화살을 참조)

중부경전에는 아래와 같은 '일야현자의 게(一夜賢者의 偈)'가 실려 있다.

"과거를 따르지 말고 미래를 기대하지 말라.
한번 지나간 것은 이미 버려진것
또한 미래는 오지 않았다.
이러저러한 현재의 일을 이모저모 자세히 살펴
흔들리거나 움직임이 없이
그것을 잘 알고 익히라
오늘 할일을 부지런히 행하라
누가 내일의 죽음을 알 수 있으랴.
진실로 저 염라왕의 무리들과
싸움이 없는 날 없거늘
밤낮으로 게으름을 모르고
부지런히 정진하는 사람
그를 가리켜 현자의 밤이라 하고
마음 고요한 성자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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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여미는 말

아무리 위대한 사상이라 할지라도 언제 어디서나 한결같이 완벽할 수는 없으며 고정불변할 수도 없다. 모든 것은 변하듯이 종교도 사상도 시대적인 요구에 따라 새롭게 태어나기 위해서는 변모를 거치게 마련이다.

근본불교를 이해하고 나서 그에 대한 안티테제로서 발생한 대승불교에 접근할 때, 우리는 불교의 참모습이 어디에 있는지를 알 수 있다. 우리들이 익히 알고 있는 Hegel에 의하면, 인간에게 있어서 사유의 원리는 끊임없이 These(正)-Antithese(反)-Synthese(合), 이 셋의 발전단계를 거친다는 것, 모든 명제나 개념은 그 고정의 작용이 끝나게 되면 스스로 그 안에 모순을 갖게 된다. 그것이 정에 대한 반이다. 따라서 그 모순에 대해서 인간의 사유는 다시 정과 반을 극복, 보다 높은 자각속에 그것을 종합하려는 사상적 작업이 시작된다. 이것을 止揚(Aufheben)이라 부른다. 이 지양에 의해 새롭게 된 명제나 개념을 Synthese(合)라 했다.

불멸 후 100년경 간지스 중류 북쪽에 베살리(일찍이 상업이 발달, 유마거사의 활동무대이기도 한 곳) 근처에 있던 비구니들이 열 가지 계율(十事)에 대한 변경에 주장하기에 이른다. 식사시간이라든가, 탁발의 작법과 같은 지극히 지말적인 내용인데, 그중에는 보시에 의한 화폐를 받는 것을 인정하자는 내용이 있었다. 이것은 비구계에서는 금지된 사항이다. 화폐경제의 급속한 발전에 따른 교단의 율의의 적응을 요구한 것.

장로비구들은 종교회의(第二結集, 700結集, B.C. 376-375)를 개최 십사(十事)는 비율(非律)이라고 부결한다. 그러자 베살리 비구들은 이 결정에 불복, 많은 동지들을 규합하여(1만인이었다는 설도 있음) 따로 회의를 가져 장로들과 결별한다. 이것은 불교교단 내의 진보파들.

뒷날 대승불교는 이 대중부의 계보를 계승한 것인데, 그들의 주장은 불타 석가모니의 교법을 곧이곧대로 지키려고 하는 정통파에 대한 비판적인 입장이다. 그들은 먼저 자기형성에 전념할 것을 말한 부처님의 교법에 대해서 도리어 대중의 구제(下化衆生)가 선행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부처님을 직접 비판하는 일은 없었다. 열반의 경지에 안주하는 성자(阿羅漢)의 이상을 비판했을 뿐, 그들은 아라한 대신 보살(菩薩)이라는 새로운 불교의 이상적인 인간상을 내세웠다.

이와 같은 새로운 주장을 위해 그들은 새 경전을 많이 만들어냈다. 이것이 이른바 대승경전이다. B.C. 2세기에서 기원 후 1세기 사이에 중요한 대승경전들이 제작된다.
그들은 전통적인 상좌부를 멸시, 소승이라 불렀다. hina란 '폐쇄된' '낮은' '뒤떨어진' '결점이 있는' 등의 의미를 가진 형용사. yana란 '수레' '교법'을 뜻하는 명사. 뒤떨어진 교법이란 뜻. 그러면서 자기들은 스스로 대승이라 뽐냈다. maha란 '위대한' '빛나는' 등의 의미를 가진 형용사. 그러니 '뛰어난 교법'이란 뜻.
이렇게 되자 상좌부에서는 대승을 불설이 아니라고 반박하게 되고, 대중부에서는 소승의 무리들로는 알바가 아니라고 대립한다.

그러나 앞에서도 말한 바와 같이, 모든 것이 변하는 것은 우주질서다. 종교도 사상도 시대적인 요구에 따라 새롭게 태어나기 위해서는 변모를 거치지 않을 수 없다. 이와 같은 일은 그 이후도 끊임없이 불교의 역사 속에 되풀이되고 있다. 그 한 예가 중국에서 이루어진 '교외별전(敎外別傳) 불입문자(不立文字) 직지인심(直支人心) 견성성불(見性成佛)'을 주장한 선불교이고, 정토왕생을 발원한 염불이다. 선종과 정토종은 역사적으로 볼 때 중국에서 이루어진 불교의 한 종파다.